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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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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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톱스타 여배우의 죽음

    북한에선 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위 간부나 부자들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대중의 사랑을 받던 연예인이 사라지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도 크고 화제가 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갖가지 소문만 무성하다. 8년 전인 2013년 박미향이란 여배우도 갑자기 사라졌다. 한국 언론들은 박미향의 실종에 대해 화폐 교환 실패의 희생양이 돼 2010년 공개 처형된 박남기 전 노동당 재정경제부장의 친척이라 숙청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최근 입수한 북한 비밀문서에 박미향 실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가 실려 있었다. 영상 시청을 단속하는 ‘109상무’라는 조직이 작성한 ‘콤퓨터(컴퓨터)에 입력시키지 말아야 할 전자화일(파일) 목록’인데, 금지된 북한 영화·음악 목록이 19페이지에 빼곡히 적혀 있다. 박미향의 대표작인 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는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쳐지는 영화, TV극’이라는 10번째 단속 항목에 올라 있다. 박미향은 왜 ‘역적들과 그 관련자’에 포함됐을까. 2007년 개봉된 한 여학생의 일기는 박미향을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다. 신세대 북한 여고생이 과학자 아버지와 그를 내조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빚다가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선 김정일이 직접 영화를 다듬어 명작으로 탄생시켰다고 선전했다. 김정일이 영화를 극찬하며 ‘모든 주민이 다 보게 하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전 주민이 의무적으로 관람했다. 이 영화는 칸 국제영화제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단골로 상영됐다. 서구 지역에서 일반 상영된 첫 북한 영화였다. 영화의 성공으로 박미향은 신세대 스타가 됐다. 그렇지만 불과 6년 뒤에 은막에서 사라졌다. 최근 관련 내막을 잘 아는 소식통을 통해 박미향의 숙청 비화를 들었다. 박미향의 부친은 박광철 외무성 간부처장(인사처장)이었다. 외무성 인사처장은 매우 힘 있는 자리다. 북한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인 외교관들의 해외 파견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박광철은 딸을 밀어줘 영화 주인공까지 만들었고, 김정일의 극찬까지 받았다. 박미향이 뜨자 많은 남자들이 접근했다. 마침내 당대의 인기 배우 이룡훈이 그의 애인이 됐다. ‘평양날파람’이란 영화로 뜬 이룡훈은 연기를 잘해서라기보다는 돈이 많아 배우가 된 경우다. 북한 영화계는 촬영비나 소품비가 부족해 부잣집 자식들이 돈을 대고 영화 주연을 꿰찬다. 일본 귀국자 출신인 이룡훈은 부잣집 자식들을 거느리고 고려호텔 등 고급 호텔과 식당을 주름잡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애인을 한순간에 빼앗겼다. 박미향을 뺏어간 남자는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오른팔인 이룡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당시 노동당 행정부는 돈과 권력을 다 움켜쥔 무소불위의 파워를 갖고 있었다. 이룡하의 아들이 낙점했으니 이룡훈도 어쩔 수 없었다. 박미향은 이룡하의 며느리가 됐다. 그런데 2013년 12월 장성택이 공개 처형됐다. 앞서 11월 말에 그의 심복인 이룡훈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 장성택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 장성택 조카사위인 최웅철은 비밀 처형됐다. 이룡훈의 며느리인 박미향은 가족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됐다. 수용소에 끌려가면 제아무리 잘나가던 사람이라도 짐승 취급을 받게 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수용소 간부들의 성노예가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얼마 뒤 평양 고위 간부들 속에선 박미향이 수용소로 끌려가다 차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차피 자살을 하나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다시 나오지 못하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나 별 차이는 없다. 박미향은 1990년대 최고 스타였던 최웅철과 똑같은 운명이었다. 최웅철은 장성택 맏형 장성우의 딸이 그와 살겠다고 낙점하는 바람에 애인과 결별하고 장성택 가문의 맏사위가 됐다. 최웅철과 박미향의 비극적 운명 이후 요즘 북한 연예인들은 고위 간부 집안과 결혼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숙청될 위험이 비례해 커지기 때문이다. 결혼에 의한 위험 부담은 조금 덜어낼 수 있겠지만, 사실 북한에서 연예인 자체가 안전한 직업은 아니다. 돈과 권력, 명예를 움켜쥘수록 목을 치는 망나니의 칼날과 가까워지는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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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수하라, 용서한다” 목숨 건 눈치 싸움[주성하의 北카페]

    요즘 북한에선 권력과 주민들 사이에 목숨을 건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자수할 것인가, 하지 않고 버틸 것인가’가 핵심입니다.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먼저 배경을 설명해보겠습니다.지금 북한의 경제 사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사상 최강의 유엔 대북제재로 인해 돈을 벌어오던 주요 수출 품목들이 차단됐는데, 여기에 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1년 넘게 교역마저 차단됐습니다. 올해 2월엔 북한이 무역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중국과의 교역 액수가 3000달러에 불과했습니다.이렇게 대외무역이 꽉 막힌 결과 북한 내부에서 각종 상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외화를 벌어오지 못하니 구매력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다 또 대량 아사 사태가 오는 것은 아닌지 주민들의 불안은 고조되고 있습니다. 또 민생이 어려워질수록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습니다.권력자는 민중의 불만이 커지는데 자기가 줄 것이 없을 때에는 강력한 망치를 꺼내듭니다.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과거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던 시기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고 “선군정치로 위기를 헤쳐 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선군정치란 본질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력한 군부 독제 체제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군을 동원해 불만을 무지막지하게 짓밟은 사례들이 있죠. 1998년 황해북도 송림제철소에서 주민들이 반항하자 탱크까지 동원해 무자비한 처형으로 진압해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6.25전쟁 시기 침투한 적 간첩단이 아직도 준동한다면서 소위 ‘심화조’ 사건이란 것을 조작해 수천 명의 간부들을 처형하고 2만5000여명을 숙청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선 찍히면 죽는다는 공포 분위기에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결국 김정일의 강력한 독재에 근거한 체제 수호 작전은 성공했습니다.지금 집권 10년 차에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김정은은 아버지가 썼던 카드를 그대로 베껴 쓸 생각인 것 같습니다.김정은은 지난달 9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이 위기 상황이란 것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죠. 굳이 이를 선언한 것은 위기라고 알려야 비상 계엄령을 선포할 명분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그리고 1월 노동당 8차 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회의를 부지런히 개최해 간부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한 정신무장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노동당 경제부장도 임명 한 달 만에 날린 것은 ‘찍히면 죽는다’는 공포 분위기를 위로부터 만들어가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가장 중요한 수도 평양의 민심을 통제하기 위해 6만6000세대 공사판을 벌여놓았습니다. 국력을 총동원해 완공한다던 원산해안관광지구 공사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고, 지난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던 평양종합병원 건설도 아직 마무리 못했습니다. 관광단지 하나, 병원하나 완공할 돈이 없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또 어마어마한 공사판을 벌여놓았으니 이상할 법도 합니다.그러나 평양시 건설 카드는 평양 민심, 나아가 전국 민심을 통제하기 위한 속임수이죠. 이것 역시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김정일은 2008년 후계 세습에 착수하는 동시에 “평양에 2012년까지 10만 세대를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당시 총동원령이 떨어져 시민은 물론 평양 22개 대학 전체가 문을 닫았습니다. 대학생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1년 9개월 동안 공사판에 동원됐습니다. “새파란 아들이 또 세습하냐”는 불만을 말할 힘도 없었습니다. 10만 세대 건설을 내걸고 1만 세대도 완공하지 못했지만, 시민들이 건설 중단 명령이 떨어져 안도의 한숨을 쉴 때에는 이미 3대 세습도 마무리됐습니다. 성동격서 작전인 셈입니다.이번에도 공사판을 벌여 놓고 과제를 수행했느니 못했느니 채찍질하면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할 힘까지 다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5만 세대가 완공될 수 있을지 여부는 김정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사회를 통제할 명분도 만들고 이목을 돌리기 위한 대형 공사판도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이제는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인다”는 것을 보여줄 차례입니다. 그래야 주민들이 겁이 나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사람을 죽이려면 명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턱대고 죽이지 않고 정말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죽였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거든요.영화를 보면 악당은 “솔직히 말하면 살려주고, 거짓말하면 처참하게 죽일 것”이라는 식으로 늘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것과 똑같습니다.북한은 3월부터 바로 그 절차에 들어갔습니다.전국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수할 것을 종용하는 각종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살려 준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건 과거의 죄를 캐기 위한 절차가 아닙니다. 앞으로 사람들을 처형할 때 쓸 명분인 것입니다.북한 소식통은 지금 북에서 진행되는 내부 강연 자료를 몇 개 보내왔습니다.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제압소멸하기 위한 투쟁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설데 대하여’라는 강연자료는 ‘중앙비사회주의집중소탕연합지휘부’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조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조직은 김재룡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책임진 신설 조직입니다. 