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만의 최악 홍수’ 파키스탄… 한달 지난 지금 그곳에 무슨일이

동아일보 입력 2010-09-02 03:00수정 2011-04-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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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주민들 “탈레반으로” 지저분한 공동묘지에서 간신히 아이를 낳은 20대 산모, 온몸에 수십 마리의 파리 떼가 달라붙은 어린이들, 넝마를 덮은 임시천막 속에서 굶주리는 노인과 영양실조로 젖이 말라버린 엄마…. 대홍수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파키스탄의 모습은 처참하다. 하지만 정부의 원조는 더디고 약속받은 외국의 구호자금도 절반밖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 등에 적극 나섰던 선진국의 반응도 이번에는 미적지근하다.

참상이 이처럼 외면당하는 사이 재난 현장에서는 피해주민의 탈레반화(化), 판매를 통한 구호품의 현금화 등 또 다른 우려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1일 외신들이 전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에 따르면 탈레반은 홍수 피해지역에서 5만 명의 병력을 새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수해현장에 수천 명을 내보내고 있다. 이들은 주민에게 약과 식량 등을 가져다주는 대가로 “서방과 싸우자”며 탈레반 가입을 요구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홍수피해가 큰 곳은 탈레반의 근거지로 알려진 스와트밸리. 지난해 파키스탄군과 탈레반의 교전이 치열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부 부모는 “굶주린 가족의 식량을 구하는 대가로 내 자식이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범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탈레반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재민 압둘 자바 씨는 “배고픈 우리에게 탈레반이 쌀을 가져다주고 있다”며 “우리 삶은 단순해서 (그런 도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억력이 나빠서 과거 탈레반 때문에 흘린 피를 기억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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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선진국이 파키스탄 구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테러리스트 양성 및 이웃국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 확장에 도움을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키스탄군의 무함마드 안와 씨는 “군대가 전국의 수해복구 지원을 위해 스와트밸리를 비운 사이 탈레반이 돈 가방을 메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며 “이기고 있던 전쟁을 홍수 때문에 다시 지게 될 판”이라고 말했다. 레만 말리크 내무장관도 “절박함이 테러리즘을 낳는다”며 “극단주의자들이 영웅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사설을 통해 “인륜뿐 아니라 테러 방지라는 전략적 차원에서도 버락 오바마 정부가 파키스탄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나마 전달되는 구호품이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등 구호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 AP통신에 따르면 피해지역의 시장에서는 구호물자 마크와 함께 ‘판매 및 교환 금지’라고 써 붙인 구호식량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수재민들은 “무너진 집을 고칠 장비나 농사 기구가 필요한데 구호품은 써먹을 수도 없는 밀가루나 식용유, 맛없는 비스킷뿐”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구호단체들은 현금 지급이 부정부패로 연결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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