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그 시절이 아니더라도 해인사 화장실은 아직까지 재래식이며 크고 깊은 곳으로 유명하다. 널빤지 두 개 걸쳐놓은 예전의 그 아찔한 화장실은 아니지만 깊이만큼은 변함 없다. 어쩌다 처음 온 이들이 밑을 내려다보면 기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볼 일을 다 마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 소문만큼 사고도 많다. 지금은 양변기를 놓아 아이들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갑이나 귀중품을 빠뜨리는 사고는 종종 일어난다. 얼마 전 어느 외국인이 일을 보고 바지를 올리다가 지갑을 빠뜨렸을 때 스님들이 긴 장대를 이용해 건져 올려 준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화장실의 의미를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생리적 현상이 급할 때는 누구나 진땀이 난다. 한마디로 이 ‘뱃속의 근심’은 지위고하가 없고 체면도 상관없다. 그러므로 한바탕 근심을 풀고 나면 얼마나 시원한가. 이런 점에서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이름 붙인 스님네들의 지혜와 해학이 돋보인다.
절 집의 해우소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있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 있어라.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도 이같이 버려 한순간의 죄업도 없게 하리라.’
새삼스런 말 같지만 배설한다는 의미는 비운다는 뜻이다. 다 비워버리면 뱃속이 상쾌해 지는 것처럼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진다는 가르침이다. 애써 말할 필요없이 소유와 집착은 우리 네 삶을 비만하게 만들고 있다. 삶의 둘레를 살펴보면 이런 저런 필요에 의해 소유한 물건과 인연의 부피가 너무 많다. 알고 보면 소유의 배경은 구속이다. 그러므로 비운다는 것은 대상이 주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다.
채우면 버리는 게 육신의 생리지만 삶의 생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날마다 소유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특히 돈과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날마다 보고 듣고 있다. 삶의 리듬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진짜 근심일까?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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