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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격화된 북한 권력자들의 얼굴북한 미용업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번 주 제가 본 것은 ‘검은 머리’입니다. 9차 당대회 직후 공개된 간부들의 칼라 증명사진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사진에서, 머리색은 거의 예외 없이 검정으로 정렬돼 있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규격화된 권력의 얼굴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이번 주 가장 큰 뉴스 중 하나는 북한이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키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동족관계로 얽히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발언이었습니다. 2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 21일 9차 당 대회 보고에서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고착시키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을 전격적으로 취했다”고 말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백두산 천지 앞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손을 들어 카메라를 향해 웃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념사진을 생각하면 대체 어떤 심리 변화인지 의아한 독자들도 많으실 겁니다. 아무튼 북한은 이번 주 9차 당 대회를 마치고 기념 열병식까지 치뤘습니다. 아버지 김정은과 함께 주석단에 올라가 도로 위에서 경례를 하는 군인들을 향해 박수를 치는 김주애의 가죽 점퍼 모습도 시선을 끌었지만 새롭게 등장한 지도부들의 모습도 아마 북한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뉴스였을 것입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2026년 2월 24일 “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2월 23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하면서 간부들의 칼라 증명사진을 신문에 실었습니다. 국기를 배경으로 스튜디오 조명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입니다. 이틀 후인 26일에는 김일성 김정일 묘역에 가서 새로운 지도부를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선대의 묘역, 즉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하는 것은 새 판이 열렸다는 신호를 보내는 의식입니다. 북한 내부의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참석자들의 얼굴을 먼저 훑어보았을 겁니다. 증명사진들과 참배사진을 보면 또 하나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색이 거의 예외 없이 검정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염색이 일상화된 만큼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 또는 사회적 활동이 많은 사람들이 흰머리를 드러내는 것이 한국에서도 일종의 금기에 가깝듯, 북한도 지도부의 얼굴은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최룡해의 퇴장이번 9차 당대회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읽힌 변화는, ‘공식 의전서열 2위’로 불리던 최룡해가 당 중앙위원 명단에서 빠졌다는 보도였습니다. 중앙위원은 물론 후보위원 명단에도 이름이 없었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당연직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해온 자리인 만큼 ‘상임위원장에서도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곧바로 나왔습니다. 최룡해와 함께 리수용, 리병철 등 원로급 인사들이 줄줄이 빠진 점도 세대교체 신호로 해석됐습니다.저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그를 실제로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세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갑자기 인천공항에 내려온다는 소식에 하루 종일 바빴던 날이었습니다. 그때 최룡해는 ‘상당히 액티브’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식당에 들어가고 나올 때도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도드라졌습니다. 최룡해는 ‘혁명 2세대’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버지 최현은 최근 북한은 5000t급 신형 구축함의 이름을 ‘최현호’로 명명할 정도로 북한 역사에서 상징적 인물 중 하나입니다. 혁명 1세대의 아들이라는 출신의 후광, 김정일·김정은 정권을 거치며 이어진 요직 경력, 그리고 늘 권력 가까이에 서 있던 오래된 습관이 사진에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2015년 한때 지방 농장으로 추방돼 고된 노동을 하는 혁명화 조치를 받기도 했지만, 당내 실권을 가진 조직지도부장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최룡해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자격으로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은 노무현 대통령을 현장에서 영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1950년생, 우리 나이로 76세의 최룡해는 더 이상 북한 체제를 대표하는 얼굴이 아니게 된 것 같습니다. ● 새로운 권력자들이 만들어 갈 한반도의 미래는?1984년생(추정)의 김정은, 2013년생(추정)의 김주애가 권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교체는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이제 그가 북한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검은 머리는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될테니 그의 머리 염색 주기도 늘어날 것입니다. 3세대 권력에 이어 김주애라는 ‘4세대’까지 권력 이양의 준비가 진행되는 듯한 북한의 변화는, 한반도의 미래를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변수입니다. 앞으로 남북관계와 우리의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 백년사진은 새 얼굴의 등장이 아니라 퇴장하는 최룡해의 사진을 골랐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추운 계절을 버티라고 화분을 빨간 헝겊으로 감싸 두었네요. 길가에 놓인 작은 꽃다발 같습니다. 봄에 더 푸르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붉은 담벼락 위, 밖을 향해 세워진 농구대 하나. 코트도, 3점 라인도 따로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의 슛 한 방을 기다립니다. ―서울 중구 남산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26년 2월 20일 아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심판 결과를 보도한 신문 1면의 ‘주요 사진’은 서울중앙지법이 생중계한 영상을 ‘캡처’해 만든 이미지였습니다. 