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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열면 으레 만나는 ‘작가의 말’. 작가에게 이 짧은 글은 긴 시간 동고동락했던 자식 같은 원고를 떠나보내는 작별 인사이자 새로운 독자에게 건네는 반가운 인사다. 이를 통해 집필 의도를 밝히거나 창작의 고통을 토로하고, 문학적 결기를 다짐하는 일성(一聲)을 쩌렁쩌렁 울리기도 한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래전 자신이 쓴 책 100여 권의 머리말만을 모아 ‘김윤식 서문집’을 내며 ‘작가의 말’로 자신의 문학 일생을 반추하기도 했다. 출판사 편집자들의 추천을 받아 소설가의 농밀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가의 말’들을 소개한다. 최근 출간된 소설 가운데 가장 강렬한 작가의 말을 담은 작품은 최인호 씨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암 치료 중 작품을 완성한 작가는 “창작욕에 허기가 진 느낌이었고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라 두 달 동안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가톨릭으로 귀의한 이후가 자신의 ‘제2기 문학’이었다면 암 투병 이후 처음 선보인 이 작품으로 “‘제3기 문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최수철 씨는 웬만한 소설책 두 권 분량인 600쪽이 넘는 장편 ‘침대’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을 남겼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창밖에서는 계절이 열 번 넘게 바뀌었지만 침대를 소재로 정한 뒤 쓸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와 행복에 겨운 고민을 해야 했다.” 성과 연애를 농염한 색채로 그린 ‘유혹’에서 권지예 씨가 쓴 작가의 말은 도발적이다. 그는 “유행하는 말을 쓰자면 ‘나는 작가다’. 한 가지 더 붙인다면 ‘나는 영원한 처녀 작가’이고 싶다”면서 글쓰기 실험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정래 씨는 핍진한 민초들의 삶을 그린 ‘비탈진 음지’를 쓴 뒤 “굶주리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시인 릴케의 말을 인용해 사회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독자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 쉬운 문학의 특성을 고려해 작품의 핵심 주제를 짚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박범신 씨는 “번지르르한 자본주의 문명 뒤에 은밀히 장전돼 있는 폭력성의 비정한 탄환을 가차 없이 발사했다고 느낀다”고 집필 의도를 적었다. ‘7년의 밤’의 정유정 씨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는 말로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작품의 특성을 압축했다. 갓 문단에 데뷔한 젊은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겸손한’ 작가의 말을 내놓는다. 선배 소설가나 출판사,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빠지지 않는다. 전석순 씨는 ‘2011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첫 장편 ‘철수 사용 설명서’에서 “사실 나는 불량이거나 반품으로 들어온 것일 수도 있음을. 혹은 이미 고장이거나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음을”이라며 한껏 몸을 낮췄다. 이 같은 ‘작가의 말’에는 작가의 집필 의도나 창작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결정적인 마케팅 자료가 된다. 많은 작가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면서도 ‘작가의 말’을 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반면 ‘퀴르발 남작의 성’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최제훈 씨처럼 고집스럽게 작가의 말을 쓰지 않는 작가도 있다. 하일지 씨는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의 말’에서 출판사의 요청에 부득이하게 인사말을 쓰는 곤혹스러움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이런 글을 쓸 계획이 전혀 없었고 또 쓰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의 소설 작품에 이런 글을 덧붙이는 것은 마치 교향악이 끝난 뒤 지휘자가 지금까지 연주한 작품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해설을 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폭력을 말한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가정폭력, 학교에서 이뤄지는 학원폭력, 그리고 국가에 의한 폭력이다. 그 가운데 가장 처절한 것은 국가 폭력이다. 전남 여수에서 중학교를 나와 고교를 광주에서 다닌 작가는 까까머리 고교생 때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도시락을 나눠 먹던 급우를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체로 대면해야 했던 섬뜩한 기억이다. 1990년 등단한 뒤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한 민초들의 삶을 비릿한 바다 냄새 가득하게 그려왔던 작가는 민주화운동을 직접 체험했지만 이를 다룬 장편을 여태껏 낸 적이 없다가 이번에 처음 1980년 광주를 정면으로 다뤘다. “광주 얘기는 많은 작가들이 기록하고 소설로 써왔다. 그래서 ‘나는 안 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그런 작품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가 뒤늦게 광주의 기억을 풀어놓은 이유다. 작은 항구에서 중학교를 나온 ‘나’는 인근 지방 도시의 고교에 입학한다. 이 학교는 아이들이 서클을 만들어 서로 패싸움을 하고, 교사들은 각목으로 아이들을 두들겨 패는 정글 같은 곳이다. ‘나’는 힘과 깡을 기르기 위해 정권(正拳) 지르기를 연습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눈싸움 연습을 한다. 실력을 인정받아 학교 폭력서클에 들어가고, 점차 세상에 눈을 뜰 무렵 일상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태풍과도 같은 ‘국가 폭력’(5·18민주화운동)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1, 2부로 나뉜 작품은 주인공 ‘나’의 고교 생활이 펼쳐지는 전반부는 희극으로, 본격적인 시위가 이뤄지는 후반부는 비극으로 그려진다. 