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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만 잘하면 ‘돈 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건 여러 선수가 보여줬다. 박찬호(한화)는 메이저리그 시절인 2001년 말 LA 다저스에서 텍사스로 이적하며 5년간 6500만 달러(약 751억 원)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승엽(삼성)은 2007년부터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와 4년간 30억 엔(약 450억 원)에 계약했다. 최근엔 이대호가 롯데의 4년 100억 원 제안을 뿌리치고 2년간 7억6000만 엔(약 114억 원)에 일본 오릭스로 이적했다. 이들 같은 해외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에서만 뛰면서 100억 원을 벌어들이는 선수가 있다. 두산의 ‘두목 곰’ 김동주(36·사진)가 주인공이다. 두산은 지난 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재취득한 김동주와 3년간 총액 32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7억 원, 옵션 2억 원)에 2일 계약했다. 계약 기간을 채우기만 하면 김동주는 순수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누적 수입 100억 원을 돌파한다. 그는 1998년 OB(두산의 전신)에 입단할 때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입단 계약금으로만 4억5000만 원을 받았다. 이후 곧바로 팀의 중심타선 자리를 꿰찼고 4년째인 2001년 억대 연봉(1억2500만 원) 대열에 합류했다. 매년 꾸준히 연봉이 올랐지만 결정적으로 큰돈을 만진 건 FA가 되고 나서부터다. 2007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김동주는 해외 진출과 국내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막판에 두산에 남기로 했다. 4년간 계약금으로만 16억 원을 받았고 매년 연봉과 옵션을 합쳐 9억 원씩을 벌었다. 지난해까지 4년을 꼬박 채워 FA 자격을 다시 얻었고 이번에 다시 30억 원대 대박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번 계약으로 김동주는 17년간 두산에서만 뛰게 됐다. 그보다 한 팀에서 더 오래 뛴 선수는 송진우(21년)와 장종훈(19년·이상 한화), 이종열(18년·LG) 등 3명뿐이다. 김동주는 “두산맨으로 남게 돼 기쁘다. 이번 3년의 계약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왕년의 황제’ 타이거 우즈(37·미국)와 ‘떠오르는 황제’ 로리 매킬로이(23·북아일랜드). 올 시즌 진정한 골프 황제는 과연 누구일까. 미국 골프 전문잡지 골프위크는 2일 인터넷판에서 자사의 골프 전문기자 17명에게 ‘2012년에 누가 더 많은 우승을 차지한 것인가’란 설문을 돌려 이를 기사화했다. 결과는 우즈의 압승이었다. 절반이 넘는 10명이 우즈의 우세를 점쳤고, 4명만이 매킬로이가 앞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3명은 무승부라고 답했다. 랜스 링글러 기자는 “우즈가 전성기의 절반만 쳐도 매킬로이보다 더 많이 우승할 것”이라고 점쳤다. 마틴 카우프먼 기자도 “그가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면 예전처럼 다른 선수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라고 했다. 우즈에 대한 호평은 지난해 12월 열린 셰브론 월드챌린지에서 그가 2년여 만에 우승한 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즈는 그 대회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역전 우승했다. 베스 볼드리 기자는 “우승하는 순간 우즈의 표정을 봤나. 완전히 예전의 그로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반면 줄리 윌리엄스 기자는 “우즈는 이제 젊지 않으니까”, 제프 루드 기자는 “지금 이 순간만 따지면 매킬로이가 더 낫다”는 이유로 매킬로이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는 올해 역시 청야니(대만)의 독주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제임스 에이켄바흐 기자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힘들었던) 미셸 위가 올해 스탠퍼드대를 졸업하면 LPGA 무대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독특한 의견을 내놓았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낯선 미국 땅. 그나마 2년 만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 그는 지난해 초 새 터전이 된 미국 플로리다 주 포트샬럿 앞바다에 머리도 식힐 겸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날 60cm 정도 되는 새끼 상어를 잡았다. 자신도 믿기 힘든 일이라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까지 찍었다. 탬파베이 산하 더블A 몽고메리의 유격수 이학주(22·사진)는 상어를 낚을 만큼 운이 좋은 사나이다. 이학주는 충암고 3학년이던 2008년 계약금 115만 달러(약 13억2400만 원)에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크게 작용했다. 당초 컵스 스카우트의 표적은 투수 홍상삼(현 두산)이었다. 이학주는 “당시 동대문에 있던 스카우트들에게 날 알리기 위해 일부러 ‘오버’를 좀 했다.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전력질주했고 방망이도 힘껏 휘둘렀다”고 했다. 고교 3년간 그의 성적은 타율 0.321에 12타점이었다. 홈런은 1개도 치지 못했다. 하지만 컵스 스카우트는 유격수로서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국 스카우트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지난 시즌을 싱글A 샬럿에서 시작했다. 97경기에 나서 팀 내 최고인 타율 0.318에 28도루를 기록한 뒤 더블A팀 선수로 승격했다. 클리블랜드의 중심타자로 성장한 추신수가 네 번째 시즌 만에 더블A로 승격한 점에 비추어 보면 이학주도 차근차근 빅리거의 길을 밟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전문 사이트인 ‘베이스볼아메리카’는 2012시즌 탬파베이 유망주 전체 2위로 그를 선정했다. 2015년에는 이학주가 팀의 주전 유격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학주는 “컵스 시절이던 2010년 초엔 너무 야구를 못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신수 형이 같은 길을 걸어 성공한 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지난 시즌 중엔 미국에서 추신수를 만나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다. 둘은 모두 ‘슈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 사단에 속해 있다. 이학주는 강단이 있는 편이다. 미국에 처음 온 2009년 자신을 놀리는 한 흑인 선수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리기도 했다. 