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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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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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0~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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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뒤 미래는… 토플러協 ‘미래의 충격’ 출간 40년 맞아 전망

    올해는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82·사진)가 책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을 통해 미래 세계를 전망한 지 40주년 되는 해다. 토플러의 예측은 현실로 증명된 것이 많다. 당시 그가 만들어낸 ‘지식의 과부하’ ‘권력이동’ ‘디지털혁명’ ‘지식시대’ 같은 표현들이 이제는 일상어가 됐다. 그렇다면 향후 40년 뒤는 어떤 시대가 될까. ‘토플러 협회’ 소속 미래학자들이 14일 ‘40년의 40가지 예측’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미래상을 제시했다. 학자들은 2050년까지 정치 기술 사회 경제 환경 5개 분야에서 예상되는 변화를 나열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여성지도자가 크게 증가하며 종교단체들이 주도하는 세력이 정부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 중국 브라질 인도의 경제력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넘지는 못할 전망이지만 신흥국에 대한 해외 직접투자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빌 게이츠와 같은 자선활동 기업가들의 국제적 영향력은 갈수록 증가한다. 중동은 여전히 분쟁지역으로 남아있겠지만 세계적으로 군사력의 사용은 적어진다. 향후 지금의 북한 이란과 같은 비이성적 국가는 줄어들 것이지만 이들이 지역 및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클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세계적 범위에서 특정 전문가에 대한 신속한 접근이 매우 쉬워지는 세상이 다가온다. 또 머지않아 ‘페타바이트(약 100만 기가바이트) 시대’가 도래한다. 세계 최대 검색사이트 구글의 하루 정보처리 용량은 현재 20페타바이트이다. 값싸고 작은 감시 장비들이 인기를 끌면서 사생활 침해 사례가 늘며 데이터 수집이 훨씬 빨라져 불필요한 정보가 넘쳐나는 ‘사이버 쓰레기’가 홍수를 이룰 것이다. 또 화학 생물학 방사능 핵 기상 관련 센서들이 휴대전화와 같은 생활필수품에 대거 내장되며 지금까지 인기를 끌어온 대량생산 방식은 주문제작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또 앞으로는 애플의 아이폰처럼 제품이 아닌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사회생활 면에서는 거대 도시가 탄생하며 이민자들이 증가해 식량 물 에너지 부족을 불러온다. 선진국은 늙은 원주민과 젊은 이민자 세대로 갈라지게 될 것이며 노인돌봄 서비스 분야가 지금보다 2.5배 성장한다. 앞으로는 노후 서비스가 정부의 책임에서 비정부기구(NGO)와 기업의 몫으로 옮겨간다. 또 종교인구가 성장하며 지구촌 남반구에는 기독교가, 서방에선 이슬람교가 성장하는 종교의 복합화도 이뤄진다. 경제 분야에선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며 남미에선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업들은 국경을 신속하게 넘나드는 민첩한 조직으로 변해 어디서 일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환경이 펼쳐진다. 환경 분야에선 정수시스템의 발전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질병이 사라진다는 긍정적 전망도 있다. 이에 비해 에너지를 둘러싼 나라 간 갈등과 중국의 희소광물자원 독점이 중요한 안보적 위험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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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뺨치는 김정은 우상화… 北주민 “쌀 넘치겠네” 비아냥

    북한 당국이 최근 김정은(사진)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을 벌이면서 상식을 벗어난 황당한 선전으로 일관해 주민에게서 야유와 조롱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적이 전무한 27세 젊은이를 ‘위대한 지도자’로 억지로 포장하다 보니 되레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 대북 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은 11일 북한 선전당국이 지난해 하반기 노동당 간부와 당원을 상대로 진행한 강연 자료를 공개했다.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에 대한 위대성 자료’라는 제목의 이 선전물은 “청년대장 동지는 3세 때부터 총을 잡고 사격에서 명중을 시켰으며 올해는 자동보총으로 초당 3발씩 사격해 100m 앞의 전등과 병을 줄줄이 맞혔다”고 주장했다. 또 목표판(타깃)에 20발을 쏴 몽땅 10점 원 안에 명중시켰다는 것. 이뿐만 아니라 “10대에 동서고금의 명장(名將)을 다 파악했으며 육해공 전 분야에 정통하고 기술자도 해내지 못한 ‘축포발사 자동 프로그램’을 며칠 만에 완성시켰다”고 주장했다.이 방송정론에는 김정은이 정치 경제 문화 역사 군사 등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2년의 유학 기간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4개국 언어를 완전히 습득한 천재이며 앞으로 이를 포함해 7개 언어를 정복하기 위해 짬짬이 공부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3세 때 어려운 한시(漢詩)를 붓으로 척척 써내려가 주위를 감탄케 했고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도 김정은이 해외유학을 통해 ‘핵을 가진 자와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농민을 대상으로 한 자료에는 김정은이 2008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을 찾았다가 즉석에서 산성토양을 개량할 수 있는 미생물 비료를 생각해내 연구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이 농장에서 이듬해 정보(약 9917m²·3000평)당 15t의 벼를 생산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해 남한의 정보당 쌀 생산량은 5.2t이었다.이런 강연을 들은 주민들은 “이제는 눈비가 와도 다 쌀이 되니 먹는 문제가 다 풀렸다” “넘쳐날 식량을 어떻게 처리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하늘이 낸 김정은이) 올해는 큰물 피해로 농사가 망하도록 결심했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김정은 우상화는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 때보다 훨씬 더 황당하다.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는 김일성 우상화 내용은 어린이용 전설집에 실린 것이다. 김정일 우상화도 성인을 상대로 할 때는 ‘3세 때 명사수’라는 식의 황당한 선전은 하지 않았다. 한 탈북자는 “선전부분 간부들이 우상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로 바뀌면서 오히려 한술 더 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후계자 ‘김정은 띄우기’ 北 파격행진 계속▲2010년 10월11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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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열병식, 건국이래 최대 2만명 참가… ‘김정은 데뷔쇼’ 1년전 기획한듯

