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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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책의 흐름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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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칼럼94%
선거3%
미국/북미3%
  • 일본發 통화전쟁… 각국 “환율방어” 비상

    《일본 정부가 15일 외환시장에 전격적으로 개입해 엔화가치를 떨어뜨리자 서방국가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압박해온 미국과 유럽은 갑자기 일본이 독자적으로 시도한 엔화의 평가절하 시도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면 통화 강세의 여파에 시달려온 신흥 경제국은 이를 빌미로 속속 자국 환율 방어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글로벌 ‘통화 전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교역 활성화 논의 막아” 일본 재무성이 15일 도쿄 런던 뉴욕 외환시장에서 환율방어를 위해 푼 돈은 총 2조 엔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시장개입 규모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그 덕분에 15년 만에 최고치까지 급등했던 엔화가치는 16일 달러당 85.30엔대로 진정세를 이어갔다. 재무성은 엔화가 확실히 안정세로 돌아설 때까지는 계속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환시장에서 승리를 쟁취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재무성이 올해 회계연도(내년 3월 말)까지 외환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시장안정기금) 규모는 약 40조 엔. 일본이 환율 방어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했던 2003년의 35조 엔보다 많다. 일본은행도 잔뜩 풀린 엔화를 당분간 거둬들이지 않을 방침이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신은 “일본의 일방적인 시장개입이 중국 위안화 절상을 통해 무역불균형을 시정하려는 국가의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이 문제에서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어줬을 뿐 아니라 20개국(G20) 정상회의 주요 의제인 글로벌 교역 활성화 논의도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 더구나 미국은 중국의 환율 문제를 다룰 의회 청문회를 코앞에 둔 시점이다. 143명의 의원이 중국의 환율 ‘조작’에 맞설 환율보복법안을 지지하고 있고 일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까지 검토하고 있다.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회의 샌더 레빈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일본의 개입을 “대단히 불안감을 주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유럽에서도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이 “일방적인 액션은 글로벌 불균형을 다루는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라며 즉각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유럽연합(EU)의 최대 경영자그룹인 ‘비즈니스유럽’은 “인위적 조작이 아닌 시장의 힘이 화폐가치를 결정해야 한다”며 비판 의견을 내놨다.○ “통화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환율 방어에 나설 틈을 노리고 있던 국가는 분주해졌다. 경기회복세와 수출호조에 힘입어 통화가치가 급상승한 신흥경제국이 대부분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콜롬비아 중앙은행은 매일 2000만 달러어치의 페소화를 풀어 환율을 안정시키겠다고 밝혔고 브라질의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다른 나라의 환율 조정으로 우리 수출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서는 통화 초강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태국에 가장 먼저 눈길이 쏠린다. 달러당 바트 가격이 13년 만에 최고치까지 오른 태국에서는 “바트를 안정화하라”는 기업인들의 압박이 거세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대만 등도 환율시장 개입 방침을 시사했다. 이런 국가가 경쟁적으로 환율시장 개입에 나설 경우 글로벌 환율 전쟁은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도시샤대의 노리코 하마 교수는 “일본이 다른 모든 국가에도 일방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할 권리를 줘서 잇단 통화 평가절하 시도를 유발하는 셈”이라며 “매우 어리석은 행위”라고 지적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20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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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기문 총장에 취중 실언’ 사쭈캉 유엔 사무차장

    사쭈캉(沙祖康) 유엔 사무차장(경제사회 담당·사진)은 10일 “한국이 추진 중인 녹색성장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 중요한 교훈을 줄 것”이라며 “유엔 차원에서도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인으로서는 유엔 최고위직인 사 차장은 이날 한국에서 열리는 ‘그린코리아 2010’ 국제 학술회의 참석차 방한해 이같이 밝혔다. 사 차장은 상관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40년 만에 아시아가 배출한 사무총장인 그는 사심이 없고 워커홀릭이며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인품과 헌신성을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또 최근 한 행사에서 반 사무총장에게 술주정에 가까운 실언을 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술을 마시고 농담조로 한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사 차장은 지난주 오스트리아 알프바흐에서 열린 한 칵테일 만찬에서 술을 몇 잔 마신 뒤 반 총장을 향해 “당신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나 역시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당신이 나를 해고하려 한 것을 알고 있고 지금이라도 나를 해고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뉴욕에 정말 오고 싶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정말 싫다”는 등의 말도 쏟아내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다음 날 반 총장에게 사과했다. 다혈질인 사 차장은 ‘중국의 존 볼턴(강경파였던 전 주 유엔 미국대사)’이라고도 불리는 인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입 닥치라”고 말하는가 하면 “중국의 땅 한 뼘이 국민의 삶보다 중요하며 중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연합뉴스}

    • 201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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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 건립-코란 소각’ 얼룩 9·11테러 9주년 잠못드는 美

    9·11테러 9주년을 맞아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우겠다고 밝혀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목사의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전화를 걸어 코란 소각 계획을 철회하라고 압박했지만 이 목사는 소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 만에 번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일 ABC뉴스에 출연해 “코란을 불태우면 미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테러리스트들이 알카에다 대원을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게이츠 장관은 이례적으로 테리 존스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코란을 불태우지 말라고 촉구했다. 오바마 행정부 내에선 존스 목사에게 전화를 거는 문제를 놓고 찬반이 엇갈렸지만 코란이 불태워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이슬람권 국가에서 거센 후폭풍이 불어 닥칠 것을 우려해 게이츠 장관이 전화를 걸도록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코란 소각 계획을 철회하라는 압박이 거세지자 플로리다 주 게인즈빌의 ‘도브 월드 아웃리치센터’의 존스 목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코란 소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플로리다 중부지역의 이슬람교계 지도자인 이맘 무함마드 무스리 씨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건립을 추진 중인 이슬람사원 용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코란 소각 계획을 철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결정을 번복했다. 존스 목사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무스리 씨가 “개인적으로 이슬람사원이 그라운드제로 인근이 아닌 다른 곳에 세워져야 한다고 믿지만 뉴욕 이슬람교계 지도자들로부터 용지 이전에 대한 어떤 제안도 없었다”며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회동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이슬람사원 건립을 추진해 온 이맘 파이잘 압둘 라우푸 씨는 성명을 내고 “코란 소각 계획을 취소한 것은 환영하지만 무스리 씨나 존스 목사와 이 문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며 “우리는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종교를 파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존스 목사는 “무스리 씨가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다”며 “코란 소각 계획을 취소하지 않겠으며 다만 연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철회 계획을 뒤집었다. 한편 AP통신은 미국의 억만장자 부동산 투자자인 도널드 트럼프 씨가 논란이 되고 있는 뉴욕 그라운드제로 인근의 이슬람사원 건립과 관련해 용지 매입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씨는 25% 더 비싼 값에 땅을 사들이는 대신 건설하려는 이슬람사원은 그라운드제로에서 최소한 5블록 이상 떨어진 곳에 짓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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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고민주共반군, 여성 500여명 강간