자취방에서 라면을 함께 끓여먹고 구형 라디오로 함께 음악을 듣던 살가웠던 친구 등이 때로는 주검으로, 때로는 열혈 시위대로 눈앞에 등장하면서 ‘나’는 혼란스럽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새 어른이 된 것을 느낀다. 사랑하던 것들을 잃어버린 공허감이 폐부 가득히 밀려오면서다. 책장을 덮으면 그 상실감이 전해져 애잔하다.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쓰디쓴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싶어진다. 글에는 광주도, 5·18이란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 서거나 군부 집권 등의 배경으로 쉽게 1980년 광주를 떠올릴 수 있다. 시외전화를 걸기 위해 전신전화국에 가고, 밥에 마가린과 간장을 넣고 비벼 먹어 한 끼를 때우고, 사창가를 다녀온 뒤 마이신 한 알을 빼놓지 않고 먹는 30여 년 전 청춘들의 모습이 그들의 추억담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문득문득 영화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가 떠올라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특히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촘촘히 채워졌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에 펼쳐진 5·18민주화운동은 폭력적 상황들에 대한 묘사에 지나치게 몰두해 헐거운 느낌을 준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결혼 전 더 많은 연애 경험을 위해, 혹은 멋진 이상형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남자들을 만나는 20대 여성들의 성(性)과 연애에 관한 얘기를 적나라하게 풀어낸 소설. 남자들은 “아 이렇구나!”라며 이마를 치게 만들고, 여자들은 “맞아, 맞아!”라면서 손뼉을 치게 만들 것 같다. 친구 사이인 여성 3명이 나누는 대화. “옷을 100만 원어치는 샀어. 백도 선물하겠다는 거 내가 다음에 사달라고 했지. 나 양심 있지 않냐?” 친구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하지마”라고 타박하자 그녀는 지지 않는다. “난 된장녀들 하고는 달라. 사달라고 한 게 아니라 우연히 구경하다가 사준 거라고.” 그렇다. 남성들이여, 백화점을 데이트 코스로 잡지 마시길.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신상품을 바라보는 여자친구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다면.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하며 100만 원을 벌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밤에는 월 600만 원 버는 키스방에 나가는 정연희, 낮에는 도서관 사서로 얌전히 일하지만 밤에는 섹스파트너 찾기에 골몰하는 박성아, 부자에 잘생긴 남자를 찾아 인생역전을 꿈꾸는 배유리. 이들은 ‘능력(성적인 것을 포함한) 있는 남자가 최고’라는 여성들의 심리를 솔직하게 까발린다. 하지만 외모도, 능력도 평균치의 언저리를 맴도는 이들에게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개 눈에 안 차는 평범남을 만나거나 눈에 띄는 남자는 변태 아니면 사기꾼으로 밝혀진다. ‘클릭 미’는 작품 속 인터넷 채팅 사이트 이름이지만 ‘나를 선택해 달라’는 여성들의 바람으로도 들린다. 연희가 만난 키스방 출입 남자들의 사연,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 얘기 등 소소한 읽을거리들도 재미있다. 목욕관리사로 “손님 털에 때가 끼어 힘들었다”며 걸쭉한 입담을 뽐내는 연희 엄마는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준다. 그러나 중반까지 별로 언급되지 않던 연희 아빠 얘기가 후반부에 급작스럽게 부각돼 부자연스럽다. 박성아와 배유리의 캐릭터가 너무 유사해 읽다 보면 혼동될 때도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장욱 시인(43·사진)이 세 번째 시집 ‘생년월일’(창비)을 냈다. 1994년 등단 이후 전위적인 시를 풀어냈던 그는 2000년대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미래파의 원조 격이다. 그의 시는 다소 난해하지만 그 어려움이 책장을 지레 닫을 만큼 부담스럽지는 않다. 생경한 언어조합이 주는 시어들을 더듬어 가다 보면 묘한 정서적 동감이 몸속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동사무소에 가자/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외로울 때는/동사무소에 가자/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떠나지 못한 곳’(‘동사무소에 가자’에서) ‘나는 어둠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코인로커 속에서 가장 슬픈 자세는 무엇인가./지금은 붉은 사과가 둥글게 웅크린 채/어둠에 몰두하고 있다./캄캄해지는 것은 사과인가./목적지인가.’(‘코인로커’에서) 사람이 서류 한 장에 죽고 사는 무감정한 동사무소에 한 마리 외로운 고양이처럼 찾아가고, 지하철 역 붐비는 코인로커의 암흑 속에서는 한 개의 사과처럼 웅크린다. 외롭고 우울한 현대인의 자화상은 때론 고양이로, 때론 사과로 치환된다. 시집은 전체적으로 전위시를 표방하지만 무척 감성적인 문구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콕 떼어낸다면 감성적인 편지의 한 귀퉁이에 딱 어울릴 만한. ‘겨울이 가고 가을이 오면/당신이 거기 없겠구나./어디선가 말 없는 소녀가 자라고 있겠구나./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아침이 지나간 뒤에/아무것도 알 수 없는 밤이 오네.’(‘돌이킬 수 없는’에서) ‘네가 없는 토요일은 너무 거대해서/너를 빼고는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다섯시에서 일곱시까지의 끌레오’에서) ‘근육질 눈송이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로 허공은 가득하다’(‘겨울의 원근법’)든가,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수많은 빗방울들에게 계급과 역할을 분배한다’(‘평균치’)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익숙한 사물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낯설게’ 세상을 바라본 시 60여 편을 묶었다. 조선대 교수, 소설가, 그리고 비평가로 활동 중인 시인은 “캄캄한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들. 고개를 든 나에게 가장 가까운 별자리가 있다. 