    김정은이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기념해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군 열병식장에 나타난 것은 북한이 후계세습 작업을 얼마나 세밀히 준비하고 차근차근 현실화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지난달 열린 노동당 대표자회와 이번 열병식으로 이어진 김정은의 등장 각본은 늦게 잡아도 올 초에 이미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대규모 열병식의 함의 열병식을 평양에서 생중계한 미국 CNN 방송은 “병력 2만 명과 군 차량이 참여한 이번 열병식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지난 10년간 북한에는 김정일의 환갑인 2002년과 노동당 창건, 공화국 창건 60주년인 2005년과 2008년 등 노동당 창건 65주년보다 더 큰 명절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중요한 기념일에도 하지 않은 대규모 열병식이 이번에 열렸다는 것은 김정은의 등장에 맞춘 기획이라고밖에 풀이할 수 없다. 북한에서 이 정도의 대규모 열병식은 준비기간에만 10개월 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올 1월엔 이미 김정은의 등장 시점이 정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천안함 기습공격도 반 년 뒤 김정은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자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노동당 대표자회를 당 창건일인 10월에 맞추지 않고 그보다 한 달 빠른 9월에 연 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김정은을 좀 더 순조롭게 등장시키기 위한 각본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 직전에 대표자회를 열었다면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과 대장 칭호를 수여하자마자 열병식을 통한 데뷔 무대에 나서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그럴 경우 미처 김정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한 북한 주민의 여론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북한은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을 공개한 뒤 일정한 시일을 두고 내부 주민 강연과 충성 결의모임을 열어 곧 열병식에 데뷔할 김정은이 낯설지 않게 사전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예상되는 행보2011년은 북한에 큰 명절이 예정돼 있지 않은 해이다. 내년에 김정은은 대규모 행사를 통해 자신을 부각하기보다는 당정군을 잡기 위한 실속 있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당 대표자회와 열병식을 통해 주민에게 후계자임을 알리는 효과는 충분히 달성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조직을 장악하고 통솔하기 위해 분주히 현지시찰을 다닐 것으로 보인다. 건강이 나쁜 아버지를 따라다니기보다는 독자적인 현지시찰을 통해 젊고 능력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으려 할 것이다. 특히 주민여론을 의식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각본대로 흘러가면 2012년에는 노동당 상무위원 겸 조직비서, 북한군 원수 겸 최고사령관 등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권력과 직책을 움켜쥘 것으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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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후계’ 첫 공개 시인

    북한 노동당 고위급 간부가 ‘김정은 후계설’을 8일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시인했다. 노동당 정치국 위원인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85)은 이날 평양에서 이뤄진 AP통신 TV뉴스 APT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한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최고위급 관계자가 김정은 후계자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 부위원장은 “우리 주민들은 대대로 위대한 지도자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주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모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제 우리는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를 모실 영예를 얻게 됐다”고 덧붙였다.하지만 양 부위원장의 말과는 달리 북한에선 최근 김정은 후계세습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전단(삐라) 살포, 낙서 같은 실질적 움직임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8일 보도했다. 방송은 함경북도 청진시의 소식통을 인용해 “노동당 대표자회 이후 청진 수남구역에서 ‘새끼돼지 어미돼지 모조리 잡아먹자’는 낙서가 발견돼 큰 소동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김정일과 김정은을 비방하는 삐라가 평성 장마당 부근에 나붙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각종 군사장비와 병력 2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10만 명의 군중시위, 불꽃놀이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먹는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허튼 짓만 한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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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포커스/폴 크루그먼]‘위안화 절상 압박’ 말로만 할건가

    지난달 29일 미국 하원에서 중국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도록 한 법안이 민주 공화 양당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실제로 아주 온건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무역전쟁을 촉발해 세계 경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경제위기가 촉발된 이래 너무 자주 오판했다. 재정적자(경기 부양)가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번 경고도 틀린 것이다. 보복 위협이 없는 중국 환율 대응책이란 공허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국의 약탈적인 통화정책 때문에 대량실업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시대에 관세가 좀 오를 수 있다는 우려쯤은 응당 걱정거리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놓아도 된다. 한발 물러나 지구촌을 살펴보자. 주요 선진국 경제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이로부터 촉발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지금도 휘청거리고 있다. 소비시장은 위축됐고 기업은 판로가 막혔다. 불경기가 겉으로는 끝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업률은 치솟았고 하락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신흥국 경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경제 활황을 누리고 있는 이들 국가는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있다. 그러자 경제가 침체돼 있는 선진국에서 자연스럽게 이들 국가로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신흥국 중에서 가장 거대한 몸집을 가진 중국은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위안화의 절상을 인위적으로 막고 있다. 이는 수출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러면 다른 국가들에선 실업률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중국 관리들은 이런 정책을 이치에도 맞지 않고 일관성도 없는 논리로 옹호한다. 그들은 자국이 고의적으로 환율을 조작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잠든 사이에 이빨 요정이라도 출현해 2조4000억 달러나 되는 외화를 사서 베개 밑에 깔아 놓았을까. 중국의 저명인사들은 위안화 가치가 무역 흑자와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주에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강한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천명하면서 “얼마나 많은 중국 공장이 파산하고 얼마나 많은 중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위안화 가치의 중요성을 시인한 것이다. 중국은 6월 환율을 시장자율에 맡긴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이달 말까지 달러당 위안화 가치는 겨우 2%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것도 불과 최근 몇 주 사이에 오른 것으로 미 하원에서 보복 관세 법안이 통과될 기미가 보이자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이 법안은 실제 집행될 것인가. 법안은 관리들에게 보복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주는 것이지 보복 관세를 부과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 미국 관리들은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 진전을 거론하며 계속 인내할 것이며 결국 중국엔 미국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확인시켜 줄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나쁜 행동을 저지르는 중국 앞에서 우리가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수동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중국과 맞붙는 것은 실업률을 낮춰야 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사사건건 공화당의 방해에 발이 잡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정책 옵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이 미 관리들의 수동성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군불은 때기 시작했다. 정책 입안자들부터 각성해 진짜 행동을 취할 날에 좀 더 가까이 간 것은 사실이다.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201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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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슬러지’ 다뉴브강 덮쳐… 인근 6개국 환경재앙 초읽기