이미 4월에 신의주와 함흥을 대상으로 집중 검열이 시작됐다고 합니다.이 자료를 보면 북에서 각종 범죄가 창궐하고 있다고 고해성사를 한 뒤 어느 한 시에서만 고급중학교 학생 9000여명이 불순녹화물을 본 사실을 고백했고, 3000여명이 기억기(USB, CD 등 저장매체)를 바쳤다고 나옵니다. 요즘 검열이 진행되는 신의주 또는 함흥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강연에는 솔직히 고백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는 사례도 나옵니다.건강에 해로운 화학제를 대량으로 식품에 섞어 판 여성이 등장하는데, 원래대로라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솔직히 고백했기 때문에 당에서 재생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모든 주민들은 높은 공민적 자각을 가지고 자수사업에 적극 떨쳐나서자’라는 강연 자료를 보면 북한이 봉쇄 정책을 펴지 않을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명하며 “한 줌도 안 되는 자들 때문에 너희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결국 앞으로 죽여야 할 사람들은 대중을 고통 속에 빠지게 한 죽일 이유가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선전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자수하면 용서해 준다고 해서 주민들이 그대로 믿을까요. 절대 아닙니다.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있고, 용서 받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또 불법 행위로 돈을 벌었다고 고백하는 경우 그 돈을 범죄 수익이라고 고스란히 빼앗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죠. 여러 명이 연루되면 친구들까지 팔아먹어야 합니다.그런데 입을 닫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이렇게 이례적으로 자수 바람까지 일으켜 용서할 기회를 주었는데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누구의 밀고로 드러나면 처벌은 훨씬 가혹해지는 것입니다. ‘자수할까, 말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5월 들어서 자수 바람이 끝나고 있습니다.앞으로는 ‘피바람’이 불 차례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총성을 울려 인민을 두려움에 빠뜨려야 감히 당과 수령을 향해 불평을 하지 못하고 통제에 고분고분 따를 것입니다.김정은은 집권 이래 고위 간부들은 많이 죽였지만, 일반 주민을 모아놓고 하는 공개처형은 될수록 자제해 왔습니다. 아버지와는 차별되는 인자한 지도자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이젠 달라질 것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공개 처형이 진행될 것입니다.처형되는 사람들은 “당이 준 자수기회를 저버린 역적이며, 대중을 고통에 빠뜨린 원인을 제공한 죽어 마땅한 자”라는 죄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여기서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간부들을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했습니다. 고사총과 화염방사기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처형 방법에는 주민들이 놀라지 않겠죠. 어떤 새로운 끔찍한 처형 방법이 등장해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까요.3년 전 봄날 판문점에서 수줍은 웃음을 보였던 김정은은 이제 없어졌습니다. 그는 지금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과거보다 더 포악한 악당으로 회귀했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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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공개 처형된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

    북한이 광명성절로 기념하는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 저녁 김정은 부부가 만수대예술극장에 나타났다. 오전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뒤 저녁에 경축 공연을 보러 온 것이다. 모든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공연을 관람하는 가운데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훈국가합창단과 주요 예술단체의 예술인들이 출연해 사망한 김정일을 찬양하는 공연을 진행했다. 김정은과 이설주가 공연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날 북한 언론에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여러 사진이 실렸다. 한국 언론은 이설주가 13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북한에선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가 끝난 뒤 꼭 총화사업이란 것을 한다. 김일성 때부터 해 온 오래된 관례다. 총화사업은 김정은이 무엇을 칭찬했고, 무엇을 지적했는지 등을 소개한 뒤 포상과 처벌이 이뤄진다. 북한에선 강연회가 진행되는 토요일에 보통 총화사업까지 겸해 진행한다. 올해는 2월 16일이 화요일이어서 총화사업은 토요일인 20일에 열렸다. 이날 경축공연에 참가했던 각 예술단체들을 대상으로 말씀 전달식이란 것이 열렸다. 여기에선 김정은이 16일 공연됐던 ‘그림자 요술’을 보고 아주 만족했으며 이를 치하했다는 소위 말씀이 전달됐다. 북한에선 마술을 요술이라고 한다. 그림자 요술이란 말 그대로 그림자를 활용해 하는 마술이다. 북한이 해외 장르를 본떠 이번에 처음 관련 작품을 만든 모양이다. 당일 공연 영상을 보니 남성 마술사가 강아지를 들고 나와 천 가리개를 활용해 여성과 바꾸는 등의 마술이 진행됐다. 말씀 전달식이 끝난 뒤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가 주변 지인들에게 농담조로 “별걸 다 치하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의 시각으로 볼 때 그림자 마술은 아주 엉성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휘자가 갑자기 체포됐다. 누군가 그가 한 말을 밀고했기 때문이다. 이틀 뒤 평양시내 예술인들에게 모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김정은 시대에 이렇게 예술인들을 모이게 하면 좋은 일보단 안 좋은 일이 더 많다. 예술인들도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이번에 또 누가 죽을까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처형장에 묶여 있었다. 이틀 전 체포됐던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였다. 그의 이름을 조현우라고 들은 것 같은데, 검색을 해보니 공훈국가합창단에 류현호라는 지휘자가 있었다. 북한 소식통과의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처형된 사람이 류현호인지 또는 조현우라는 지휘자가 따로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지휘자가 공개 처형된 것은 확실하다.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은 수석지휘자 겸 단장인 장룡식 중장 아래 5명 미만의 지휘자가 있다. 단장이 중장이니 지휘자는 소장 또는 대좌(대령) 계급일 것이다. 250명 규모의 합창단 편제가 이렇게 높은 것은 김정일이 공훈국가합창단을 ‘선군혁명의 나팔수’로 지칭하며 “선군정치의 기둥으로 인민군대를 내세운 것처럼 음악 정치에는 공훈합창단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995년 12월부터 2011년 사망할 때까지 63회나 공연을 공식 관람했다. 분기에 한 번씩 찾은 셈이다. 이런 신임을 받던 합창단의 지휘자가 별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부하들 앞에서 끔찍하게 죽었다. 처형은 AK-47 자동소총수 3명이 나와 10m 거리에서 각각 한 개 탄창(30발)을 모두 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90발을 맞은 시신은 들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으니 삽과 마대로 처리해 차로 싣고 갔다고 한다. 들은 내용은 상세하지만 차마 더 이상 자세히 쓰기가 끔찍하다. 그나마 이번 경우는 2013년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등 예술인 10여 명을 처형할 때보단 덜 잔인했다. 그때는 임산부를 포함한 남녀 연예인들을 더 끔찍하게 죽이고, 지켜본 연예인들을 앞줄부터 일어나게 한 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시신 주변을 돌게 해 기절하는 사람과 오줌을 지리는 사람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런 것은 한 번만 봐도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김정은은 2017년 2월 22일 공훈국가합창단 창립 70주년 때 “합창단 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나의 핏방울과 살점처럼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한다”고 했다. 이들이 김정은 말대로 핏방울이나 살점 같아서 그렇게 핏방울, 살점을 다 튀게 잔인하게 죽인 것일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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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사상 최악의 수탈 진행… 황금알 거위의 배를 가르는 김정은 [주성하의 北카페]

    지난달 중국의 대북(對北) 수출액이 1297만 달러(약 144억 8600만원)로 늘었다고 합니다. 2월에 3000달러로 사실상 무역거래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숫자입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북중(北中) 무역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죠. 그런데 무역이라는 것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서 무한정 사올 수만은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북한에서도 뭔가를 중국에 팔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는 수출물품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무역을 금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미 모든 무역기관들에 1월말부터 남포항, 원산항, 해주항을 통한 무역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수출을 못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무역 재개 지시가 내려졌으면 엄청난 물동량이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크지 않은 상선 몇 척이 중국에 가긴 했지만 대부분 북한 무역선들이 지금 항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면 기가 막힙니다. 지금 북한에선 수출업자들에 대한 무지막지한 강탈과 수탈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봐도 요즘처럼 이렇게 빼앗긴 전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최근 평양 5만 세대 건설 공사 등을 벌여놓고 돈줄이 막힌 김정은은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내부 외화를 뜯어내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걸 위해 무역기관 압류, 세금 인상, 외화 장악이라는 3가지 조치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첫째, 김정은은 각 기관들이 갖고 있던 무역기관들을 빼앗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김정은은 수십 년간 국가경제 위에 군림해온 특수기관의 행태에 대해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행위”라며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해 단호히 쳐 갈겨야한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30여년 가까이 북한의 무역은 기관별로 진행됐습니다. 선군 정치를 표방한 김정은 체제에서 돈이 될 자원들을 수출하는 회사들은 대거 군부 소속 외화벌이 기관으로 편입됐습니다. 가령 총참모부 소속 외화벌이 기관, 군수공업부 소속 외화벌이 기관 등으로 분류가 되는 겁니다. 북한 전체 무역회사의 80% 정도가 군부 소속이라는 증언도 있습니다. 그런데 각 기관은 이번에 산하 회사들을 몽땅 국가에 내놓아야 합니다. 