오늘은 그것이 당신이었으면 한다”며 독자에게 손을 건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어머니는 생전에 아치울이란 이름을 사랑하셨어요. 마을 이름이 ‘박완서 마을’로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네요.”올해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씨(사진)가 살던 경기 구리시 아천동(아치울 마을)에 조성될 예정이었던 ‘박완서 문학마을’이 유족들의 뜻에 따라 중단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생전 자신의 이름을 단 행사나 사업에 ‘인색’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유족들이 구리시의 사업 계획에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올해 4월 구리시는 고인의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기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신인 고인이 1998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13년 동안 살았던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 마을을 ‘박완서 문학마을’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박 씨의 집 주변에 문학관, 문학공원, 문학비 등을 만들고 고인이 생전 작품을 구상하며 산책하던 장자호수공원∼대장간 마을∼아차산 고구려 보루를 잇는 ‘문학 둘레길’(약 4km)도 만들 예정이었다. 구리시는 ‘구리시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기념사업 전담팀도 꾸렸다. 그러나 유족들은 5월 구리시에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장녀 호원숙 씨(수필가)를 비롯한 유족들은 “어머니는 생전 지역사회를 사랑하셨고 아치울 생활을 좋아하셨다. 하지만 작가가 살고 있다고 해서 어떤 표지를 남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며 “마을 이름이나 버스 정류장에 어머니의 이름을 넣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박완서 기념관도 바라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또한 “어머니는 보통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어 하셨고, 책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어 하셨다”며 사업 만류 의사를 밝혔다. 호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학마을 조성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도 원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학교나 도서관 주최로 학생들이 고인의 집에 찾아오는 ‘교육 프로그램’에는 협조하기로 했다.구리시는 유족들의 의견을 고려해 관련 사업을 중단했지만 2009년부터 구리시 인창도서관에 운영 중인 박완서 자료실은 앞으로도 정상 운영한다. 이곳에는 ‘나목’의 초판을 비롯해 고인의 작품 177점과 친필 원고,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미국의 사진가인 저자는 1896년부터 1930년까지 북미 전역의 인디언 영토를 찾아다니며 70여 부족 인디언들의 일상을 앵글에 담았고 그 후 20권으로 이뤄진 사진집을 냈다. 이 책은 그 가운데 900여 장을 가려내 한 권으로 묶은 것.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있는 인디언들은 몸을 씻고 불을 지피고 저녁을 준비한다.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본 ‘증명사진’ 속 얼굴들은 놀랄 정도로 무표정해 오히려 인상적이다. 별도의 설명 없이 제목만 있는 사진이 많아 아쉽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68)가 40여 년 전에 냈던 중편들을 개작해 장편으로 펴냈다. 1974년 발표한 중편 ‘황토’를 5월 장편으로 바꿔 낸 데 이어 1973년에 선보인 ‘비탈진 음지’를 지난달 장편으로 냈다. 두 작품 모두 원고지 200여 장씩을 추가했다. 혈기왕성했던 30대 초반에 쓴 작품들을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새로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폭우가 쏟아지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강남의 호텔에서 작가를 만났다. “당시 ‘현대문학’ 등 문예지에 중편들을 발표했는데 제가 30대 작가여서 지면을 많이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부득이하게 중편으로 쓸 수밖에 없었지요. ‘이건 장편거리인데’ 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 와서라도 장편으로 내니 한(恨)을 푼 것 같아요. 예전의 중편에 실린 내용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저도 마음먹고 기사를 길게 쓰면 데스크가 싹둑 자른다”고 하자 조 씨는 “허허” 하고 웃었다. ‘황토’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광복, 그리고 6·25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아비가 다른 세 자식을 키운 한 여인의 지난한 삶을 그린 작품. ‘비탈진 음지’는 1970년대 무작정 상경해 칼갈이를 하며 두 자녀를 키우는 한 아비의 고된 일상을 그렸다. 독자들의 관심도 높다. ‘황토’는 2만5000여 부가 나갔고, ‘비탈진 음지’는 초판 1만 부를 찍었다. “‘황토’에서 다룬 현대사의 비극은 우리 민족의 아픈 부분이고 끝없이 반추해야 할 부분이죠. ‘비탈진 음지’에서 다룬 ‘무작정 상경 1세대’들은 현재 폐휴지를 줍는 도시 빈민들이 됐어요. 옛날 얘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을 담고 싶었습니다.” 집필할 때 컴퓨터를 쓰지 않는 그는 중편 책 여백에 깨알같이 메모를 했다. 추가할 분량이 많을 때는 별도로 원고지에 담기도 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며 “자신을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작업을 하면서 내가 안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지요. 젊었을 때처럼 뭐랄까, 머릿속에서 불이 반짝반짝하고 물이 샘솟는 것 같았어요. 또 당시 서른 정도 나이에 민족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게 기특했고, 그 정신을 40년 가까이 지탱해온 내 의지력이 대단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자화자찬 아니냐”고 하자 그는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작가는 자만에 빠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감이 있어야 예술을 할 수 있지요. 