    헝가리의 한 알루미늄 공장에서 유출된 독성 슬러지가 7일 다뉴브 강으로 유입돼 동유럽에 생태계 파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AP통신에 따르면 슬러지는 이날 정오 다뉴브 강 지류인 라버 강을 거쳐 다뉴브 강 본류에 도달했다. 도브손 티보르 지역방재 책임자는 헝가리 MTI 통신에 “물고기가 죽었고 식물들도 구해낼 수 없었다”며 “머르철 강의 여러 곳에서 알칼리 농도를 낮추기 위해 산(酸)과 석고 반죽을 쏟아 부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총 길이 2850km로 볼가 강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다뉴브 강은 헝가리를 지나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6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사고로 유출된 100만 m³가량의 슬러지가 다뉴브 강을 따라 흐르면 하류 국가들의 식수원이 크게 오염될 뿐 아니라 중금속 때문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재앙이 초래된다.현지 당국은 물속에 녹아있는 수소이온농도(pH)가 현재 10 이하로 떨어지는 등 독성 수치가 낮아지고 있어 추가적인 환경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헝가리 과학아카데미도 “성분 샘플을 검사한 결과 중금속 성분이 환경에 재앙을 미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고 발표했다.그러나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이번 사고를 최근 30년간 유럽에서 발생한 3대 환경재난 중 하나로 규정하고 헝가리 정부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을 촉구했다. 하류 국가들도 피해를 우려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헝가리에 조속한 수습을 촉구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헝가리 당국은 6일에도 500명 이상의 재난방재청(NDU) 직원과 군인을 동원해 수백 t의 석고 반죽을 슬러지가 막 흘러들기 시작한 머르철 강에 쏟아 부었다. 석고 반죽은 슬러지의 흐름을 막고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헝가리 정부는 라버 강 유역에 있는 3개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다뉴브 강 오염은 무조건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동시에 슬러지가 휩쓴 마을과 경작지에 대한 정화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헝가리 당국은 앞으로 슬러지가 거쳐 간 40km² 지역에서 토양 표면 2cm 두께의 흙을 모두 제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년 이상의 기간과 100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고로 4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으며, 120여 명이 병원에서 슬러지 접촉의 결과로 초래된 화학적 화상을 치료받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연합뉴스}

    • 201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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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주민 “나라가 다 미쳐가고 있다”… 北 3대세습 반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사진)이 지난달 28일 열린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돼 ‘3대 권력세습’이 공식화하자 북한 내부에서는 냉소와 허탈 체념 등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은 당 대표자회를 마친 뒤 10월 초부터 김 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된 데 대한 경축행사를 전국적으로 벌이면서도 김정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고 한다. 대대적으로 선전하지 못하는 것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에 대해 주민들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중국 접경지역에 사는 북한 주민 A 씨는 “스물 몇 살짜리가 후계자가 됐다니까 우리 동네 사람들도 다 기막혀하는 눈치지만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후계 문제에 신경 쓰기도 귀찮아한다”고 말했다.최근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통화하고 있다는 남한 거주 탈북자 홍정순(가명) 씨는 “사람들이 집에 가서 가족끼리는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엄청 푸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씨는 “북한에 있는 우리 집에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자주 오는데 요새는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데 난 부모 잘못 만나서 한창 젊은 나이에 배나 채우려고 다닌다’며 푸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자 김성일(가명) 씨는 “엊그제 북한의 형제와 통화했는데 ‘나라가 다 미쳐가고 있다.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까진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군대하고 전혀 상관없는 김경희나 최룡해까지 대장으로 승진한 것을 보면 정말 말세다. 가족만 없으면 이제라도 확 남조선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외화벌이 일꾼으로 나와 있는 한 북한 사업가는 “김정은이 나이가 어려 무슨 경험이 있어 북한을 이끌겠느냐”며 불신을 드러냈다. 이 사업가는 김정은이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알려진 업적도 없는 데다 지금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 그는 북한주민들이 김 위원장에게로 권력이 넘어갈 때도 그다지 존경과 신뢰를 보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경제 상황도 나빠져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를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 북한에서 들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국에 나와 근무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북한 여성은 “나이도 나와 비슷한데 그런 그가 고위직을 맡아 무슨 능력을 보여주겠느냐”며 “그를 찬양하는 노래로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 대장 발걸음’ 등의 가사가 담긴 ‘발걸음’을 배우기는 하지만 마음으로 우러나와 부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또 다른 소식통이 전했다.한편 소식통은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동포들은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고 같은 민족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김 위원장은 자기 자식이라고 권력을 물려줬지만 권력 이양이 제대로 순조롭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김정은 어떤 직책 맡든 자금줄 장악못하면…”▲2010년 10월5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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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틀스’ 존 레넌 탄생 70주년 앨범 전세계 발매…일대기-영화도 잇따라 나와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의 핵심멤버 존 레넌(1940∼1980)의 탄생 70주년이자 타계 3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앨범 서적 영화 등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존 레넌의 솔로 시절 앨범은 디지털 재녹음 작업을 거쳐 4일부터 전 세계에 발매됐다. 이 앨범은 존 레넌의 70주년 생일(9일)을 기념하기 위해 부인인 오노 요코 씨(77)의 기획 아래 완성됐다. 존 레넌이 솔로 활동을 하며 남긴 8장의 스튜디오 앨범에 미발표 음원을 담은 컴필레이션(편집) 앨범 2종이 추가된다. 이 모두를 담은 2종의 박스세트도 나온다. 이번에 발매될 모든 앨범은 온라인 음악사이트 멜론을 통해 앨범별로 내려받을 수 있다. 존 레넌 30주기를 맞아 그의 일대기와 사진을 담은 ‘존 레논(한국판 책표기)-인 히스 라이프(In His Life)’도 같은 날 국내 출간됐다. ‘비틀스’ 마니아 존 블래니 씨가 존 레넌만을 집중 조명한 이 책은 10여 개국에서 이미 번역 출간됐으며 국내에서는 이번에 2000부가 한정 판매된다. 특히 기존에 나온 존 레넌 전기와 달리 하드커버에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해 소장가치가 높다고 출판사인 오픈하우스 측은 전했다. 존 레넌의 유년시절과 ‘비틀스’의 탄생 비화를 다룬 영화 ‘노웨어보이’도 11월 말에 개봉될 예정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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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아래로부터 물갈이’… 중견간부들 술렁