회사를 키울 때는 1전 한 푼 보태준 것이 없다가 커지니 잡아먹는 셈입니다. 각 기관들이 보유한 무역회사의 명의는 국가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회사들이 무역을 위해 보유했던 자산들도 눈을 뜨고 빼앗기게 됐습니다. 건물, 토지, 탄광, 자동차 등이 소유주가 바뀌게 됐습니다. 이렇게 갖고 있던 자산을 몽땅 강탈당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부자들을 수탈하던 때와 흡사합니다. 그렇지만 반항도 못합니다. 반항하는 순간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으로 규정돼 총살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 정도 수탈을 당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속출해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북한에선 자살을 하게 되면 나라에 대한 반항으로 보고 가족들이 몽땅 추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살자의 자식은 대학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북한에선 목숨도 내 것이 아닙니다. 둘째 무역거래 세금이 갑자기 크게 오르고 납부 방법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무역거래가 이뤄진 뒤에 당국에 수출입품 수수료와 정책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연말에 경영이익금과 함께 납부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1월 말에 무역 허가와 함께 새로 내려진 지시에 따르면 먼저 수출입품 신고서와 함께 품목별 수량에 따르는 수수료와 유통 금액의 12%에 이르는 정책지원금을 국가에 납부해야만 무역 승인을 해줍니다. 쉽게 말해 과거엔 한국처럼 1년 회계를 작성한 뒤 이윤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바치면 됐는데, 이젠 무역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돈을 내야 하는 겁니다. 걷는 세금도 유통 금액의 12%를 내야 합니다. 이윤의 12%가 아니라 거래대금의 12%입니다. 거기에 기존에 평균 5%로 했던 수수료도 10%로 올려놨습니다. 그래서 1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려면 먼저 120만 달러의 정책지원금과 100만 달러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분기별로 경영이익금을 또 납부해야 합니다. 1000만 달러를 수출하려면 약 250만 달러를 국가에 빼앗기는 셈인데, 이렇게 많이 뜯기고도 수출업자들에게 남는 것이 있기는 할까요.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자랑을 하더니, 사채업자처럼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비율의 세금을 받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수출 상품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세금이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년까지 북한 무역업자들은 전 재산을 수출상품을 사는데 투자를 했습니다. 수출이 이뤄지면 연말에 세금을 내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수료를 두 배로 올려놓고 이와 함께 정책지원금까지 미리 물어야만 무역 승인을 해준다고 하니 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석탄을 비롯한 각종 수출품을 사놓고 국가의 수출허가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수출업자는 눈물을 흘리며 사채를 구하는데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수산물과 산열매 수출업자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을 꾸어와 수출을 진행해야 합니다. 지체하면 갖고 있는 상품이 다 썩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겐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이미 중국에 상품을 수출한 업자들도 아직 대금을 받지도 못했는데 당장 정책지원금과 수수료로 22%의 대금을 납부하라고 하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결국 또 사채업자들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젠 사채업자들에서도 돈을 빌리기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북한 내부에 돈이 있어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 은행을 통하지 않으면 외화거래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강탈입니다. 북한 당국은 중국과 무역에 종사하는 무역업자들에게 거래대금을 반드시 국가 무역은행을 통해 주고 받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과거엔 국가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자금을 전문 중계해주는 업자들이 따로 있었는데, 이들을 화폐이관업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 지시를 어기고 무역은행을 거치지 않고 업자들을 통해 환치기 수법으로 돈을 거래하는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리게 돼 있습니다. 중국에서 현금을 들여오던 것도 지난해 11월 방역 규정을 핑계로 금지시켰습니다. 방역 규정 위반자는 군법에 의해 처벌을 하라는 지시가 하달됐기 때문에 환전상들은 까딱 잘못하면 모든 현금을 몰수당하고 총살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사법기관들에는 화폐이관업자들에 대한 검거 지시가 얼마 전 떨어졌습니다. 검거 선풍을 피해 더러는 붙잡히고, 더러는 잠수를 탄 상황입니다. 북한에서 큰 돈을 움직이는 이관업자들은 사채업도 겸해서 하는데 이들이 잡히거나 숨어버리니 무역업자들이 돈을 빌릴 데가 없어진 것입니다. 만약 당국 의도대로 모든 외화거래가 무역은행을 통해 이뤄질 경우 북한 내부에서 유통되던 모든 달러나 위안화가 국가의 손아귀에 들게 됩니다. 국가 은행과 별개로 주민들 속에서 유통되는 외화의 규모가 파악되게 되는 겁니다. 북한 같은 곳에선 당국에 파악된 돈은 언젠가는 빼앗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돈이 많으면 언젠가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벌였다고 잡혀가고 재산이 몰수되는 것입니다. 수출업자들은 지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미 수출품의 수출허가 신청을 작년 10월경에 모두 마쳤기 때문에 항에 가져다 놓은 물품을 다시 갖고 올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수출을 강행하려니 수출액수의 22%에 이르는 수수료와 정책지원금을 먼저 내야 합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몇 달 내로 수수료와 정책지원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업자들에 한해서 수출품을 압수하겠다는 지시도 하달됐습니다. 다 빼앗길 판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지금 북한의 남포항의 경우 석탄수출업자들이 가져다 놓은 석탄이 산처럼 쌓여있지만 외국으로 빠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석탄 수출이 유엔의 대북 제재 금지 항목에 들었는데 어떻게 수출이 진행되고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는 시늉만 내다보니 북한의 석탄 수출은 제재 여부와 상관없이 암암리에 진행돼 왔습니다. 지난해엔 코로나19 때문에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또 무역회사들이 몰수되고, 이미 준비했던 무역은 늘어난 세금 때문에 못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이 방역 규정을 내걸고 외부에서 외화를 들여오지 말라고 지시를 했지만 한편으로 해외공관들과 해외 공작원들이 김정은에게 바치는 소위 ‘혁명자금’은 전혀 문제없이 들여오고 있습니다. 단둥에서 영사관 버스로 싣고 와 간단한 소독을 하고 바로 평양으로 올라갑니다. 이는 북한이 외화 반입 금지 지시가 사실은 방역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무역업자들의 돈을 다 파악하고 뜯어내기 위한 구실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기존의 무역업자들이 대거 파산하면 북한의 무역이 과연 잘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들의 자산을 몽땅 강탈하면 김정은이 잠깐은 행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큰 손해가 될 것입니다. 내게 큰 이윤이 차례지지 않는 국가 일을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죠. 북한은 지금까지 무역업자들의 활약 덕분에 내부 시장에서 돈이 돌아가며 유지돼 왔습니다. 그런데 경험과 거래 라인을 알고 있던 무역업자들이 대거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북한 상황을 보면 김정은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무역회사들에 몰아친 무자비한 약탈은 결국 지금 김정은의 상황이 그만큼 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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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표준’ 이해도 높일것”… 국가기술표준원, ‘삼두마차’ 가동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미래 세대의 ‘표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속화하는 첨단 기술 경쟁에서 국제표준을 선점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표준 전문성과 대응력을 갖춘 인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표준’은 공인기구가 합의한 규격과 기술 및 가이드라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의 기술이 표준이 되면 다른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잠금 효과(Lock-in effect)가 발생해 해당 산업을 주도하게 된다. 만약 표준 경쟁에 뒤처질 경우 기술 습득과 인증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수출에도 제약이 생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과학기술, 특히 5세대(5G), 반도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첨단기술 표준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인 ‘국제표준올림피아드’는 2008년부터 지난해 15회 대회까지 누적 1만 명의 청소년이 참가한 국내 표준 교육의 대표적인 성과다. 이 대회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태평양지역표준회의(PASC) 등 국제표준회의에서 매년 우수 사례로 언급된다. 국제표준올림피아드는 대회 현장에서 제시된 표준화 과제를 팀원이 함께 해결하며 표준 제정 과정을 체험하고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에는 ‘개인용 이동 수단의 안전성’(중등부), ‘배달 로봇의 안전성’(고등부)을 본선 과제로 각국 참가팀이 국제표준을 개발하고 발표했다. 대상 수상팀의 황승찬 학생(한국과학영재학교)은 “대회 준비로 수많은 표준 문서를 읽으며 특정 분야뿐 아니라 우리 일상 전반에 표준이 널리 퍼져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동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 티파니 시라무르티 학생은 “표준으로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도전적이고 재밌었다”며 “표준에 대한 인식은 물론 창의력과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표준올림피아드’ 성과에만 만족하지 않고 아동과 청소년의 표준 이해도를 높이는 데 목적을 둔 ‘찾아가는 표준교육’과 ‘표준교육 시범학교’도 운영한다. ‘찾아가는 표준교육’은 전문 강사가 학교를 방문해 표준과 표준화, 표준 기반의 안전 지식을 가르친다.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해 온 다산중학교 박슬기 교사(과학)는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온 덕분에 코로나19 상황에도 비대면 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며 “학생들 반응도 좋았다”고 말했다. ‘표준교육 시범학교’는 표준 관련 수업 및 체험 활동을 학교가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해 표준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흥미를 유발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교내 표준 수업 및 관련 동아리 활동을 이끄는 천안고등학교 이대호 교사는 이 프로그램의 큰 성과로 ‘학생의 의식 변화’를 꼽았다. 그는 “표준이 돈, 문화,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아는 학생이 사회에 진출하면 국가 표준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범학교인 용동중학교의 김다은 학생은 “자율주행차 픽토그램(pictogram) 제작 수업을 하며 표준에 관심이 생겼다”며 “기회가 된다면 표준화와 관련된 직업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기술교육단체총연합회장인 한국교원대 이상봉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국제표준올림피아드를 주도하고 세계 최초로 정규 교육과정에 표준 단원을 포함하는 등 명실상부한 표준 교육 주도국”이라며 “다양한 교육 과정과 제도에 활용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교사를 양성하는 등 관련 지원을 꾸준히 넓혀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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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채찍 꺼내든 노예주 “생각할 시간도 못 줘”

