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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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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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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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버핏 비서가 버핏보다 세금 더 높아서야…” 연설에 “버핏 비서가 누구냐”

    “대통령의 연설은 한 명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바로 ‘버핏의 비서(Buffett’s secretary)’다.”워싱턴포스트는 1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4억 달러 재정적자 감축 연설 후 이같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부자증세를 촉구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거명하며 “‘버핏의 비서’가 버핏보다 더 높은 세금을 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연설 후 ‘버핏의 비서’는 일약 세간의 화제로 등장했다. 언론들은 “연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버핏의 비서’였다”고 보도했다. ‘내가 버핏 비서’라는 제목의 비디오도 등장했다. 진보운동단체 무브온(MoveOn)이 만든 30초짜리 이 풍자 비디오에는 교사, 간호사, 경찰 등 3명이 출연해 “내가 바로 버핏의 비서”라며 “나는 자식이 3명이나 있고 연봉이 4만 달러밖에 안 되지만 버핏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빨리 의회가 세법 체계를 뜯어고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트위터에서도 화제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내가 버핏의 비서인데 세금에 허리가 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고 살 만하다”는 메시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진짜 버핏의 비서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언론도 진짜 비서가 누구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 하는 분위기다. 다만 미국의 불합리한 세법 체계를 감수해야 하는 상징적 인물로 억만장자 버핏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비서’라는 직업이 등장해 계층 간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 언론 분석에 따르면 버핏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비서일 경우 평균 연봉이 4만∼5만 달러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그에게 부과되는 소득세는 연소득의 15∼25%. 그러나 4600만 달러의 연소득을 올리는 버핏에게 부과되는 소득 세율은 15%에 불과하다. 그의 총소득에서는 투자에 따른 자본소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장기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이 최고 15%에 그치기 때문이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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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藥에 기대다 藥에 쓰러지는 미국

    미국에서 약물 남용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추월했다. 18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미국질병통제관리센터(CDC)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약물 사망자는 3만7485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3만6284명을 넘어섰다. 약물 남용으로 14분에 1명꼴로 숨지는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는 2000년 6.7명에서 2008년 12.7명으로 늘었다. 흔히 코카인, 헤로인 등 불법 약물에 의한 사망자가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의사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하는 진통제, 항우울제 복용에서 많이 발생했다. 2008년의 경우 8년 전인 2000년과 비교했을 때 발륨, 재낵스 등 항우울제 사망자는 284%, 비코딘, 옥시콘틴 등 진통제 사망자는 256% 늘어났다. 코카인, 헤로인 사망자는 각각 68%, 56% 증가했다. 조제 약물은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거나 알코올에 섞어 복용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쉽다. 미국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칵테일 약물(파티에서 환각상태를 즐기기 위해 여러 조제 약물을 큰 그릇에 섞어 한 움큼씩 복용하는 것)’이나 중장년층이 관절염이나 근육통 해소를 위해 진통제를 복용했다가 중독돼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약국들의 경우 2007∼2009년 진통제 조제 건수는 43% 이상 늘었으며 조제량으로 봤을 때는 50% 가까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조제약물은 불법이 아니라는 심리적 안도감이 남용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제약사의 공격적 마케팅에 힘입어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물을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1년 전문의약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할 수 있는 ‘대중(DTC·Direct to Consumers) 광고’가 대폭 허용되면서 ‘의사에게 (이 약에 대해) 물어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약품 광고를 TV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제약사들이 단순 알약뿐 아니라 패치 등 다양한 형태로 조제 약물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것도 남용을 조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기 높은 진통제 펜타닐의 경우 모르핀보다 100배 이상의 강력한 약효를 내지만 패치와 막대 사탕 형태로 판매되고 있어 사용이 용이하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의 한 여성은 하루 동안 펜타닐 패치를 5개나 몸에 붙였다가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 이런 조제 약물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개당 10∼80달러에 쉽게 구할 수 있다. 4월부터 백악관 산하 전미약품통제정책국은 집에 남은 약물을 자진 반납하는 약물수거(drug take-back)를 시행하고 습관적으로 여러 의사들에게 처방을 요구하는 ‘쇼핑형 약물중독자’를 모니터하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에이미 보너트 미시간대 의대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진통제나 항우울제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한 사고를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현재로서는 약물사망을 줄일 효과적 방안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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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지지율 급락 속 경제 好시절 이끈 클린턴 ‘향수’ 급등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취임 후 가장 낮은 43%까지 떨어지자 경제 호시절을 구가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높아지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8일 CBS 시사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아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보다 나은 대통령이 됐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을 겨냥해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술수”라고 비판했다. CNN 인터뷰에서는 “‘버핏세’는 좋은 제안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고통을 이해한다. 