    북한에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사업이 가속화하면서 체제를 지탱하는 중견급 간부들이 술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한 대북소식통은 “20대 후계자의 등장으로 간부들이 대폭 물갈이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이 든 간부들은 시름에 빠지고 젊은 간부들은 기대에 부풀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 대표자회 이후 외부에 발표된 중앙당 지도부에는 원로들이 다수 포진돼 있지만 실질적인 세대 물갈이는 아래서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북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도 올 7월에 노동당 지도부가 산하 당 조직에 “젊고 능력 있는 간부들을 대거 천거하라”는 지시문을 하달했으며 실제로 지방당에는 전에는 드물었던 20, 30대 간부가 대거 수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던 때에도 북한에선 중견급 간부들에 대한 물갈이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내정되기 1년 전인 1973년 ‘3대혁명소조운동’을 직접 발기해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 조성에 나섰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수만 명의 20대 초반 청년들을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완성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의 모든 생산현장에 파견했다. 소조원들은 나이 든 간부들을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관료주의 등으로 몰아세우며 사실상 김정일의 ‘홍위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3년의 파견기간을 마친 소조원들은 북한의 중요 간부로 대거 기용됐다. 이번에도 북한은 비슷한 수법으로 아래로부터의 세대교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뒷받침할 인물들도 청년조직 지도경험이 풍부하다. 장성택은 노동당 3대혁명소조부장을 지냈으며 중앙 권력에 복권한 최룡해도 회원이 800만 명이나 되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를 10년 넘게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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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사진 첫 공개]사진 속 두 여인은 김옥-김여정?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김정일과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들과 함께 찍었다면서 공개한 사진 속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젊은 여성 두 명이 앞줄에 서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여성은 노동신문에 공개된 사진 속에선 보이지 않아 정체에 대한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사진 속 오른쪽 여인은 연합뉴스가 2006년 7월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김옥이라고 지목한 여성이 확실해 보인다. 이 여성은 2000년 10월 조명록 노동당 상무위원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방위원회 과장 명함을 갖고 ‘김선옥’이란 이름으로 동행했다. 연합뉴스 보도 후 국내 언론들은 김옥에 관한 기사를 보도할 때 한동안 이 여인의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다.하지만 김옥의 얼굴을 직접 봤다는 일부 고위 탈북자를 중심으로 김옥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그녀의 실제 모습에 대한 논박이 한때 벌어지기도 했다.김정일의 요리사로 측근에서 활동했던 후지모토 겐지 씨는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1992년 발행된 북한 매체에서 따온 사진을 김옥의 사진이라고 공개했다. 이 사진은 2000년 미국에서 카메라에 잡힌 여인의 얼굴과는 많이 달라 보였지만 후지모토 씨는 “두 여인이 달라 보이지만 사실상 한 여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사진 속 오른쪽 여인은 김옥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면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은 누구일까. 왼쪽 여인은 오른쪽 여인보다 더 젊어 보인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으론 자세히 윤곽이 나타나진 않지만 얼굴 형태나 몸매로 보아 연령대가 20, 30대로 보인다. 그렇다면 나이가 최소한 40대 후반일 김옥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현실적으로 볼 때 이 여인은 김정은의 누이동생 김여정(23)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김여정은 1987년생으로 김정은보다 네 살 어리다. 김여정이 맞는다면 그녀도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될 당시 김경희가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으로 활약했던 것처럼 오빠의 후계 승계를 위해 일정한 직책을 떠맡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한 학제에선 20, 21세면 대학을 졸업해 직장을 갖는다.김여정이 아닌 김정일의 다른 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정일은 1970년대 초반 김일성이 맺어준 공식부인인 김영숙 사이에 남쪽에 ‘김설송’으로 알려진 맏딸을 비롯해 모두 세 명의 딸을 얻었기 때문이다.앞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당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급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여인은 매우 젊은 나이에도 이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김옥과 김여정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맞는다면 북한 후계구도 구축에서 김옥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여정과 나란히 있다는 것은 김옥이 김여정의 오빠이자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으며 이는 곧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김정일, 3대 세습위해 후계원칙도 깼다▲2010년 9월30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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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사진 첫 공개]170㎝에 90㎏ 넘어… 얼굴-몸집 ‘리틀 김일성’