미국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감독이나 코치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간다. 꿈도 크다. “평범한 메이저리거가 아니라 이왕이면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는 거다. 닮고 싶은 선수는 최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뉴욕 메츠에서 마이애미로 이적한 유격수 호세 레예스다. 레예스는 6년간 1억600만 달러(약 1220억 원)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학주는 정확한 콘택트 능력과 빠른 발, 강한 어깨를 갖고 있지만 파워가 부족한 편이다. 레예스 역시 비슷하다. 다만 레예스처럼 홈런을 10개 내외까지 끌어올리려고 체중을 2년 전에 비해 10kg 이상 불렸다. 젓가락 같던 몸이 키 189cm에 몸무게 90kg으로 건장해졌다. 그는 “2년 안에 빅리그 진출을 목표로 죽을힘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쇼트트랙 황제’로 군림했던 안현수(26)가 결국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서 내년부터 국제대회에서 동료이자 후배였던 한국 선수들과의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빙상연맹은 29일 홈페이지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 출신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에게 러시아 국적을 인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소개했다. 안현수는 내년 1월에 러시아 여권을 받는다.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서 안현수는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그 외국 국적을 취득한 때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는 한국 법률에 따라 한국 국적은 상실하게 됐다.안현수는 러시아빙상연맹과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러시아 국민이 돼 기쁘다. 이 순간을 아주 오래 기다려 왔으며 이제 형식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안현수는 옛 소련 시절 러시아에서 인기를 얻었던 고려인 록 가수 ‘빅토르 최’의 이름을 따 러시아 이름을 빅토르로 정했다. 그는 “발음이 승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빅토리(Victory)와 비슷하고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고려인 가수 빅토르 최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안현수가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처음 출전하는 대회는 내년 1월 27∼29일 체코의 믈라다볼레슬라프에서 열리는 유럽선수권대회가 될 것이 유력하다. 이후 2월 3∼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쇼트트랙 월드컵 5차 대회에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이 대회에서 한국 쇼트트랙의 떠오르는 샛별 노진규(한국체대)와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노진규는 올 시즌 월드컵 1500m에서 4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내며 이 부문 올 월드컵시리즈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1500m는 안현수의 주 종목이기도 하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3관왕, 2003∼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5연패라는 눈부신 성적을 올렸던 안현수는 2006년 올림픽 이후 파벌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2008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소속팀 성남시청 빙상팀이 해체되면서 무적 선수가 됐다. 안현수는 러시아빙상연맹 초청으로 6월 러시아로 갔으며 8월에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러시아 귀화 의사를 밝혔다. 올림픽 금메달 등에 따른 연금은 귀화 결심을 굳히면서 이미 일시불로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신지애(23·미래에셋)도 한때는 ‘괴력의 장타자’였다. 골프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된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는 마음만 먹으면 드라이버로 250야드를 쉽게 날렸다. 언론에는 ‘한국의 로라 데이비스’라고 소개됐다. 26일 본보와 인터뷰에 응한 신지애는 “사실 그때가 지금보다 드라이버는 더 멀리 쳤던 것 같다”며 웃었다. 올 시즌 그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47.7야드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74위다.신지애는 “어릴 때는 주변에서 ‘멀리 친다’는 말이 칭찬 같았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신나서 더 세게 치려고 했다. 그런데 골프에서 중요한 건 거리보다는 정확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거리에 신경 쓰는 대신 정확하게 치려고 했다”고 말했다. ○ 무관의 제왕정확한 샷은 신지애의 트레이드마크다. LPGA투어에서 통산 8승을 올렸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비결은 바로 정확한 샷 덕분이다. 그런데 올해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비거리를 늘리면 좀 더 골프를 쉽게 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윙 교정을 한 게 뼈아픈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올해 그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이맘때 1위였던 세계 랭킹은 7위까지 떨어졌다. 신지애는 “예전에는 단순하게 쳤다. 내 감각을 믿고 스윙을 했다. 그런데 스윙 교정 후엔 어드레스에 들어간 뒤 생각이 많아졌다. 단기간에 바꾸려 했던 게 실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여자 골프는 청야니 천하다. LPGA투어 7승을 포함해 올해 우승컵만 12개를 들어올렸다. 대표적인 장타자인 청야니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신지애보다 20야드 이상 더 나간다. 신지애는 “비거리는 뒤떨어질지 몰라도 정확성은 자신 있다. 사실 투어에서 많은 선수가 나의 장점을 부러워한다. 청야니는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내년엔 재미있게 경쟁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 라식 후유증은 없다올해 그의 부진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바로 라식수술 후유증이다. 라식 이후 퍼트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난해까지 20위권이었던 그의 홀당 퍼트 수는 올해 1.76개로 크리스티 커(미국), 미야자토 아이(일본)에 이어 3위다. 