사진이 카메라가 아니라 모니터에서 태어난 셈입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역사적 재판에서 제대로 된 사진이 왜 없었는지 누구의 허락이 필요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1996년 내란 재판과 2026년 내란 재판 사진의 질감차이30년 전 촬영된 이 사진은 한국 현대사에서 ‘단죄 받은 권력’이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얼굴로 남았는지 보여줍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손을 맞잡은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서 왼쪽 노태우 대통령은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겨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말보다 오래 남는 기록이 되었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점은 ‘사진’으로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1심 법정 모습을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시청하던 시각, 신문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난감했습니다. 화면은 넘쳤는데 정작 지면에 올릴 ‘사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이날 언론사 사진기자와 영상기자의 법정 촬영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자체 영상 장비로 현장을 생중계 했고, 신문사는 몇 순간을 스크린 캡쳐해 지면에 실어야 했습니다.각 신문 1면과 종합면에 실린 사진 아래에 붙은 한 줄의 출처 표기 “서울중앙지법 제공 영상 캡쳐”는 단순한 사실 고지가 아니라, 오늘 사법과 언론의 관계를 보여주는 문장처럼 읽힙니다.● “불법”이 아니라 “허가”의 문제법정 촬영은 ‘원칙적으로 금지’라기보다, ‘재판장의 허가 없이는 금지’라는 형태로 설계돼 있습니다.법원조직법 제59조는 법정 안에서 재판장의 허가 없이 녹화·촬영·중계방송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합니다. 동시에 대법원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은 피고인 동의가 있으면 허가할 수 있고, 동의가 없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허가할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작년도 재판 과정이 사진으로 남겨진 것도 재판장이 허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형사 사건의 재판 과정 촬영은 “법의 잣대로는 불법”이라기보다, “허가를 받지 못하면 불가능하다”입니다. 그리고 그 ‘허가’는 법이 아니라,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 사진은 의례(ritual)다사진은 때때로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일종의 ‘의례(ritual)’입니다. 권력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에서, 사진은 그 의례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도장입니다. 반대로 권력이 끝나고 단죄되는 순간을 완성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이 내려진 그날은 사진이 빠졌습니다. 영상이 있는데 왜 사진이 필요하냐고 생각하실수도 있습니다.영상은 흐르고 사진은 정지됩니다. 그건 모니터에서도 그렇지만 기억 속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 지면 뿐만 아니라 인터넷 매체에서도 한 프레임을 캡쳐해서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그날 각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칼무리’ 같은 캡쳐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동영상을 순간적으로 연속해서 캡쳐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의 논조에 맞춰 ‘심각하거나’ ‘허탈하게 웃거나’하는 전 대통령의 모습을 선택해서 지면에 실었습니다. 그러나 클로즈업을 하지 않은 영상에서 클로즈업된 캡쳐를 뽑아내다보니 인물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입니다. 신문 속 사진 한 장은 다음 날에도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습니다.그래서 내란 사건처럼 “역사적 특수성”이 큰 재판에서 해상도 높은 사진은 꼭 필요했습니다.● 법원 입장의 ‘이득’법원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엄숙한 상황에서 최대한 노이즈 없는 화면을 만들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법정은 갈등의 현장이고, 언론의 존재만으로 과장된 연출이나 오버액션이 발생할 위험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배제된 진행은 법원에겐 분명 다음과 같은 이득이 있습니다.- 통제된 프레임: 법원이 설치한 영상 장비가 잡는 화면은 ‘정해진 구도’입니다.- 책임 분산: “촬영은 허용하지 않았지만 공개는 했다”는 형태로 비난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현장 소란 최소화: 취재진의 부산한 움직임, 장비 반입 문제, 돌발 상황에 대한 부담을 줄입니다.● 법원 입장의 ‘손해’ ‘편집된 쇼츠’가 재판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론장에서 제기돼온 것도 사실입니다. 법원이 이런 위험을 과대평가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손해도 있습니다. 공개했는데도 흐리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왜 이렇게밖에 못 보게 하지?” “애매한데” 이 질문은 곧바로 법원의 의도에 대한 의심으로 번집니다. 선고 다음날,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나왔다며 재판부를 향해 “철딱서니 없는 판결”, “세상 모르는 법원” 같은 거친 표현이 공적 공간에서 등장하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법원이 촬영과 공개 방식을 두고 더 보수적으로 판단할 유인이 커집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록의 선명도와 절차의 합리성을 높이는 것은 더 중요해집니다. 정치권의 공격으로부터 사법부를 지켜줄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법원의 소극성 또는 소탐이 앞으로의 여론전에서 불리한 나비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입니다. ● 당사자의 이득과 손해화면 속 당사자에게도 득실이 갈립니다. 당사자인 전직 대통령과 장관들은 고해상도 사진이 남기는 ‘굴욕의 디테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땀, 눈의 충혈, 미세한 떨림 같은 것들 말입니다.하지만 선명한 사진보다 흐린 캡쳐가 더 잔인한 조롱으로 번질 때가 있습니다. 고해상도 사진은 잔인하지만 정직하고, 저해상도 캡쳐는 덜 잔인해 보이지만 더 많은 상상을 부릅니다.게다가 국민 세금으로 제작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한 영상은 쉽게 가공됩니다. 