    《북한의 대내용 매체인 조선중앙TV는 30일 오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지난달 28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 회의장에 참석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다른 대표자들과 함께 일어나 두 손을 빠르게 흔들며 박수를 쳤다. 170cm가 안 돼 보이는 작은 키에 90kg을 거뜬히 넘을 듯한 체구, 두툼한 볼살과 턱 아래로 늘어진 살집(이중 턱)….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의 외모는 서구 유학 경험을 토대로 자기관리에 철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젊은이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뚱뚱한 체구에 경직된 표정이날 김정은의 모습은 방송 동영상뿐만 아니라 조선중앙통신으로 보도된 석 장의 사진을 통해서도 외부에 공개됐다. 동영상과 사진의 앉은키로 볼 때 김정은은 키 165cm인 김 위원장보다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김정은의 키는 168cm라는 설과 170cm대 초중반이라는 설이 있었고 몸무게는 90kg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은 곱슬머리에 앞머리를 뒤로 빗어 넘겼다. 북한에서는 이런 머리를 ‘햇살머리’라고 부른다. 햇살머리는 머리칼을 짧게 하는 ‘패기머리’, 뒤쪽은 짧게 치고 앞머리는 사선으로 빗어 내리는 ‘날개머리’와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남성 머리 스타일이다.햇살머리는 간부들이 매우 선호하는 스타일로 사진에 나타난 다른 간부들의 머리도 대부분 햇살머리이다. 햇살머리는 젊은 김정은이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특히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젊은 시절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처음 무대에 등장한 김정은의 표정과 자세는 상당히 경직된 상태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얼굴은 김 주석의 젊은 시절을 빼닮았지만 표정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긴장감이 역력해 김 위원장과 달리 후계자 수업 기간이 짧아 경험이 부족한 것이 여실히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닫긴 깃 양복’에 키높이 구두김정은은 짙은 회색 정장을 입었다. 북한에서는 ‘맞섶 양복’ 또는 ‘닫긴 깃 양복’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정장을 표준어 대신 ‘쯔메르’라는 일본어로 부르고 있다. 남한에선 이런 형태의 정장을 흔히 인민복이라고 지칭하지만 북에선 인민복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닫긴 깃 양복’과 대비해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는 정장은 ‘제낀 깃 양복’이라고 하며 일상적으로 ‘제낀 양복’으로 부른다.기념사진을 찍은 인사 대부분이 군복이나 서구식 양복을 입은 반면에 김정일과 김정은, 김경희 등 김씨 일가 세 사람만 ‘닫긴 깃 양복(인민복)’을 입은 것은 인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단점을 숨기려는 듯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도 키높이 구두를 즐겨 신었다.○ ‘후계자 스트레스’에 욕심 많은 인상국내 1호 인상학 박사인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는 김정은의 얼굴에 대해 “머리가 좋고 진지해 보인다”고 말했다.또 주 교수는 김정은의 얼굴이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 시절 사진보다 입가가 처지고 목에 주름이 생긴 데다 얼굴근육이 굳어 보이는 것은 후계자 수업의 긴장된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옛날 사진을 보면 눈썹이 차분하고 길게 누워 있지만 지금은 끊어지듯 짧고 두껍다”며 “밀어붙이는 힘은 세지만 대인관계는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이민구 압구정서울성형외과 원장도 김정은이 이전 사진에 비해 인상이 강해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눈초리가 올라가 성격이 날카로울 수 있고 턱이 짧아 욕심이 많은 인상”이라며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비만이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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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막오른 김정은 시대]대내정책-억압체제 유지하되 주민 시장활동 묵인할 듯

    김정은은 자신의 후계구도가 확립될 때까지 국내적으로 엘리트와 주민을 억압하는 통제 정책을 강하게 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달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새롭게 구성된 당 중앙군사위에 군부를 비롯해 검찰과 경찰, 간첩 색출기관 등 체제 유지 기구의 책임자들을 모두 포진시켰다. 이는 권력이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 등 비상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세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도록 김정은이 직접 틀어쥐고 감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에도 군을 효율적으로 움직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화폐개혁 정책의 실패 이후 커진 내부 불만을 해소하고 주민들에게서 후계체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당분간 시장 활동을 방임하는 경제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8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 지도부가 중국의 개혁 개방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나타내 일부에서는 당 대표자회에서 경제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는 “당 대표자회에서는 정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으나 이르면 10월에 열릴 가능성이 있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에서 정책 변화가 언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앙당의 무리한 화폐개혁 정책에 반발해 온 지방당 간부들이 이번 당 대표자회를 통해 대거 중앙당과 내각 경제관련 부서에 포진한 점도 이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 당시와 같이 매우 제한적인 정책 변화에 그칠 것이고 중국식 개혁 개방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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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사진 첫 공개]北 노동당 비서 최태복 방중

    북한 노동당의 최태복 중앙위원회 비서(사진)가 30일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최 비서는 이날 오전 고려항공편으로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해 주중 북한대사관 측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북한대사관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비서는 이번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기존의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으며 당 비서국에서 국제 및 교육 담당 비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베이징 방문이 지난달 28일 북한에서 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린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회의 결과를 중국 공산당에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최 비서의 이번 방중이 북-중 간 내정 문제에 대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자고 약속한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겸하는 최 비서가 7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국회의장 총회에 참석해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무위원장과 회담한 전례로 볼 때 이번 방중에서도 우 상무위원장 접견이 예상된다. 북한의 의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 아래 단계의 최 비서는 지금까지 천즈리(陳至立) 중국 전국인대 부위원장을 카운터파트로 접촉해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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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일벗은 김정은, 김일성 빼닮아