예술은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은데 작가는 자기 확신과 만족을 가져야 합니다.” “밥 때를 놓쳤다”며 삼계탕 두 그릇을 주문한 뒤 꼼꼼히 살을 발라 먹으며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갔다. 오전 7시, 낮 12시 반, 오후 6시 반 세끼 밥 때를 지키고, 하루 한 번 국민체조를 ‘정확히’ 따라하는 게 건강 비결이라고 했다. ‘흔한 성인병 하나 없다’는 그는 요즘도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집필실인 ‘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고 한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집필한 그는 ‘대하소설이 사라진 국내 문학계’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저는 분단, 식민지, 전쟁 등 쓸 얘기가 많아서 대하소설을 썼는데 요즘 작가들은 역사체험이 점점 없어지고 서구화돼 사사로운 얘기나 쓰는 것 같아요. 소설은 결국 스토리텔링인데, 그 이야기성이 약해지면 독자들이 안 읽게 됩니다.” 지난해 대기업의 전방위 로비 등 부패한 재벌 실태를 고발한 ‘허수아비춤’을 펴냈던 작가는 영토 확장 의욕을 비롯한 중국 문제를 다룬 세 권 분량의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취재차 9월부터 두 달간 중국을 다녀온 뒤 내년 상반기 1권을 낼 계획이다. “중국의 경제대국화와 영토 팽창주의는 한국에도 큰 위기로 다가올 겁니다. ‘태백산맥’ 등이 과거를, ‘허수아비춤’이 현재를 다뤘다면 새로 선보이는 소설은 우리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이지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본의 한 사립고등학교. 유능하고 밝은 성격의 젊은 남성 영어교사인 하스미 세이지는 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밝은 외양과 달리 그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자신의 행동에 방해가 되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죽이며 학교는 가장 끔찍한 살인 장소로 바뀐다. ‘검은 집’ ‘푸른 불꽃’ ‘13번째 인격’ 등 심리스릴러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팬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는 저자의 신작. 지난해 제1회 야마다 후타로상을 받았고 지난해와 올해 일본에서 미스터리 소설 최고 작품에 선정됐다. 치밀한 구성 아래 펼쳐지는 인물들 간의 심리전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수십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헷갈리는 탓에 읽기에 간혹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 흠. “학교는 도덕적인 공간이지만 그 폐쇄성 때문에 세간에서는 쉽게 통용되지 않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위험한 장소다.” 작가가 ‘학원 스릴러’를 선택한 이유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40세 전후의 남성 작가 8명이 각기 다른 상상력으로 성(性)과 관련한 단편들을 풀어냈다.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며 성을 논하는 필력들이 자유분방하다. 김도언 씨는 ‘의자야 넌 어디를 만져주면 좋으니’에서 한 양성애자 남성의 얘기를 그렸다. 남성 애인에게서는 ‘사막’을, 여성 애인에게서는 ‘밀림’을 떠올리며 만족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 못하는 양쪽에게서 버림받는다. 성적으로 ‘소수자 가운데 소수자’인 그는 결국 인간이 아닌 의자에게 성적인 구원을 받는다. 권정현 씨는 ‘풀코스’에서 각종 퇴폐 성산업에 놓인 한 가족의 얘기를 그린다. 안마방 삐끼로 일하는 남편과 폰섹스 부업을 하는 부인은 번듯한 전셋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 ‘모르겠고’를 낸 박상 씨는 “야동을 보다가 여자친구에게 걸렸는데 ‘소설 때문’이라고 해 넘어갔다”며 웃었다. 대개의 ‘성인물’이 그러하듯 막상 뚜껑을 열면 싱겁다. 음담패설에 비하면 약하고, 통상적인 소설 속 묘사보다는 수위가 높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세계적인 문호인 미국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27년 두 번째 부인 폴린 파이퍼와 결혼한 뒤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 살림을 차렸다. 뒷마당에 큰 수영장이 있는 이층집은 각종 야자수로 둘러싸여 있다. 폭음을 즐기는 헤밍웨이였지만 매일 오전 8시에는 2층 작업실 책상에 앉아 오전 내내 글을 썼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쓰기 시작한 곳도 이곳이었다. 훗날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뒤 이런 말을 남겼다. “글쓰기는, 기껏 잘해야 고독한 삶”이라고. 외부와 격리된 채 홀로 문학적 사투를 벌이는 작가의 창작공간을 소개한 책이다.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19, 20세기 미국 대표 작가 21명이 대표작을 집필했던 집을 함께 둘러보듯 찬찬히 소개한다. ‘톰 소여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이 매일 글쓰기에 앞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던 당구대, ‘모비딕’의 허먼 멜빌이 고래 등을 떠올렸다는 그레이록 산, 그리고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즐겨 찾던 산책길 등이 눈앞에 숨쉬듯 펼쳐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과지성사(대표 홍정선)가 펴내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9월 초 제400호를 맞는다. 1977년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시작으로 한 해 평균 11.8권의 시집을 내 34년 만에 시집 400호에 다다른 것. 현재 394호까지 나온 ‘문지시선’은 국내 시집 총서 가운데 최다 호수를 매번 경신하고 있다. 문지시선은 참여지향적인 창작과비평사 시선(333호까지 출간)과 함께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의 두 축을 이뤄왔다.