    지금 평양에는 대규모 공사판이 펼쳐졌다. 지난달 김정은의 지시로 매년 1만 세대씩 5년 동안 5만 세대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 평양에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는 2500여 세대, 여명거리는 4800여 세대이다. 그러니 5년 동안 매년 미래과학자거리 규모의 4배, 여명거리 규모의 2배를 건설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이미 1만6000여 세대가 추가 건설되고 있다. 강력한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히고, 셀프 방역으로 1년째 국경까지 틀어막았는데 과연 5년 안에 6만6000여 세대를 건설할 수 있을까. 김정은도 지난달 착공식에서 “도전과 장애가 그 어느 때보다 혹심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건설을 하는 것 자체가 상상 밖의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혹심(酷甚)하면 하지 말아야지 왜 하는 걸까. 이를 두고 평양의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분석도 있고, 평양의 민심을 얻으려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는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평양 사람들은 5년 내내 동원을 다녀야 하고, 건설 지원으로 계속 돈을 뜯길 건설은 절대 환영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대규모 건설을 시작한 진짜 속내는 역설적이게도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무역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평양으로 모였다. 무역이 차단되니 평양 사람들의 주머니가 비어 간다. 국경을 폐쇄하니 물가도 급속히 상승한다. 더욱 큰 문제는 무역일꾼부터 시작해 의류 임가공 공장 노동자들까지 평양의 무역 관련 종사자 수십만 명이 무직자가 됐다. 외화를 좀 만지던 중산층이 벌써 1년 넘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고, 점점 버틸 능력이 소진되고 있다. 그러면 김정은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 통치자들은 지방 민심은 크게 개의치 않아도 평양 민심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대규모 건설은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꺼내 든 카드다. 거대한 목표를 만들어 채찍질하며 내몰아야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에게 모여서 살기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시간을 주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생각할 시간도 주지 말아야 한다. 대규모 건설이 시작되면 평양의 이슈가 거기에 매몰된다. 수십만 명이 매일 일찍 도시락을 싸들고 도시 외곽의 건설장에 동원된다. 집에 돌아오면 육체가 고달파 딴생각할 힘도 사라진다. 동원되지 않는 사람들도 매일 지원 물자를 내라는 닦달질과 함께 괴롭힘을 당한다. 기관별로 과제를 설정하고 칭찬과 처벌을 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엔 처벌받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 차게 된다. 아파트가 올라가면 시선은 거기에 꽂히고 층수에 신경을 쓰게 된다. ‘아리랑’과 같은 대집단체조도 알고 보면 같은 이유로 한다. 돈도 안 되는 집단체조를 위해 왜 매년 10만 명의 청소년들이 1년 가까이 엄격한 규율 속에 혹사를 당하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다. 몸이 고달프면 머리가 단순해져 딴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장 반항적이고 사고도 많이 치는 청년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어려서부터 명령에 복종하게 세뇌까지 시킬 수 있다. 올해는 경제난으로 청년뿐만 아니라 온 평양 시민들이 아우성이다. 그러니 모든 연령을 아우르는 동원이 필요하다. 평양 시민 전체를 내몰 일은 대규모 건설밖에 없다. 이 수법은 김정일에게서 배운 것이다. 김정일은 2008년 후계 세습에 착수하는 동시에 “평양에 2012년까지 10만 세대를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시민은 물론 평양 22개 대학 전체가 문을 닫았다. 대학생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1년 9개월 동안 공사판에 동원됐다. “새파란 아들이 또 세습하냐”는 불만을 말할 힘도 없었다. 10만 세대 건설을 내걸고 1만 세대도 완공하지 못했지만, 시민들이 건설 중단 명령이 떨어져 ‘해방의 만세’를 부를 때에는 이미 3대 세습도 마무리됐다. 이번도 같은 수법이다. 계속 하면 약발이 떨어지니 건설은 최후의 수단으로 꺼내 드는 비장의 카드다. 매년 1만 세대를 짓지 못해도 김정은은 상관없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여야 사람들이 마지막 기운까지 짜내게 되고, 체제에 반항할 에너지를 딴 데 쏟는 것이다. 달성하기 어려워야 김정은이 숙청을 통해 공포 분위기도 만들 수 있다. 노예는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말고 채찍질을 하며 내몰아야 반항하지 않는다는 독재자의 통치 방식도 3대째 세습된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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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마스크 1만명’ 北노동당 대회, 소름 돋는 반전[주성하의 北카페]

    “북한이 ‘북한’을 했구나.” 지난 6일부터 8일 사이 평양에서 열린 당 세포비서대회 사진을 보는 순간 든 생각입니다. 각 부문 당 세포비서, 도당과 도급 당 책임간부, 시·군 및 연합기업 당 책임비서, 당중앙위원회 해당 간부 등 1만 명이 회의장에 빼곡히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방역에 몰두하는 가운데, 저렇게 1만 명을 마스크도 씌우지 않은 채 한 회의장에 모이게 할 나라는 단언컨대 북한밖에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북한 전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격리기간도 없이 2박3일간의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군부대처럼 폐쇄된 환경을 유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이해를 할지 몰라도 전국에서 모이면 이야기가 또 다릅니다. 그 회의장에 김정은까지 2박3일간 앉아있었습니다. 이것은 북한에 코로나19가 퍼지지 않았다는 확실한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동안 ‘북한에 코로나19가 퍼져 난리’라고 한국 언론에 심심치 않고 나왔던 기사들은 거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북한의 실정상 코로나19가 퍼졌다면 진단 키트도, 치료제도 거의 없어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었을 겁니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북한에는 코로나19가 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보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1만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회의를 하는 북한이 사실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코로나19 방역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엄격하다는 말보단 사실 잔인하다고 해야 맞습니다. 북한에선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자는 군법으로 처벌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2월부터 지침 위반자를 비밀리에 처형했습니다. 자가 격리기간에 목욕탕을 갔다거나, 격리된 사람을 만나러 갔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지난해 2월 중순부터 두 달 기간에만 무려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형됐다고 대북소식통은 전해왔습니다. 이런 조치는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까지 회의장에 간 것은 분명 코로나19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데, 한편으로 북한 전역은 이동과 모임이 금지되고 위반하면 처벌을 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코로나19 방역은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점이 이번 대회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김정은은 2017년 9월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통과된 뒤부터 사회를 통제할 방법을 계속 연구해왔습니다. 수출이 막히면 외화를 벌수가 없고, 외화가 없으면 물가가 오르고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2019년 12월 22일을 기점으로 해외 근로자들까지 대다수 북한으로 송환되자 김정은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해 12월 말에 노동당 전원회의를 연 김정은은 회의 직전 정경택 국가보위상을 불러 보위성에 김정일 동상을 다시 세울 것을 지시하는 등 보위성에 대폭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는 김원홍 보위상 처형으로 한동안 불신했던 보위성에 다시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였습니다. 보위성에 대한 재신임은 공포통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내부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불안한 민심을 강압적으로 억누르는 것만이 김정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걸 위해 보위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재신임을 받은 보위성은 지난해 상반기에 간첩단 사건을 여러 개 터뜨려 내부에 공포분위기를 확신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습니다. 간첩단보다 더 확실한 북한 내부 군기를 잡을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간첩단 공개와 처형은 공포분위기만 만들지만, 코로나는 이동과 모임까지 차단해 사람들이 불평을 할 기회까지 빼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탄이 난 경제도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 됐습니다. 방역으로 국경을 막다보니 물자가 들어오지 못해 물가가 오른다고 말입니다. 실제 김정은은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국경 폐쇄를 철저히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포비서 대회를 통해 김정은의 내부 통치 방법이 다시 변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핑계도 이제 1년이 넘게 지나가니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게 됐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마스크 없는 1만 명이 모인 세포비서 대회는 통치 방법이 바뀌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렇게 한 자리에 모아놓고 3일이나 회의를 진행한 뒤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질 우려 때문에 모임을 갖지 말라고 하면 말이 먹히겠습니까. 