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이디’ 수치 여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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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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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택연금 7년만에 석방 “모든 민주화세력과 연대”미얀마 반독재투쟁 복귀… 분열전선 재규합 숙제로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마세요.”

14일 미얀마 옛 수도 양곤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사 앞에 모인 지지자 1만여 명 앞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65)가 입을 열었다. 2003년 5월 세 번째 가택연금을 당한 뒤 7년여 만의 대중 연설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적 자유의 기본은 언론의 자유이며 민주주의는 민중이 정부를 견제할 때 이뤄진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전날 수치 여사를 “아무런 조건 없이” 가택연금에서 석방했다.

▶본보 13일자 A21면 참조
석방 임박 아웅산 수치, 민주화운동 재개할까


○ 미얀마, 수치 여사의 ‘운명’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수치 여사에게 미얀마는 ‘운명’이었다. 1988년 위독한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30년에 가까운 해외 생활을 뒤로하고 귀국한 수치 여사를 맞이한 것은 미얀마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었다. 그해 8월 26일 민주화 격랑이 몰아치던 양곤 거리에서 그는 “내 아버지의 딸로서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며 민주화 투쟁이라는 가시밭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영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둔 행복한 여자였던 그를 기다린 건 15년여의 혹독한 가택연금 및 수감생활, 그리고 가족과의 생이별이었다. 1990년 연금 상태의 그가 이끈 NLD가 군사정부 집권 이후 치러진 첫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군정은 그에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마하트마 간디와 미국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존경하는 수치 여사의 비폭력 민주화 운동은 대중 속에서 식을 줄 몰랐다. 미얀마 국민은 그를 ‘귀부인(the Lady)’이라 부르며 사랑하고 존경했다.

군정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면 그를 슬쩍 풀어준 뒤 가둬두기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 그에게 열광하는 미얀마 대중과 그가 가진 엄청난 흡인력을 두려워한 군정은 미얀마를 떠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풀어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국경을 벗어나면 행여 돌아오지 못할까 봐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 때도, 1999년 남편이 영국에서 전립샘암으로 숨져갈 때도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손자들과 얼굴을 맞대본 적도 없다.

○ 미얀마의 만델라가 될 수 있을까

수치 여사는 14일 연설에서 “모든 민주화 세력과 협력하겠다. 여러분은 옳은 것을 지켜나가야 한다”며 사실상 반독재 투쟁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미얀마가 직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국민이 단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국민적 화해를 위해 군정 장군들과도 만날 용의가 있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외신은 수치 여사의 정치적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점쳤다. 지난 21년간 미얀마 정치 지형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7일 치러진 총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수치 여사에게 반발해 일부 NLD 정치인이 이탈하는 등 반독재 전선에 생긴 균열을 바로잡아야 한다. 또 의석의 80%를 석권한 군정의 꼭두각시 정당 격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에서 그와 어떤 협상을 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수치 여사의 해외 대리인 격인 영국인 변호사 제러드 겐서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994년 넬슨 만델라가 풀려났을 때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지금의 미얀마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며 “수치 여사는 이제 겨우 한 발을 뗀 셈이다”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오바마 “그는 나의 영웅”… 국제사회 일제히 환영 ▼

국제사회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에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일본을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석방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성명을 통해 수치 여사를 “나의 영웅”이라고 표현한 뒤 “미국은 그의 뒤늦은 석방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수치 여사의 석방은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했을 일이며 그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프랑스는 석방된 수치 여사의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즉각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으나 관영 신화통신은 수치 여사를 “저명한 정치인”이라고 표현하며 석방 소식을 전했다.

국제기구 수장들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수치 여사에게 깊은 존경과 진심의 인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수린 핏수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사무총장은 “그녀의 석방은 다행스러운 일이며 다시 억류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수치 여사가 완전한 행동과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수치 여사가 수상자 연설을 위해 오슬로에 올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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