    최근 두 달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무려 500여 명의 여성이 반군에게 강간당했으며 유엔평화유지군이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유엔이 밝혔다. 아툴 카레 유엔평화유지활동 사무차장보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같은 충격적인 콩고민주공 강간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7월 초 콩고민주공 루붕기 마을에서 242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 유엔평화유지군 기지에서 3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런 참상이 벌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유엔평화유지군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카레 사무차장보는 “기존에 알려진 사건 외에 8월 남(南)키부와 북(北)키부 지역에서 260명의 여성이 반군에게 강간당했고 이 중에는 7∼15세 미성년자 21명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1차적으로 콩고민주공 정부의 책임이지만 유엔평화유지군 역시 수많은 강간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우리의 대응은 부적절했고 결과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야만적 범죄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죄책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지역에 주둔하던 유엔평화유지군은 반군의 강간 범죄 경고 및 보고를 받았는데도 늑장 대응했고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이를 상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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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아티아는 중부유럽 수출길 관문… 한국과 긴밀한 협력 기대”

    “크로아티아는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북한을 강하게 규탄했고 유엔 등 국제사회를 통해 한국과 협력해 왔습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문화적으로도 더욱 긴밀한 협력을 기대합니다.” 고르단 얀드로코비치 크로아티아 외교장관(43·사진)은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격한 정세 변화를 속속 꿰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양국 교류 확대의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류 확대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얀드로코비치 장관은 “유고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는 1990년대에 이웃나라 세르비아에 공격당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며 “이 때문에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답이 없는 이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만 풀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의 성벽 유적지 등 풍부한 문화·자연유산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인 관광객은 1만여 명으로 일본 관광객(16만5000명)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 그는 “크로아티아에는 마르코 폴로가 태어난 코르출라 섬을 포함해 아름다운 관광지가 많다”며 “더 많은 한국인이 와서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제적 협력 분야에 대해 얀드로코비치 장관은 “크로아티아는 중부유럽으로 수출길이 통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며 “철도망 프로젝트나 항만 현대화 사업에서 한국과의 협력 및 투자를 바란다”고 했다. 또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시행되면 양국 교역이 늘어나는 효과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로아티아는 2012년 EU 가입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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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선 親서방 카르자이정권 부패 스캔들

    5일 오전 7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의 카불중앙은행 정문 앞. 권총으로 무장한 아프간 정보국 요원들이 은행으로 몰려든 수백 명의 예금자를 가로막았다. 가시철조망과 무기를 실은 트럭들까지 동원됐다. 오전 3시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내 돈을 돌려 달라”며 아우성쳤지만 삼엄한 경비를 뚫지는 못했다. 카불중앙은행의 부정부패 스캔들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잇단 예금인출 사태가 빚어지면서 아프간 최대 규모인 이 은행의 부도설까지 퍼지고 있는 것. 투자자와 예금자의 거센 분노가 정부를 향하면서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은 물론이고 이를 지원해온 서방국가까지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고 6일 외신들이 보도했다. 군과 경찰, 공무원 25만 명의 임금 지급을 책임져온 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부정부패 스캔들은 이 은행이 지난주 의혹의 핵심인 고위 임원 2명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친인척에게 무리한 특혜 대출을 해주거나 부실투자를 해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투자자의 불신이 커졌다. 은행이 거액을 투자한 두바이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최근 경영상태가 급속히 악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큰손 투자자들은 이미 수억 달러를 인출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은행이 “곧 100% 정상화될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날 은행은 대주주들의 자산매각을 동결하고 미국에 적립해 뒀던 예비금 3억 달러를 긴급히 추가 충당했다. 하지만 은행 지분 7%를 소유한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 마흐무드 카르자이의 자산은 동결 대상에서 제외돼 또 다른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다. 그는 카불중앙은행 소유인 두바이의 550만 달러짜리 고급 빌라에서 살고 있다. 쉬쉬하던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전전긍긍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아프간 정부가 흔들리면 탈레반이 득세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눈감아 왔던 부정부패 문제가 거꾸로 정권을 무너뜨릴 위험요인이 돼 버렸기 때문. 더구나 아프간 금융시스템은 2001년 탈레반 정부 축출 이후 미국의 지도하에 새롭게 구축해 운영돼 온 것. 예금자 괄람 라술 씨(27)는 “미국 정부가 이 부패 정부를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안 생겼을 문제”라며 “버락 오바마는 카르자이와 함께 고꾸라질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때 미국이 구제금융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미 재무부는 “카불중앙은행 구제에 미국인의 세금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아프간 정부는 현재 2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검토 중이다. 연간 세수가 12억 달러 수준인 빈국으로서는 버거운 금액이다. 뉴욕타임스는 “아프간은 사실상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에 의해 운영된다”며 “이로 인한 사회불안이 탈레반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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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한국 걸그룹 일본열도 강타 비결 뭘까 外