김정은이 찾은 방법도 이번 회의에 답이 있습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 부정부패와의 투쟁입니다. 또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북한에선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부정부패를 했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을 의미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장군님을 믿고 따르지 않고 불만을 늘어놓고 부정부패나 하는 인간들은 죽어도 된다는 통치 논리가 설파될 것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공개 총살이 이어지게 되면 주민들은 시장에서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불만을 이야기할 수가 없게 됩니다. 김정은부터 고난의 행군을 한다고 하는데, 경제난으로 불만을 가지면 반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1월 노동당 8차 대회를 시작으로 3개월 동안 숨차게 이어진 전국 단위 대회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세포비서는 당원 5~30명 정도로 구성되는 당의 최말단 조직 책임자입니다. 당에선 이들보다 더 낮은 직급은 거의 없으니 김정은이 당의 기강을 잡는 일정은 거의 마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군부 초급 지휘관, 청소년 담당 교육기관 등을 불러 정신교육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부 군기를 잡는 와중에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더욱 높아집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도 조만간 윤곽을 드러내겠지만 당장 북한과의 화해무드로 갈 확률은 희박합니다. 미국과의 대화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북한이 선택할 길은 도발입니다. 내부의 투쟁과 함께 경제난의 원인을 미국에 전가하고 적들에게 핍박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주민의 시선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북한의 도발에서 안전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김정은이 언급한 고난의 행군은 투쟁을 의미합니다. 투쟁은 싸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달 김여정은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해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정부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북한의 경제난으로 초래된 내부 불안이 한국의 안보 위기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해야 할 때입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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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코로나 봉쇄 1년, 평양의 이상한 현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을 막겠다며 국경을 봉쇄하고 무역을 중단한 지 1년이 넘었다. 다른 나라가 북한처럼 문을 닫아걸고 1년 넘게 ‘자가 격리’를 했다면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비교적 잠잠하다. 오히려 지난주 김정은은 평양에 5만 채의 주택을 5년 안에 짓겠다며 성대한 준공식까지 열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여명거리 규모(4800여 가구)의 거리를 매년 2개씩, 5년 동안 10개나 짓겠다는 방대한 목표다.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일 것 같은데, 이런 배포를 보이는 것은 내부 경제난이 그리 심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최근 평양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외부의 추정보다 훨씬 상황이 안정적이다.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몰라도 현재까진 민생을 판단하는 여러 주요 지표가 코로나 봉쇄 이전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우선 식량 사정이 더 좋아졌다. 지난 1년 동안 평양에는 배급이 정상적으로 공급됐다. 코로나 봉쇄 이전에는 배급이 들쑥날쑥해 시장에 의존해야 했지만, 평양을 봉쇄하고 시장을 통제하면서 그 대가로 당국은 배급제를 정상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쌀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평양의 현재 쌀 가격은 북한 돈 3000원대로 작년 이맘때보다 30%가량 싸졌다. 물론 식량을 제외한 수입 생필품과 식료품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올랐다. 가령 중국산 식용유는 코로나 봉쇄 직전 5L짜리 1통에 7달러였는데 작년 11월에 20달러로, 지금은 33달러까지 올랐다. 1년 새 5배 가까이로 오른 것이다. 설탕 같은 것은 구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지만 식량 가격만 안정적이면 통치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잘 길들여진 평양시민들은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김정은의 지시에 반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봉쇄에도 식량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걸핏하면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꺼내들려 하는 한국 정치인들은 쌀을 주겠다고 하면 북한이 고마워할 것이라는 철 지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식량과 더불어 전기 사정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고 한다. 요즘 평양은 전기를 하루 17시간 이상 무조건 보장하고 있다. 중국에 수출하던 석탄을 내수용 전기 생산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작년엔 석탄이 있어도 화력발전소 발전기들이 수시로 고장 나 제대로 돌리지 못했는데, 중국에서 발전기 부품만큼은 우선적으로 들여온 것 같다. 전기 사정이 풀리니 교통 문제도 해결됐다. 요즘은 버스가 잘 다녀 과거처럼 정류장에 늘어선 긴 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버스 요금도 재작년만 해도 노선 거리와 버스 종류에 따라 북한 돈 1000∼3000원 사이에서 정해졌는데, 지금은 요금이 평양시내에선 무조건 1000원으로 고정됐다. 전기와 교통 문제만 해결돼도 평양 시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아진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점은 코로나 봉쇄 기간 전자 지불 체계가 광범위하게 도입됐다는 것이다. 이젠 평양 사람들도 한국처럼 휴대전화로 상점, 식당, 택시 등에서 값을 다 치를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렇게 되니 현금을 슬쩍할 수 있어 여성들이 선호하던 수납원이나 남성들에게 선망받던 택시 운전사 직업의 인기가 떨어졌다. 평양에는 전문 운송회사도 생겼다. 과거처럼 개개인이 직접 물건을 나르지 않고도 휴대전화로 배달과 택배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긍정적 변화는 주로 평양에만 한정됐다. 지방은 코로나 봉쇄 이후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 그러나 북한에 ‘평양공화국’과 ‘지방공화국’이란 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비단 지역 차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 김씨 일가가 수십 년 동안 평양에만 특혜를 몰아줬을까. 그 이유는 수도 시민들만 반역하지 않는다면 정권은 끄떡없고, 지방은 폭동이 수십 번 일어나도 진압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코로나 봉쇄 이후 평양의 특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평양 5만 가구 공사를 위해서도 평양과 상관없는 지방 사람들의 등껍질이 벗겨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울먹이며 “고맙습니다”를 17번 되풀이할 때, 광장에 선 평양시민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코로나 봉쇄가 어쩌면 더욱 감격에 겨운 평양시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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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부산물 사료 활용… 소의 가치 재평가 계기 만들 것”

    지난달 제10회 전국한우협회장으로 당선된 김삼주 회장(54·사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위축된 한우 산업을 지키기 위해 우직한 한 마리 소처럼 일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한우 사육두수 증가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한우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로에 지금 서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한우 농가들이 매우 힘든 시기다. 코로나19로 소비는 위축됐지만 사료 가격은 오히려 오르고 있고, 여기에 사육되는 한우는 더욱 늘어나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전국한우협회를 이끌게 된 김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받아들이고 한우 가격 안정을 위한 생산자들의 자구 수급조절 노력을 대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우 가격 안정화, 축산환경 규제 피해 최소화, 기업 축산사육 진출 저지, 한우 유통 투명화, 후계 인력 양성, 소통 강화 등 자신이 내건 10대 선거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전국한우협회는 2만8000여 명의 회원이 소속돼 있다. 단일 품목 농민단체 중 최대 규모이며 전체 한우 사육두수의 70%를 협회 회원들이 키운다. 김 회장은 영주시 지부장, 경북도 지회장, 한우자조금 대의원 등을 역임하며 한우산업 지도자의 길을 밟아왔다. 김 회장은 재임 기간(2021년 3월 1일~2024년 2월 29일) 국민에게 소의 가치에 대해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축산이 미세먼지와 메탄가스 배출 등 환경 파괴의 주범인 것처럼 몰려 부정적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은 소가 사람이 사용하고 남은 부산물(쓰레기)을 먹어치우는 지구 지킴이라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최근 코로나19로 가정 내 조리 등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식용유 매출이 20%가량 올랐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기름을 짜내고 버려지는 엄청난 대두(大豆)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환경 폐기물 내지 농업 부산물을 가축 사료로 재가공하고 사료로 활용합니다. 배설된 가축분은 쌀과 채소의 건강한 생장을 돕고, 다 자란 가축은 훌륭한 단백질원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자연 순환적인 가치가 높은 소는 매우 친환경적이면서 경제적인 산업 가축입니다. 반면 소가 생산하는 온실가스 생성량은 매우 미미합니다. 축산 전체적으로 봐도 메탄가스 배출량이 세계에서 생산되는 메탄가스 배출량의 2.7%에 불과합니다. 물론 우리는 가스 배출량과 미세먼지 발생량을 더욱 줄이기 위해 소 사료의 배합비를 조절한다든지, 탄소저감 및 상쇄를 위한 나무 심기 사업 등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우의 모든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한우백서 편찬, 축산 환경문제 해결, 기업자본의 축산업 사육 진출 금지 등도 김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김 회장은 협회 회원들과의 진심을 담은 소통으로 화합을 더욱 다져나가기 위해 1일 1지회장, 5지부장 연락을 일상화하겠다고 말했다. 또 협회 법인폰을 통해 메신저, 문자 등 24시간 열린 협회 민원 창구를 가용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정부도 한우농가에 대한 규제를 해소시켜 주는 등 지원 사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축산 환경 규제를 푸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환경에 대한 고민은 축산업계, 농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부분이고, 농가 스스로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현실적으로 버거운 제도를 도입하고 이행을 강요한다면 개선하고 싶어도 현장에서는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규제를 위한 규제, 행정편의주의적 태도는 농민들의 원성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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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만 세대 건설, 우린 죽었습니다” 평양에서 온 편지[주성하의 北카페]