그러나 공화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며 오바마 지원 사격에 나섰다. 현재 클린턴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당파를 초월한 연륜 있는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어 공화당 비판발언도 남다른 무게를 갖는다는 게 폴리티코의 분석.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오바마 대통령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선거 전략가였던 제임스 카빌 씨는 15일 CNN 기고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공포(panic)’를 느껴야 한다. 클린턴이었다면 측근들을 모두 해고하고 전략을 완전히 다시 짰을 것”이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현직 대통령을 비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측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배려하기 위해 포럼 개최와 9·11 기념식 이외에는 최근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클린턴이) 언론에 등장할 때는 빌 데일리 현 백악관 비서실장, 진 스펄링 국가경제회의 의장 등 대통령 측근들과 긴밀히 협의를 거친다”고 밝히고 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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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핏세 도입해 적자 감축”… 오바마 ‘부자증세’ 포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판 ‘부유세’라 할 수 있는 ‘버핏세(Buffett Rule)’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백악관에서 이 같은 방안을 포함한 재정적자 감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법안은 연간 100만 달러(약 11억 원) 이상을 버는 부유층의 자본소득에 적용되는 실효세율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은 되도록 세율 하한선을 정하는 방안이다. 이 법안은 부자증세를 촉구해온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이름을 따서 ‘버핏세’로 불릴 예정이다. 버핏세는 현행 세제와 어떻게 다를까. 미국은 세목이 다양하고 복잡해 여러 세금을 합산한 실효세율과 소득세율 간 차이가 있다. 일반 소득세는 과표 구간을 6개로 나누고 구간별 한계세율(최고세율)을 소득이 적은 쪽부터 10, 15, 25, 28, 33, 35%로 정하고 있다. 중산층의 경우 15% 또는 25% 구간이며 연소득 37만9150달러 초과인 개인 또는 가구주가 최고 구간인 35%에 해당한다. 버핏 회장 같은 거부(巨富)들은 이 최고 구간에 해당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거부들의 소득은 자본소득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고정자산 매각 수입 등 장기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은 최고 15%에 그치기 때문이다. 또 사회보장비용을 충당하는 연방세의 경우 연소득 10만6800달러를 넘으면 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버핏 회장처럼 자본소득이 대부분인 ‘슈퍼부자’들에게 적용되는 세율이 중산층보다 낮은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버핏 회장이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지난해 내가 연방정부에 낸 총 소득세 693만8744달러가 많아 보이지만 과세 대상 소득의 17.4%에 불과하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번에 백악관이 마련한 버핏세는 이런 모순을 개선해 연소득 100만 달러가 넘는 부유층에게 적어도 중산층보다는 높은 세율이 적용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그 이하로는 세율을 낮출 수 없는 기준점인 최저세율을 법제화한다. 미 당국자에 따르면 버핏세 해당자는 45만 명 미만으로 추산된다. 2010년 등록된 납세자 1억4400만 명의 0.3%에 불과하다. 버핏세는 재정적자 감축방안으로 추진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구체적인 최저세율을 제시하지 않았다. 또 공화당이 증세에 강력히 반대하는 만큼 버핏세가 법제화될지, 된다면 적자 감축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NYT는 이번 제안이 공화당에 부유층 증세를 수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포퓰리스트’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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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과 바꾼 ‘9·11 순애보’

    플로이드 라스무센 씨(69)는 9·11테러 10주년 추모식 참석을 위해 9일 워싱턴에 왔다.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인공투석을 받아야 하는 그가 미국 서부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동부의 워싱턴까지 여행을 간다고 하자 의사는 극구 말렸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아내를 기리는 추모의 장소에 반드시 함께 있고 싶다”고 했다. 결국 워싱턴 여행을 마친 뒤 11일 포틀랜드 집으로 돌아간 그는 사흘 만에 신장병 악화로 숨을 거뒀다. 16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45세였던 그의 아내 론다 씨(사진)는 펜타곤(국방부 청사)에서 예산 분석가로 근무하다 테러범들이 탄 비행기가 펜타곤에 충돌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펜타곤 인사부서에서 근무했던 라스무센 씨는 다행히 건물에서 일찍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아내는 펜타곤 사망자 184명 중에서 끝까지 유해가 확인되지 않은 5명 중 한 명이었다. 라스무센 씨는 자신만 살아남은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듬해 아내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여성 브렌다 씨와 재혼했다. 하지만 전 부인을 잊지 못하는 그는 재혼 생활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결국은 카운슬링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 브렌다 씨는 전 부인에 대한 남편의 사무친 그리움을 알기에 그의 워싱턴 여행을 반대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남편과 함께 워싱턴에 동행했다. 펜타곤 추모식에 참석한 라스무센 씨는 인공투석을 받지 못해 힘든 상태임에도 웃는 모습이었다. 그는 “대통령과 국민들이 9·11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펜타곤 메모리얼에 마련된 전 부인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를 쓰다듬으며 “테러범들에 대한 분노도 잊기로 했다”고 했다. 포틀랜드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라스무센 씨는 숨을 가빠 하며 힘들어했지만 “이번 여행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아내를 이제야 편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됐다”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여행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마지막 생을 정리하려는 듯 이틀 동안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전화를 했다. 13일 밤 잠자리에 든 후 그는 다음 날 눈을 뜨지 않았다.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아내를 그리며 ‘마지막 여행’을 마친 그는 이제 아내 곁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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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일린, 남편과 코카인 흡입… 결혼전엔 농구스타와 하룻밤”