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현실을 응시하면서도 문학의 본령을 지켜내는 시의 흐름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성복)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유하) 등 숱한 스테디셀러를 배출했다. 400호는 ‘시인의 초상’을 그려 문지시선 400호는 301∼399호 시집을 냈던 시인들의 시집 가운데 시 한 편씩을 골라 모아내는 기념시선집으로 꾸민다. 앞선 100호, 200호, 300호도 문지시선에 등장하는 시인의 앤솔러지로 꾸몄다. 이번 400호의 주제는 ‘시로 시인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취지에서 ‘시인의 초상’으로 잡았다. 300호대에 시집을 냈던 시인들이 이 주제에 맞는 자신의 시를 한 편씩 추천해 시집으로 묶을 예정이다. 이 기간 문지시선에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들도 있어 대략 80여 편의 시가 기념시집에 포함된다. 문태준 시인은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빈손이다/하루를 만지작만지작하였다’로 시작하는 시 ‘그맘때에는’을 골랐다 그는 “존재와 소멸을 노래하는 게 시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봉우리 나무 밑에 섰을 때/시야는 탁 트여 파란 하늘에/흩어지는 말을 들으려 쫑긋거리는/돌이 멀리 돛을 펼치고 있다’로 시작하는 시 ‘마이산’을 고른 채호기 시인은 “내 시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시인은 ‘400호’에서 느끼는 각별한 의미를 밝혔다. 시 ‘연못’을 고른 장석남 시인은 “문지시선을 통해 저의 첫 시집이 나왔고, 문지에 실리는 것이 저의 꿈이기도 했다”며 “400호라는 양도 대단하지만 엄밀한 문학적 수준을 견지해왔고 젊은 시인의 실험적인 작품을 꾸준히 다룬 게 더 의미있다”고 돌아봤다. 2006년 첫 시집을 문지에서 낸 하재연 시인은 “문지시선은 우리 시의 첨단(尖端)에 있었고 그들이 쌓여 역사가 됐다. 그 역사 속에 포함될 수 있어서 뜻깊었다”고 말했다. 401호는 김혜순 시인의 시집 문지시선 400호대를 여는 첫 시집은 중견 시인인 김혜순 서울예대 교수의 시집(제목 미정)으로 결정됐다. 400호 기념 시집과 함께 출간돼 이 시선집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선정 과정에서 편집부의 고민도 깊었다. 당초 문지시선 1호를 냈던 황동규 시인 등 원로 시인도 거론됐지만 중견 시인의 작품으로 정했다. 홍정선 대표는 “문지시선의 시작을 이끌었던 김현, 김병익 선생님들의 취지가 ‘문지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시작한다’였다. 그 뜻을 이어받아 문지시선은 지속적으로 젊어져야 하고 동시대의 주목받는 작가들을 끊임없이 조명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지는 6년 전 300호 출간 당시 시집 디자인과 편집 등을 획기적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전통을 지키자’는 의미에서 폰트 등 일부만 수정한 채 400호에 이르렀다. 401호부터도 표지 색깔을 바꾸는 것 외에는 변화를 주지 않기로 했다. 홍 대표는 “시에 있어서의 새로운 기법과 형식적 변화는 수용하겠지만 문지가 지켜 나가야 할 본연의 가치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진화 인턴기자 서울대 가족아동학과 3학년 }

박경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40·사진)이 위원회가 음란물 판정을 내렸던 남성 성기 사진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스스로 심의를 받게 됐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는 28일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박 위원이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을 심의할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문제의 게시물은 박 위원이 20일 올렸으며 남성 성기 사진 7장과 나체 남성의 뒷모습 사진 한 장이 포함돼 있다. ‘전체 공개’로 게시돼 누구나 접속해 볼 수 있는 상태다.박 위원이 게시한 사진들은 한 누리꾼의 미니홈피를 캡처한 것으로 14일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음란물 판정’을 받고 삭제 조치됐다. 당시 전체회의에선 위원 9명 가운데 8명이 음란물 판정에 동의했고 박 위원만 반대 의견을 냈다. 박 위원은 블로그에서 “사진들은 자기표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고 사회질서를 해한다거나 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처벌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박 위원이 28일 소위원회가 열리기 전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하면 심의가 취소되지만 위원회 설치법에 따라 면직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파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박 위원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4일 위원회의 음란물 판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제의 게시물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박 위원은 2009년 3∼6월 창조한국당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 위원으로 활동했으나 활동 종료 직전 한국계 미국인임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당시 그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5세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1999년 한국의 한 대학에서 오라고 했는데 미국 국적이 없으면 병역 문제가 생기더라”며 병역 기피를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음을 밝혔다. 이 같은 논란이 있었는데도 그는 올해 4월 민주당 추천을 받아 방송통신심의위원이 됐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활자로 된 책이 영상이라는 날개를 달았다. 최근 신간서적의 주요 장면과 줄거리를 담은 홍보영상인 ‘북 트레일러’ 제작이 이어지면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주고 있다. 북 트레일러는 영화 예고편을 뜻하는 ‘필름 트레일러’에서 따온 말. 2, 3년 전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이 인기를 끌자 출판사들이 저자의 인터뷰나 사진에 책 내용을 입혀 편집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국내에서 북 트레일러 제작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단편 영화감독이 참여해 별도로 촬영하거나 만화가들이 삽화를 입히는 방법으로 발전했으며 인터넷뿐만 아니라 옥외광고에까지 진출했다. 