    요즘 김정은이 주택 건설에 정신이 완전히 꽂혔습니다. 25일 고위 간부들을 우르르 데리고 평양 보통문 주변 강안지구 주택단지 부지를 시찰했습니다. 이곳에 호안다락식주택구를 건설한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23일에도 사동구역의 송신지구와 송화지구 착공식에 참석했습니다. 강안지구와는 별개로 올해 1만 세대를 짓고 앞으로 5년 동안 매년 1만 세대씩 모두 5만 세대를 짓겠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착공식에서 한 연설에서 “이미 건설 중에 있는 1만6000여 세대의 살림집까지 포함하여 거의 7만 세대의 살림집이 생겨난다”고 밝혔습니다. 평양에 앞으로 5년 안에 7만 세대가 건설되면 세대 당 식구를 4명으로 계산해도 28만 명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새로 건설됩니다. 평양시 인구가 25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28만 명이면 10% 이상이 살 수 있는 규모로 매우 방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서울과 비교해보면 서울 전체 주택수가 350만 채인데, 10% 이상이면 대략 40만 세대가 신규 건설되는 셈입니다. 이번 ‘2·4부동산대책’에서 서울에 32만 세대를 공급하겠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큰 대책인 것이죠. 이렇게 김정은은 평양시 주택난을 완전히 풀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나섰습니다. 사실 매년 1만 세대 건설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평양에 건설된 가장 대표적 거리가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입니다. 그런데 미래과학자거리는 2500세대, 여명거리는 4800세대 규모입니다. 즉 김정은은 매년 미래과학자거리와 같은 규모의 거리를 4개씩, 여명거리와 같은 규모의 거리를 2개씩 건설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렇게 방대한 건설을 5년 내내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규모 주택단지들이 건설되면 평양시민들은 환영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1만 세대 건설을 선포한 다음날 평양시민인 한 간부가 저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눈앞이 새까맣다는 겁니다. 그가 저에게 한 이야기를 그대로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저 건설에 이제부터 백성들의 등껍질이 또 벗겨지게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미래과학자거리, 창전거리, 려명거리 건설 방식을 보면 한결같이 똑같았습니다. 기본 골조공사까지만 전문 건설부대가 동원되고 마감 미장부터 마무리까지는 또 성·중앙기관들에 나눠줄 것입니다. 이 나누기가 그대로 주민들의 동원과 세금으로 연결됩니다. 아주 전통적인 건설 모델인 것입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주택뿐만 아니라 발전소 건설, 공장 건설 등 북에서 뭘 하는 것을 보면 다 기업소별로 나누기입니다. 그리고 그 참가 정형을 통해 충성심을 평가한다면서 수탈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여론이 나빠지면 누가 세외(稅外) 부담을 시키라고 했냐며 누굴 또 처형시키겠죠. 이번에 건설하는 규모면 성 단위로 건설상무 기구를 조직하고 교대제로 돌격대 동원과 지원이 진행돼야 합니다. 이렇게 5년 동안 진행하면 백성들에게 뭐가 남아날지 걱정입니다. 가뜩이나 재앙들이 겹쳐 국고도 텅 비었는데, 이 건설 때문에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부담만 엄청나게 커지게 될 겁니다. 빨치산의 후손들이라 시원시원한 정규전은 못하고 유격전에만 재미 들였는지, 국가시스템은 안 바꾸고 편법으로 다 해결하려 하네요. 정말 나라에서 하는 꼴이 눈이 감기고, 앞으로 나와 가족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와 이렇게 하소연해봅니다.” 저는 이 간부의 이야기가 100% 이해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평양에서 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김정은이 특정 지역을 지정하며 여기에 거리를 조성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부대 등을 투입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군인들은 지방에서 올라와 평양에 천막 등을 치고 임시로 거주하는 인력들입니다. 이들은 늘 허기에 시달립니다. 밥을 충분히 주지 않기 때문이죠. 북에선 군인을 ‘허가받은 강도’ ‘허가받은 도둑’이라고 합니다. 떼를 지어 가정집을 습격해 훔쳐 가는데, 워낙 무리로 움직이다보니 잡기도 어렵고, 또 겨우 잡아도 처벌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실정이니 평양에 너무 많은 군인들을 투입하면 치안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적당한 인원만 동원하고, 나머지는 평양시민들을 노력 동원시켜 인력 문제를 건설합니다.김정은이 엄청난 규모의 주택단지를 짓는다고 호언장담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1년 5월에도 ‘수도 10만 주택 건설’을 내걸고 시민 총동원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때는 특히 대학생들이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 평양엔 22개 대학이 있었는데, 대학들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교원과 학생들은 능라도유원지, 창전거리, 력포구역의 10만 주택 건설장에 동원됐습니다. 당초 1년 예정이었지만 동원령은 2013년 2월까지 지속됐고, 대학생들은 무려 1년 9개월을 건설노동자로 일한 셈입니다. 이 때문에 4년 만에 마쳐야 할 대학과정을 6년 만에 마쳤습니다. 이 때도 살림집 건설에 국가 지원은 일절 없었습니다. 한 개 학부에 대략 10층짜리 아파트 한 동을 짓도록 과제를 주고 알아서 완공하라는 식이었습니다. 인력은 대학생들로 충원됐지만 자재를 살 돈이 없었죠.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 일은 ’세외부담‘이라며 금지했기 때문에 대학들은 꼼수를 썼습니다. 100달러를 내면 열흘 휴식을 줬습니다. 지친 학생들이 앞다퉈 돈을 냈습니다. 심지어 10만 달러를 내면 노동당에 입당까지 시켜주었습니다. 북한에서 대학생의 노동당 입당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재 확보를 위해 당원증을 판 것입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집의 자제들은 노동당원이 됐고, 졸업할 땐 당원이란 명목으로 군에도 안 가고 제일 좋은 부서에 배치됐습니다. 대학생들이 많이 쉬어 인력이 부족하게 되면, 쉬는 학생들이 낸 돈으로 군인을 수십 명씩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들만 설명했지만 다른 평양시민들도 똑같습니다. 소속 직장에서 인력을 절반으로 나누어 몇 달씩 교대로 건설장에 투입됐습니다. 그렇다고 보상은 없습니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지금까지 평양시 10만 세대 건설 완공 소식은 없습니다. 아마 1만 세대나 건설했으면 잘 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2011년에 벌어졌던 일이 그대로 반복돼 또 벌어질 겁니다. 인력을 충당하려면 어쩔 수 없죠. 이렇게 평양의 거리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건설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숨은 비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파트는 그럭저럭 건설될 수 있는데,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가구 등을 기본적으로 갖춰 넣으려면 또 엄청난 돈이 듭니다. 이건 북에서 자체로 해결하기도 어려워 중국에서 사와야 합니다. 사실 건설은 기초를 팔 때부터 다 돈입니다. 시멘트 철강재도 다 돈으로 사야 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수탈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특정 아파트 건설을 맞은 기관은 부자인 ’돈주‘들에게 조건을 제시합니다. 10만 달러를 내면 아파트 2채를 주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북에서 돈주는 중앙당 고위 간부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 것 같지만, 그들의 뒤를 봐주는 간부가 뇌물로 훨씬 더 많이 받습니다. 이렇게 받은 뇌물은 은행에 저축할 수도 없고, 또 눈을 피해 굴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럴 때 평양에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되면 돈다발을 숨겨두었던 고위 간부들은 만세를 부릅니다. 이들이 숨겨두었던 돈들이 명의자를 바꾸어 돈주의 돈처럼 투입되죠. 그리고 아파트 건설이 완공되면 이들은 약속받은 아파트를 받고 다시 팝니다. 최소 2배 이상 이윤이 나옵니다.그런데 또 반전이 있습니다. 특정 거리가 건설되면 이 거리 건설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김정은이 됩니다. 왜냐면 그는 땅을 제공했고, 인력을 조달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챙겨가는 몫이 50% 이상입니다. 그는 완공된 거리에 나와 특정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저 아파트는 과학자들을 주고, 저 아파트는 예술인에게 주고…”하는 식으로 배정합니다. 자기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사기를 고양시켜야 할 대상들에게 선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김정은이 50% 이상 챙겨 가면 두 번째로 거액의 돈을 투자한 돈주들이 또 약속받은 아파트를 받습니다. 그리고 나머지가 일반 주민에게 갑니다. 미래과학자거리 때에는 돈주들이 투자금의 2배는 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명거리 때는 본전을 겨우 건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여명거리에 와서 제일 큰 82층 고층아파트를 김일성대 교원들에게 통째로 하사하는 등 자기 몫을 너무 많이 챙겼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 간부들에게 호재가 또 있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주해가는 사람들이 원래 살던 집이 남습니다. 이를 ’뒷그루‘라고 합니다. 여명거리 때 보면 김일성대 교원들을 82층 아파트에 살라고 했기 때문에 평양시 중심구역에서 더 비싼 아파트를 갖고 있던 교원들도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김정은의 지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살던 집을 팔수가 없었습니다. “장군님이 좋은 집을 공짜로 하사했는데, 기존 주택을 팔아먹는 나쁜 짓은 용서할 수 없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당시 몰래 기존 주택을 팔려고 하던 교원들, 아들에게 몰래 기존에 살던 집을 넘겨주려던 교원들이 수십 명이 체포돼 지방으로 추방당했습니다. 1만 세대의 거리가 건설되면 ’뒷그루‘도 거의 1만 채가 생깁니다. 좋은 ’뒷그루‘를 뇌물을 받고 배정하는 것이 바로 간부들 몫입니다. 평양시 부동산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여기서 다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평양에 대규모 주택단지들을 건설하면 김정은과 뇌물을 숨겨두었던 고위 간부들만 신이 납니다. 일반 시민들은 공사비를 뜯기고, 노력 동원을 다녀야 하는 등 고생문이 열립니다. 그걸 1년도 아니고 5년이나 한다고 하니 얼마나 눈앞이 캄캄하겠습니까. 그렇게 생고생은 생고생대로 하고도 김정은의 계획대로 5년 내로 7만 세대가 과연 건설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202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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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대,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교육용 플랫폼 개발