언론사들의 공동취재로 만들어진 영상과 사진은 그나마 저작권과 책임이 정부 제공 영상보다는 분명합니다. ● “역사의 기록”을 말하면서, 기록을 줄이는 아이러니이 날 판사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17세기 영국 국왕 찰스 1세를 언급했습니다. 자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던 하원의원 5명을 체포하겠다며 약 400명의 무장 병력을 이끌고 직접 하원 의사당에 들어갔고 결국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영국 국왕의 내란죄 단죄 사례까지 언급했다면, 그 메시지는 분명 “역사의 기록”을 향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을 말하면서 기록의 핵심 도구인 사진을 최소화하는 장면을 마주하면 그 자체가 이율배반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공개’는 했지만, ‘신뢰’는 남지 않는다“서울중앙지법 제공 영상 캡쳐”라는 한 줄은 단순한 출처 표기가 아닙니다. 역사의 한 장면이 언론의 현장 취재가 아니라, 법원이 제공한 화면을 통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개는 이루어졌지만, 기록의 품질과 방식이 제한되었다는 흔적이 남았습니다.이번 선고를 앞두고 한국사진기자협회는 공보관을 통해 “영상 캡처와 사진의 기록 가치는 비교 불가하다. 이번은 단순 재판이 아닌 ‘내란 사건’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사진기자 3명의 취재인원이 문제라면 ‘사진기자 1인 극소수 풀’만이라도 허용해 달라”고 법원 당국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는 특혜 요구가 아니라, 훗날 역사가 될 장면을 어떤 질감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결국 핵심은 단순합니다. 법정은 엄숙해야 하고, 동시에 기록돼야 합니다. 두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기준도 분명합니다. 역사적 사건일수록 기록은 선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진이 있어야만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이 없으면 기억은 더 쉽게 흔들리고 해석은 더 쉽게 갈라집니다.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법원이 제공한 화면 캡쳐가 현실적인 공개였다고 느끼셨습니까, 아니면 기록의 축소로 보셨습니까.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 주세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여러 길을 달렸던 타이어가 이제는 낡은 한옥 지붕 위에 놓였습니다. 땅을 떠나 바람을 막아내는 또 다른 삶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새해 건강 계획, 잘 지키고 계신가요. 거꾸로 서 균형을 잡는 여인의 그림이 시선을 붙듭니다. 작심삼일로 그쳤던 운동을 다시 시작해 볼까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늘어나는 김정은의 레드카펫 행사실내 말고 하늘이 보이는 실외에 레드카펫이 깔리면 뭔가 특별한 행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제가 열릴 때 볼 수 있고, 청와대에 외국 정상들이 오면 환영 행사를 위해 레드카펫이 깔립니다. 그러면 우리 대통령과 외국 손님이 그 길을 따라 잠깐 걷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2025년 중국은 천안문 망루 뒤에 레드카펫을 깔고 그 위를 각국 정상들이 걷도록 했습니다. 북한에도 야외 레드카펫 행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야외에 레드카펫이 깔리는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던 ‘빈도’입니다. 김정은이 레드카펫 위를 걷는 장면은 단순한 의전 사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북한의 이미지 정치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아마 전 세계 모든 권력자들이 꿈꾸겠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차마 하지 못하는 이벤트를 북한은 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욕망이 어떻게 의전행사를 쇼로 만드는지 김정은의 사진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레드카펫은 정치적 메시지레드카펫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낯선 소품이 아닙니다. 실제로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권력의 장치였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외국 정상을 환영하거나 공산당 행사를 치를 때 레드카펫을 의전 또는 정치적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 활용해왔습니다. 과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 당시 레드카펫을 받지 못해 ‘의전 홀대’ 논란이 일었던 일도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도 레드카펫은 권력의 위엄을 강조하는 장면으로 등장했습니다.북한에서도 레드카펫 위를 최고 지도자가 걷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레드카펫은 존재했습니다. 열병식이나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국가 행사에서 카펫은 자연스럽게 깔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 사진에서 레드카펫은 어디까지나 배경이었습니다. 화면의 중심은 외국에서 온 손님이거나 국가적으로 아주 특별히 대우해야 할 사람입니다. 김정은 시대의 레드카펫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차이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쓰임에 있습니다.● 레드카펫 위를 걷는 김정은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레드카펫은 그의 등장 장면과 함께 반복되어 왔습니다. 2019년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뚜렷한 성과 없이 마무리됐지만, 새벽에 평양역에서는 레드카펫이 깔린 환영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대외적 평가와 무관하게 내부 이미지에서는 권력의 위상이 강조되었습니다. 2025년 이후 점점 규모가 커진 김정은 행사에서 이제 레드카펫은 거의 기본 장치처럼 자리 잡아가는 모습입니다.지난 2월 8일 북한 건군절 78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한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정은은 군의 ‘특출한 역할’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고 노동신문은 다음 날 1~3면에 걸쳐 이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발언의 내용은 군을 격려하고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중심은 군이 아니라 김정은이었습니다.레드카펫 위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장면에서 김정은은 좌우의 병사들 사이로 걷고 있습니다. 주변은 정리되었고 화면의 한 가운데를 주인공이 걷고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 레드카펫의 특수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외국 정상이 함께 있는 장면도 아니고, 김정은이 손님으로 환영받는 형식입니다. 