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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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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가정의 16남매 중 15번째로 태어나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억척스러운 노력 끝에 기업의 간부가 됐던 30대 여자’ ‘영어를 거의 못하던 불법 이민자 출신으로 월스트리트 브로커로 성공했던 남자’ ‘손자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것이 행복이었던 자상한 할머니’ ‘눈비를 가리지 않는 골프광으로 몸이 아파도 친구와 돈내기 골프를 했던 남자’ 등등.
뉴욕타임스는 9·11테러 발생 1년이 다 돼 가도록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1개 면 전체를 할애해 희생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슬픔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이 장기 연재물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명에 간 이웃과 동료들을 잊지 말고 기억함으로써 9·11 참사의 교훈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자는 것이다.
미국에서 9·11테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길거리에선 성조기를 단 차량을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1년 내내 성조기를 집 밖에 내걸고 지낸 가정도 적지 않다.
다음달 초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각급 학교에서도 9·11테러는 중요한 교과목으로 자리잡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등은 신입생들에게 9·11테러와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 코란을 반드시 읽도록 했다.
이 같은 미국의 모습은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비극적 사건 사고들이 너무도 쉽게 잊혀지는 한국과 크게 대조적이다.
한국인의 망각 속도가 미국인보다 빠른 것일까. 아니면 아픈 상처를 빨리 잊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가 더 강한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인들은 슬픔을 통해 뭔가 교훈을 얻으려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쉽게 잊지 않고,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어떤 비극적 사건도 한두 달이 지나면 대개는 관심권 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한기흥 워싱턴 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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