신지애는 “우승이 없으니 나온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편하다. 수술해 주신 선생님도 ‘정말 수술은 잘됐는데…’라며 걱정하신다. 결국 온그린 샷이 문제였다. 예전엔 홀 2m에 불이던 걸 올해는 3, 4m에 붙이니까 퍼트가 힘들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퍼트가 잘돼 이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 다시 초심으로 1년 내내 투어에 참가하느라 바쁘지만 그는 요즘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김연우의 공연장에서,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2AM의 콘서트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짧은 휴가도 이제 끝났다. 신지애는 28일 미국 팜스프링스로 떠나 지옥훈련에 돌입한다. 신지애는 “올해 우승이 없었다는 부분에 대해 많은 분이 안타까워했다. 내년에 더 많이 우승하려고 올해 아껴놨다고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미국에 가면 몸은 혹사하겠지만 마음은 편하고 여유롭게 공을 칠 것 같다. 단시간에 많은 걸 이뤄 목표를 잠시 잃은 적도 있지만 이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루빨리 우승의 물꼬를 터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일본 골프의 신성(新星) 이시카와 료(20·사진)에게 올해는 악몽 같은 한 해였다. 2009년 4승을 거두며 일본 투어 상금왕에 오르는 등 2008년 프로 데뷔 후 매년 우승컵을 차지했으나 올해는 무관에 그쳤다. 게다가 지난주 태국선수권대회에서 58위에 그치며 올해 마지막 세계 랭킹 발표에서 51위로 밀렸다. 50위까지는 자동 출전권이 주어지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출전이 한 끝 차이로 미궁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CF 모델로서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올해 그가 출연한 CF는 무려 17개. 여기에 성인이 되는 20세 생일을 지내자마자 맥주 업체들의 집중적인 러브콜이 쏟아졌다. 23일 스포츠닛폰 등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아사히맥주와 기린맥주 등 주요 맥주 업체들은 올해 초부터 이시카와의 생일(9월 17일)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쟁탈전을 벌여 왔다. 최종 승자는 1∼9월 일본 내 맥주 출하량 1위인 아사히맥주였다. 어른이 된 이시카와가 출연하는 맥주 CF는 내년 1월부터 전파를 탄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어제 (양)세종(OB 원년 멤버)이랑 밤새워 술 마셨는데 얼굴이 괜찮게 나올지 모르겠네. (탈모를 감추느라) 흑채도 뿌리고 왔어.”부드러운 미소도, 특유의 입담도 여전했다. 프로야구 OB(현 두산)의 원년 우승을 이끈 ‘불사조’ 박철순 씨(55)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채널A 스포츠투나잇 ‘오랜만입니다’ 출연차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스튜디오를 찾은 박 씨는 “공식적인 언론 인터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많은 분이 건강을 염려해 주셨는데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조만간 팬 여러분을 찾아갈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소주 CF 한번 해봤으면”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올해 대장암으로 사망하면서 박철순 씨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 박 씨도 2007년 초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 씨는 “종합검진을 받다가 작은 용종이 2개 발견돼 수면 중에 레이저로 제거했는데 그게 와전이 됐다”며 “그 보도 때문에 성사 직전까지 갔던 CF 계약이 취소됐다. 지금 보듯이 가끔 술도 한 잔씩 하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와 CF는 질긴 인연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를 배경으로 그가 출연한 커피 광고는 여전히 많은 이의 기억에 남아 있다. 1988년에는 속옷 광고를 찍다가 왼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시즌을 접은 적도 있다. 그는 “요즘도 가끔 CF 제의가 들어온다.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솔직히 소주 광고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주도 분위기 있고 멋있게 먹는 술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라며 웃었다. ○ 지도자는 사양1998년 OB 투수코치를 끝으로 그는 야구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스포츠 브랜드와 골프 사업 등을 하다가 최근에는 모두 다 접었다. 올해 시즌 말미부터는 한 인터넷TV에서 야구 해설을 하며 야구계로 돌아왔다. 스포츠 전문지에 관전평도 썼다. “야구는 인생의 전부다”라고 하는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야구를 떠나 있었을까. 그는 “1998년 OB에서 코치를 해보니 ‘내 성격상 팀을 말아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스스로 보기에 지도자 그릇이 아니었다”고 했다.그는 “감독이나 코치라면 선수들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내겐 선수들의 단점은 안 보이고 장점만 보였다. 그래선 훈련을 시킬 수가 없다. 만약 지금 어떤 팀에서 계약하자고 해도 전혀 자신이 없다”고 했다. OB를 떠난 뒤에도 다른 팀에서 지도자 제의를 꽤 많이 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프런트로 일해 볼 생각은 있다. 프런트라면 내 경험을 잘 살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자랑스러운 야구 후배들그는 최동원, 선동열(KIA감독)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투수였다. 1980년 미국 프로야구 밀워키와 계약해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될 뻔했다. 1981년 트리플A까지 올라갔지만 이듬해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에 맞춰 OB로 돌아왔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그는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22연승을 포함해 24승 4패 7세이브의 기록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그가 던진 팜볼과 너클볼 등은 국내 타자들에게는 마구(魔球)나 마찬가지였다. 이듬해부터 허리 디스크와 아킬레스건 파열 등 각종 부상으로 수차례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번번이 재기에 성공해 ‘불사조’란 별명을 얻었다. 박 씨는 “요즘 윤석민(KIA)이나 류현진(한화) 등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좋은 투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고 있다. 