그를 위해 레드카펫이 깔리고 그 가운데를 걷는 모습을 여러 대의 카메라가 집중적으로 담습니다. ● 헐리우드 스타처럼 캣워크하는 김주애붉은 카펫, 중앙의 인물, 양옆의 시선, 집중된 촬영. 이 장면은 미국 헐리우드나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권력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배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이 북한에 살지 않는 우리의 눈에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북한은 집단을 강조하는 사회였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신문과 방송에는 집단의 이미지가 반복됩니다. 다만 김정은 시대 집단의 역할은 변하고 있습니다. 점점 개인을 부각시키는 배경으로 기능합니다. 영화 시사회장의 팬들이나 골프장의 갤러리처럼 주인공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레드카펫이 김주애의 등장 장면에서도 함께 사용된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중국 열병식 참석을 위해 갔을 때 열차에서 내리면서 중국에서 마련한 레드카펫에 섰덨 경험 이외에, 김주애가 북한 레드카펫 위에서 ‘캣워크’를 경험한 것이 이미 10여회 남짓 됩니다.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으로 김주애의 나이와 이름을 모릅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에 따르면 김주애는 2013년 1월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설을 쇠고 나면 한국 나이로 14세 쯤 됩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레드카펫 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화면은 김주애 본인도, 김주애를 바라보는 북한 내부의 시청자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김정은의 권위를 강조하던 장치가 이제는 ‘다음 세대로의 권력 전달’을 암시하고 있는 셈입니다.중국의 시진핑도, 러시아의 푸틴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이미지 정치의 궁극을 북한 김정은은 펼치고 즐기고 있습니다. 북한 사진을 다시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레드카펫 위 김정일과 김정은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댓글로 의견을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설 연휴를 앞둔 13일 서울 중구 중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쪽방촌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 장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정희용 사무총장.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영차영차. 귀여운 캐릭터들이 손에 손을 잡고 벽을 오르고 있네요. 친구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결국은 모두가 무사히 오를 겁니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바라보는 세대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세대 간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AI를 탑재한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 정신·육체 노동 현장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기존의 일자리 진입 경로와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이 불안과 불만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최근 Z세대의 반응을 설명하는 용어로 ‘젠지 스테어(Gen Z stare)’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기성세대의 질문이나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하지 않고, 무표정한 응시로 반응을 최소화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이 표현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했던 기성 세대여기서 하나의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과거처럼 피켓과 구호를 통해 불만과 세력을 가시화하던 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의 감정이 약해졌다는 인식입니다.한국의 기성 세대는 사회적 불의와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집단적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3~40년간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장면은 대규모 집회, 정렬된 대오, 그리고 운율감 있는 여덟 글자 구호였습니다.그러나 최근 미국과 한국의 시위를 함께 놓고 보면, 젊은 세대의 감정이 옅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온 방식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눈에 띄는 구호와 집단 장면만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다른 형태의 긴장과 불만은 쉽게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미국의 손글씨 피켓 — 각자가 준비해 온 문장들지난 달 24일 미니애폴리스에선 미국 시민권자인 37세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가 미국 이민국(ICE) 대원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같은 달 7일 같은 곳에서 37세 미국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총격으로 숨진 이후 17일 만에 또다시 일어난 일입니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그 이미지들이 한국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시위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들고 있는 피켓이 각양각색입니다. 참가자들은 미리 인쇄된 문장을 나눠 받기보다, 종이와 펜을 준비해 스스로 문장을 씁니다.글씨체도, 문장의 톤도, 분노의 강도도 모두 다릅니다. 이 손글씨 피켓들은 조직의 공식 입장문이라기보다, 개인이 거리로 가져온 생각의 조각들에 가깝습니다. 사진 속 장면에는 하나의 구호 대신 서로 다른 언어들이 나란히 놓이고, 그 차이 자체가 장면의 밀도를 만들어냅니다.● 한국의 피켓 시위 — 정리된 문장으로 드러나는 요구한국의 집회·시위 문화는 권위주의 정권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돼 왔습니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준비된 방식이 특징입니다. 대기업 노조 시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습니다.빨간 머리띠와 노조 로고가 선명한 점퍼, 동일한 문구가 인쇄된 피켓, 안정적으로 정렬된 대오. 메시지는 한눈에 읽히고, 요구의 방향은 분명합니다.