    내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사진)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책이 20일경 출간될 예정이다. 유명 작가 조 맥기니스의 ‘사기꾼: 진짜 세라 페일린을 찾아서’다. 14일 뉴욕타임스가 입수해 소개한 책 내용에 따르면 저자는 페일린 친구(익명)의 말을 인용해 페일린이 1987년 알래스카 방송국 기자 시절 결혼을 9개월 앞두고 당시 미시간대 농구선수였으며 이후 미국프로농구(NBA) 스타가 된 글렌 라이스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페일린이 평소 흑인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 1990년대 중반 남편의 사업 파트너와 6개월간 바람을 피웠고 이로 인해 남편이 사업을 접었다거나 대학 시절 교수와 마리화나를 피웠으며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코카인을 흡입했다는 내용도 있다. 주지사 시절에는 오후 3시만 되면 퇴근해서 쇼핑을 즐겼다는 경호원의 증언도 있다. 맥기니스는 지난해 알래스카에 사는 페일린의 옆집으로 이사해 동네 주민과 친구 20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책에 언급된 증언들이 정확한 출처 없이 ‘동네 주민’이나 ‘친구’의 얘기라고만 밝히고 있어 신뢰성에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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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뉴욕에 국립 한국戰박물관

    미국 뉴욕에 6·25전쟁의 역사적 의의를 알리고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며 전쟁 기념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들어선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본부를 둔 한국전 국립 박물관(Korean War National Museum) 건립추진위원회는 최근 박물관의 위치를 뉴욕으로 정하고 건립기금 모금 등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고 13일 밝혔다. 위원회 측은 “박물관 위치로 뉴욕을 선정한 것은 역동적이고 여행객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정치·군사적 국제협력 사례인 한국전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밝혔다. 한국전 박물관 건립 계획은 1997년부터 일리노이 주 참전용사들을 중심으로 추진됐으나 기금 마련 어려움 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2009년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의 기업가인 데니스 J 힐리 씨가 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돼 왔다. 특히 6월 일리노이 주 대니얼 리핀스키(민주), 피터 로스캄(공화) 하원의원이 공동 제출한 한국전 박물관 건립 촉구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건립 계획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법안은 2009년부터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임시 개관한 한국전 기념관을 국립 박물관으로 정식 건립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는 15일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건립기금 모금을 위한 캠페인을 열기로 했다. 이 행사에는 힐리 회장을 비롯해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1년이나 됐지만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으로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적절한 존경과 감사가 부족했다”며 “박물관을 통해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한국전의 의의를 미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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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클린 케네디 “당신없이 사느니 당신과 함께 죽겠다”

    “남편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했어요. 우리 부부는 싸운 적이 없답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1963년 11월 남편이 암살되고 수개월 후인 64년 초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을 “전통적인 아내”라고 소개하며 “남편과 함께 백악관에서 살았던 3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1962년 옛 소련이 쿠바에 미국을 겨냥한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했을 때 남편과의 통화에서 “나와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 함께하겠다. 당신 없이 사느니 당신과 함께 죽겠다”고 말하며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표현했다고 한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와 가진 총 8시간 반 분량의 인터뷰 내용은 케네디 대통령 취임 50주년을 기념해 ‘재클린 케네디: 존 F 케네디의 삶에 대한 역사적 대화’라는 제목의 책과 오디오 테이프로 14일 출간될 예정이다. 12일 뉴욕타임스가 입수해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재클린은 케네디 전 대통령을 “친절한 젠틀맨”이라고 묘사하며 자신 앞에서 때때로 울기도 한 인간적인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케네디 전 대통령이 밥을 먹을 때나 목욕할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재클린은 유명 인사들에 대한 혹평도 서슴지 않았다. 마틴 루서 킹 목사에 대해 “위선자(phoney)”라고 하면서 그 근거로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연설을 하기 전날 밤 워싱턴 호텔에서 섹스파티를 열 계획을 세우며 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댔다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도청 정보를 언급했다. 인터뷰 당시 이미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린든 존슨에 대해서는 케네디 전 대통령이 “신이여, 존슨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은 재클린이 남편의 바람기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이에 분개해 맞바람을 피웠다는 내용이 슐레진저와의 인터뷰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NYT는 확인 결과 재클린은 인터뷰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의 바람기를 비롯한 어떤 단점도 얘기하지 않았으며 케네디를 괴롭혔던 애디슨병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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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평화콘서트 한덕수 대사 깜짝 출연

    미국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워싱턴 한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1일 저녁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평화 콘서트’를 개최했다. 오케스트라는 1부에서 미국인들의 애창곡인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연주했다. 이어 중간 휴식에 앞서 사회자가 한덕수 주미 대사를 소개하며 무대로 이끌었고 한 대사는 직접 기타를 치며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열창했다. 한 대사의 노래와 연주는 당초 이날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깜짝 공연’을 펼친 것. 