또 이런 선수들을 키워낸 코치들도 대단한 것 같다. 이제 국민 스포츠로 성장한 프로야구를 팬들께서 더욱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 LG 단장을 지냈던 최종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단장(團長)은 장이 끊기는 고통을 느끼는 단장(斷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백순길 LG 단장의 요즘 심정이 딱 그럴 것 같다. 올해 한때 1위에 오르기도 했던 LG는 날개 없는 추락 끝에 공동 6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3명의 주축 선수(이택근, 송신영, 조인성)가 모두 팀을 떠났다. 연말 모임에 갈 때마다 “내년에 대체 어떡하려고 하느냐”고 걱정 어린 말을 듣는다. 객관적인 전력상 10년 연속 가을잔치도 힘들어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백 단장은 배수의 진을 쳤다. 19일 발표한 조직개편에서 운영팀장을 겸임하기로 한 것이다. 백 단장은 “지난 26년간 LG전자에서 일하면서 거의 실패를 몰랐다. 그런데 야구단에서 일한 1년간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룹에서도 실적이 부진하거나 하면 임원이 직접 팀을 맡곤 한다. 간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장에서 직접 선수들과 프런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고 했다. 백 단장은 김기태 감독과 팀 체질개선에도 의기투합했다. 백 단장은 “자유계약선수들이 대거 이탈한 뒤 정대현이나 이승호(이상 롯데) 등 외부 자유계약선수를 데려오려 했다. 그런데 김 감독이 ‘우리는 떠나도 LG란 팀은 영원하지 않습니까’라며 젊은 선수들을 키우자고 하더라. 힘든 상황이지만 감독을 도와 정말 잘해볼 생각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언제든 질 각오다”라고 했다.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LG가 내년 시즌 성적과 팀 컬러 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만약 윤석민(25·KIA·사진)이 야구가 아닌 축구를 했다면 지금쯤 어떤 선수가 되어 있을까. 유연한 몸과 타고난 운동신경을 보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 투수 4관왕에 오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윤석민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주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남 윤석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키워드로 풀어본다. ▽축구 선수=한국 최고의 야구선수가 됐지만 어릴 적 그는 축구를 할 뻔했다. 구리초등학교 4학년 때 인근 중학교 축구부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중학생이 되면 오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빨리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한 달 후 야구부에 들어갔다. 이 선택이 그의 평생을 바꿨다. ▽목표는 대학생=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평범한 선수였다. 야구계에서 자주 쓰는 은어로 일명 ‘삐꾸’였다. 분당 야탑고 투수 가운데 넘버 4였다. 프로는커녕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였다. 대학에 가기 위해 투수를 접고 2루수로 전향까지 했다. 그런데 2학년 겨울 방학 때 키가 쑥쑥 크더니 구속이 갑자기 시속 10km 이상 빨라졌다. 그는 “주변은 물론 스스로도 놀랐다.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선수가 돼 있었다”고 했다. ▽메이저리그=모든 아마추어 야구 선수의 궁극적인 꿈은 메이저리거다. 그렇지만 평범 그 자체였던 윤석민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였다. 우선은 대학이라도 가고 싶었다. KIA에 지명을 받은 뒤엔 1군에 남는 게 목표였다. 1군 선수가 된 후엔 팀 에이스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 한국 최고 투수가 됐다. 메이저리그의 오퍼를 받은 것은 올 시즌 중반이었다. 25세가 돼서야 메이저리거를 꿈꿀 수 있었다. 구단의 반대로 일단 팀에 잔류했지만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2년 후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계획이다. ▽선동열=20년 전 투수 4관왕에 오른 선동열 KIA 감독과 마찬가지로 윤석민의 주무기는 슬라이더다. 직구와 맞먹는 146km짜리 슬라이더가 스피드건에 찍히기도 했다. 그는 “선 감독님의 슬라이더는 빠르고 각이 크면서도 항상 일정했다. 하지만 나는 슬라이더를 직구처럼 때리듯 던진다. 나 자신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한번은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전혀 움직임 없이 직구처럼 들어가 삼진을 잡은 적도 있다”고 했다. ▽게으른 천재=트레이너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하나. 윤석민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운동을 열심히 안 하는 선수라는 것. 이에 대해 윤석민은 “내 생각에도 죽어라 훈련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운동을 할 때만큼은 집중해서, 그리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철저하게 하는 편”이라고 했다. 시즌 중 어깨 보강 훈련이나 러닝 양이 적은 것도 “연습이 아닌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따라쟁이=그는 스스로 “딴 건 몰라도 동작을 따라하는 재주는 타고났다”고 했다. 이달 초 열린 야구인 골프대회에서는 골프선수 못지않은 멋진 스윙 폼을 선보였다. 골프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80대 중반을 친다. 야구에서도 그렇다. 윤석민처럼 쉽게 구종을 익히는 투수는 별로 찾기 힘들다. 하지만 너무 많은 구종을 던지느라 시즌 초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는 “내년엔 자신 있는 4개의 구종(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만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일본인 투수 다루빗슈 유는 요즘 인기절정이다.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가 보유한 역대 최다 포스팅 금액(5111만1111달러11센트·약 599억 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소프트뱅크 에이스로 활약했던 왼손 투수 와다 쓰요시도 최근 볼티모어와 2년간 815만 달러(약 95억 원)에 계약했다. 하지만 이는 투수에 국한된 얘기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일본인 타자들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못해 싸늘해 보인다.대표적인 선수가 ‘제2의 이치로’로 평가받는 아오키 노리치카(야쿠르트·사진)다. 