    한라대학교의 사회맞춤형산학혁명선도대학(LINC+)사업단이 서울 코엑스에서 24일부터 27일까지 열린 ‘AI(인공지능)엑스포코리아2021’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율주행 교육용 플랫폼인 a-MAP(AI-Mobility Accelerator Program)과 교구를 선보였다. 한라대는 이번 엑스포에 대학으로선 유일하게 참가했다. 한라대 LINC+사업단이 전시회에 소개한 에이맵(a-MAP)은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모빌리티를 쉽게 학습하고 제작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제작 과정을 온라인으로 학습할 수 있다. 또 주행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하여 실제 주행도 가능하다. 함께 출품한 교육용 플랫폼인 M-Car AI는 이미지 기반 자율주행을 위한 교육용 플랫폼이다. 실제 승용차의 8분의 1 사이즈로 구성된 모형을 통해 다양한 주행 기능을 테스트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해외 경쟁사 제품과 확장성, 성능, 가격 등 모든 분야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새로 개발된 플랫폼은 한라대 스마트모빌리티 공학부와 정보통신소프트웨어학과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를 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 만들었다. 이들은 효율적인 제작을 위해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설계와 프로그래밍을 먼저 완료한 뒤 제작에 활용했다. 한라대 링크사업단 서현곤 단장은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새 교육용 플랫폼을 활용해 올해 400명 이상의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모빌리티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한라대가 참가한 AI엑스포코리아는 여러 기관과 기업들이 인공지능, 정보통신기술(ICT), 사물인터넷(IoT) 등 최신 인공지능 관련 기술과 제품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전시회다. 여기에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자랑하는 다양한 인공지능과 관련된 제품들이 선보였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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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따뜻한 봄’은 김여정에게 필요하다

    오랫동안 잠잠하던 김여정이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는 제목의 담화를 16일 노동신문에 불쑥 발표했다.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對南)기구 정리를 내걸고 한국을 협박했다. 하지만 김여정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남쪽에선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3년 전의 봄이 다시 오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코로나 방역을 내건 북한의 철저한 ‘셀프 봉쇄’가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다. 내년엔 곧 임기가 끝날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이 볼 일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 등 현 정부 각료들이 북한을 향해 ‘러브콜’을 시종일관 보내는 것은 할 말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데다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려면 현 정부가 내세우는 남북관계 치적을 북한이 군사적 도발로 물거품으로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뺨을 맞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왕이면 웃어줘야 침이 날아올 확률이 줄어들 게 아닌가. 물론 북한도 이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봄을 만들 책임을 한국에 강요하는 듯 기고만장한 모양새다. 찬찬히 한번 따져보자. ‘따뜻한 봄날’은 지금 남과 북 중에 어디에 더 절실한지, 봄이 오지 않으면 누가 더 손해일지를. 물론 한국도 추위가 좋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는 겨울옷이 풍족하다.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체제를 감싸던 옷이 한 겹 두 겹 강제로 벗겨지고,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조금 축적했던 지방마저 연소돼 앙상해진 북한이야말로 추위를 어떻게 견딜지 참으로 걱정이다. 옷과 지방은 북한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고 있는 돈을 비유한 것이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3616만 달러(약 409억 원)에 그쳤고, 중국 외 다른 국가들과의 수출 총액도 806만 달러(약 91억 원)에 불과했다. 수출 총액이 500억 원 정도면 실제 번 돈은 훨씬 적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야심 차게 추진하던 주요 국책사업들도 돈이 없어 마무리 짓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돈 벌 길은 점점 좁아진다. 국제사회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무기 거래, 마약 판매 등 불법 행위로 버는 돈도 크게 줄었다. 그나마 지금 믿을 구석은 해외에 파견된 ‘외화벌이 전사’들의 활약이다. 현재 중국에 파견돼 활약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 1000여 명의 ‘사이버 전사’들이 외주받은 일감과 해킹 등으로 국가 공식 무역에서 나오는 순수익보다 더 많은 2000만 달러(약 226억 원) 이상의 현금을 매년 버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외화벌이 전사’들의 활약도 무시할 순 없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해외에서 특권을 부여한 300∼400명의 외화벌이 인력도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1년 과제로 5만∼1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조직 생활도 하지 않고 보위부 감시나 통제도 없다. 국가 이동도 언제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돈만 벌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들의 존재는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숫자를 최소 300명으로 보고 1인당 계획 과제를 5만 달러씩 잡으면 1년에 1500만 달러, 최대 400명의 과제가 10만 달러씩이라고 가정하면 4000만 달러를 번다. 아마 실제 금액은 그 중간 어디쯤인 2000만∼3000만 달러 정도 될 것이다. 이들이 벌어서 바친 돈을 담은 현금 자루가 실제로 중국 단둥(丹東) 주재 북한영사관 전용 버스에 실려 주기적으로 압록강대교를 넘어간다. 하지만 각종 수입을 다 합쳐야 북한은 1년에 1억 달러 이상 벌기 어렵다. 체제를 지탱하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게다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외화벌이 전사들을 대다수 적발할 수 있다. 북한은 한국 통일부에 남북협력기금만 10억 달러 넘게 잠자고 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자존심 때문에 받지 않기엔 무시할 액수가 아니다. 현 정부도 북한이 써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눈치다. 나아가 북한은 군사적 합의를 깨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내년 대선에서 어느 세력에 유리할지도 잘 따져봐야 한다. 1997년 대선 직전 ‘총풍(銃風) 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했던 것이 그리 먼 옛날의 일은 아니다. 정말 김여정은 내년에도 강추위 속 ‘얼음공주’로 계속 남기를 원하는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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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 조직처럼 변하는 북한 통치방식[주성하의 北카페]

    어두컴컴한 아이스링크 한복판에 겁에 질린 2인자가 차렷 자세로 서서 “모두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신속히 처리하겠습니다”라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스케이트를 타고 천천히 다가온 1인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퍽을 2인자의 몸통에 날린다. 고통에 주저앉으면서도 2인자는 “앞으로 절대 허투로 일하지 않겠다. 다신 실망시키지 않겠다. 한번만 기회를 주면 분발해 잘하겠다”며 빠르게 외친다. 그럼에도 1인자는 쓰러진 그의 몸을 스틱으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혹독하게 당하고 돌아온 2인자는 부하들을 모아 매운 짬뽕을 강제로 폭풍 흡입하게 하는 벌을 내리며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다그친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tvN의 드라마 ‘빈센조’의 한 장면이다. 문제는 이런 장면을 봐도 시청자들은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조직 보스가 2인자나 중간 보스들을 흉기로 마구 때리며 화를 내는 장면은 우리가 지금까지 조폭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때리면 다행이고, 일을 잘 처리 못했다며 부하를 죽여서 다른 조직원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장면도 흔하다. 그렇게 보스의 분노 앞에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중간 보스들은 다시 아래 조직원들을 모아 놓고 폭력을 휘두르며 목숨 걸고 일을 하겠다는 충성맹세를 받아낸다. 이것이 조폭 조직이 돌아가는 생리라고 할 수 있다. 요새 북한이 시끄럽다. 평년의 이맘때라면 3월초에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을 성토하고 협박하는 성명이 발표되며 시끄러웠겠지만 올해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한미연합훈련 비난은 일절 없다. 대신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에는 내각과 경제 간부들의 자아비판 기고문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9일 노동신문에는 조용덕 내각 국장이 “경제 부문 간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원만히 보장되지 못했다”며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책임은 우리 내각 일군(간부)들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본위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되는대로 사업하던 그릇된 일본새와 완전히 결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역시 지면에 등장한 최영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지배인은 “연간 굴진 계획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불 보듯 명백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김영철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 지배인은 감속기를 교체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타박만 했다가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은 자신의 사례를 들며 자아비판을 했다. 9일부터 노동신문에 처음 등장한 ‘지상연단’이라는 코너는 앞으로 간부들의 반성문을 계속 실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사에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간부들의 자아반성문을 실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원래 북한 언론은 김 씨 일가의 우상화와 긍정적 인물을 내세워 본보기를 따라 배우기 운동을 펼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부정적 내용은 절대 실리지 않던 신문이 간부들의 자아비판까지 게재하며 일을 똑바로 하라고 독려하는 것은 올해 김정은의 행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김정은은 1월 초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하였다”며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이어 지난달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당 경제 담당 경제 간부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를 치는 사진이 공개됐다. 