이 형식은 진보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달 31일 보수 정당의 대표였다가 제명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지지자들이 여의도에서 연 집회 역시 유사한 구조를 보였습니다. ‘부당 징계 각오하라’라는 사전 제작된 문구의 피켓을 들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구호를 외쳤습니다.1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도 참가자들은 ‘김범석을 처벌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일사분란하게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안과 이념은 다르지만, 표현의 형식만 놓고 보면 세 장면은 닮아 있습니다.한국의 시위는 이렇게 인쇄된 문장을 통해 요구를 정리하고, 집단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축적돼 왔습니다. 사진은 이 구조를 읽기 쉬운 이미지로 전달해 왔습니다.● 말을 줄인 세대 — 이미지로 잘 포착되지 않는 태도반면 오늘의 젊은 세대의 감정은 이 세 장면 어디에도 정확히 겹쳐지지 않습니다. 한 곳에 모이지도, 구호를 합창하지도, 인쇄된 문장을 들지도 않습니다. 대신 질문 앞에서 말을 아끼고 상황을 지켜봅니다.긴장과 고민은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 집단적 장면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감정, 응시로 남은 태도를 담아내기에는 사진이 한계를 가집니다. 온라인 게임과 유튜브, 플랫폼을 통한 소통은 늘어났지만, 오프라인에서 집단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분노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위를 통해 집단의 요구를 드러내고 관철시키는 방식은 지금의 기성 세대가 마지막일까요. 아니면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사회에 설득할 새로운 형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요.오늘은 미국의 시위 사진과 한국의 시위 사진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카페 안에 눈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꺄르르’ 아이들의 웃음 가득한 눈밭을 그리워할까요, 아니면 다시 찾아온 한파를 피할 수 있는 실내를 좋아할까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신년 운세가 궁금한 이들이 많나 봅니다. 운세 뽑기를 한 흔적이 플라스틱 캡슐로 남았습니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우면 운이 배가되겠지요?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얼굴이 사라지는 순간, 사진의 성격이 바뀐다신문 한 개 면을 사람 얼굴로 가득 채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목과 광고 없이 사진만으로 한 면을 채운다고 해도, 독자가 개별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최대치는 대략 5000명 안팎일 것입니다. 신문 한 면에는 보통 200자 원고지 약 25장 분량의 기사가 들어갑니다. 신문의 활자 크기는 독자가 인식할 수 있는 최소 단위에 맞춰 설계돼 있기 때문에, 얼굴 역시 그 정도 크기 이상은 되어야 ‘인물’로 인식됩니다.만약 정말로 5000명의 얼굴을 한 페이지에 모두 담으려 한다면, 얼굴만 보이도록 몸을 최대한 잘라내고, 단상에 빽빽하게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장면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행사에서 참가자 개개인의 얼굴을 남기려면, 애초에 촬영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습니다.이 경계를 넘는 순간, 얼굴은 더 이상 인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점이나 패턴에 가깝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5000명을 넘어서면, 기념사진은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진’이 아니라 ‘규모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김정은 시대에 등장한 대규모 집단 기념사진들은 바로 이 경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장관이지만 개별 얼굴은 사라집니다. 동원되는 인원 규모 커졌지만 사진이 남기는 개인적 기억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는 외부 독자뿐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도 이런 사진이 더 이상 특별한 ‘기념’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6년 1월 17일, 신의주 온실종합농장 건설 현장에서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 5000명이 참여한 대합창 공연 ‘김정은 시대와 백두산영웅청년’이 진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은 북한 선전 이미지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참석자 개인이나 가족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신문 일부 지면에 여백과 함께 실린 이 사진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일성 시대에는 기념사진이라고 해야 기껏 수십 명, 김정일 시대에는 최대 몇 백 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해 연단에 서게 함으로써 함께 역사 만들기에 나선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게 해줬습니다. ● “또 기념사진이네”라는 감각집단 기념사진은 원래 ‘증명’의 장치였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남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북한에서 1호가 등장하는 사진이 특별한 의미를 가져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지지도나 정치 이벤트가 끝난 뒤 촬영된 기념사진은 각 가정에 전달됐고, 액자에 넣어 집 안에 걸렸습니다. 기념사진은 국가가 개인에게 남기는 흔적이었고, 가문의 영광이자 가보였습니다. 이 관행은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김정은 시대 역시 기념사진은 북한 사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 1년 6개월(2012년 1월~2013년 5월) 동안 175장의 단체 기념사진을 통해 약 12만 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2년 7월 26일자 노동신문에는 6개 면에 걸쳐 28장의 기념사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권력의 존재를 빠르게 시각화하기 위한 김정은식 해법이었을 것입니다.같은 속도로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단순 누적으로 계산해 집권 14년 동안 기념사진에 등장한 인원은 약 100만 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를 4인 가족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00만 명으로, 전체 650만 가구 가운데 상당수가 한 차례 이상 기념사진 경험을 공유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과 함께 찍은 사진’이 더 이상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그래서일까요.