출판사들의 경쟁이 이어지면서 제작비도 50만∼100만 원 수준에서 500만 원 선까지 올랐다. 올 4월 출간된 소설가 정유정 씨의 ‘7년의 밤’(은행나무) 트레일러는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킨다. 단편 영화감독이 직접 촬영에 나선 이 영상은 음침한 저수지를 배경으로 전문연기자들이 책의 주요 장면을 연기했다. 이 트레일러는 유튜브 조회 건수가 7000건을 넘을 정도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출판사는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 계산대 등에 비치된 광고 화면에 두 달간 영상을 노출시켰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애니메이션도 등장했다. 지난달 말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 씨의 ‘생명의 한 형태’(문학세계사) 트레일러는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필체와 닮은, 파스텔화 같은 3분 20초짜리 영상이다. 만화가 변병준 씨가 100여 컷의 그림을 그렸고 가수 호란 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북 트레일러는 영상에 익숙한 젊은층에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고, 한번 제작된 영상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TV와 옥외광고판 등에 다양하게 노출될 수 있어 특히 출판사의 주목을 받고 있다. ‘7년의 밤’을 펴낸 은행나무 이진희 주간은 “인터넷서점마다 동영상을 올릴 수 있고 책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휴대전화로 영상을 볼 수 있어 책의 영상화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면서 “최근 출간한 강희진 씨의 ‘유령’을 영화처럼 제작하는 등 투자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생명의 한 형태’의 문학세계사 김요안 실장은 “홍보영상이기는 하지만 별도의 작품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으며 책을 읽은 독자들이 소설의 내용을 만화로 풀어낸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 트레일러가 책의 판매 부수에 실제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정밀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자음과모음 황여정 편집장은 “제작이 늘고 제작비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판매에 큰 효과를 기대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4세에 그래미상을 휩쓸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23일 만 스물일곱 나이에 숨졌다. 이로써 그녀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록밴드 ‘도어스’의 리더 짐 모리슨, 여성 로커 재니스 조플린 등 만 27세에 요절한 대중음악인을 뜻하는 ‘27세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AFP를 포함한 외신은 와인하우스가 이날 오후 런던 북부 캠던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사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런던 경찰청을 인용해 보도했다. AFP는 “와인하우스가 약물 남용으로 숨졌다는 주장도 있으며 이날 오전 고인의 집에서 비명소리가 났다는 이웃들의 전언도 있다”고 보도했다. 와인하우스는 스무 살 때인 2003년 데뷔앨범 ‘프랭크(Frank)’로 명성을 얻었다. 2006년 발매한 앨범 ‘백 투 블랙(Back to Black)’은 이듬해 모국에서 1년간 500만 장이 팔렸다. 2008년 미국 그래미상 ‘올해의 레코드상’ ‘신인상’ 등 5개 부문을 휩쓸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비자 문제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펼쳤고, 이 영상이 위성으로 생중계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와인하우스는 낭만적인 1960년대 솔과 모던한 힙합을 결합한 개성 있는 음악을 추구해 왔다. 청소년기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그는 데뷔 후 짙은 눈화장과 파격적인 의상, 문신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수년간 약물 중독과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려 왔으며 최근 런던에 있는 재활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18일에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유럽투어를 시작했으나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공연장에 나타났고, 비틀거리며 무대에 올라 공연 도중 마이크를 떨어뜨리고 가사를 잊어버려 2만여 관객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2007년 동갑인 블레이크 필더시빌과 결혼했지만 필더시빌은 가정폭력으로 징역형을 살았고, 2009년 와인하우스의 외도로 법정 다툼을 하다 이혼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고종의 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1912∼1989·사진)가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인 경성 히노데(日出) 소학교 재학 시절 일본어로 쓴 동시 4편이 발견됐다. 일본 NHK PD 출신 지한파 작가인 다고 기치로 씨는 월간 ‘문학사상’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덕혜옹주가 열 살 남짓 때 쓴 ‘벌’ ‘비’ ‘전단’ ‘쥐’ 등 동시 4편을 소개하고 해설을 곁들였다. ‘미야기 미치오 작품전서’ 등의 문헌에서 이들 동시를 찾아낸 다고 씨는 “덕혜옹주는 이국의 언어를 빌려 망국의 슬픔을 노래하려 했다”고 기고문에서 밝혔다. 시 ‘벌’에 대해선 “(이 시에서) 말할 것도 없이 칼을 차고 뽐내는 것은 일본 군인”이라며 “담담한 태도 속에서 결코 슬픔에 잠겨 있지 않고, 그 배경에는 깜짝 놀랄 만한 엄정함이 서려 있다”고 설명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울 신촌의 부대찌개 집.