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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5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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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문예평론의 사각지대에 머물러온 창작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를 고찰하는 평론이 등장했다. 문학평론가 성민엽(서울대 교수·중문학)은 계간 ‘문학과 사회’ 최근호에 기고한 ‘한국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창작무협소설이 이전 중국무협의 붕괴 또는 해체에 기반을 둔 새로운 텍스트를 선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신세대 무협 작가는 좌백 풍종호 진산 장경 등 네 사람. 성교수는 이전에 독자층을 사로잡았던 대만 주류 무협소설이 ‘사회의 기성 윤리와 기성 질서에의 편안한 적응에 대한 이야기’라 정의한 뒤 이러한 기존 무협의 기대를 배반하는 창작무협의 특징들을 지적했다.
‘신무협’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좌백 작 ‘대도오(大刀傲)’에서 주인공 대도오는 결코 무림의 대협(大俠)이 되기를 꿈꾸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낭인의 길을 걸으며 무림사회의 기성 질서에 내포된 허위와 속물성을 비웃는다고 그는 분석했다. 풍종호 작 ‘경혼기(驚魂記)’는 기존 무협의 주된 테마인 ‘사부의 복수 완수’ 가 더 이상 삶의 목적이 되지 않고 단지 자유 및 해방의 완수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고, 진산 작 ‘홍엽만리(紅葉萬里)’는 운명적 죄업에 얽힌 비극적 서정성이 기존 무협의 테마를 대치하고 있다는 것.
성교수는 90년대 이후 창작무협의 특징을 ‘신분 상승보다 삶의 실존적 의미를 찾는 일종의 실존주의’로 규정하면서 ‘장르 내적으로는 기존의 무협소설을 의심하고, 작품 내적으로는 무림 사회의 질서를 위심하며, 작품 외적으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제도를 의심하는 등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의심으로 삼는 일종의 삐딱한 반(反) 로망스’라고 그 특징을 설명했다.
이 논문은 필자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1969년 문학평론가 김현이 ‘세대’에 발표한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 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에 이은 30여년만의 본격적 무협 비평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