아오키는 8시즌 통산 타율이 0.329에 이르는 일본의 대표적인 교타자이지만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에서 밀워키로부터 250만 달러(약 29억 원)를 제안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니시오카 쓰요시가 미네소타에 진출하면서 받은 530만 달러는 물론이고, 2006년 탬파베이에 입단한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455만 달러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세이부의 주전 유격수로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나카지마 히로유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입찰액은 고작 200만 달러(약 23억 원). 이는 일본인 타자 가운데 미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그나마 거의 매년 200안타 이상을 기록했지만 마쓰이 히데키(전 오클랜드)나 후쿠도메 고스케(클리블랜드) 등 일본 대표 타자들은 대개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33·전 SK·사진)으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겠다”는 내용의 e메일이 도착한 것은 13일 오후 2시경이었다. 그로부터 3시간도 안 된 오후 4시 반경 롯데는 정대현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조건은 4년간 계약금 10억 원에 연봉 5억 원, 옵션 6억 원 등 총액 36억 원. 중간계투 투수로서는 이례적인 대형 계약이다.정대현은 2001년 SK에 입단한 뒤 477경기에 나가 32승 22패 99세이브 76홀드에 평균자책 1.93을 기록했다. 올 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해 왔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2년간 320만 달러)이 나왔고 볼티모어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등 계약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일 별다른 성과 없이 조용히 귀국하면서 한국 잔류가 예상됐다. 정대현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메디컬 체크 결과 이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무릎이나 어깨, 팔꿈치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볼티모어에 그동안 추진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정대현은 “절대 한국 구단의 제안 때문에 흔들린 것이 아니다. 일찌감치 미국행을 선언해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구체적인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그러나 수준급 중간계투 투수를 원했던 롯데는 정대현이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도 안부 전화를 하며 그의 영입을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하루 전인 12일 저녁 정대현을 직접 만나 계약을 이끌어냈다.정대현은 롯데 구단을 통해 “미국에서 힘들었는데 롯데의 적극적인 공세로 마음이 움직였다. 내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에 감사하고 열정적인 팬들이 있는 야구 도시 부산에서 뛸 수 있어 행복하다. 내년 팀 우승에 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롯데는 SK에서 FA로 풀린 이승호(20번)에 이어 정대현까지 영입하며 약점으로 지적되던 불펜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언더핸드 투수 정대현(33·전 SK)으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겠다"는 내용의 e메일이 도착한 것은 13일 오후 2시 경이었다. 그로부터 3시간도 안된 오후 4시 반 경 롯데는 정대현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조건은 4년 간 계약금 10억 원에 연봉 5억 원, 옵션 6억 원 등 총액 36억 원. 중간 계투 투수로서는 이례적인 대형 계약이다. 정대현은 2001년 SK에 입단한 뒤 477경기에 나가 32승 22패 99세이브 76홀드에 평균자책 1.93을 기록했다. 올 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해 왔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2년 간 320만 달러)이 나왔고 볼티모어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는 등 계약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일 별다른 성과 없이 조용히 귀국하면서 한국 잔류가 예상됐다. 정대현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메디컬 체크 결과 이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무릎이나 어깨, 팔꿈치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대신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볼티모어에 그동안 추진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정대현은 "절대 한국 구단의 제안 때문에 흔들린 것이 아니다. 일찌감치 미국행을 선언해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구체적인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준급 중간계투 투수를 원했던 롯데는 정대현이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도 안부 전화를 하며 그의 영입을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하루 전인 12일 저녁 정대현을 직접 만나 계약을 이끌어냈다. 정대현은 롯데 구단을 통해 "미국에서 힘들었는데 롯데의 적극적인 공세로 마음이 움직였다. 내 가치를 인정해 준 구단에 감사하고 열정적인 팬들이 있는 야구 도시 부산에서 뛸 수 있어 행복하다. 내년 팀 우승을 위해 큰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롯데는 SK에서 FA로 풀린 이승호(20번)에 이어 정대현까지 영입하며 약점으로 지적되던 불펜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하늘이요? 골프도 잘 치고 착해요.”(프로야구 한화 류현진)“원래 야구를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2008년 현진이 오빠랑 같이 인터뷰한 걸 계기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프로골퍼 김하늘)‘괴물 투수’ 류현진(24)과 ‘미녀 골퍼’ 김하늘(23·비씨카드)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대다수 참석자가 자연스럽게 둘의 러브라인을 연상했다. 보통 자리였다면 공식석상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5대 프로 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의 대표 스타가 한자리에 모이는 ‘스포츠토토와 함께하는 2011 동아스포츠대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회 동아스포츠대상 시상식은 각 종목 스포츠 스타와 관계자들이 종목의 벽을 넘어 교류하는 장이었다. 