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0주기… 잊혀져 가는 작가 주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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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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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손님…’ 에 가려 문단 손님으로 평가절하

《 올해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1902∼1972)의 40주기다. 8세 아래 후배 문인이던 피천득은 고인이 사망한 지 이틀 뒤인 1972년 11월 16일 동아일보에 추모글을 실었다. “당신의 잘 알려진 작품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어느 부분은 나와 우리 엄마의 에피소드였습니다. 형이 상해 학생시절에 쓴 ‘개밥’ ‘인력거꾼’ 같은 작품은 당신의 인도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형은 정에 치우친 작가입니다. 수필 ‘미운 간호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형은 몰인정을 가장 미워합니다.” 》
올해 40주기를 맞는 소설가 주요섭은 일제강점기에 사회 비판적 소설을 다수 남겼지만 대표작 ‘사랑손님과 어머니’ 때문에 연애소설가로 잘못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DB
올해 40주기를 맞는 소설가 주요섭은 일제강점기에 사회 비판적 소설을 다수 남겼지만 대표작 ‘사랑손님과 어머니’ 때문에 연애소설가로 잘못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DB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하던 주요섭은 1920년대 중반 피천득이 찾아오자 중국음식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며 각별히 아꼈다. 귀국한 뒤에는 몇 년간 하숙집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피천득은 친형 같던 주요섭이 사망하자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여섯 살 ‘옥희’와 ‘어머니’의 실제 모델이 본인과 어머니였다고 밝힌 것이다.

40주기를 맞은 올해 주요섭을 기리는 출간이나 문학 행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고인의 작품도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년) ‘아네모네 마담’(1936년) 정도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집 형태로 간간이 출간됐을 뿐이다. 고인은 세 편의 장편을 남겼는데 ‘구름을 잡으려고’가 고인의 사후 28년 뒤인 2000년에야 단행본으로 나왔다. ‘자유문학’에 연재했던 ‘1억5천만 대 1’ ‘망국노군상(亡國奴群像)’은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40여 편의 소설을 남긴 고인이지만 전집이 출간된 적은 없다.

“주요섭은 생시에나 사후에나 문단의 외곽지대에 있었다. 문제성을 지닌 작가가 아닌, 소녀 화자의 연애소설을 쓴 작가로 간주되어 평가 절하되거나 무시돼 왔다.” 조명 받지 못했던 주요섭의 작품 5편을 묶어 2008년 ‘주요섭 작품집’(지식을만드는지식)을 펴낸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흔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이렇게 대표작 이름조차 혼동되고 있는 작가가 주요섭이다”며 안타까워했다.

1902년 평양에서 태어난 주요섭은 1918년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중 형 주요한이 있는 도쿄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에 편입했다. 이듬해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해 김동인과 함께 지하신문을 만들다 일제에 검거돼 10개월간 복역했다. 일제에 항거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은 그가 중국 푸런(輔仁)대 교수로 재직할 때 동아일보 1938년 5월 17∼25일자에 연재했던 단편 ‘의학박사’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양심적인 의사였던 채동일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양심과 도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기주의자로 변하는 모습을 꼬집은 고발 소설로, 당시 국내 지식인의 변절을 비판한 작품이다.

이 교수는 작품이 게재된 1938년에 주목했다. 그해는 한국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억압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1월 지원병제도가 실시됐고, 4월부터는 학교에서 조선어교육이 금지됐다. 5월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했을 당시 베이징에 있었던 주요섭은 일제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베이징 일본영사관 내 유치장에 투옥돼 여러 날 조사를 받았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주요섭에게 동아일보는 소설 연재를 의뢰했고, 주요섭은 사회적 비판이 강한 작품을 써 보냈다. 일제의 검열이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이 신문에 게재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

주요섭은 1920년대 상하이 유학 시절을 바탕으로 현지 하층민의 삶을 조명한 ‘인력거꾼’ ‘살인’ ‘첫사랑값’ 등을 선보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29년 돌아온 뒤에는 미국 이민 1세대들의 삶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구름을 잡으려고’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가려서 주요섭의 다른 작품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데 고인이 유학생활을 오래 하느라 문단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며 “한국 근현대문학의 주요 작가들 가운데 가장 잘못 이해되고 저평가된 대표적인 작가가 주요섭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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