한 대사는 12일 워싱턴 주재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악보를 볼 줄도 모르지만 한 달 동안 코드를 열심히 외워서 기타를 연주했다”며 “그래도 자신이 없어 프로그램에는 넣지 않았다가 마지막 연습에서 한 소절도 틀리지 않아서 자신감을 갖고 무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워싱턴 한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있던 시간에 케네디센터 내 다른 공연장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미 해군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이 공연하는 9·11 추모 ‘희망의 콘서트’가 열렸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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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격자 오바마’ 정열적 연설 부활… “법안 통과시켜야” 16회 촉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8일 ‘일자리 창출 법안’ 제출 연설은 32분 내내 웅변적이고 전투적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유세 기간에 자주 선보였던 힘차고 유려한 연설 스타일이 부활했다”며 “취임 후 차분하고 논리적인 연설을 주로 했던 것에서 벗어나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고 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초반 “당신들은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You should pass right away)”고 강력히 촉구했으며 이 문구를 16회나 반복했다.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should’라는 의무를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해 의원들을 압박했다. 부채한도 증액 협상 내내 정파적 태도를 보였던 여야 정치권을 직접 겨냥해 “정치적 곡예는 그만두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의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등 공격적인 발언을 이어 나갔다. 그는 “다음 선거(대선)까지는 14개월이 남았지만 국민은 14개월을 기다리는 호사를 누릴 만한 입장이 아니다”라며 “우리를 고용해 일을 하라고 보낸 그들(국민)은 도움이 필요하며 그것도 바로 지금 필요하다”고 연설을 끝맺었다. 연설 내내 18차례 기립박수가 나오고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도 수차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반면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공화당 의원들은 별다른 표정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부 공화당 의원은 “연설이 별다른 내용 없이 진부했다”면서 연설 직후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개막전이 열린 것에 빗대 “최악의 식전 축하행사”라고 혹평했다. 이날 연설에서는 한국이 두 차례 언급돼 주목을 끌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같은 곳에서는 교사를 증원하는데 우리는 해고하고 있다”며 “이 법안을 통과시켜 수천 명의 교사를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며 “미국인들이 기아나 현대자동차를 살 수 있다면 한국인들도 포드, 쉐보레, 크라이슬러를 운전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의회는 FTA 비준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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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그후 10년]“뉴욕-워싱턴 겨눈 테러정보 포착”

    9·11테러 10주년을 앞두고 미 전역이 추모분위기에 젖어든 가운데 미국 내 테러 공격 정보가 입수돼 보안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맷 챈들러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8일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이고 믿을 만한 테러 위협 정보를 입수했다”며 “국민들에게 이번 주말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CNN방송도 행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뉴욕과 워싱턴을 목표로 하는 테러 계획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최근 입수했다”며 “차량폭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테러 수단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 정보당국은 이번 테러 계획과 관련해 3명의 용의자를 조사하고 있으며 1명은 미국 국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 소식통은 “이 3명이 아직 미국에 입국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 정보는 7일 정오께 입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8일 오전 처음 보고를 받은 후 수시로 진전 상황을 보고받고 필요한 경계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경찰 병력이 뉴욕 시에 배치될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캐시 레이니어 워싱턴 경찰서장은 “주요 공공건물에 주차된 소유주를 알 수 없는 차량은 견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CNN방송은 “이번 테러 정보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 시 그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9·11 10주년 테러 기도 정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것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역에서 처음 입수했다”고 전했다. 국토안보부 관계자는 “공항과 다른 교통거점, 육상 및 해상 입국 지점, 연방정부 건물 등에 경찰 병력 추가 배치를 포함한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은 “미 정보당국은 최근 지하드 관련 웹사이트에 9·11 10주년을 맞아 많은 소문들이 오가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며 “이런 소문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테러위협 경보를 발령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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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리-롬니 “일자리 만들 능력 있나” 입씨름

    7일 열린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서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와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일자리 대책, 사회보장제도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날 캘리포니아 주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는 지난달 경선 출마 선언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로 급부상한 페리 주지사가 처음 참가한 토론회여서 관심을 모았다. 토론회는 페리 후보와 롬니 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로 진행돼 다른 6명의 후보는 마치 ‘엑스트라’ 같았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전했다. 일자리 대책과 관련해 페리 주지사는 자신이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내가 지난 3개월 동안 만든 일자리가 롬니 전 주지사가 4년 동안 만든 일자리보다 많다”고 공격했다. 그는 롬니 전 주지사를 가리키며 “사실 (민주당 출신인) 마이클 듀카키스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당신보다 3배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롬니 전 주지사는 “(전임 텍사스 주지사였던) 조지 W 부시도 당신보다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맞받았다. 그는 또 “페리 주지사의 실적은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 풍부한 석유와 천연자원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반박했다. 두 후보는 사회보장제도를 놓고도 격돌했다. 페리 주지사는 “장차 젊은층에게 수급 혜택을 보장할 수 없는 사회보장제도는 거대한 실패이자 ‘피라미드식 사기’”라고 비판했다. 이에 롬니 전 주지사는 “공화당은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해야지, 없애버리자는 후보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공화당 아이오와 스트로폴에서 1위를 차지했던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은 미국의 리비아 공격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개혁법을 비판했지만 자신과 지지기반이 비슷한 페리 주지사와 차별화하지 못했다.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는 롬니 전 주지사의 일자리 창출 실적이 부진하고 페리 주지사의 환경관은 비과학적이라며 두 후보를 공격했지만 큰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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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그후 10년, 삶이 달라진 사람들] 희망

