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02)

  • 입력 1997년 6월 4일 08시 17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55〉 장례 절차가 끝나자 사람들은 아내의 시체와 그 남편을 동굴 속에 남겨둔 채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 길로 곧 임금님을 찾아뵙고 여쭈었습니다. 『임금님, 왜 이 곳에서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겁니까?』 그러자 임금님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내가 함께 묻히고, 아내가 먼저 죽으면 남편이 함께 묻히는 건 인륜지도가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부부란 한 몸이라 할진데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별을 해서야 될 일인가?』 왕의 대답을 들은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게다가 그건 아득한 옛날의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이야』 미풍양속? 나는 허파가 뒤집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럼 임금님, 저와 같은 외국인의 경우에도 아내가 죽으면 오늘 제가 본 그 남편과 같이 할 것입니까? 저도 그 미풍양속을 지켜야 합니까?』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비록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이 나라에 살면 이 나라 풍속을 따라야 할 것 아닌가?』 왕이 하는 말을 듣자 나는 너무나 놀랍고, 그리고 나의 앞날이 걱정이 되어 당장에라도 쓸개 주머니가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나를 향하여 왕은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의 경우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아내보다 스무살이나 많으니 아무래도 그대가 먼저 죽을 것은 뻔한 일이고, 그러니 그대가 생매장 당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게 내 생각일세』 왕의 이 말도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마치 토굴 속에 갇혀버린 것만 같아서 사람들과의 교제도 싫어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모두가 아내가 먼저 죽어 내가 생매장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나보다 아내가 먼저 죽을 거라는 건 공연한 걱정이야. 내가 아내보다 스무살이나 많으니 나는 적어도 아내보다 이십 년은 먼저 죽을 거야. 불쌍한 건 오히려 나의 아내야. 공연히 나하고 결혼을 했다가 젊은 나이에 생매장 당하게 생겼으니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자 이번에는 내가 죽은 뒤 생매장을 당할 아내가 가여워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아내의 그 곱고 귀여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차라리 당신이 먼저 죽는 편이 옳아. 그러지 않고 내가 먼저 죽게 되면 당신은 시체로 가득한 지하에 갇힌 채 겁에 질려 죽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러나 나는 공연한 근심일랑 잊어버리고 일에 마음을 붙이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대로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후 오래지 않아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삼 일만에 알라의 부름을 받고 가버렸습니다.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 앞에서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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