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연구소장 본각스님 "비구니 법맥은 세계적 문화유산"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28분


“이제 비구니 연구소를 인가해 주세요.”(본각스님)

“학교에 아직 비구 연구소가 없는데 어찌 비구니 연구소를 두겠소?”(종범 스님)

“아니 한국 불교사가 온통 비구의 역사인데, 비구스님 따로 운운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본각스님)

‘한국 비구니 연구소’ 소장인 비구니 본각(本覺)스님이 최근 조계종 중앙승가대 교수회의에서 총장인 비구 종범(宗梵)스님과 주고받은 얘기다.

“한국 비구니의 법맥이 얼마나 세계적인 ‘물건’인지 아마 아시는 분 몇 안되실 겁니다. 현재 비구니 승단이 남아있는 것은 한국과 중국 뿐입니다. 일본 불교는 재가중심이어서 여성 수도자를 전통적인 비구니라고 볼 수 없습니다. 중국은 대륙의 불교전통이 이미 끊어진 것과 다름없고 대만의 비구니 승단이라는 것은 대륙의 전통에 맥을 갖다 대는 것인데 그 대륙의 전통이 사실 희미합니다. 결국 비구니 승단이 승단으로서의 형식을 지니고 규범과 절차를 지키며 거의 2000년을 지켜온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눈치빠른 외국 학자들은 벌써 한국 비구니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료가 없는 것이다. 연구도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본각스님은 ‘어딘가에 있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찾아보면 비구니 승방 등에서 전해오는 사찰의 역사가 있을 것이고, 또 일제강점기 시대를 거쳐온 연로한 비구니 스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본각 스님은 이런 생각으로 1999년 중앙승가대의 한 연구실에서 ‘한국 비구니사(가칭)’를 쓴다는 목적으로 ‘한국 비구니 연구소’를 시작했다. 승가대에 다니는 비구니 스님 학생들과 불교신문을 뒤져 산재된 기록을 모으고 전국 각지에 흩어진 비구니 사찰에 학생들을 보내 연로한 비구니 스님들을 인터뷰했다.

“연구소를 만들던 그해 어느 신문에서 근현대 한국 여성지도자 연감을 작성한다고 제게 연락해온 일이 있어요. 불교계 여성에 관한 자료를 찾아달라는 거예요. 기독교계에는 일찍부터 박마리아 여사가 낸 ‘기독교와 한국여성 40년사’ 등 많은 자료가 누적돼 있는데 역사가 2000년에 가까운 불교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자료 하나 없었어요. 그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승가대로부터 정식 인가도, 지원도 못받고 있는 연구소이지만 벌써 국내외의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폴 그로너 버지니아대 교수, 로버스 버스웰 UCLA대 교수, 엘리슨 핀들리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 심재룡 서울대 교수 등과 젊은 여성학자인 조은수 미시간대 교수와 이향순 조지아대 교수 등이 연구소 회원으로 참여해 도움을 주고 있다.

“대만은 큰 사찰들, 예를 들어 불광사(佛光寺) 등이 중심이 돼 비구니들의 활발한 활동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대만 비구니들을 만나보면 영어도 잘하고 활동성도 대단합니다. 우리 종단의 어른들이 이런 사정을 계속 도외시하면 한국 비구니 승단이 헤게모니를 잡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본각 스님은 성철(性徹) 스님의 맏상좌인 천제(闡堤) 스님의 막내 여동생으로, 중앙승가대 교수이자 조계종 중앙종회의 비구니 의원 10명 중 한명이다. 한국비구니연구소 연락처 031-980-7870.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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