    《 뉴요커 로런 매닝 씨(50·여)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띈다. 온몸을 뒤덮은 화상 자국 때문이다. 화상으로 손이 오그라들어 레스토랑에서 컵을 들 때도 두 손으로 잡아야 한다.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게 컵을 잡으면 어때요.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라며 화상 자국에 대해 “문신이자 전신아트”라는 농담까지 던진다. 》 2001년 9월 11일 캔터피츠제럴드 증권회사 이사였던 매닝 씨는 평소보다 30분 늦게 집을 나섰다. 사무실이 있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엘리베이터 쪽에서 어마어마한 화마(火魔)가 그를 덮쳤다.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죽을힘을 다해 기어 나왔다. 몸의 82%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그나마 얼굴은 비교적 온전했다. 그는 25번이나 수술대에 올랐고 손가락 4개 끝부분을 잘라냈다. 화상 부위가 짓무르면서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었다. 그리고 10년…. 그는 모든 것을 이겨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빌딩에서 기어 나오는데 위에서 시신들이 뚝뚝 떨어졌다”며 “절망에 빠질 때마다 죽는 줄 알면서도 빌딩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처한 상황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감사하는 법도 배웠다. “10년 전 그날 평소처럼 정시에 직장에 도착했다면 나도 106층 사무실에 있었을 테고 그러면 죽었을 겁니다. 지각 출근 덕에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행운인가요.” 그는 최근 자신의 경험담을 쓴 ‘가늠할 수 없는 용기(Unmeasured Strength)’를 출간했다. 표지사진에서도 흉터가 선명한 팔을 그대로 드러냈다. “나의 ‘임무(mission)’는 꿋꿋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9·11로 숨진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항복하거나 뒤로 숨지 않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9·11테러의 직간접적 피해를 본 미국인 중에는 매닝 씨처럼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지난 10년간의 삶을 감사와 행복의 삶으로 바꾼 사람이 많다. 또 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삶을 ‘희망’으로 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세계무역센터에 있는 투자회사 채권 트레이더였다가 테러로 숨진 케빈 윌리엄스 가족이 그런 경우. 윌리엄스는 생전에 야구광이었다고 한다. 2001년 12월 여자친구 질리언과 결혼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희생됐다. 가족들의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기념재단을 만들어 고인의 야구 사랑을 잇기로 했다. 2002년 설립된 케빈 윌리엄스 기념재단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야구 캠프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500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았다. 또 윌리엄스가 다녔던 쇼어햄웨이딩리버 고등학교 야구장을 지역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개축했다. 이 야구장은 지금 ‘케빈 윌리엄스 기념 야구장’으로 불린다. 윌리엄스의 부친 마이크 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살아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심사숙고한 끝에 재단을 만들었다”며 “미래의 꿈인 아이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들의 생전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의 가족은 매년 9월 11일이 되면 야구장에 흰색 금을 새로 긋고 베이스를 깨끗이 정돈하고 야구 방망이와 볼을 홈 플레이트에 가져다 놓지만 야구 게임은 하지 않는다. 윌리엄스의 영혼이 찾아와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야구장을 비워두는 것이다. 테러의 직간접 희생자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트라우마’를 가져다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9·11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플로리다 주 리버뷰 고등학교에 다니는 라자로 두브로크 군(17)은 10년 전 그날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건네준 M&M 초콜릿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초콜릿을 꺼내 보며 자신의 인생 목표를 가꿔 나간다. 앞으로 9·11테러 현장과 가까운 뉴욕 컬럼비아대에 진학해 공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그는 야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9·11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두브로크 군은 10년 전 그날 부시 대통령이 방문했던 플로리다 부커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대통령이 교실로 들어와 책을 읽어주는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대통령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두브로크 군은 그때 대통령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대통령은 다시 돌아와 학생들에게 M&M 초콜릿을 한 개씩 나눠주고 “좋은 학생이 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에 있는 TV를 켜자 큰 빌딩 2개가 불타고 있었다. “좋은 학생이 되라”는 대통령의 말은 두브로크 군의 가슴에 깊게 남았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그는 대학 코스를 미리 공부하고 있으며 교내 레슬링팀 주장도 맡고 있다. 그는 “미국의 나와 같은 젊은 세대 대다수는 9·11을 통해 증오를 배운 게 아니라 삶이 시련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는 ‘희망’을 배웠다”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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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마다 사라지는 패네타 美국방… 집에서 지내려 캘리포니아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사진)이 주말만 되면 워싱턴을 비우고 캘리포니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때가 많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 올 7월 1일 국방장관에 임명된 이래 그는 캘리포니아로 6회 ‘주말여행’을 갔으며 2주 휴가의 대부분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패네타 장관은 캘리포니아 캐멀밸리 지역에 4만9000m²에 이르는 호두농장을 가지고 있으며 부인 실비아 씨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 패네타 장관 측은 금요일 저녁에 캘리포니아로 출발해 일요일 오후 워싱턴에 돌아오는 일정이며 캐멀밸리 집에 기밀 내용을 논의할 수 있는 도청방지 전화와 화상통화 시스템까지 갖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 관리가 필요한 의원도 아닌 행정부 고위관리가 주말마다 워싱턴을 비우는 건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긴급 군사상황을 다뤄야 하는 국방장관의 특성상 잦은 주말여행이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워싱턴 분위기다. 로버츠 게이츠 전 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장관은 각각 미 서부 워싱턴 주와 남부 뉴멕시코 주에 집이 있었지만 일 년에 몇 번 가는 정도였으며 대부분 워싱턴에서 주말을 보냈다. 샘 파 하원의원(민주·카멀)은 “국방장관은 워싱턴에서 가장 일이 많은 자리인데 어떻게 주말마다 캘리포니아를 다녀오는지 놀랍다”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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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그후 10년, 삶이 달라진 사람들] 용서

