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영한/전력대란 기다릴 순 없다

  • 입력 2002년 4월 1일 18시 36분


발전파업이 한 달을 넘어섰다. 미복귀자 징계가 진행되는 데도 파업은 계속되고 있고, 현장에서는 복귀자와 미복귀자 간의 노노(勞勞)갈등까지 일어나고 있다. 국민은 결국 전기요금에 전가될 하루 15억원대의 손실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전력대란’의 불안감으로 하루빨리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노조는 대규모 동조파업까지 강행하는 등 오히려 확전 양상이다.

요즘 발전파업에 관해 주변에서 자주 물어오는 것이 있다. 첫째는 파업의 이유가 과연 민영화를 하면 국가이익에 해가 되기 때문이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전력대란이 일어날 것 같으냐 하는 것이고, 셋째는 보통 때의 30%도 안 되는 사람들이 발전소를 운전하는 데도 어떻게 한달 동안이나 전기가 잘 들어오느냐 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발전 파업인가▼

먼저, 파업의 표면적 이유는 민영화에 따른 국부 유출이나 전기요금 문제를 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민영화 이후의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이 주된 이유다. 현실적으로 발전사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우리나라도 지난 5년 이상 준비해 왔다. 수많은 토의와 노사간 여야간 타협 등 우여곡절을 거쳤다. 결국 공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여야 합의로 어렵게 국회에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이미 발전회사가 분할되고 전력거래소까지 생긴 마당에 노사문제로 중단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노조가 들고 나온 해외 매각에 따른 국부 유출과 소유구조, 전기요금, 설비건설 등도 지난 몇년 동안 언론 정부 국회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히 논의되었다.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민영화 과정에서 국회나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완해 나가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전력의 공급사고는 확률의 게임이다. 보통 때도 1년에 0.5일 정도의 공급부족 가능성은 있으나 대규모 정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4, 5월까지는 대체인력과 복귀인력 등을 활용하고, 비상시 단계별 송전차단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비 오조작과 불시 사고에 대한 대처능력의 저하로 사고확률은 점차 커진다. 또한 대규모 정전이 아니더라도 주파수와 전압이 규정치를 벗어나게 되면 반도체 정보기술(IT) 정밀산업 등에 큰 경제적 손실을 미치게 된다. 만약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면 손실은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전력대란의 가능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각 발전소의 기술자들이다. 이들이라도 지금 바로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파업으로 기술자들이 더 얻을 실익은 없다. 만에 하나 전력대란이 일어나는 날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치달아 국민 모두는 물론 관련 당사자에게 큰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한편 지금과 같이 30% 정도의 인력으로 발전소가 장기간 운전된다면 앞으로 인력과잉문제가 불거져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통계적으로 볼 때 인력과잉 정도가 크지 않다. 발전량 대비 종업원 수 지표를 보면 구조개편이 완료된 현재의 영국이나 선진국보다 오히려 노동생산성이 높다.

오히려 민영화 이후의 고용불안 때문에 시작한 현재의 쟁의가 대량해고와 같이 더 심각한 고용불안을 자초하고 대체인력에 의한 인력과잉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경력자와 신규인력을 채용하고 군 인력을 교육해서 대체 투입한다면 결국은 누군가가 일자리를 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복귀자에 최대한 관용을▼

이제 노조는 서둘러 파업을 종료하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개개인에게 큰 명분도 실익도 없는 집단 간의 기세싸움에 가족과 일터를 희생시키기보다는 빨리 돌아가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사측도 민영화 원칙이 지켜진다면 복귀하는 근로자, 특히 기술인력에 대해 최대한 관용을 베풀어주기를 바란다. 숙련된 기술인력은 1, 2년에 양성되지 않는다. 특히 요즘과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지원하는 우수인력조차 없다.

지금 우리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이라는 손님맞이 행사를 앞두고 있다. 국민은 파업의 장기화와 전력대란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혼란과 경제불안을 가중시켜 막 경기가 기지개를 켜고 국가신인도가 올라가는 우리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권영한 한국전기연구원 원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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