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에 기대다 藥에 쓰러지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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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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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남용 인한 사망자 수… 교통사고 사망자 첫 추월

미국에서 약물 남용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추월했다. 18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미국질병통제관리센터(CDC)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약물 사망자는 3만7485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3만6284명을 넘어섰다. 약물 남용으로 14분에 1명꼴로 숨지는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는 2000년 6.7명에서 2008년 12.7명으로 늘었다.

흔히 코카인, 헤로인 등 불법 약물에 의한 사망자가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의사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하는 진통제, 항우울제 복용에서 많이 발생했다. 2008년의 경우 8년 전인 2000년과 비교했을 때 발륨, 재낵스 등 항우울제 사망자는 284%, 비코딘, 옥시콘틴 등 진통제 사망자는 256% 늘어났다. 코카인, 헤로인 사망자는 각각 68%, 56% 증가했다.

조제 약물은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거나 알코올에 섞어 복용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쉽다. 미국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칵테일 약물(파티에서 환각상태를 즐기기 위해 여러 조제 약물을 큰 그릇에 섞어 한 움큼씩 복용하는 것)’이나 중장년층이 관절염이나 근육통 해소를 위해 진통제를 복용했다가 중독돼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약국들의 경우 2007∼2009년 진통제 조제 건수는 43% 이상 늘었으며 조제량으로 봤을 때는 50% 가까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조제약물은 불법이 아니라는 심리적 안도감이 남용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제약사의 공격적 마케팅에 힘입어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물을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1년 전문의약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광고할 수 있는 ‘대중(DTC·Direct to Consumers) 광고’가 대폭 허용되면서 ‘의사에게 (이 약에 대해) 물어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약품 광고를 TV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제약사들이 단순 알약뿐 아니라 패치 등 다양한 형태로 조제 약물을 시장에 내놓고 있는 것도 남용을 조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기 높은 진통제 펜타닐의 경우 모르핀보다 100배 이상의 강력한 약효를 내지만 패치와 막대 사탕 형태로 판매되고 있어 사용이 용이하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의 한 여성은 하루 동안 펜타닐 패치를 5개나 몸에 붙였다가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 이런 조제 약물들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개당 10∼80달러에 쉽게 구할 수 있다.

4월부터 백악관 산하 전미약품통제정책국은 집에 남은 약물을 자진 반납하는 약물수거(drug take-back)를 시행하고 습관적으로 여러 의사들에게 처방을 요구하는 ‘쇼핑형 약물중독자’를 모니터하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에이미 보너트 미시간대 의대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진통제나 항우울제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한 사고를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현재로서는 약물사망을 줄일 효과적 방안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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