    카라 포미닛 소녀시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걸 그룹의 잇따른 일본 진출에 열광하고 있다. 겨울연가에서 비롯된 한류 드라마, 동방신기를 필두로 한 남성그룹에 이은 제3차 한류 붐이다. 한류 팬의 저변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 걸 그룹엔 일본 그룹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는데…. ■ 대-중소기업 상생 대안 ‘경영닥터제’ 성과는환자에게 아픈 부위를 제대로 아는 전문의가 필요하듯 고통 받는 중소기업에도 숙련된 의사가 절실하다. 경영과 재무 등 각 분야에서 오랜 노하우를 쌓은 전직 대기업 임원들이 중소기업을 찾아가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노련한 ‘경영 닥터’들의 치료 성과가 궁금하다. ■ 멕시코만 시추시설 또… ‘검은 악몽’ 재연?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원유 유출 사건으로 몸살을 앓은 미국 멕시코 만이 또 시끄럽다. 유정 봉쇄에 성공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인근의 원유 시추시설에서 폭발사고가 난 것. 기름 유출 여부를 놓고 시추회사 측과 해안경비대의 발언이 엇갈리면서 해안지역 주민들의 불안감만 커져 가는데….}

    • 201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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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伊-그리스-포르투갈, 재정적자 위험 큰 4개국”

    국제통화기금(IMF)이 1일 “선진국과 신흥 경제국이 직면한 재정적자 문제가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며 각국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재정 고갈 위험이 가장 큰 국가들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일본 등 4개국을 지목했다. IMF는 이날 23개 주요 국가의 재정상황을 분석한 3건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분석 결과 상당수 국가가 ‘재정적 여력(fiscal space)’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재정적 여력’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채무와 현재 그 국가가 지고 있는 빚 규모의 차를 말한다. 그리스 등 4개국은 재정적 여력이 거의 없는 국가로, 미국 영국 스페인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등 5개국은 재정적 여력이 부족한 소위 ‘2순위 재정위기 국가’로 분류됐다. 반면 한국 호주 덴마크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5개국은 예상치 못한 경제 쇼크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를로스 코타렐리 IMF 재정담당 이사는 “과거의 부실한 재정정책과 경제위기에 고령화,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재정적자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각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십 년간 재정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의 평균 공공부채 규모는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 78%에서 지난해 97%로 높아졌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에는 11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IMF는 일부 국가의 디폴트 위기설에 대해서는 “시장 반응이 과장돼 있다”며 “각국의 정치적 의지와 노력에 따라 상황은 계속 바뀔 수 있다”고 첨언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으로 강도 높은 긴축재정과 세금 인상으로 최근 위기설이 잦아들었다. 스페인 재무부는 지난달 31일 “최근 1년간(7월 말 기준) 중앙정부 재정적자 규모가 GDP의 2.4%로 전년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까지 낮아졌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반면 높은 실업률과 성장 동력을 잃은 경제상황 등은 재정상태 개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그리스의 경우 결국은 채무 재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는 투자자가 여전히 많다고 1일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그리스인 마리아 만타 씨는 “아테네 시민들조차 이제 끼니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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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만의 최악 홍수’ 파키스탄… 한달 지난 지금 그곳에 무슨일이

    지저분한 공동묘지에서 간신히 아이를 낳은 20대 산모, 온몸에 수십 마리의 파리 떼가 달라붙은 어린이들, 넝마를 덮은 임시천막 속에서 굶주리는 노인과 영양실조로 젖이 말라버린 엄마…. 대홍수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파키스탄의 모습은 처참하다. 하지만 정부의 원조는 더디고 약속받은 외국의 구호자금도 절반밖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 등에 적극 나섰던 선진국의 반응도 이번에는 미적지근하다. 참상이 이처럼 외면당하는 사이 재난 현장에서는 피해주민의 탈레반화(化), 판매를 통한 구호품의 현금화 등 또 다른 우려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1일 외신들이 전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에 따르면 탈레반은 홍수 피해지역에서 5만 명의 병력을 새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수해현장에 수천 명을 내보내고 있다. 이들은 주민에게 약과 식량 등을 가져다주는 대가로 “서방과 싸우자”며 탈레반 가입을 요구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홍수피해가 큰 곳은 탈레반의 근거지로 알려진 스와트밸리. 지난해 파키스탄군과 탈레반의 교전이 치열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부 부모는 “굶주린 가족의 식량을 구하는 대가로 내 자식이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범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탈레반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재민 압둘 자바 씨는 “배고픈 우리에게 탈레반이 쌀을 가져다주고 있다”며 “우리 삶은 단순해서 (그런 도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억력이 나빠서 과거 탈레반 때문에 흘린 피를 기억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이 파키스탄 구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테러리스트 양성 및 이웃국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 확장에 도움을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키스탄군의 무함마드 안와 씨는 “군대가 전국의 수해복구 지원을 위해 스와트밸리를 비운 사이 탈레반이 돈 가방을 메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며 “이기고 있던 전쟁을 홍수 때문에 다시 지게 될 판”이라고 말했다. 레만 말리크 내무장관도 “절박함이 테러리즘을 낳는다”며 “극단주의자들이 영웅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사설을 통해 “인륜뿐 아니라 테러 방지라는 전략적 차원에서도 버락 오바마 정부가 파키스탄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나마 전달되는 구호품이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등 구호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 AP통신에 따르면 피해지역의 시장에서는 구호물자 마크와 함께 ‘판매 및 교환 금지’라고 써 붙인 구호식량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수재민들은 “무너진 집을 고칠 장비나 농사 기구가 필요한데 구호품은 써먹을 수도 없는 밀가루나 식용유, 맛없는 비스킷뿐”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구호단체들은 현금 지급이 부정부패로 연결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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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워지는 글로벌 원전시장, 히타치-GE 사업확장 새 변수