    미국 뉴욕에 사는 필리스 로드리게스 씨(68·여)는 언제나 오른쪽 팔목에 은색 팔찌를 차고 다닌다. 팔찌에는 ‘그레그’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9·11테러로 사망한 아들 이름이다. 집 서재에도, 냉장고 문에도 스포츠를 좋아했던 아들이 스키나 하이킹을 하며 활짝 웃는 사진이 걸려 있다. 아들이 떠난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사진을 보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서재의 아들 사진 옆에는 한 중년 여성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아이샤 엘와피 씨(64·여).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여인이다. 아들 사진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힘들지만 친구 사진을 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 친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9·11테러 가담자의 어머니다. 엘와피 씨의 아들 자카리아스 무사위(43)는 현재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파트타임 교사였던 로드리게스 씨는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수위에게서 세계무역센터(TWC)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시 31세였던 아들은 이 빌딩 103층 캔터 피츠제럴드 증권회사 부사장이었다. 서둘러 전화기로 달려가니 자동응답기에 “큰 사고가 났지만 괜찮다”는 아들 목소리가 남겨져 있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들 소식을 기다렸지만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외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어머니는 분노와 고통으로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모로코 출신 여인의 기사를 봤다. 그 여인이 바로 엘와피 씨였다. 그의 아들 무사위는 2001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니애폴리스 비행학교를 다니다 테러 발생 3주 전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된 상태였다. 테러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지만 공격 계획을 사전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로드리게스 씨는 엘와피 씨에게서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이었다. 자신의 아들은 테러로 죽고 엘와피 씨의 아들은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으나 똑같이 아들을 잃은 것 아닌가. 1년 후 뉴욕 살인가족화해협회(MVFR)라는 시민단체로부터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미국에 오는 엘와피 씨를 만나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로드리게스 씨가 남편과 함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뉴욕타임스에 보낸 ‘전쟁 반대’ 편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연락이 온 것이다. ‘두 어머니’는 2002년 10월 뉴욕 근교에 있는 한 대학의 빈 강의실에서 만났다. 가해자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제 아들이 직접 테러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이슬람 과격주의에 빠져 미국 사회에 증오의 분위기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아들의 사진을 서로 돌려보며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로드리게스 씨는 엘와피 씨가 프랑스에서 청소부로 일했으며 자녀 4명과 함께 정신이상 증세가 있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러운 아랍’이라는 주변의 조롱을 들으며 자란 무사위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가 이슬람 과격주의에 빠져들었고 아프가니스탄 알카에다 캠프에도 참가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엘와피 씨가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전화와 e메일로 소식을 교환했다. 요리, 바느질,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공동 관심사였다. 주변에선 그런 로드리게스 씨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유가족은 “삐뚤어진 평화주의”라며 “테러의 책임을 테러범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드리게스 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둘 다 똑같이 아들을 잃었는데 나는 동정이라도 받지만 엘와피 씨는 동정조차 못 받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처음에는 아들을 죽인 테러범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지금도 테러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행위를 하게 됐는지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용서가 가능해지더라”라고 말했다. 무사위는 사건 발생 3개월 후 9·11테러 연루자론 처음으로 테러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 로드리게스 씨는 2006년 3월 무사위의 재판 방청을 위해 미국에 온 엘와피 씨에게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제안했다. 무죄를 계속 주장하던 무사위는 재판을 앞두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재판에서 ‘9·11테러 같은 공격이 매일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증언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무사위는 현재 콜로라도 감옥 독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연은 진보성향 주간지 빌리지보이스(2006년 8월), 타임(2009년 7월)에 잇달아 소개됐으며 최근 야후 뉴스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2007년 독일 비영리단체 ‘베르크슈타트 도이칠란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개척정신을 갖춘 인물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콰드리가’ 상을 두 어머니에게 수여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데즈먼드 투투 주교가 얘기했듯이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분노와 증오를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엘와피 씨를 용서하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이 잘못되면 죄책감을 느끼니까요.”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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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그후 10년, 삶이 달라진 사람들] 장벽