    북한이 3대 세습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얼굴을 공개했다. 북한의 대내용 매체인 조선중앙TV는 30일 오후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1면에 당 대표자회 단체 기념사진을 내보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왼쪽 두 번째 자리에 앉은 김정은의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은 노동신문 1면과 단체 기념사진 3장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해외에도 공급했다. 김정은의 동영상과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통신이 9월 27일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받은 김정은의 이름을 28일 보도를 통해 처음 외부에 공개한 지 이틀 만에 사진과 동영상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김정은의 동영상 및 사진 공개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 처음 공개되던 과정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르다. 김 위원장은 1974년 당내에서 후계자로 공식 추대됐다. 그러나 그는 6년이 지난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서 대외적으로 공식 후계자임이 선포된 뒤 그해 노동신문 10월 12일자 2면에 실린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주석단’ 사진을 통해 공식적으로 외부에 얼굴을 드러냈다.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에게 김일성 주석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김정은의 이미지를 매우 정교하게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김 주석의 30, 40대 젊은 시절 얼굴에 살이 찐 체구도 흡사하다. 머리 스타일도 김 주석이 수상이던 1950년대 스타일을 따랐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의 이미지 정치 공작”이라며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을 처음 본 북한 주민들이 ‘어버이 수령’이 부활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사전에 선전선동 작업을 해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선중앙TV 등은 최근 김 주석의 청년 시절 활동 장면을 담은 영상을 되풀이 방영해 주민들의 향수를 자극해 왔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앞으로 후계자 김정은의 대내외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공개 대외활동이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은 10월 10일 노동당창건기념일 등에 열리는 군사 퍼레이드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할 것으로 관측된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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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막오른 김정은 시대]‘김정은과 악연’ 오극렬의 몰락

    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약진한 인물이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라면 가장 뚜렷이 몰락한 인물로는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사진)을 꼽을 수 있다. 오극렬은 지난해 7월 김일성 주석 15주기 중앙추모대회 때 주석단 서열 7위에 올랐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오극렬이 이번 인사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은 고사하고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 중앙위원 124명 중 한 명에 그쳤다. 그는 왜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올해 초 북한의 한 고위 소식통은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그는 당시 김정은의 후계구도에 오극렬이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남한의 보도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오극렬은 김정은의 살생부 맨 앞자리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초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가장 먼저 오극렬이 지휘하던 노동당 작전부부터 자기 수중에 넣었다. 김정은은 해외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인지 대외 정보 및 공작망을 틀어쥐는 데 집착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2007년 인민무력부 정찰국에 대외정보기관을 만들도록 지시했지만 해외정보망이 명령 하나로 만들어질 순 없었다. 그러자 김정은은 지난해 초 후계자로 지명되자마자 정찰국과 작전부, 35실을 합쳐 정찰총국을 신설하고 모든 권한을 틀어쥐었다. 이때 김정은의 손발이 됐던 인물이 정찰총국장에 오른 김영철이었다. 김정은이 해외정보망을 장악하려 한 목적은 정보수집 활동보다는 기존의 공작 조직이 비밀리에 벌어들이던 달러를 수중에 넣기 위한 데 있었다. 20년 가까이 작전국을 통솔하며 막대한 외화를 좌지우지하던 오극렬은 새파랗게 젊은 김정은과 후배인 김영철이 자신의 외화벌이 왕국을 한순간에 가로채자 이에 저항하다 결국 김정은의 눈 밖에 났다. 몇 년 전에도 오극렬은 당 검열 과정에서 자식과 사위 등 일가 상당수가 이권을 틀어쥐고 막대한 외화를 착복한 것이 적발돼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후계자에 오르기 위해 외화벌이 창구가 절실했던 김정은과 움켜쥔 이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오극렬 사이에 벌어진 ‘달러 전쟁’은 결국 오극렬의 몰락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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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막오른 김정은 시대]黨군사위, 국방위 제치고 최고 실세기관으로

    28일 진용이 짜인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는 실질적인 파워를 가진 실무그룹이 대거 포진했다. 이로써 당 중앙군사위가 국방위원회보다 더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국 인선에서는 후보위원들이 정위원들보다 더 실세인 경우가 많다. 정치국 위원들은 대체로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중용돼 온 인물인 반면 후보위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용한 인물이라는 특징도 있다.○ 중앙군사위는 천안함 사건 지휘부? 누구보다 눈에 띄는 인물은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의 실무 책임자로 알려진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이다. 최근 일부 대북 소식통은 김영철이 천안함 사건의 책임을 지고 철직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그는 이번에 중앙군사위원에 임명됐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영철은 이번 당 대표자회 회의장에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옆자리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중앙군사위에는 김 위원장과 아들 김정은 부위원장을 비롯해 정명도 해군사령관 등 천안함 사건의 지휘라인 4명이 모두 자리를 잡아 마치 천안함 사건 실행 지휘부를 옮겨 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명도 사령관과 함께 천안함 사건 직후인 올해 4월 대장으로 승진한 이병철 공군사령관도 위원에 포함됐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강화하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불러 모은 국가 무력행사기구의 책임자 모두 중앙군사위에 모였다. 국방위 소속 외에도 군 최고 지휘관과 보위부 보안부 같은 공안기관 책임자, 당 인사권을 총괄하는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이 모두 포함됐다.○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오른 이영호 김정은과 함께 부위원장에 오른 이영호의 급부상도 눈에 띈다. 통상 인민무력부장이 총참모장보다 서열이 위지만 이번 인사에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군사위원에 그친 데 비해 이 총참모장은 부위원장에 올랐다. 김영춘 부장은 김 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반면 이영호는 김정은의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 군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을 이영호가 측근에서 보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군단장급인 평양방어사령관을 지냈지만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3월 일약 총참모장으로 승진하고 이번 인사에선 차수 칭호와 함께 당 정치국 내 ‘톱5’인 상무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그가 북한에서 김정은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을 입증해 준다. 이영호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만경대혁명학원 동문이기도 하다.○ 정치국에선 후보위원이 실세? 김정은 후계구도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되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머물렀다. 후보위원 그룹에 포함된 김양건, 김영일, 최룡해, 김평해, 우동측 등은 김정일 체제에서 실질적인 파워를 행사해온 사람들이다. 후보위원 15명의 평균 나이는 절묘하게도 김정일과 같은 68세다. 이는 정위원들의 평균 나이 78세에 비해 10세가 낮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을 보좌해 김정은 체제를 본격적으로 안착시키는 실질적 활동은 원로 그룹인 정위원보다는 후보위원들이 도맡아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들도 나이가 들면 김정은에게 원로 대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 비서국 인사도 기존 김정일 라인의 인물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다만 지방에서 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인물이 대거 노동당 비서로 중앙정치에 복귀한 것이 눈에 띈다. 최룡해(황해북도), 박도춘(자강도), 김평해(평안북도), 태종수(함경남도), 홍석형(함경북도), 문경덕(평양시) 시도 당 책임비서가 그들이다. 북한 도와 직할시 12개 중 절반의 지역 책임비서들이 중앙에 올라왔다. 이 중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는 이번 인사에서 주목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이다. 불과 53세밖에 되지 않은 그는 정치국과 비서국을 통틀어 가장 젊다.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 노동당 비서에 선임된 데다 수도인 평양시 당 책임비서까지 겸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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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3대세습 체제로]이례적 ‘민간인 대장’ 北 주민 냉소 부를듯

