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1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우리들의 삶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조직, 장소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이를테면 세계 건너편에서 발생한 테러와 반테러 혹은 불황이 한반도의 통일과 실업, 빈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제멋대로 결정하는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라면, 연구자, 사회 운동가, 기업가, 정책결정자 혹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반드시 이 ‘제국’이라는 저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제국’은 정치경제학 문화학 철학 정치학 역사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점차 혼란에 빠져들고 있는 21세기에 대한 종합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그리 쉽게 잃히지 않음에도 이 책은 작년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간된 이래 베스트 셀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6개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이 책의 미덕은 그 동안 근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미시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오히려 근대를 강화시켜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탈근대 사조들의 문제점을 제국과 대중이라는 문제틀의 배치를 통해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탈근대와 근대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해결을 모색해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환영받을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인 관념과는 달리, 이 책에서 제시되는 ‘제국’은 초강대국인 미국이나 낡은 제국주의의 부활을 가리키지 않는다. 로마제국과 미국 헌법을 연결시키는 독특한 분석을 통해, 저자들은 미국은 제국 내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지만 제국 자체는 아니라는 점, 근대의 산물인 제국주의는 이미 분석적 효용성을 상실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국’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혼성적 정체 즉 군주제, 과두제, 민주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혼합성, 하나의 중심이 아닌, 예컨대 국제기구(UN, WTO, IMF), 초국적 기업(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들을 포함하는 다수의 중심들, 정치·경제·문화를 결합시키는 통제 권력, 그리고 바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규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보다 강조하는 것은 제국 자체 보다는 제국을 만들어냈고 또 그것에 도전하는 대중들에 대해서이다. 저자들은 오늘의 세계가 새로운 혼란 이행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하면서도, 문명 충돌과 같은 세속적이고도 암울한 예언자적 어조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실천해오고 있는 혼성적, 유목적, 자율적 기획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치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했던 마르크스의 ‘자본’이 케인즈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수정을 낳게 한 것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해온 반근대, 반서구 운동들은 제국이라는 체제를 만들어냈는데,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제국 내부는 제국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움직임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쯤에서 제국에 대항하는 대중들의 운동이 제국을 전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방향은 어떤 것인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필자들은 대중들이 제국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제국의 전복 가능성과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촉구하기 위해 집필된 이 책이 21세기의 ‘공산당 선언’이라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제 ‘Empire’(2000년).
김동택(성균관대 연구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