    글로벌 원자력 시장 경쟁이 점점 뜨거워질 조짐이다.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히타치-GE는 올해 말까지 전 세계에 5개의 사무실을 새로 열고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2007년 일본 히타치와 미국 GE의 원자력 사업부 합병으로 이뤄진 이 회사는 유럽에 2곳, 중동과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1곳씩의 새 지부를 세워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갈 예정. 히타치-GE의 나가시마 히로타다 원자력부문 수석이사는 “사업 확대를 겨냥한 시장에 미국과 베트남 영국 스페인 폴란드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히타치-GE의 공격적인 행보는 전 세계의 원자력 시장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는 신호로 해석된다. 원자력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효율성도 높은 미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으면서 수천억 달러의 수주 경쟁이 달아오르는 상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전기의 25%가 원자력으로 얻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이런 추정을 바탕으로 향후 40년간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늘리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시장은 과거 미국 일본 유럽 같은 소수 선진국이 주도해 왔지만 최근에는 한국과 중국이 뛰어들어 공세를 펴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200억 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수주했고 중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는 후발 경쟁국들의 시장진입을 막고자 원전 안전기준 강화를 추진하며 대응에 나섰다. 절치부심해온 일본은 아직 원전이 없는 새 시장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으로 보고 진출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최근 “2030년까지 13개의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 일본은 24일 나오시마 마사유키 경제산업상이 이끄는 대표단을 베트남에 파견해 히타치-GE의 원전 수주 시도에 힘을 보탰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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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포커스/밥 허버트]‘우아한 철군’은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첫해를 다룬 조너선 알터(뉴스위크 칼럼니스트)의 책 ‘약속(The Promise)’에는 지난해 11월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나눈 짧은 대화가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전략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장고(長考)가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2011년부터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새 정책이 군에 의해 번복될 수 없는 대통령의 명령입니까.”(바이든 부통령) “그렇소.”(오바마 대통령) 두 사람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릴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회의장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지휘하는 데이비드 페트로스 당시 중부군사령관에게 물었다. “사령관, 솔직한 답변을 해줬으면 좋겠네. 18개월 안에 이걸(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 해낼 수 있겠나.”(오바마 대통령) “대통령님, 그때까지는 아프간군(ANA)을 훈련시켜 (미군의 업무를) 넘겨줄 수 있습니다.”(페트로스 사령관) “18개월 내에 할 수 있다고 한 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더 주둔하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겠지.”(오바마 대통령) “네, 그렇습니다.”(페트로스 사령관) 옆에 있던 마이크 뮬런 미 합참의장도 “맞습니다”라며 거들었다. 그때는 그랬다. 국방부의 고위 인사는 그렇게 군의 수장이 듣고 싶은 말이면 무엇이든 쏟아냈다. 하지만 페트로스 장군은 최근 언론과의 연쇄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다른 말을 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페트로스 장군, 조급한 아프간 철군 반대’였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이 축출된 이후 아프간 내 미군 지휘를 맡게 된 페트로스 장군은 이제 “‘우아한 철군(graceful exit)’을 하려고 이 자리를 맡은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지금 그의 목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요구했던 바로 그 명령에 맞서는 여론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군에 의해 뒤집힐 수 없다”고 한 철군명령 말이다. 이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현재 상황이 끔찍하고 우리가 아프간에 더 오래 머문다 하더라도 여전히 끔찍할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상상만 해도 괴로운 일이다. 급증하는 사망자도 문제이거니와 이 전쟁이 악화된 미국 내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한 효율적 대처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제 상황과 부실한 공교육 시스템, 연방정부의 예산 적자, 주정부와 지방정부를 갉아먹는 재정상황을 보라. 이런 문제는 외면하면서 연간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패한 아프간이라는 ‘하수통’에 쏟아 붓고 있다. 미국의 제36, 37대 대통령인 린든 존슨은 의료보험 개혁과 1964년 시민법안 및 1965년 투표법 제정 같은 업적을 이뤄냈는데도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다. 바로 베트남 전쟁 때문이다. 그가 ‘빈곤과의 전쟁’에서 거둔 성과 역시 이 전쟁으로 희석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과 베트남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베트남에 공격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맞는 얘기다. 하지만 9·11테러 역시 거의 10년 전 얘기다. 게다가 아프간 전쟁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가망이 없다시피 할 만큼 망쳐 놨다. 우리는 아프간에 절대로 안정되고 번영된 사회를 세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점점 확산되는 미국의 불안정과 상황 악화를 막을 나라 세우기 캠페인이다.밥 허버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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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게이츠가 감탄한 美인터넷 강사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최근 한 웹사이트의 수학 강의를 듣고 “정말 놀라운 강사”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11세 아들 로리까지 모니터 앞에 끌어 앉혀 함께 이 사이트의 각종 강의를 섭렵했고, 최근 한 연설에서 그 강사를 언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게이츠 전 회장을 열정적인 팬으로 만든 이 강사는 비영리 교육사이트 ‘칸아카데미’(www.khanacademy.org)를 운영하는 살만 칸 씨(33·사진). 이 사이트는 현재 1630개의 동영상 강의 콘텐츠로 하루 평균 7만 명의 수강생을 끌어들이고 있다. 2006년 개설 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800만 페이지뷰를 기록했다.칸 씨의 강의는 1개에 10∼15분짜리로 각 분야의 핵심만 간결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콘텐츠는 모두 무료다.인도 이민 2세대인 칸 씨는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헤지펀드 운영자로 일하던 중 멀리 떨어져 사는 7학년생 조카에게 전화와 인터넷 등을 이용해 원거리 수학 과외를 시작한 것이 칸아카데미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교육 분야에 연 7억 달러를 후원하는 빌 게이츠 재단은 조만간 그와 교육 콘텐츠 개발 및 보급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24일 미 경제전문지 포천은 전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스타강사에서 교육 행정가로}

    • 20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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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지켜라] 건축박물관 베네수엘라 항구도시 코로