    미국에서 태어난 무슬림인 무함마드 엘타헤르 군은 올해 겨우 11세인데 2월 텍사스 주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테러리스트로 몰릴 뻔했다. 아버지와 함께 이집트 여행을 다녀오는 그에게 이민국 심사관은 30분 가까이 ‘이집트 여행 목적이 무엇이냐’ ‘이집트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왜 자주 이집트에 가느냐’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당황해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심사대에서 이민국 사무실로 옮겨 30분가량을 더 조사받은 후에야 가까스로 입국할 수 있었다.아버지 무함마드 씨(45)는 테러라는 단어의 뜻도 잘 모르는 초등학생 아들이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받는 것에 화가 나면서도 9·11 이후 미국내 무슬림들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사는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 자신도 9·11테러 이후 공항에서 다른 탑승객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에 답하고 철저한 짐 검색을 받아야 하며 전신스캐너(알몸 투시기)를 통과하는 등 ‘특별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권에 찍힌 이름이 아랍 계통이고 여행 국가가 이슬람권이면 내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별도의 보안검색이 필요한 인물로 분류된다. 2일 기자가 버지니아 근교 다르 알히즈라 사원에서 무함마드 군을 만나 테러리스트로 몰려 심사를 받은 경험에 대해 묻자 그는 “신경 안 쓴다”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다시 이집트에 가고 싶지 않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상처받은 동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날 사원에서 열린 금요기도회에 참석한 무슬림들은 “9·11 이후 미국 사회에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반이슬람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며 “이슬람은 테러와 직결되는 이미지로 미국인들 사이에 각인됐다”고 입을 모았다.5년 전 소말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보모로 일하고 있는 에이샤 무함마드 씨(24)는 일하러 간 집에서 자신이 머리에 히잡을 두른 것을 보는 순간, 미국인 부모 대부분이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미국 부모들은 이슬람인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기를 꺼린다”고 말했다.10년 전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한 그날 이후 미국에 사는 무슬림 240만여 명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최근 여론 조사기관 퓨리서치가 9·11 10주년을 맞아 미국내 무슬림 10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55%는 9·11 이후 미국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답했다. 2007년 조사 때의 52%보다 높아졌다. 응답자의 52%는 미 정부가 무슬림을 감시와 경계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답했다. 9·11 이전부터 일부 미국인들은 ‘이슬람=테러’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9·11을 거치면서 그런 인식이 결정적으로 굳어지고 확산됐다. 특히 9·11 당시 10대 시절을 보낸 18∼27세의 젊은층에서 부정적 시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9·11 이후 미 정부가 전개한 테러리스트 색출 노력에서 유용한 무기는 이민법이다. 테러 혐의는 기소가 쉽지 않은 반면 이민법이나 비자 체류기간 위반에 따른 체포와 국외 추방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국토안보부는 2005∼2007년 500여 명의 내외국인을 이민관련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대부분 테러 관련 조사를 받아오던 사람들이었다.파키스탄 출신의 환경보호청 직원 와히다 테신 씨(51·여)도 그중 한 명이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와 2001년 시민권자가 된 그는 2004년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돼 추방됐다. 시민권 신청 서류에 정보를 잘못 기입한 것이 공식적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파키스탄에 있을 당시 일했던 단체가 테러와 관련해 미 정부의 내사를 받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미국 사회와 이슬람 사이의 높아진 장벽 앞에서 이를 타파하려는 무슬림들의 노력도 힘겹게 벌어지고 있다. 오클라호마에 사는 바라힌 아시라피 씨(39·여)는 9·11이 터지고 2주일 후부터 히잡을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당시 반이슬람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무슬림 여성들은 일부러 히잡을 벗던 때였다. 그의 남편은 9·11 당시 사망한 32명의 무슬림 중 한 명으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맨 위층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 이슬람 동족에게 남편을 잃은 그가 히잡을 쓰기로 한 것은 ‘이슬람 교리는 평화를 존중하며 폭력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히잡을 쓴 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야유를 받고 차에 깡통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파와즈’라는 본명보다 ‘토니’라는 미국식 이름을 즐겨 사용했던 팔레스타인 출신 이즈마엘 씨(50)는 9·11 이후 자신의 본래 이름을 다시 쓰고 있다. 미국의 반이슬람 정서를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이슬람 혈통을 감추기보다 분명히 밝히기로 한 것이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내 이름을 정확하게 소개하는 것도 미국 사회와 이슬람 간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존 에스포지토 조지타운대 종교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미국 내 무슬림은 주류 사회에 융합되고 싶어 하지만 반이슬람 분위기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이슬람 혈통을 숨기거나 이슬람 과격사상에 물드는 극단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이슬람단체연합회 회장을 지낸 조하리 압둘 말리크 히즈라 씨는 “무슬림은 미국에 수많은 사원, 학교, 주민센터를 세웠지만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다”며 “바깥 세계로 나와 더욱 이슬람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 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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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이 형용사가 된 케인스-마오-마키아벨리… “실제 삶은 이름값 못해”

    케인시안(Keynesian), 마오이스트(Maoist),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 프로이디안(Freudian)…. 자신의 이름이 형용사가 될 정도로 역사상 중요한 성과물을 내놓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추적해 보면 자신이 주창한 이론이나 성과물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는 1일 이렇게 ‘이름값’을 못하는 인물로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빅토리아 영국 여왕, 소설가 에인 랜드, 토머스 제퍼슨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8명을 소개했다. 마오이스트는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로 회색 노동복 차림의 마오쩌둥 전 주석은 근면한 노동자의 표상 같은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노동복은 상하이(上海) 최고의 재단사가 수선을 담당했으며 새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플까 봐 부하들에게 먼저 신게 해 길을 들인 뒤 자신이 신었을 정도로 그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했다. 노동자들이 궁핍할 때 그는 각종 음식을 유럽에서 공수해서 먹었으며 50개의 저택을 중국 각지에 두었다. 