최근 1~2년 사이,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이미지 정치의 핵심이었던 집단 기념사진의 위상과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소한 노동신문 지면에서는 기념사진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닙니다. 김정은 권력 초창기에 전체 사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던 위상과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입니다. 물론 김정은이 2022년 열병식에 참가한 군인 전원을 다시 평양으로 불러들여, 1주일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기념사진을 찍고 이를 노동신문에 게재하는 등 ‘사랑의 기념사진’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늘어난 대규모 군중 동원형 ‘1호 행사’의 빈도를 함께 고려하면, 집단 기념사진의 위상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북한 내부에도 생겼을 ‘사진 피로감’왜 이런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내부의 독자들 역시 이런 형태의 사진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북한 관련 뉴스와 콘텐츠는 예전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한때는 ‘북한’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클릭이 보장되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외부의 우리에게도 북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익숙한 풍경이 됐습니다. 반복되는 미사일, 행사, 열병식 사진 속에서 독자가 느끼는 것은 놀라움이 아니라 “또 저 패턴이구나” 하는 인상에 가깝습니다.생각해볼 만한 점은, 이 피로감이 북한 밖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체제 내부에서도 반복되는 대규모 동원과 끝없이 이어지는 행사 이미지가 더 이상 특별한 ‘기념’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정치 이벤트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야간 행사와 대규모 조명, 음악과 영상 편집이 결합된 스펙타클로 연출되는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북한 내부의 ‘보는 눈’ 을 고려한 변화로 해석됩니다.또 다른 가능성은, 김정은을 부각시키기 위한 대규모 행사가 반복되면서 더 이상 참가자 개개인을 보여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집단은 커졌지만, 그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화면 속에서 점점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 ‘사진이라는 영수증’이 사라질 때5000명이 등장하는 기념사진은 집단 기념사진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듭니다. 규모는 극대화됐지만 개인의 식별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념사진은 더 이상 개인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사진은 개인에게 귀속되기보다 국가가 소유하고 전시하는 장면에 가까워집니다. 과거 집단 기념사진이 행사 동원에 대한 ‘사진이라는 영수증’이었다면, 이제 그 영수증은 효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동원되지만, 개인에게 남는 의미는 줄어드는 구조입니다.북한이 여전히 기념촬영 후 사진을 각 가정으로 전달하는 과정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문에서 일일이 얼굴을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대규모 동원 행사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참가자 개인에게 ‘선택되었다’는 만족감 외에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시간이 되고 있을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합니다.오늘은, 점점 화려해지는 북한 사진 속에서 인민의 얼굴이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 사진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셨나요? 좋은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겨울 바다를 보러 나온 사람들이 해변가 산책로를 걷고 있네요. 바닷물 대신 펼쳐진 펄밭처럼 쉽지 않은 날도 있지만, 그래도 힘껏 헤쳐가야겠지요. ―인천 강화군 삼산면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건물에 낸 큰 틈에 작은 무대처럼 붉은 커튼이 내려와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그 안에 숨어 있을 것 같네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냥이가 엉덩이를 들이밀어 빈 화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봄비가 싹을 깨운다는 우수(雨水)가 되면 흙에서 움트는 새 생명에게 양보할 거죠? ―인천 강화군 강화읍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번 주 국내외 정치권에서 주목받은 이미지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도널드 트럼프의 흑백 포스터, 한동훈 전 대표의 유튜브 사과 영상, 그리고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의 심야 회동 사진까지.세 장면의 주인공들은 모두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기자의 질문 앞에 선 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카메라와 플랫폼을 향해 만들어진 얼굴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이번 주 백년사진은 이 세 장면을 통해, 정치인의 얼굴이 누가 찍고, 어디에서 먼저 공개되며, 어떤 맥락으로 유통되는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장면 1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1년을 나흘 앞둔 16일(현지 시간), 자신의 SNS에 흑백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책상 위에 양 주먹을 짚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진 위에는 ‘관세 왕(The Tariff King)’이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정면 응시, 주먹을 짚은 자세는 이 장면이 우연히 포착된 스냅 사진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사진 위에 메시지가 그대로 얹혀 있다는 점에서, 기자가 현장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맥락을 보충하는 보도 사진과는 결이 다릅니다. 화면 오른쪽에서 비추는 인공 조명과 컬러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흑백을 택한 선택 역시 계산된 효과로 읽힙니다.