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시위문화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8시 31분


시인이자 음악평론가인 김갑수씨가 얼마 전에 낸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말이지 무도한 독재자가 공포의 칼을 휘두를 때가 역설적으로 마음만은 편했다. 적어도 나 자신이 그런 권력자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전횡과 횡포를 부리는 현실의 강자는 누구인가. 화장장이나 쓰레기 소각장 같은 환경시설을 기를 쓰고 몰아내는 아파트 주민들은 혹시 아닐까….”

▷김씨 말처럼 80년대 독재시절엔 차라리 사람들 마음이 편했던 측면이 있었을 법하다. 그 시절엔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민주화를 가로막는 ‘공동의 적’을 비난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때의 시위는 상당수 시민의 공감을 얻기도 했었다. 지금 30대 후반이 넘은 사람들 중에는 대학시절 데모 현장에서 전경에 쫓기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잠시 몸을 피했던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룬 뒤에도 거리 시위는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된 집단과 각종 이익단체들이 높이는 목소리들이다. 민주화가 다원화(多元化)와 동의어라는 점에서 이런 현상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각종 이익단체가 도심에서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시도때도 없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Hobbes)적 사회’에 접어든 게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무엇보다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과거 시위에선 정권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과격성이 용인될 수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젠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최근 언론에 나온 사진 두 장이 눈길을 끈다. 한 장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허수아비 화형식을 하는 대규모 시위 장면, 다른 한 장은 국회 앞에서 댐 건설에 반대하는 1인 시위 중인 김용택 시인의 사진이다. 거리로 뛰쳐나온 절박한 심경이야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쪽이 더 호소력이 있을까는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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