    《마을은 조용했다. 이글거리는 카리브 해의 태양 아래 거리는 한껏 늘어져 있었다. 숨 막히는 열기 속에 벽들도 더운 숨을 뿜어내는 듯했다. 서로 어깨를 마주 댄 주택들. 널찍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끝도 없이 늘어선 외벽에서는 간소한 장식조차 찾아볼 수 없다. 파랑과 빨강, 노랑의 강렬한 조화마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살짝 무뎌졌다. 도대체 무엇이 밋밋해 보이는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만들었을까.》 사유재산 탓에 멋대로 보수새집 짓겠다며 부수기도… 베네수엘라 북쪽의 항구도시 코로는 많은 것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궁금증에 감질난 방문객이 답을 찾아가도록 한다. 안내팻말조차 찾기 어렵다. “여기서부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옛 가옥이 시작됩니다.” 베네수엘라 문화유산청(IPC) 소속 안내원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시골 주택가다. 이 낙후된 도시는 태생부터 불운했다. 코로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만든 식민도시 중 하나다. 16세기 초 유럽의 정복자들에게 코로는 황금이 가득하다는 대륙 남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을 뿐이다. 해적들의 노략질은 도시의 번영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이었다.코로의 건물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독특한 건축 문화를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록달록한 동화나라 속 마을 모형 같은 외관에 묻어나는 이국적 분위기. 스페인에서 건너온 유럽 및 이슬람 무데하르 양식에 네덜란드령인 중남미 섬에서 건너온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 원주민의 건축 특징이 섞인 결과다. 더 큰 가치는 벽 속에 숨겨져 있다. 돌멩이와 말린 풀, 나무, 흙 등을 섞어서 쌓은 뒤 그 위에 다시 진흙을 이겨 바르는 이른바 ‘바하레크(bahareque)’와 ‘타피아(tapia)’ 방식이 바로 그것. 염소의 털까지 섞는 이 특별한 재료 혼합 방식은 코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소수의 미장이들만 기술을 독점해 전승해온 무형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천장이 높다란 어느 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의 테라스를 ‘ㅁ’자형으로 둘러싼 복도를 따라 화초와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복도의 타일, 천장 장식과 벽돌색 기와도 모두 건축 당시 그대로라고 했다. 테라스 앞 흔들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노부인이 비로소 돌아본다. “세계유산인 이 집에서 태어나 94년을 살았지요. 자랑스럽고 행복해요.” 알리시아 플로레스 라모레스 할머니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해안가의 라벨라 항구를 벗어나 코로 시내 중심가로 가까워질수록 마을은 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더 큰 2층집이 나타났고 와인색 벽의 페인트 색깔도 한결 밝고 선명해졌다. 외부로 표출된 발코니가 특징인 ‘발코니의 집’, 창틀이 아름다운 ‘철제 창문의 집’, 첨탑이 높은 성 프란시스코 성당 등도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의 정부(情婦)를 다룬 영화 촬영장이었다는 옛 귀족의 집도 있었다.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다 보니 관리와 보존에 어려움이 많아 정부가 가옥을 사들이려 합니다.” 유네스코 베네수엘라 국가위원회의 비올레타 안토네티 씨가 설명했다. 과거의 유산 속에서 주민들은 현재를 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속에서 코로 주민들이 여전히 ‘둘세레체’(염소젖과 설탕으로 만든 일종의 캐러멜)를 만들어 팔고 세탁소와 정육점 슈퍼마켓을 운영한다. 이는 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이지만 동시에 보존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IPC 직원은 “거주민이 훼손된 곳을 마음대로 보수해도 사유재산이어서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구역이 넓고 가옥들이 분산돼 있어 실제 관리도 어렵다고 했다. 길가에는 새 집을 짓겠다며 집주인이 부순 폐가(廢家) 잔해도 눈에 띄었다. 기후변화의 여파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코로는 주거지 바로 옆에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는 건조 지역. 7년 연속 비 한 방울 오지 않은 적도 있던 이곳에 언젠가부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대홍수로 주택 곳곳이 크게 훼손되면서 결국 유네스코 위험유산 리스트에 오르는 처지가 됐다. 헥터 토레스 IPC 청장은 “비가 익숙하지 않은 이곳은 배수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피해가 컸다”고 털어놨다. 더 큰 문제는 유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 베네수엘라 정부의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 속에 관리는 점점 악화됐다. 금이 가고 헐어내린 벽, 깨진 기와와 타일은 방치됐다.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깊이 파인 황갈색 진흙 벽에 지푸라기가 노출된 곳도 많았다. 유네스코에 제출해야 할 관리 보고서도 최근 2년 연속 내지 못했다. 정부는 뒤늦게 대응에 나선 상태. 2005년 이후 지금까지 3억 볼리바르(약 443억 원)를 투자해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IPC는 미래 보존계획을 수립해 대통령의 최종 사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지역에 사는 빈민에게는 교육과 생활비 지원 등에서 우선권을 준다. 집을 짓는 수작업을 무형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유지해온 장인들을 특별 관리한다. 18명의 장인이 인근에 모여 살면서 보수 작업에 참여하는 동시에 후손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토레스 IPC 청장은 “배수 시스템을 만들어 폭우에 대비하는 작업은 거의 완료됐다”고 설명했다. 어느새 하늘이 깜깜하다. 골목 끝의 한 허름한 간이식당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때서야 아레파(옥수수 반죽에 고기나 생선을 넣고 튀겨낸 베네수엘라 전통 음식)를 한 입씩 베어 먹으며 저녁 식사를 때우는 IPC와 유네스코 직원들. 하루 종일 코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도와준 이들의 발품은 유산복구 노력의 한 단면일 터이다. “코로를 반드시 유네스코 위험유산 리스트에서 빼내겠다”는 베네수엘라의 목표 달성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네수엘라 2번째 세계유산 중앙대 카라카스 캠퍼스 ▼ 캠퍼스 전체가 예술작품인 대학. 건축가 한 명이 캠퍼스 전체의 배치는 물론 문손잡이 하나까지 디자인한 대학. 천장과 건물 벽, 잔디밭, 강당 어디에서나 예술가의 그림이나 조각상을 하나쯤은 찾아볼 수 있는 곳. 베네수엘라의 중앙대 카라카스 캠퍼스다. 이 대학은 1970년대 베네수엘라 출신의 건축가인 카를로스 빌라누에바가 자신의 건축이념을 담아 디자인한 ‘작품’이다. 그는 당시 이름을 날리던 전 세계 28명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함께 10여 년간 대학 전체에 예술적 숨결을 불어넣는 대담한 작업을 추진했다. 이런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넓은 공간에 건물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탓일까. 첫인상은 평범했다. 하지만 대학 구석구석을 다닐수록 세세한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강당 천장을 장식한 알렉산더 칼더의 ‘떠다니는 구름’은 학생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이 대학만의 특징. 도서관 로비의 벽 한쪽을 전부 메운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약대와 의대 앞에 놓인 조각상, 각 대학 건물의 벽을 장식한 형이상학적 무늬의 타일과 그림 앞에서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책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2개밖에 없는 베네수엘라 내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하나”라는 대학 측의 자랑에도 불구하고 건물 곳곳에는 갈라진 틈과 벗겨진 페인트, 깨진 벽돌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빗물이 새는 곳도 있었다. 이 대학의 마리아 데브게니아 바치 홍보국장은 “복구 보존에 생각보다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며 “(국가재정의 주요 수입원인) 유가가 하락해 대학 예산에도 직격탄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21세기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대학생들의 반발이 정부 예산을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얘기도 있다.글·사진 코로·카라카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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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스북’ 기업가치 최고 59조원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는 얼마일까. 20일 경제전문 포천은 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페이스북이 2012년 기업공개(IPO)를 할 가능성이 높으며, 향후 몇 년 안에 기업가치가 최고 500억 달러(약 5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넥스트업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초 투자자들은 사설거래소 2곳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페이스북의 장외 주식가치를 111억∼125억 달러로 산정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 가치는 최근 249억 달러로 올랐다. 페이스북의 주식거래를 중개했던 EB익스체인지펀드의 래리 앨버커크 씨는 “페이스북 매수에 나선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300억 달러의 가치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주된 근거는 페이스북의 빠른 성장세다. 7월 페이스북 사용자의 방문 횟수는 3조1520억 건으로 구글보다 많았다. 이마케터는 이 회사의 올해 수익이 지난해 6억6500만 달러의 두 배인 13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해외사용자가 급증하는 추세도 고무적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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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혁명동지의 사랑, 감옥서 열매