    북한이 민간인인 김정은과 고모 김경희, 최룡해 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사진),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에게 한꺼번에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선 군 고위 장성이 군복을 벗고 당 또는 정부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가 다시 군복을 입은 경우는 있지만 순수 민간인이 북한군 고위직 장성에 임명된 예는 없다. 예외라면 김정일이 1992년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원수 칭호를 받은 것뿐이다. 김정은의 대장 발탁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뒤 주민들을 상대로 그를 ‘김 대장 동지’로 선전했다. 그러나 김경희와 최룡해, 김경옥의 장성 임명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놀랄 만한 것은 김경희의 임명. 북한 역사에서 여성 장성은 단 5명뿐으로 모두 한국군의 준장에 해당하는 소장 칭호를 받았다. 따라서 이번 임명에 대해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 시스템이 비교적 잘 작동하던 1992년, 김정일이 원수로 임명됐을 때조차 주민들은 “소꿉시절 군사놀이를 했던 경험이 고작인 사람이 원수라니 기가 막힌다”는 뒷말을 주고받았다. 하물며 주민들의 충성심이 다 사라져버린 현재 주민 반응이 어떠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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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3대세습 체제로]장성택은 “처남 김정일 위해서라면” 몸낮춘 2인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그는 1946년 강원도 천내라는 곳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김일성대에 입학해 김경희와 한 반이 되면서 운명이 바뀐다. 말솜씨가 좋은 호방한 미남형인 장성택에게 반한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일약 ‘부마’ 자리에 올랐다. 이후 김정일의 눈에 들기 위해 젊어서부터 열성을 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외교담당 과장 시절인 1970년대 중반엔 김정일에게 원기회복관이라는 명목으로 호화 관저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충성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외교관들이 마약을 밀매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던 그는 1978년 여인들을 끼고 파티를 열다가 김정일의 분노를 사 2년 동안 강선제강소에서 노역하기도 했다. 이후 1989년 노동당 청년사업부장으로 재기해 1995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으며 김정일의 매제라는 후광을 업고 1980년대부터 ‘장 부장’으로 불리며 직책에 관계없이 권력 2인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2004년 또다시 시련을 맞았다. 장성택이 주요 국가직책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것에 불안을 느낀 김정일이 ‘분파행위’와 ‘호화방탕행위’ 명목으로 좌천시킨 것. 장성택의 사람도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지방으로 실각됐다. 그러다 2006년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했다. 두 번씩이나 김정일의 분노를 사 밑바닥 삶을 살아본 장성택은 이후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구축 과정에서도 김정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추어 절대 충성할 것으로 보인다는 후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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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3대세습 체제로]北 3대세습 김경희-장성택 섭정 시대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대장으로 임명돼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고 고모 김경희가 북한군 대장에 임명되면서 ‘김정일 가족 경영체제’가 구축됐다. 지금까지는 주요 직책에 형식상 측근들을 임명해 좌지우지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방식도 가족이 주요 직책을 맡아 운영하는 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족경영 체제 구축의 핵심에는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이 있다. 특히 김경희가 대장으로 승진해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점이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은 이미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북한 공안기관을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6월에는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보좌하기 위해 부부 후견인 김경희와 장성택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경희는 김정일도 못이기는 ‘독한 카리스마’의 여동생여성 중 처음으로 대장 칭호를 받은 김경희가 김정일과 핏줄을 나눈 유일한 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이며 장성택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간 김경희의 과거 행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김경희는 1946년 5월 30일 김일성의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김정일(어릴 적 러시아식 이름은 유라)과 슈라로 불린 둘째 오빠가 있었지만 슈라는 김경희가 태어나고 몇 달 뒤 연못에 빠져 숨지는 바람에 얼굴조차 모른다. 세 살 때인 1949년에는 생모 김정숙마저 출산 중에 숨진다. 이후 김성애가 의붓어머니로 들어오면서 김경희는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김경희의 외모나 성격은 생모 김정숙을 쏙 빼닮았다고 한다. 김정숙은 빨치산 시절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도 빨래한 김일성의 속옷을 몸속에 품어 체온으로 말리는 헌신으로 사랑을 쟁취한 ‘독한’ 여성이었다. 모전여전인지 김경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남편 장성택과의 결혼 전 연애과정이다. 김경희는 김일성대 경제학부 재학 시절 당시 학부 사로청위원장이었던 장성택에게 빠졌다. 하지만 군부 출신의 사위를 바랐던 아버지 김일성과 오빠 김정일은 둘의 만남을 반대하면서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아예 추방시켰다. 하지만 김경희는 주말마다 아버지 차를 직접 몰고 원산까지 내려가 장성택의 기숙사에서 빨래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김경희의 고집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성택과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자식도 없어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는 1980년대부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회고록에서 ‘김경희가 양주를 와인 들이켜듯 마셨고 술주정이 고약했으며 이럴 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 남편 장성택을 매우 앙칼지게 대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성택, 더 마셔” 하며 부하나 가정부를 대하듯 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엔 장성택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고 한다.