트럼프는 이 사진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저장되고 공유되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 이미지는 설명을 얻기 위해 찍힌 사진이 아니라 지지지들 사이에 확산되기 위해 설계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장면 2한동훈 전 대표는 18일 ‘국민 여러분과 당원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등에 2분 5초짜리 짧은 영상을 올렸습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의 제명 처분 이후 친한계와 당권파의 갈등이 정점을 향하던 시점이어서 더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한 전 대표는 당원 게시판 논란의 세부 사실관계를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혼란한 상황에 대해 전직 대표이자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입니다. 유튜브 영상에는 기자회견장의 소음도, 사실관계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질문도 없습니다.정치인은 이 공간에서 카메라와의 거리, 말의 속도, 표정의 톤, 멈춤의 타이밍까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한 전 대표 역시 이 영상이 지지자들을 통해 확산되며 자신에게 우호적인 해석으로 재가공되길 기대했을 것입니다.트럼프의 흑백 포스터와 한 전 대표의 짧은 영상은 형식도 다르고 길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점,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는 기자의 카메라를 통과하지 않은 이미지라는 점입니다. 소스(source)가 달라지면 이미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기자들 앞에서 관세 정책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며 포즈를 취했다면, 사진기자들은 아마 더 괴팍한 표정의 순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정치인이 언론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대개 그 지점에 있습니다.한 전 대표 역시 기자회견 형식으로 유감 표명을 했다면 장면은 훨씬 시끄러워졌을 것이고, 곤혹스러운 질문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인에게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이미지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점점 더 ‘기자의 장면’이 아니라 ‘자신의 장면’을 선택하고 싶어합니다.● 장면 3이번 주에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권을 놓고 경쟁했던 정청래 대표와 박찬대 의원의 심야 회동 소식은, 기자의 단독 사진이 아니라 양문석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현장 사진을 통해 먼저 알려졌습니다. 게시글에는 “두 형”, “어색함을 푸는 중”, “정담을 나누는 모양이 아름다워 사진 몇 장을 올린다” 같은 표현이 덧붙었습니다.이 장면은 ‘뉴스 사진’이라기보다, 보기 좋은 화합의 순간으로 먼저 포장돼 유통됐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사진이 언론의 현장 기록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 내부자가 공개한 이미지가 뉴스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 다양해진 정치인들의 소통 플랫폼유권자와 시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치인의 플랫폼은 이제 분명히 다양해졌습니다. 그만큼 기자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처럼 보입니다. 정치인들은 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기자회견 대신 자신의 카메라로 직접 찍어 플랫폼에 올리고, 알고리즘을 타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됩니다.기자들은 본능적으로 고약한 독재자의 몸짓, 우정이 흔들리는 순간, 그리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포착하려 합니다. 그러나 스튜디오에 들어간 정치인은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의 주도권을 쥡니다. 기자의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셀프 연출이 들어서고, 기록의 윤리보다는 지지자들의 취향이 기준이 됩니다. 이번 주 국내외 권력자들의 이미지를 신문 지면과 인터넷에서 보며,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진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면 좋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세 가지 기준을 잡아봤습니다.1. 누가 찍은 얼굴인가(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포착한 얼굴인지, 정치인이 직접 연출한 얼굴인지, 홍보담당이 설계한 이미지인지)2. 최초로 공개된 플랫폼은 어디인가(신문 지면과 포털 기사인지,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인지, SNS 피드인지)3. 어떤 맥락에서 유통되고 있는가(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보도인지, 사과나 해명을 위한 메시지인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이미지인지, 조롱과 소비를 위한 밈인지)이 세 가지 질문을 거치고 나면, 위에서 언급한 세 이미지는 더 이상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누군가가 선택한 결과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맥락을 읽다보면 진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만약 기자의 카메라를 통과한 권력자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더 궁금하시면 오늘(2026년 1월 26일)자 신문의 1면 사진 등을 보시면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청문회 현장을 기록한 수천 장의 사진 중 최종 선택된 한 장의 사진인만큼 지금 여론과 기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 신문에선 이혜훈 후보자의 눈빛과 표정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후보자가 원하는 순간은 아닐겁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이미지를 읽는 기준이 더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요? 오늘은 기자들이 찍는 사진과 권력이 제공하는 이미지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좋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칼바람을 꿋꿋이 견디고 있는 나뭇가지에 모과 한 알이 남았습니다. 절로 움츠러드는 강추위, 세상에 달콤한 향을 전해 마음을 풀어주려는 걸까요.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외신기자들도 찍지 못하는 이란 시위소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번 주 초까지 이란에서는 시위가 이어졌고 사망자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외신 사진에서 시위 현장의 긴박함은 좀처럼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이 있지도 않거나 심각하지 않은 시위를 과장해 보도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란 정부의 언론 통제가 완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외신 단말기를 통해 전 세계에 공급되는 이미지는 두 갈래입니다. 