    종신형을 선고받은 페루의 공산반군 지도자가 체포된 지 18년 만에 옥중 결혼식을 올렸다. AP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공산주의 게릴라 반군 ‘빛나는 길’의 지도자인 아비마엘 구스만(75)은 20일 그의 오랜 애인이자 동지인 엘레나 이파라기레(65)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은 수도 리마 서쪽의 칼라오 해군기지 감옥. ‘빛나는 길’ 지도자의 서열 2위까지 올랐던 이파라기레는 이날 결혼식을 위해 복역 중인 산타모니카의 여성교도소에서 이송됐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5분간 간단한 혼례 절차가 진행됐다. 이들은 1980년 반군 활동을 시작해 함께 조직을 이끌다가 1992년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마오주의를 신봉하는 이 테러단체의 무장투쟁이 격화되면서 약 6만9000명이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컸으나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된 이후 조직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다. 구스만은 체포된 이후 11년간 이파라기레와 같은 감옥에 수감돼 있었다. 그는 이파라기레가 여성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면회가 불가능해지자 결혼식을 요구해왔다. 교정 당국이 이를 허가하지 않는 것에 반발해 올해 4월 이파라기레와 함께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이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아야 한다”며 이를 승인하면서 황혼의 결혼식이 성사됐다. 뒤늦게 백발의 신랑 신부가 된 두 사람은 친지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다시 각자의 감방으로 옮겨졌다. 감옥살이를 시작한 이후 18년간 기다려온 행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두 사람의 대면에 난색을 표시해온 교정 당국은 결혼식 이후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남을 허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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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동강난 여객기의 기적… 조종사의 프로 근성 덕분”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세 동강 난 채 처참하게 부서진 비행기. 매캐한 연기 속에서 승객들이 비틀거리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한 살배기 아기를 포함해 생존자는 모두 130명. 131명의 탑승자 중 단 한 명만이 목숨을 잃었다. 16일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비행기 사고가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17일 외신들은 현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조종사의 침착하고 숙련된 대응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고 보도했다. AP, AFP통신 등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를 출발해 산안드레스 섬 공항에 착륙을 준비하던 ‘아이레스 에어라인’ 소속 보잉 737-200 여객기가 16일 오전 1시 49분경 갑자기 급전직하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상황이었다.콜롬비아 당국은 당시 기상 상태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번개나 돌풍, 갑작스러운 기류변화 등으로 일어난 사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124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은 목숨을 건졌다. 평소 심장질환을 앓던 65세 할머니 한 명만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숨을 거뒀다.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아모르데파트리아 병원의 로베르트 산체스 박사는 “사고 규모를 봤을 때 (인명 피해와 부상 규모가)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희생자가 훨씬 많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비행기를 빠져나온 한 남자 승객은 “하나님이 주신 기적”이라고 했다.오를란도 파에스 콜롬비아 국립경찰 총장은 “조종사의 프로 근성이 비행기의 활주로 이탈을 막아냈다”고 칭찬했다. 다비드 바레로 콜롬비아 공군 대령도 “능력 있는 조종사 덕분에 비행기가 공항과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종사의 신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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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서울 중화동 인질극’ 사건의 전말은 外