또 같은 그라운드와 코트, 필드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선수들이 투표를 통해 직접 수상자를 선정해 더 의미가 깊었다. 류현진은 야구 부문에서 윤석민(KIA)에게 뒤져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친한 오빠동생 사이로 지내는 김하늘이 골프 여자 부문에서 상을 받자 꽃다발을 들고 무대로 올라가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는 김하늘과의 사진 촬영에 응하며 “하늘이가 내년에도 아프지 말고 우승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윤석민은 프로야구 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에 이어 동아스포츠대상까지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했다.프로축구에서는 올해 공격 포인트 1위에 오르며 팀 우승을 이끈 전북의 이동국이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수상. 지난해 일본골프투어 상금왕을 차지하며 대상을 수상한 김경태(신한금융그룹)는 올해는 한국 투어 상금왕에 오르며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김경태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달라고 하자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프로도 힘이 들어가 샷을 망치곤 하는데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남자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문태종은 귀화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상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여자 선수로는 지난 시즌 득점왕 출신의 김정은(신세계)이 상을 받았다. 남녀 배구 선수로는 삼성화재 리베로 여오현과 흥국생명 세터 김사니가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투표에 참여한 선수들이 팀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많은 표를 줬다.이번 동아스포츠대상의 선정 투표인단은 총 283명. 각 팀을 대표하는 투표인단은 자신과 소속팀을 제외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올해의 선수를 1∼3위로 나눠 뽑았다.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을 줘 이를 종합해 최다 포인트를 얻은 선수가 대상을 받았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하늘이요? 골프도 잘 치고 착해요."(프로야구 한화 류현진)"원래 야구를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2008년 한 인터뷰에서 현진이 오빠랑 같이 인터뷰 한 걸 계기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프로골퍼 김하늘)'괴물 투수' 류현진(24)과 '미녀 골퍼' 김하늘(23·비씨카드)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대다수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둘의 러브라인을 연상했다. 보통 자리였다면 공식석상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5대 프로 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의 대표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스포츠토토와 함께 하는 2011 동아스포츠대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회 동아스포츠대상 시상식은 각 종목 스포츠 스타들과 관계자들이 종목의 벽을 넘어 교류하는 장이었다. 또 같은 그라운드와 코트, 필드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선수들이 투표를 통해 주는 직접 수상자를 선정해 더 의미가 깊었다. 류현진은 야구 부문에서 윤석민(KIA)에게 뒤져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친한 오빠-동생 사이로 지내는 김하늘이 골프 여자 부문에서 상을 받자 꽃다발을 들고 무대위로 올라가 축하를 전했다. 그는 김하늘과 사진 촬영에 응하며 "하늘이가 내년에도 아프지 말고 우승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윤석민은 프로야구 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에 이어 동아스포츠대상까지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했다. 프로축구에서는 올해 공격 포인트 1위에 오르며 팀 우승을 이끈 전북의 이동국이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수상. 지난해 일본골프투어 상금왕을 차지하며 대상을 수상했던 김경태(신한금융그룹)는 올해는 한국 투어 상금왕에 오르며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김경태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달라고 하자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프로도 힘이 들어가 샷을 망치곤 하는데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남자 프로농구 전자랜드의 문태종은 귀화 선수로는 처음으로 대상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여자 선수로는 지난 시즌 득점왕 출신의 김정은(신세계)이 상을 받았다. 남녀 배구 선수로는 삼성화재 리베로 여오현과 흥국생명 세터 김사니가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다. 투표에 참가한 선수들이 팀을 위해 궂을 일을 도하는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많은 표를 줬다. 이번 동아스포츠대상의 선정 투표인단은 총 283명. 각 팀을 대표하는 투표인단은 자신과 소속팀을 제외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올해의 선수를 1~3위로 나눠 뽑았다.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을 줘 이를 종합해 최다 포인트를 얻은 선수가 대상을 받았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1일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2011년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호명된 이대수(30·한화)는 수상 소감을 말하던 도중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는 울컥하며 눈물까지 쏟았다. 