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 대기업에 다니는 졸업생들과 그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박박 기고’ 있는 후배들이 모였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였다. “요즘 학생들 패기가 없어 걱정이다. 세세한 스펙 따위에 목숨 걸지 말고 큰 꿈을 가져봐.” H그룹 인사부에 있는 한 졸업생이 타박하자 주인공 ‘나’는 발끈한다. “왜 청년들한테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나.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나이 상관없이 다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외의 반격에 당황한 졸업생이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고 내뱉자 ‘나’는 조롱한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청년 세대들의 외침을 그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이들을 ‘표백(漂白)세대’라고 정의한다.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임무다. 사회를 바꿀 만한 리더가 되기는커녕 밥벌이 자리를 찾기에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고용 없는 성장 사회’의 희생양들이다. 이들은 하소연한다.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정치의 상당 부문을 담당했고, 199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대중문화의 중심이었지. 지금 우리는 작은 유행 하나 만들지 못해.” 그렇다. 작품은 취업난 문제를 제기한 ‘88만 원 세대’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 ‘표백세대’는 빵(취업)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꿈이고, 그것을 펼칠 공간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완벽하게 하얗게 칠해진(계층 구조가 공고해진) 사회에서 한 젊은이가 하얀 덧칠을 한다고 해도 표가 안 나는 게 ‘표백사회’다. 이들은 붉은 선을 긋기로 한다. 표백사회를 거부하는 인터넷 예고 자살이 그것이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뚜렷한 주제를 잡고 달려 나간 작품”이라고 말했다. 기자답게 미문보다는 사실관계 위주로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구사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의 탈출구 없는 눅진한 현실을 각종 팩트들을 종합해 전달한 점이 매력이다. ‘와이두유리브닷컴’이라는 자살사이트 글과 현실을 오가며 호기심과 긴장감을 높이는 구성도 신인답지 않게 촘촘하다. 그러나 배경이 된 대학을 ‘서열 상위 10개 가운데 후반’이라고 밝혔음에도 실제 작품 속에 그려지는 캠퍼스에서는 신촌에 있는 ‘상위 3개 이내 대학’이 쉽게 떠올라 혼동을 주며, ‘나’의 통장이 갑자기 없어져 고생하게 된다는 부분 등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청년들이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이 가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야’라는 식으로 이들을 설득하는 ‘나’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비논리적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240여 편의 경쟁작을 제치고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화염병’을 들었으나 투척할 곳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시대 텅 빈 청춘의 초상”(박범신 소설가),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뛰어난 작품”(박성원 소설가)이라는 평을 받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윤고은 씨(31·사진)가 이효석문학선양회가 주관하는 제12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자로 22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단편 ‘해마, 날다’이며 상금은 2000만 원. 시상식은 9월 10일 오후 6시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제 행사장에서 열린다.}

절대 악(惡)의 집안에서 자라난 후미히로. 그는 군수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그룹에서 계획에 의해 악을 행할 인물로 태어나지만 그 운명을 거부한다. 너무도 사랑하는 여성 ‘가오리’를 만났기 때문. 그는 가오리를 범하려는 아버지를 죽인다. 가오리는 후미히로의 얼굴에서 자신을 성추행했던 그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한다. 결국 후미히로는 가오리를 떠나지만 내내 잊지 못한다. ‘흙 속의 아이’(아쿠타가와상) ‘차광’(노마문예상) ‘쓰리’(오에겐자부로상) 등을 선보이며 일본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가는 이번에도 그동안 천착해온 ‘악’을 다시 얘기한다. 후미히로의 둘째 형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수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현재의 악’이다. “전쟁은 비즈니스야. 어떤 전쟁이든 이권이 개입돼 있어”라고 말하는 둘째 형은 몇 년 뒤 일본의 전쟁 위기를 일으켜 군수사업의 호황을 불러올 계획을 짠다. 후미히로는 다시 둘째 형과 맞선다. 악과의 싸움을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치열한 탐색전이나 복수극은 이야기의 곁가지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번다는 군수산업의 메커니즘은 이미 ‘상식’인 데다 아버지나 둘째 형이 냉정하게 보면 비정상적인 인물에 가까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되레 작품은 순애보적인 연애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유년 때 만난 후미히로와 가오리는 뜻하지 않게 이별하지만, 후미히로는 그녀의 뒤를 내내 보살피며 안위를 걱정한다. 특히 얼굴을 바꿔 전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후미히로가 호스티스 일을 하는 가오리를 찾아가 뒤늦게 상봉하는 장면은 가슴 찡하다. “순수 문학을 지향하지만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다수의 탐정, 사회전복세력인 ‘JL’ 멤버들, 그리고 형사까지 등장시킨다. 탐색과 추격전은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복잡한 점이 흠. 