김경희는 오빠가 후계자로 임명된 뒤 노동당 국제부 과장과 부부장을 지냈으며 1987년에 노동당 경공업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경공업부장은 권력의 핵심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자리다. 하지만 김경희는 직책과 상관없이 오빠를 위해 지금껏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막후에서 수행해왔다. 특히 김정일이 성혜림-김영숙-고영희-김옥 순으로 여인들을 바꾸어가는 동안 모든 뒤처리를 감당했다는 후문이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김정남이 태어나자 이 소식이 아버지 김일성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준 것도 그였고, 김정일이 고영희에게 빠지자 성혜림을 모스크바에 보낸 사람도 김경희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의 여인들은 시누이인 김경희에게 꼼짝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김정일의 자식들도 고모인 김경희의 큰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 장성택의 형과 동생, 누나의 자녀들 혼사도 직접 챙겨왔다고 한다.이렇게 로열패밀리를 직접 관리해온 김경희는 이제 추가로 역할을 떠안은 셈이다. 조용한 후원자에서 벗어나 조카 김정은이 무난히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게 적극적인 후견인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 김경희가 급부상한 배경을 살피면 후계 문제에 관한 한 장성택도 완전한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北, 김정은 후계 공식화▲2010년 9월28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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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요직 당조직지도 1부부장에 최룡해 기용”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61·사진)가 28일 열릴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핵심 요직인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기용될 것이라고 대북 단파라디오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이 24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북한 내 고위급 통신원’을 인용해 “김정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이 후계자로 등장하는 시점에 최룡해가 당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에 발탁된다는 것은 그가 앞으로 김정은의 최측근이 된다는 의미”라며 “최룡해는 김 위원장과 독대해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 중 한 명이고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오른팔로도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의 조직지도부는 당 간부는 물론이고 군과 내각, 사회단체 등의 간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최고 권력부서다. 최룡해는 ‘빨치산 1세대’ 최현(1982년 사망)의 둘째 아들로 1996년부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를 지냈다. 그러나 1998년 1월 비리사건에 연루돼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 비서로 좌천됐다가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6년 4월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발탁됐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최룡해는 누구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던 ‘태자당 멤버’최룡해는 1949년 김일성 주석의 절친한 빨치산 동료이자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을 지낸 최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현은 1950년대까지도 김일성에게 사석에서 말을 놓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김일성 유일체제 구축에 기여한 공로도 누구보다 높다. 1956년 8월에 일어난 북한 최대의 권력투쟁인 이른바 ‘8월 종파사건’ 때 최현이 회의장에 들어가 권총을 뽑아들고 반대파들의 기를 꺾어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8월 종파사건이란 중국계 연안파와 일부 소련파가 합세해 절대권력자가 돼 가고 있던 김일성을 축출하려고 한 사건. 최현은 1970년대 초반에 후계 문제가 부상할 때에도 김정일의 편에 서서 세습을 반대하는 인물들을 숙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최현은 지금도 북한에서 충신의 본보기로 선전되고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김정일과 최룡해의 인연은 어려서 이웃으로 살면서 시작돼 오랫동안 끈끈하게 이어졌다. 북한판 ‘태자당’ 멤버 중 최선두 그룹이던 최룡해는 김정일을 형처럼 따랐고 그와 똑같은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0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해외교양지도국장을 거쳐 37세인 1986년에 청년동맹 수장 자리에 올랐다.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입당하지 않은 10대 후반∼30대 중반의 청년을 망라하는 조직. 김정일은 자기가 권좌에 오르면 최룡해에게 노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내비쳤다고 한다. 김일성 부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은 최룡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전성기를 이어간다. 1989년 북한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도 그가 총책을 맡았다. 1996년 1월에는 청년동맹의 명칭에 김일성의 이름을 붙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명했다. 당시 청년동맹 소속원은 800만 명이나 돼 청년동맹은 노동당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권력조직이 됐다. 하지만 최룡해는 대규모 아사 사태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막대한 외화를 착복해 매일 밤 향락 파티를 일삼다가 1998년 군 보위사령부의 표적이 돼 숙청된다. 그가 전국에서 아름다운 처녀들을 뽑아 자기 옆에 두고 그중 일부와 변태적인 성행위를 한 사건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사건으로 숱한 사람이 연루돼 처형됐지만 정작 그는 김정일의 특명으로 평양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을 뿐 목숨은 부지한다. 이후 그는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차관급)으로 재기한 뒤 2006년엔 황해북도 당비서로 발탁된다. 하지만 최룡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분노는 지금도 여전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방탕과 퇴폐의 대명사로 낙인 찍힌 인물이 당조직부 1부부장이 되면 김정은 후계체제가 감수해야 할 부담은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임명이 강행된다면 김정일에게 믿을 사람이 얼마나 없는지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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