케인시안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재정 지출로 경제회복을 이룰 때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나 실제로 케인스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4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마키아벨리안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권모술수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피렌체 정부에서 근무했던 마키아벨리는 정직하고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공무원이었다. 친구들은 그의 착한 심성을 이용해 돈을 빌려가 갚지 않았으며 그는 죽은 여동생의 아들을 데려다 키웠을 정도로 인정이 많았다. 이 밖에 무의식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실제로 심각한 코카인 중독자였으며, 근엄하고 책임감 있는 여왕으로 알려진 빅토리아 여왕은 실제론 자유분방하고 바람기 많은 여성이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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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BI ‘9·11 증거물’ 60점 첫 공개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테러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물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워싱턴DC 뉴지엄에서 2일부터 올해 말까지 전시되는 전시물은 총 60여 점으로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남쪽 건물에 충돌했던 유나이티드175 항공기 엔진 잔해 2개 등 테러 관련 증거물과 휴대전화 무선호출기 같은 희생자들의 유품이 포함돼 있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2월 ‘신발 테러범’ 리처드 리드가 아메리칸항공 63편에 탑승해 테러에 사용하려다 적발된 플라스틱 폭탄이 담긴 등산화도 공개됐으며 당시 승객들이 승무원과 힘을 합쳐 테러범을 제압했을 때 사용된 벨트들도 전시됐다. FBI가 오사마 빈라덴이 주도한 각종 테러 사건을 조사하면서 찾아낸 증거품들도 나왔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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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FTA처리 내달로 미뤄질 듯… 美하원 잠정연기 합의, 국회 외통위도 상정 안해

    여야는 1일 미국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의회 제출 시기에 맞춰 비준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외통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비준안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미 의회가 한미 FTA 이행법안 처리를 10월 이후로 잠정 연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정을 미뤘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 하원의 민주 공화당 지도부는 최근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FTA 이행법안 표결을 10월 중순에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미 의회의 9월 회기에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 재정적자 감축방안 마련, 9·11테러 10주년 행사 등 현안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미국 의회의 일정이 객관적으로 명확해지면 여야의 의사를 존중해 위원장이 상정 일자를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 의회의 일정이 확정된 후에도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직권 상정해 외통위에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도 “미국의 처리 시점에 맞춰 비준안을 상정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며 “그때는 상정을 저지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미 FTA 비준안의 외통위 상정은 일러야 이달 말이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 20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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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테러 때 우리가 첫 출격” 주방위군 조종사들이 말하는 ‘10년 전 그날’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텍사스 공군 내셔널가드(주방위군) 147정찰비행단 소속 롤란도 아길라 중령은 휴스턴 엘링턴필드 기지에서 TV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당장 멕시코 만으로 날아가 “항공기를 호위하라”는 명령이었다. 호위해야 할 항공기는 대통령이 탑승한 에어포스원이었다.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가 테러 소식을 듣고 워싱턴으로 귀환하려다가 에어포스원도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인근 멕시코 만으로 기수를 돌리던 중이었다.아길라 중령은 F-16 전투기를 몰고 멕시코 만으로 급히 날아갔다. 텍사스에서 가까운 루이지애나 박스데일 공군기지까지 에어포스원을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미 역사상 에어포스원이 전투기의 호위를 받은 실제상황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의 전투기는 공중 급유를 받아가며 2시간 반 만에 에어포스원을 무사히 박스데일에 착륙시켰다.8월 30일 메릴랜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내셔널가드 9·11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9·11테러 당시 워싱턴 뉴욕 영공을 지켰던 조종사들이 직접 나와 F-16 전투기의 출격을 재연하고 기자들과 당시의 기억을 공유하는 자리였다.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아길라 중령은 “앞쪽에서 호위하는 동안 에어포스원으로부터 ‘더 속도를 내라’는 지시를 수차례 받았다”며 “부시 대통령 일행은 박스데일 공군기지에 착륙하자마자 곧바로 대국민 연설 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연방항공국(FAA)이 미 전역에 항공기 운항 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하늘에 떠 있는 비전투 항공기는 에어포스원밖에 없었다”며 “당시 전투기에서 본 하늘은 무섭도록 고요했다”고 술회했다.9·11 때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대기하고 있던 워싱턴 내셔널가드 133비행단 소속 마크 새스빌 대령에게는 펜타곤(국방부 청사)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F-16 전투기는 펜타곤 폭격 후 가장 먼저 워싱턴 상공에 출격한 항공기였다. 그는 “공중에 떠 있는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하고 이를 거부하는 항공기는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요격해야 할 항공기가 없기만을 바랐다”고 말했다.델라웨어 내셔널가드 합동참모본부장을 맡고 있는 캐럴 티먼스 준장(여)은 9·11 당일 민간 항공기인 아메리카에어라인 조종사로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셔널가드 군인은 일 년에 일정 기간 소집 훈련을 받고 나머지 기간에는 생업에 종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집 기간이 아닌 동안에는 민간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한다.티먼스 준장은 “활주로를 따라 막 이륙하려는 순간 갑자기 관제탑으로부터 대기 지시가 내려오더니 중지 명령으로 바뀌었다”며 “관제탑도 월드트레이드센터 폭발이 테러 공격인지 단순 사고인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다”고 말했다.이날 기자와 만난 조종사들은 “9·11의 교훈은 미국이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며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지만 테러대응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군인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법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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