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25)

  • 입력 1998년 11월 17일 18시 37분


반정(反政) ②

군에 있을 동안 조국과 승주는 나를 딱 한 번 면회왔다. 한창 고생할 때는 알량한 엽서 한 장 안 보내더니 제대 말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만 봐도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둘은 뻔뻔스럽기조차 했다.

―그래도 말야. 면회 한 번도 안 왔다는 소리 할까봐 제대하기 전에 급히 와준 거야, 알아?

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나는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던 날부터 시작하여 한동안은 밤마다 얻어맞았다. 한때 대학생이었으므로 데모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이 무조건 고참들의 진노를 사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으슥한 병영 구석에서 몽둥이로 맞다가 요령없이 허리를 트는 바람에 허리병까지 얻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요즘도 내가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건 끈기 부족이 아니라 그 허리병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길을 걷다가도 허리가 아파서 이따금 한 번씩 돌려주는 게 버릇이 되었다. 허리병이라는 건 오해의 소지가 많다. 한 번은 차 배달을 가던 뚱뚱한 다방 레지가 마주오다가 마침 허리를 틀어주고 있는 나를 어떻게 오해했는지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듯이 뾰로퉁하게 쏘아본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나마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쳤던 것은 또 편지 대필 덕분이었다. 연애편지는 물론이고 강압에 못 이겨서 고참의 이름으로 연대 내의 감상문 모집에 응모하여 포상 휴가를 받아주게 한 적도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조국과 승주는 대리출석에다 대리시험, 대리모까지 들먹이며 내가 인생에서 맡는 대리역할을 조롱했다.

비록 별 생각 없는 놈들의 입에서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긴 해도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 삶의 한 단면을 제대로 통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농담일 뿐이었다.

나보다 일 년쯤 앞서 예비군이 된 조국은 ‘군대 경험이라면 대개 편지 쓰는 일하고 포경수술인데 그럼 수술도 대신 받아줬냐’고 이죽댔다. 그 즈음 조국은 형 조선이 결혼을 하여 그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사나이 조국은 절대 포경수술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새로 들어간 전문대에서 보내온, ‘포경수술’란에 동그라미가 쳐진 신체검사 결과서를 형수가 뜯어보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방위근무를 마친 주제이면서 승주의 빈정거림은 한 수 위였다. 전문대 방사선과에 적만 걸어놓았을 뿐 메스와 핀셋도 구별 못하던 친구 하나가 군대에 가서 의무반 배치를 받았다. 그러고는 31개월 동안 수 천 명의 포경수술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살을 너무 많이 잘라냈는데 그때 수술 받은 놈들은 밤마다 살갗이 모자라서 좀 당길 거라나 어쨌다나.

어쨌든 그때 역시 우리는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다. 이 시국에 두환이는 군대나 갔다 왔을까.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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