굴곡진 그의 야구 인생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정확히 10년 전 그는 고향인 전북 신시도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신시도는 군산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이나 들어가야 되는 작은 섬이다.1999년 졸업 후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2000년 쌍방울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2001년 쌍방울이 SK로 인수됐지만 정식 신고 선수가 아니었던 그는 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해온 야구가 아까워서, 힘든 김 양식을 해서 그를 뒷바라지했던 부모님께 미안해서 신시도로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3주 후에야 SK에서 연락이 왔다. 연봉 1500만 원짜리 정식 신고 선수로 들어갔다. 주전의 문턱은 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06년 김민재가 한화로 이적하면서 처음 주전이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 나주환과 일대일 트레이드가 돼 두산으로 이적했다. 당시 두산은 주전 유격수 손시헌의 군 입대로 유격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렇지만 2년 뒤 손시헌이 돌아오자 그는 또다시 설 자리가 없었다. 결과는 2009년 시즌 말 한화로의 트레이드였다. 프로 10년차이던 올해 그는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폭발했다. 122경기에 출장하며 유격수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3할 타율(0.301)을 기록했고 8홈런과 50타점을 올렸다. 이대수는 이날 기자단 투표에서 127표를 받아 111표를 얻은 삼성 김상수를 제치고 감격적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대수는 “10년 전 생각했던 꿈을 오늘 이 자리에서 이뤘다. 오늘 이후엔 더 높은 꿈을 향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는 방출을 당했다가 홈런왕에 오른 삼성 외야수 최형우, 2007년 최다패 투수에서 투수 4관왕에 오른 KIA 윤석민 등 사연 많은 선수들이 생애 처음으로 황금장갑을 꼈다. 손아섭(롯데), 안치홍(KIA), 최정(SK)을 포함해 총 6명이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일본 오릭스 입단이 확정된 이대호(전 롯데)는 4번째, 홍성흔(롯데)은 지명타자 부문 4년 연속을 포함해 6번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반면 LG와 두산, 넥센 등 서울 연고 3개 구단은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1일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SETEC) 열린 2011년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호명된 이대수(30·한화)는 수상 소감을 말하던 도중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는 울컥하며 눈물까지 쏟았다. 굴곡진 그의 야구 인생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정확히 10년 전 그는 고향인 전북 신시도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았다. 신시도는 군산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이나 들어가야 되는 작은 섬이다. 1999년 졸업 후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는 2000년 쌍방울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2001년 쌍방울이 SK로 인수됐지만 정식 신고 선수가 아니었던 그는 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해온 야구가 아까워서, 힘든 김 양식을 해서 그를 뒷바라지 했던 부모님께 미안해서 신시도로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3주 후에야 SK에서 연락이 왔다. 연봉 1500만 원짜리 정식 신고 선수로 들어갔다. 주전의 문턱은 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06년 김민재가 한화로 이적하면서 처음 주전이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 나주환과 1대 1 트레이드가 돼 두산으로 이적했다. 당시 두산은 주전 유격수 손시헌의 군 입대로 유격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렇지만 2년 뒤 손시헌이 돌아오자 그는 또 다시 설 자리가 없었다. 결과는 2009년 시즌 말 한화로의 트레이드였다. 프로 10년 차이던 올해 그는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폭발했다. 122경기에 출장하며 유격수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3할 타율(0.301)을 기록했고 8홈런과 50타점을 올렸다. 이대수는 이날 기자단 투표에서 127표를 받아 111표를 얻은 삼성 김상수를 제치고 감격적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대수는 "10년 전 생각했던 꿈을 오늘 이 자리에서 이뤘다. 오늘 이후엔 더 높은 꿈을 향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는 방출을 당했다가 홈런왕에 오른 삼성 외야수 최형우, 2007년 최다패 투수에서 투수 4관왕에 오른 KIA 윤석민 등 사연 많은 선수들이 생애 처음으로 황금장갑을 꼈다. 손아섭(롯데), 안치홍(KIA), 최정(SK)을 포함해 총 6명이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일본 오릭스 입단이 확정된 이대호(전 롯데)는 4번째, 홍성흔(롯데)은 지명타자 부분 4년 연속을 포함해 6번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반면 LG와 두산, 넥센 등 서울 연고 3개 구단은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한국 양궁은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이다.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국가대표 되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 양궁을 배우려는 나라가 많다. 이기석(미국) 석동은(이탈리아) 김정호(이라크) 이웅(멕시코) 조형묵(스페인) 등 30여 명의 한국 지도자가 외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국제대회는 한국 지도자들의 동창회 무대다.그런 한국 양궁이 외국인 지도자를 국내로 초빙한다. 이제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은 새파란 지도자다. 9일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12∼16일 충북 괴산군 중원대에서 열리는 지도자 강습회에 덴마크 국가대표 마르틴 담스보(26·사진)가 특별 강사로 나선다.담스보가 한국 지도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콤파운드다. 남자 콤파운드 90m 세계기록(350점) 보유자인 담스보는 콤파운드 활에 대한 기초 설명과 관리법, 분해 및 조립 방법, 발사 기술 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양궁은 리커브와 콤파운드 두 종목으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궁은 리커브다. 콤파운드는 2개의 케이블과 2개의 도르래를 사용하는 활이다. 한국은 리커브에선 세계 최강이지만 콤파운드에선 약소국이다. 선수도 70∼80명에 불과하고 체계적인 지도자도 없다. 