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살빠지는 로션’

  • 입력 2002년 1월 18일 18시 12분


요즘 젊은 여성들의 화두 가운데 으뜸은 단연 살빼기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무조건 48㎏까지 줄이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이들에게 무심코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다간 두고두고 원망 듣기 십상이다. 최근 한 단체가 여대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원이 ‘나는 비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살빼기에 효험을 봤다고 입소문만 나면 뭐든지 불티나게 팔리는 통에 국내 다이어트 시장은 한 해 수조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그뿐인가. 여고생이 등장해 살빼기에 도전하는 TV 프로그램이 청소년 사이에 화제고, 이름도 생소한 몸매관리사가 유망직업으로 뜨는 세상이다. 말 그대로 ‘살과의 전쟁’이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미인으로 꼽히는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는 모두 글래머에 가까웠다고 한다. 여자 몸매의 기준처럼 여기는 비너스상도 허리가 역대 미스 월드의 평균 사이즈보다 10㎝나 더 큰 풍만한 모습이다. 굳이 외국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은 대개 포동포동하다. 또 신라와 고려시대엔 관음상을 이상형으로 쳤고 조선조 화가 김홍도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도 깡마른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날씬한 외모보다는 뚱뚱한 외모가 좋다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뚱뚱하면 왕따당하기 일쑤인 우리와는 딴판이다.

▷‘슬림형’이 이상적인 여성 몸매로 자리잡은 데는 TV의 영향이 크다. TV에 등장하는 톱스타들은 대부분 날씬하다 못해 마른 편이다. 10대 여학생들이 이상형으로 꼽은 모 탤런트는 실제로 보면 너무 말라 애처로울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저마다 체중이 40㎏ 전후라고 하니 문제다. 정상적인 체격이라도 이들 가운데 섞여 있으면 살이 쪄 보인다. 드라마 주연은 으레 가냘픈 몸매고 뚱뚱한 탤런트는 대개 별 일 없는 조연이나 악역으로만 나오니 청소년들이 앞다퉈 살을 빼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이젠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다이어트 강박증에 시달리는 세상이다. 살을 빼겠다며 한사코 먹기를 거부하다가 거식증으로 병원신세를 지는 어린이가 많을 때는 병원 입원환자의 3분의 1에 이른다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일본에서 최근 ‘살빠지는 로션’을 개발했다고 한다. 바르기만 하면 한 달에 1㎏이상 살이 빠진다니 또 너도나도 주머니를 털게 생겼다. 이러다가 하나같이 말라깽이가 되면 그때 다시 ‘두둑한 살집’이 각광받는 세상이 될까.

최화경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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