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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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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총리는 당초 오전 9시반경 서울에 도착해 오후 3시∼3시반경 이한할 예정이었으나 일측은 최근 “국회일정 때문에 1시간 정도 더 일찍 떠났으면 좋겠다”고 제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측은 통상 실무 방한시 생략하는 ‘국립묘지 참배’를 강하게 희망하면서 전체 방한시간을 줄여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한일 정상회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최 오찬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면담 △국회 방문 △항일유적지 방문 및 기자회견 등 최소한의 일정도 소화하기 힘든 판에 시간 단축은 말이 안 된다며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초 고려했던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방문’도 취소하고 이 총리 및 국회 여야 지도자와의 면담도 상견례 수준으로 낮추는 등 이미 일측에 ‘최대한의 배려’를 했던 터여서 방한시간 단축은 반일 감정에 더욱 불을 지필 공산이 크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국립묘지 참배 요구는 “전쟁에서 숨진 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므로 자신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잔꾀’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8일 방중 때도 겨우 8시간을 머물며 베이징(北京) 근교의 항일유적지 루거우차오(盧溝橋)을 찾아 “부전(不戰)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성 해명’만 했던 만큼 이번 서울 방문도 그에게 면죄부만 주게될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찮다.
한 당국자는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꽁치 분쟁 등에 따른 국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을 수용했는데 일측이 무성의한 태도로 나와 한일관계가 더욱 나빠질 것 같다”며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의 방한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정부는 고이즈미 총리 방한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전례 없이 엄중한 경호 대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