조립과 분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기술을 가진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양궁에서 콤파운드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세계선수권에서는 리커브와 함께 정식 종목으로 치러지고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장기적으로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돌이켜보면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다. 1999년 세인트루이스가 앨버트 푸홀스(31)에게 제시한 계약금은 1만 달러(약 1140만 원)였다. 당시 푸홀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402위로 지명된 평범한 유망주에 불과했다. 푸홀스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세인트루이스가 선심을 쓰듯 그를 붙잡은 돈은 6만 달러(약 6800만 원)였다. 그러나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푸홀스의 인생은 변했다. 3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마치고 2001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그해 타율 0.329에 38홈런, 130타점을 몰아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후 ‘괴물’의 질주는 한 해도 멈추지 않았다. 푸홀스는 2000년대 메이저리그의 최고 스타였다. 평생 한 번 치기 힘든 3할 타율을 2010년까지 10년 연속 기록했다. 많은 선수가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든 30홈런도 10년 연속 날렸다. 극소수만 할 수 있다는 100타점 역시 10년 연속 해냈다. 그는 ESPN이 꼽은 최근 10년간 가장 위대한 스타에도 선정됐다. 푸홀스는 올해 부상 등으로 다소 주춤했음에도 타율 0.299에 37홈런 99타점을 기록했다. 타석에서의 위압감은 여전했고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올 시즌 직후 세인트루이스를 비롯해 마이애미 등이 2억 달러가 넘는 돈다발을 들고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푸홀스가 선택한 구단은 10년간 2억5400만 달러(약 2910억 원)를 제시한 LA 에인절스였다. 1140만 원짜리 계약금에 상처를 받았던 그가 3000억 원 가까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계약 조건에는 그가 트레이드를 거부할 권리도 포함돼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총액 2억 달러 이상의 잭팟을 터뜨린 선수는 2명뿐이다. 역대 최고 금액은 2008시즌 직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뉴욕 양키스와 맺은 10년간 2억7500만 달러다. 로드리게스는 2001시즌 직전에도 텍사스와 10년간 2억5200만 달러에 계약한 바 있다. 푸홀스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 아르테 모레노 구단주는 “에인절스 팬들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레노 구단주가 2003년 월트디즈니로부터 에인절스 구단을 사들일 때 지불한 비용은 1억8400만 달러(약 2108억 원)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KIA 윤석민(25)은 에이스다웠다. 폼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스윙은 부드러웠다. 이에 맞선 한화 ‘괴물’ 류현진(24)은 흔들리지 않았다. 위기가 닥쳐도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으로 스코어를 지켰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야구 관계자는 “여유의 석민과 투지의 현진이 만났다”고 표현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우완 에이스 류현진과 윤석민이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벌였다. 무대는 야구장이 아닌 골프장. 8일 경기 가평군 베네스트CC에서 열린 제30회 야구인 골프대회는 둘의 맞대결로 후끈 달아올랐다. 도전장을 던진 건 류현진이었다. 한 달 전부터 정식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한 류현진은 최근 초보의 첫 관문인 100타를 깼다. 자신감이 충만한 그는 윤석민이 이 대회에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는 “한 조에 넣어 달라”고 주최 측에 요청했다. 라운드 직전에도 윤석민에게 “타당 돈내기를 하자”며 신경전을 펼쳤다. 구력 1년에 80대 후반을 치는 윤석민도 “멀리건과 컨시드는 없다”며 도전을 받아들였다.드라이브 비거리는 체격이 작은 윤석민이 앞섰다. 그리 크지 않은 몸에서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듯 250m 이상을 곧잘 날렸다. 좌투우타인 류현진보다 5m 이상 더 나갔다. 그나마 류현진의 드라이브샷은 거칠고 들쭉날쭉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드라이브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골프계의 명언은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윤석민은 정교한 드라이브샷에 이은 깔끔한 아이언샷으로 곧잘 투온에 성공했지만 퍼팅이 홀을 빗나가기 일쑤였다. 반면 류현진은 마무리에 강했다. 세밀한 감각이 요구되는 결정적인 퍼팅을 여러 차례 성공시켰다. 최종 결과는 류현진이 88타를 기록해 윤석민(89타)에게 1타 차 승리. 류현진은 “석민이 형을 이긴 것도 좋지만 생애 최고 스코어가 나온 게 더 좋다”고 했다. 윤석민은 “오늘 최선을 다했는데 현진이가 더 잘 쳤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한편 이날 메달리스트는 삼성 류중일 감독(76타)이, 대상은 신페리오 방식에서 핸디캡 7을 적용받아 1언더파를 친 두산 김선우(78타)가 차지했다. 롱기스트는 넥센 김성갑 코치(310야드), 니어리스트는 KIA 선동열 감독(25cm).가평=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와 현지에서 입단 협상을 진행 중이던 정대현(33·전 SK)이 7일 조용히 귀국했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2년 간 320만 달러)이 나오는 등 입단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진 상황에서의 갑작스런 귀국이라 계약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대현은 "계약서 사인 직전 메디컬 부분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한국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 구단에서 '한국에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해 돌아왔다. 이 부분만 해결되면 계약서에 최종 사인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대현은 2009년 시즌 후 왼쪽 무릎수술을 받았는데 이 부분이 메디컬 테스트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정대현은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