갑자기 모두 행복해지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해피엔딩도 인상적인 여운을 남기기에는 부족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른바 ‘희망버스’를 기획한 시인 송경동 씨(44·사진)에 대해 검경이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19일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송 씨는 어떤 인물이며 왜 시인으로서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는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송 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구로노동자문학회, 전국노동자문학연대 등에서 일하며 20년 넘게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린 시위에 참여해 왔다. 그는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평택 대추리 사태, 용산 참사, 기륭전자와 콜트·콜텍 등 노동분쟁 현장 등에 참여해 노동시를 썼다. 지난해 출간된 용산 참사 문제를 다룬 책 ‘여기 사람이 있다’를 기획했고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꿈의 공장을 찾아서’ ‘너희는 고립되었다’ 등의 노동시를 발표해 왔다.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엔 2003년 ‘꿀잠’(삶이보는창), 2009년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등 2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제12회 천상병 시문학상을, 올해 제6회 김진균상을 수상했다. 송 씨는 인터넷 매체인 ‘참세상’과의 12일자 인터뷰에서 “중학교 때 숙제로 시를 써갔는데 선생님이 칭찬해주셔서 시를 좋아하게 됐다”며 “나중에 현장 생활하고 소년원에도 갔다 오고 이후에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희망버스’를 제안한 이유에 대해서는 “김진숙 선배는 그 크레인 위에서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든 연대해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9년 송 씨의 시집을 낸 창비의 박신규 문학팀장은 “송 시인은 오랜 기간 현장에서 시를 써와 등단 이전부터 문단에 알려져 있었고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기도 했다. 1980, 90년대 노동시는 거칠고 과격한 반면에 그의 시는 역동성 있고 완성도가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단 일부에서는 송 시인의 현실 참여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노동운동가가 직업이고 시인은 부업이라는 시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지법 민사19단독 김도균 판사는 19일 송 씨에 대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청구된 체포영장을 기각했다고 21일 밝혔다. 김 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피의자의 변호인과 수사기관이 수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없어 보인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경은 조만간 송 씨의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가 중국, 일본, 대만, 이탈리아 등 4개국에 수출된다. 지난해 12월 국내 출간 이후 현재까지 90여만 부가 판매된 데 이어 이제 세계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이다. 쌤앤파커스는 19일 “3월 중국 광시(廣西)과학기술출판사(선인세 3만 달러), 4월 대만 위안선(圓神)출판사(선인세 1만2000달러), 5월 일본 디스커버21(선인세 1만 달러)과 출간 계약을 마친 데 이어 최근 이탈리아 몬다도리와 선인세 1만5000유로에 계약했다”며 “이르면 연말부터 해외 출간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통 국내 작가의 선인세가 3000∼5000달러 선에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1만 달러가 넘는 선인세를 통해 해외 출판사들이 이 책에 거는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영미권과 다른 유럽 국가와도 출간 계약을 추진 중이다. 신경숙 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데 이어 국내 문학의 수출 장르가 에세이로까지 다양화되고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해외 출판사들은 오늘날 세계 젊은이들의 불안감과 고통은 동일하며 이 책이 자국의 젊은이들에게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다며 출간 계약을 한 배경을 밝혔다. 중국 광시과학기술출판사 측은 “저자는 지성의 언어로 청춘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깨달음을 일깨워줬다”며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를 만나더라도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전하고 있고 이는 요즘 목표를 잃고 갈팡질팡하는 중국의 대학생들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일본 디스커버21 측은 “한국 대학생들이 오랜 취업난 속에서 안정을 지향하는 마음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취업난과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일본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라며 “현재 양국 대학생은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 책이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과 진로 등을 고민하는 청춘들에 대한 짧은 조언 글 42편으로 구성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출간 반년을 넘긴 최근에도 매주 2만5000∼3만 부가 판매되고 있으며 다음 달 100만 부 돌파가 예상된다. 김난도 교수는 “해외 출판사들이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한 것은 그만큼 책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라며 “한국 젊은이들이 내용에 공감했듯이 이 책이 외국 젊은이들에게도 공감과 함께 힘과 위로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