    스토커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그날. 10시간 동안 범인에게 붙잡혀 있던 딸에게 세상은 “엄마 죽인 ×”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네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 ‘범인과 밥을 지어먹었다’는 등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알려진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지난달 23일 일어난 ‘서울 중화동 인질극’ 사건의 전모를 파헤쳤다.■ [해외연수 리포트]佛 우경화 이대로 좋은가인권과 관용의 나라 프랑스가 최근 강경한 불법 이민 규제 정책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인종 차별의 부활’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야당과 인권단체는 물론 일부 여당 인사도 반발한다. 그러나 침묵하는 대다수는 정부의 불법 이민 철퇴 노력을 방관하고 있다. 프랑스의 우향우 흐름을 살펴봤다.■ 추락여객기 조종사의 기지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세 동강 난 비행기에서 130명의 탑승객이 살아남았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노인 한 명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원이 생존한 16일 콜롬비아의 비행기 사고. ‘기적’이라 불리는 이 결과를 낳는 데는 숙련된 조종사의 침착한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는데….■ 포스텍 ‘잠재력개발’ 교육신입생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만 선발하는 포스텍은 잠재력을 갖춘 숨은 보석을 찾으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고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방학 때 진행하는 ‘잠재력 개발과정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올 여름방학 세 번째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참가 학생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 승무원출신 女축구단 창단항공사 승무원 출신 중년 여성들이 ‘The Sky W FC’란 여자축구단을 만들었다. 축구로는 이제 걸음마를 떼는 초보 수준이지만 꿈은 원대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을 차는 여자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한국 여자 축구가 세계를 제패하는 데 힘을 보태겠단다. ■ 협력사들 ‘국내외 기업 비교’밖으로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국내 협력업체와 거래할 때에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를까. 국내 대기업과 해외 기업에 동시에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 4곳을 찾아 양쪽을 비교해 달라고 했더니 협력업체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슨…, 완전히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다. 이들 업체가 얘기하는 대표적인 ‘어글리 관행’을 뽑아 정리했다.}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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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지켜라] 기상이변 위기 맞은 페루 찬찬유적

    《그곳은 달의 신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사막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 바닷바람과 파도에 삶을 내어맡겨야 하는 척박한 땅. 이곳에서 달은 조류를 다스리는 신이고 조물주였다. 태양보다도 센 존재였다. 하늘을 우러르면 달이 태양보다 먼저 눈에 박혔다. 15세기 말 잉카문명에 정복당하기 전까지 약 700년간 이어진 페루의 치무왕국. 태양의 신을 절대자로 추앙하던 옛 잉카인의 땅에서도 달의 신은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찬찬 고고유적지는 바로 이 왕국의 수도이다. 햇볕에 말린 흙벽돌(어도비)로 지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흙벽돌의 도시이기도 하다.》 사막 해변의 남미 고대문명1986년 ‘유산’ 등재와 함께 위기유산 리스트에도 올라천막치고 플라스틱 땜질…예산 모자라 큰 성과 못거둬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570km 떨어진 도시 트루히요. 자동차가 공항을 나서자마자 황량한 모래언덕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곧 눈앞에 높고 진중한 담벼락이 나타났다. 주변의 흙모래 둔덕과 다를 바 없는 색깔과 질감이다. 하지만 매끈하게 정리된 표면은 사람의 손길이 거쳐 간 건축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찬찬 고고유적지’라고 쓰인 다소 휑뎅그렁한 간판이 세워진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단 하나였다. 왕족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폐쇄적인 건축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성벽으로 가로막힌 기다란 통로들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성벽의 높이는 무려 10m. 바람소리조차 벽에 갇힌 듯한 고요한 적막감 사이로 싸늘한 안개비만 내려앉는다. 찬찬 유적지의 대표적인 특징은 끊임없이 연결되는 커다란 마름모 모양으로 구멍 난 흙벽돌이다. 낚시 그물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직물을 짜놓은 듯 구불구불 이어지는 부드러운 다이아몬드의 흐름이 언뜻 파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당시에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사방으로 펼쳐진 이 굴곡은 성벽을 제외하면 사실상 터만 남은 옛 흙모래 유적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바다가 치무왕국에 미친 절대적 영향력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담벼락의 부조 장식물은 펠리컨과 생선, 해달 같은 해양 관련 생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벽에 길게 늘어선 동그라미 형상은 달을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했다. 장식무늬 틀에 노릇하게 부풀려 구워낸 과자처럼 양감이 도드라진다. 벽의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 중에는 파도 같은 흐름을 타고 서로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나열된 물고기도 있었다. “여기 앞바다는 북쪽의 난류와 남쪽의 한류가 서로를 향해 흘러드는 엘니뇨현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물고기 문양들이 맞서 타는 흐름이 각각 한류와 난류 같죠? 치무인은 그때 이미 엘니뇨를 알고 있었던 겁니다.” 현지 안내원 알프레도 리오스 메르세데스 씨의 설명이다. 먼 옛날 ‘타카이나모’라는 이름의 왕이 뗏목을 타고 북쪽 바다에서 홀연히 나타나 왕국을 건설했다고 믿었던 치무인. 이들에게 바다의 신 ‘니(Ni)’와 달의 신 ‘시(Si)’는 삶을 지배하는 두 기둥이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이면 달의 신이 악인을 벌하러 갔다고 생각했다. 달이 태양을 삼키는 일식이 일어나면 달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벌였다. 화려한 금과 은의 세공품을 만들어 몸을 치장했다. 바로 이곳에서. 전체 넓이가 한때 24km²에 이르던 것으로 추정되는 찬찬 유적지는 현재 14km²의 평지에 내부적 완결성을 갖춘 10개의 성벽 터로 남아 있다. 왕이 죽고 난 뒤 후계자가 또 다른 성을 주변에 세워 새로운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한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분석이다. 찬찬 유적지는 198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됨과 동시에 위기유산 목록에도 올랐다. 멸망한 왕국을 들쑤신 도굴꾼들의 유적 훼손은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더 심각한 문제는 풍화다. 비라고는 오지 않던 이 지역에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흙벽돌이 녹아내리고 있다. 8∼10년 주기로 찾아오던 엘니뇨현상은 기후변화의 여파로 이제 매년 찾아온다. 점점 양이 늘어나는 빗물에 흙벽돌은 금이 가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허물어져갔다. 물이 빠지는 하수 시스템이 없는 옛 왕국은 빗줄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기유산 등재 이후 복구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 현장에는 흙벽돌 유적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곳곳에 천막이 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유산 복구를 위해 투자된 자금은 850만 달러.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전문가들도 수시로 오가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페루 문화재청은 찬찬 유적지 복구 및 보존을 위한 10년 기한의 마스터플랜을 작성해 시행 중이다. 현재 이곳에 상주하는 복구 인력은 300여 명. 고고학 전문가 15명이 팀을 이끌고 있다. 유적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육프로그램과의 연계도 꾸준히 시도 중이다. ‘찬찬 시민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이 유적지에 와서 직접 흙벽돌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2만20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2000년에 만들어진 마스터플랜의 집행 자금은 페루 경제가 성장세를 탄 2007년이 돼서야 지원되기 시작했다. 유적지의 상당 부분에는 여전히 값싼 땜질식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흙벽돌을 본떠 위에 살짝 덧댄 황갈색의 플라스틱 벽돌이 대표적이다. 벽의 부조문양이나 마름모꼴 장식 일부에 이 플라스틱 벽돌이 다른 색깔과 질감으로 어색하게 섞여 있다. 엔리케 산체스 페루 문화재청(INC) 트루히요 담당 국장은 “기후변화로 엘니뇨현상이 잦아지면서 폭우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런 땜질식 처방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언젠가는 떼어낼 예정이라는 플라스틱 벽돌의 수명은 앞으로 몇 년일까. 현지 전문가들은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짭짤한 바닷바람 섞인 빗물이 멈추는 날까지 어쩌면 계속…. 사라져가는 이 거대한 모래성은 그렇게 환경과의 조용하고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신전 속에 또 신전이… 베일 벗는 5겹 ‘달의 신전’ ▼ 처음엔 그냥 흙벽돌 한 장이었다. 이상하게 붉었다. 누군가 칠을 한 흔적임에 틀림없었다. 페루의 고고학자 리카르도 모랄레스 씨는 그 지역을 조심스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91년 시작된 본격적 발굴 작업. 달의 신전 ‘와카데라루나(Huaca de la Luna)’가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유적은 희한했다. 무너진 벽 속에서 또 하나의 신전 외벽이 나왔다. 화려하게 채색된 흙벽돌 안으로 5개의 신전이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마다 100년의 시간차가 났다. 한 세기가 지날 때마다 신전 위에 또 다른 신전을 겹쳐 올리는 대대적인 공사가 500년간 진행되며 32m 높이의 신전을 만들어낸 셈이다. 페루 ‘찬찬 고고유적지’에서 남쪽으로 8km가량 떨어진 옛 모체왕국(Moche Kingdom)의 터. 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와카데라루나’는 400∼600년 번성했던 모체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극사실주의로 평가받는 벽 무늬의 묘사가 대표적이다. 어지러울 만큼 벽을 가득 메운 전갈, 뱀, 거미, 새, 고양이 같은 동물 그림은 정밀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신비로운 신전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앞선 시대의 신전들이 흙벽돌에 갇혀 있었던 덕분에 문양과 색채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에 고고학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마리아 이사벨 미얀 데 치아브라 유네스코 페루 국가위원회 사무총장은 “예산이 부족해 발굴 장비와 연구 등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선진국의 협조로 국제적 차원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글·사진 트루히요=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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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져가는 세계유산에 생명의 빛을” 유네스코-동아일보 공동기획

