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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1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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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신성한 소망입니다. 사실 전 인류의 절실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이 엄숙한 기회로 인하여 더 나은 세계가 과거의 피와 살육을 딛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과 이해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세계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인내와 정의에 대한 소망이 완성되기 위해 헌신하는 세계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평화가 이 세상에 다시 찾아오고 하느님이 언제까지나 평화를 보호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사상-지역-계급갈등 이제그만▼
맥아더 장군의 연설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으로써 과연 피와 살육을 딛고 더 나은 세계가 찾아왔는가. 자유에 대한 소망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평화가 찾아왔는가. 아니다. 아니었다. 지금도 계속 아니다.
전후 독일처럼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어야 할 일본 대신 식민지 조선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어째서 북일본과 남일본으로 분할되어 있어야 할 일본 본토 대신 전혀 상관없는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야 했단 말인가.
그뿐인가. 우리는 우리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사상의 대리전으로 6·25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폭탄보다 더 강력한 폭발물을 국지에 불과한 한반도에 집중 투하함으로써 600만명 이상의 살상과 이재민을 낳은 인류 대참사의 참혹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보다 더 잔인한 것은 형이 동생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동족상잔의 더러운 전쟁을 벌임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미덕을 잃어버린 그 정신적 상처가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뿐인가.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독재자들의 권모술수로 안으로는 지역적 갈등과 계층적 갈등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상처를 입히는 이데올로기적 내홍을 겪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45년 이른바 일제에서 독립하여 광복이 된 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수직적인 사상 갈등과 수평적인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안팎으로 갈가리 찢긴 영혼의 불구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광복은 왔으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전쟁은 끝났으나 평화 역시 오지 않았다. 구속에서는 풀려났으나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식민에서는 벗어났지만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무엇인가. 이 지구상의 단 하나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 민족,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한민족에게 진정한 해방과 평화와 자유가 찾아오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 맥아더 장군이 연설하였던 대로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에 대한 소망이 완성되는 그 평화의 세계가 한민족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로 손을 잡고 부르는 겸연쩍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인가. ‘아이고 오마니’하고 얼싸안고 통곡하는 눈물인가.
시인 엘리아르는 ‘자유’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였다.
“나의 대학노트 위에/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모래 위에 그리고 눈 위에/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나의 피신처 위에/무너진 나의 등대들 위에/권태스러운 담벽들 위에/나는 네 이름을 쓴다/그리고 한 마디 말의 위력으로/내 인생을 다시금 마련한다/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고/너를 이름짓기 위해 있느니/오, 자유여.”
▼진정한 광복 준비할 때▼
시인 엘리아르가 대학노트 위에 자유의 이름을 쓰고, 자유를 알기 위해 태어났다고 노래했다면 6월 온 국민이 뛰어나와 ‘잠이 깬 오솔길 위에/환히 뻗은 행길 위에/넘쳐 있는 광장 위에/붉은 바다의 물결을 이루며/오오 대∼한민국’하고 이름지으며 노래한 것은 흙 다시 만져보고, 바닷물도 춤 추는 신(新) 광복절을 맞이하기 위한 굿이었으니. 일어나라, 민족이여, 이제야말로 제2의 해방을 맞이할 때가 되었다.
그대들이 흔들었던 붉은 깃발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나타내는 민중의 삼색깃발이니, 이제야말로 껍데기는 가라. 우리를 짓밟았던 공산주의여, 제국주의여, 체제여, 반체제여, 전라도여, 경상도여, 가라. 박정희여, 김일성이여, 우스꽝스러운 허수아비들이여,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모두 가고 제2의 광복이여, 우리에게 오라.
최인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