한 축은 이란 정부가 제공한 사진, 다른 한 축은 친정부 집회 장면입니다. 이란 현지에서 촬영된 사진은 모두 친정부 집회입니다. 프레임은 안정적이고 군중은 질서 정연합니다. 사진 설명에는 “반정부 시위에 맞선 집회”라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시위는 분명 존재하지만, 권력을 향해 절규하는 얼굴과 혼란의 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그나마 분노와 긴장을 전달하는 이미지는 대부분 이란 밖에서 만들어집니다. 런던과 파리 등지에서 이란인들이 시위를 벌이고, 최고 지도자의 초상을 불태우는 장면을 기자들이 자유롭게 촬영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란의 시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테헤란이 아니라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본질적인 현장이 아니기에 신문의 1면이나 핵심 지면을 채우기에는 부족합니다. 그 공백을 SNS가 메웁니다. 언론은 위험을 감수하며 SNS를 뒤집니다. 망명지에서 활동하는 반정부 단체의 홈페이지나 X 등에 올라온 사진을 찾아 검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아래에 ‘UGC 영상’이라는 표기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User Generated Content, 즉 전문 기자가 아닌 일반 이용자가 촬영해 올린 사진이나 영상이라는 뜻입니다. 출처와 맥락을 언론이 직접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검증 부담이 큽니다. ‘이란 밖에서 입수’, ‘출처 확인 불가’라는 문구가 함께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편집국의 마음은 늘 불안합니다. 이 장면이 오늘의 기록인지, 과거의 재활용인지, 누군가의 연출인지 끝까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쓰지 않으면 침묵이 되고, 쓰면 조작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 불안을 더 키웠습니다.● 이란 정부가 이미지를 차단하는 방식 — 디지털 블랙아웃(Digital Blackout)시위가 있었는데도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 상황 자체가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인터넷 차단입니다. 이란 당국은 시위가 확산되자 모바일 데이터와 SNS 접속을 단계적으로 제한했고, 지역 단위로 외부와 연결되는 출구를 닫았습니다. 단순한 속도 저하가 아니라,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과 영상이 외부로 빠져나갈 경로 자체를 봉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요즘 시위가 국제 여론으로 번지기 위해서는 현장의 반복된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그 고리가 초반부터 끊긴 셈입니다. 그러는 동안 친정부 언론의 텔레그램 피드는 꾸준히 업데이트됐습니다. 허용된 채널에서만 정보가 유통되는 구조가 유지됐습니다.● 믿었던 통신 위성도 역할을 못해위성 인터넷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단말기 접근성은 제한적이었고, 사용 자체가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전파 교란이나 위치 노출의 가능성도 부담이었습니다. 일부 이미지는 외부로 전달됐지만 점처럼 흩어진 사례에 그쳤습니다. 흐름을 만들 만큼의 양도, 지속성도 부족했습니다. 인터넷이 차단된 사회에서 위성 인터넷은 상징적인 수단일 수는 있어도, 대중적 확산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지난 혁명에서 이미지 통제 기술을 습득한 권력외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장면은 친정부 집회와 정렬된 군중, 그리고 안정적인 구도의 사진들이었습니다. 혼란과 충돌의 이미지는 드물었고, 있더라도 단편적으로 소비됐습니다. 시위가 존재했음에도 국제 사회가 공유한 것은 통제 가능한 장면들이었습니다.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 혁명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분명해집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로 촬영된 흔들린 영상, 통제되지 않은 거리, 문을 닫은 상점과 텅 빈 시장의 모습이 빠르게 상징 이미지로 굳어졌습니다. 화질은 거칠었지만 장면은 생생했고, 그 이미지들이 축적되며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이 국제 사회에 공유됐습니다. 혁명은 거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연쇄를 통해 가속화됐습니다.반면 이번 이란 시위에서는 거리의 분노도, 상인들이 셔터를 내린 바자르의 침묵도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못했습니다. 시장이 멈췄다는 사실은 설명으로만 전달됐을 뿐, 그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그 공백을 대신 채운 것은 권력의 전담 사진가가 기록한 안정된 구도의 이미지와, 친정부 시위를 촬영한 외신 사진기자들의 사진들이었습니다. 혼란의 장면이 사라진 자리에 관리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공급됐습니다.이런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역사적 사례가 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국내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을 뿐 아니라 외신 보도 역시 강하게 차단했습니다. 외국 기자들의 현장 접근과 이동은 제한됐고, 광주에서 촬영된 사진과 기사가 해외로 전달되는 과정도 통제 대상이었습니다. 국내 언론에는 군이 허용한 기사와 사진만 나가도록 관리됐습니다. 이후 일부 외신 보도가 소개되긴 했지만, 그것마저 온전히 전달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국회도서관 등에 보관된 당시 미국 뉴스위크와 타임지를 직접 확인해 보면, 기사 일부가 가위로 잘려 나가고 문장이 먹칠된 채 남아 있는 검열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외신조차 그대로는 유통되지 못했고, 권력이 허용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남았습니다.기술은 발전했지만, 권력이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더 정교해졌습니다. 오른손으로는 시위대를 진압하고, 왼손으로는 카메라와 인터넷을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허락이 있어야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이란 사태는 다시 보여줍니다.나중에라도 이란 현지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이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스마트폰에 아직 있을 사진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오토바이 위에 웃는 인형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헬멧에 가려진 주인의 얼굴 대신, 오늘의 기분을 먼저 전해주는 것 같네요. ―인천 강화군 강화읍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