    경북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의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로 한국도 10개나 되는 세계문화·자연유산 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는 ‘빛’ 뒤에는 몰려드는 인간의 발길로 몸살을 앓거나 아예 방치되는 ‘그늘’도 있다. 등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가꾸고 보존하는 인간의 노력이 중요하다. 동아일보는 유네스코와 함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소개하고 보존 및 복구를 위한 노력을 현장 시리즈로 연재한다. 우선 1부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심층 기획 시리즈를 추가 보도하는 2부를 내년 5월 말까지 실을 계획이다. 이번 시리즈는 본보가 5월 한국 언론사 중 최초로 유네스코와 ‘세계유산 보호 증진을 위한 미디어 파트너십’ 구축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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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도시화… 위험 속에 놓인 ‘인류의 보물’

    ‘오유브이(OUV).’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 표현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약자다. 양적으로 유일하거나 희귀한 유산 가운데 이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다. 유네스코가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을 제정한 이래 이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모두 187개국. 협약의 기준에 따른 세계유산 선정 작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151개국 911점의 세계유산이 리스트에 올랐다. 매년 개최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총회는 각국이 자국의 유산을 이 리스트에 등재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는 현장이다. 하지만 심사 대상인 후보 유산은 1년에 45개로 제한돼 있는 데다 심사과정도 엄격하다. 각국이 등재를 신청하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나 국제자연보호연맹(IUCN) 같은 유네스코의 자문기구가 소속 전문가들의 현장 방문 및 가치 분석, 관리 실태 조사 등을 바탕으로 등재 ‘권고’나 ‘보류’ ‘반려’ 등의 의견을 올린다. 이를 바탕으로 21개 위원국이 등재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3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합친 ‘복합유산’이 늘어나면서 세계유산의 개념과 범위가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상당수가 유럽과 북미지역에 치우쳐 있어 국가 간 편차와 불균형 문제가 제기된다. 이달 초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총회에서는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세계유산은 문화 역사적 가치가 아닌 국력이 기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세계유산 중 34개는 보존 복구 작업이 시급하거나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으로 지정돼 있다. 탈레반이 폭파한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굴, 전쟁으로 파괴된 이라크의 유산들이 대표적이다. 오랜 내전에 시달려온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 5개의 자연유산이 전부 위험유산 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런 유산들은 유네스코의 긴급복구 자금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성벽,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등은 지속적인 보존 복구 작업을 통해 위험유산 리스트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사례다. 브라질리아=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이 시리즈 기사는 유네스코의 협조하에 동아일보의 판단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일반 정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whc.unesco.org)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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