노동신문이 ‘보신과 패배의 씨앗’을 운운하며 “여러 부문의 사업을 신랄히 비판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보아 회의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은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당의 결정 지시 집행을 태공(태만)하는 단위 특수화와 본위주의 현상을 더 그대로 둘 수 없다”며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해 단호히 처갈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의 결과 노동당 김두일 경제담당 비서가 해임됐음이 공식 발표됐다. 이어 지난달 24일에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선 80명의 군 간부가 참가해 군 내부 규율 강화와 군 간부의 통제 강화 대책이 논의됐다. 공개된 사진에서 상좌 계급(한국의 대령과 중령 사이 계급)을 단 군 간부가 대장과 상장들이 앉는 앞줄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던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뒷줄에 상장, 중장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번 회의는 계급 서열과 상관없이 진행됐다는 의미다. 실제 이날 회의 뒤 역대 대장 계급이 맡았던 해군사령관과 공군 및 반항공군 사령관에 한국의 준장 계급에 불과한 소장급 장성이 임명됐다. 노동당 전원회의가 당 최고위 간부들이 참가한 회의라면 중앙군사위원회는 군 최고위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이어 이달 8일부터 시·군당책임비서들이 참가한 강습회가 사흘 간 열렸다. 이들은 북한에서 각 지방을 책임진 간부들이다. 김정은이 이렇게 고위 간부들을 마구 다그치자 이들이 다시 아래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그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노동신문에 실린 반성문이 대표적이다. 이달 4일 당 외곽 근로단체들은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일제히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다짐했다. 각 기관, 기업소, 농장 등에서 노동자들이 나와 당의 결심을 철저히 관철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결의대회를 연일 열고 있다. 최근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흡사 조폭 조직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 보스인 김정은이 최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중간 보스들인 간부들을 모아놓고 연일 처벌과 협박을 하고, 중간 보스들이 다시 산하 조직원들을 다그치는 모양새다. 이는 과거 북한을 움직이던 시스템과 확연히 다르다. 물론 과거에도 북한은 공포의 독재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북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보스는 항상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였다. 잘못된 일은 지시할 수도 없고, 따라서 반성도 없으며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심려하시였다”는 정도로 미디어에서 공개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김정은은 과거와 전혀 달라졌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자신부터 반성을 한 뒤 중간 간부들을 모아놓고 처벌하고 다그치는 등 펄펄 날뛰는 모습이 그대로 여과없이 중계된다. 겁에 질린 간부들은 노동신문을 통해 자아비판을 하며 보스에게 충성맹세를 한다. 자아비판만 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3월 초부터 북한의 각 지역에선 대대적인 공개총살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 방역기간 밀수를 했거나, 한국 영상을 시청했거나, 뇌물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여러 명씩 공개재판에 끌려나와 시범으로 처형되고 있다. 중간 보스들이 명령을 어긴 부하들을 공개적으로 죽여 보스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는 중이다. 공포의 피바람은 지금 막 시작됐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이제 북한의 통치방식은 노골적으로 조폭 조직의 운영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제주의 정권인 중국과 러시아도 이렇게 노골적인 조폭형 통치를 하지 않는다. 올해 북한의 보스 김정은도 과거의 인민의 ‘갓(God)’에서 ‘갓파더(Godfather)’로 변화하고 있다. 그 소름끼치는 변화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이제 시작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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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의, 회의, 회의…일은 언제 하는 거죠?[주성하의 북카페]

    망해가는 기업의 공통점은 쓸 데 없는 회의가 많아지고, 사장만 열심히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또한 임원들은 책임을 회피하며 뭔가 추진하다가 실패하면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하죠. 북한을 들여다보면 자금난에 빠져 망해가는 기업들을 꼭 빼닮은 징조들이 두드러집니다. 물론 원래 그랬지만 올해는 더욱 심합니다. 올 들어 두 달이 이미 지나고 3월 첫째 주도 지나가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도 중앙과 지방 할 것 없이 회의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중앙에서는 1월 5일 8차 노동당대회를 열고 14일 열병식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열흘 동안 북한 주요 간부들이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17일 최고인민회의가 열려 내각의 많은 간부들이 교체됐습니다. 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가 끝난 뒤 북한 각 조직에선 노동당대회에서 채택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회의가 1월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1월 말에 북한의 모든 직장인들은 오전마다 회의실에 모여 당대회 내용을 학습하고 자기 직장의 실정에 맞게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의논하느라 열흘 넘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오전에 거리에 나가면 사람이 사는 곳인지 모를 정도로 한적했다 네요. 그런데 이런 회의에도 정장을 입고 참가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결혼식에도 잘 입고 가지 않는 양복을 찾아 입느라 분주했다고 합니다. 회의 복장까지 자잘하게 지침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비본질적인 곳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루한 회의를 거쳐 각 기관의 경제목표 달성 과제가 채택이 되고, 이것이 종합돼 김정은에게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김정은이 8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이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고 경제 실패를 자인하면서 이번에는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우라고 했기 때문에 각 기관이 올려 보낸 목표는 나름 실현가능한 최대치를 담느라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2월 초에 김정은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8일부터 11일까지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간부들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연말에 비판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낮추어 기안하는 편향을 범했다”는 겁니다. 가령 “전력생산계획을 현재의 전력생산 수준보다 낮게 세웠다”느니, “평양시 살림집 건설계획을 당대회에서 결정한 목표보다 낮게 세웠다”느니, “신발 생산계획을 형편없이 낮게 세웠다”느니 하면서 간부들의 소극성과 보신주의를 질타한 것입니다. 김정은은 “계획을 낮게 세워놓고 연말에 가서 초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실제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에 기여할 수 있게 발전 지향성과 역동성, 견인성, 과학성이 보장된 목표들을 제기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북한 각 공장, 기업소들의 계획서를 취합해 보고한 김두일 당 경제부장은 해임됐습니다. 간부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 전에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라고 하더니, 이제는 목표가 낮다고 또 뭐라고 하니 말입니다. 어느 기준이 김정은이 만족할 만한 기준인지 간부들이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김정은은 2월 24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25일 내각 전원회의 확대회의까지 직접 주재하며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고위 간부들이 김정은 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사이 북한 주민들이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시 북한 전역에서 지루한 회의가 열렸습니다. 김정은이 ‘보신과 패배주의’를 언급하며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각 직장에선 1월말에 했던 회의에 대해 비판하고 반성하면서 “우리가 보신과 패배주의에 빠져 장군님께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자책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러면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높은 경제 정책 과제를 달성하겠다”고 각오를 다지느라 2월이 또 다 지나갔습니다. 이런 회의들을 가진 뒤 이번엔 궐기 모임이 북한 전역에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2월 28일 황해제철연합기업소(황철) 노동계급이 당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호소문을 전국에 발표한 뒤 북한 각 부문에서 이에 호응하는 궐기 모임이 3월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황철 노동계급이 보냈다는 호소문은 그들이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중앙당에서 그 기업을 찍어 지시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황철 노동자들은 아침 일찍 나오라는 대로 나와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가 단상에서 여러 간부가 호소문, 맹세문, 결의문 등등을 교대로 몇 시간 낭독하면 중간에 구호들을 외치는 임무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그 구호도 대열 앞 방송차에서 “관철하자”는 구호가 나오면 주먹을 높이 들며 “관철하자”를 세 번 외치면 됩니다. 황철에서 이런 행사가 끝난 뒤 노동신문은 기다렸다는 듯 “당이 제시한 5개년 계획의 첫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인민적인 총공격전, 총결사전으로 부른 황철 노동계급의 심장의 호소는 전체 근로자들의 혁명적 열정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의 투쟁 의지를 비상히 격양시키고 있다”면서 “영웅적 노동계급의 절대불변의 신념이 응축된 황철의 호소 따라 온 나라가 일시에 들고 일어났다”라고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람에 3월 첫째 주에 북한 주민들은 궐기 모임을 갖느라 분주하게 모였습니다. 노동신문은 내각사무국, 재령광산, 화학공업성, 전력공업성,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 석탄공업성 등등 모든 부문에서 궐기 모임이 열렸다고 전했습니다. 사실 앞에 언급한 부문들은 극히 일부고 실제 노동신문에 실린 기관들의 이름은 숨이 가빠 다 읽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 두 달 동안 당 대회 정신 학습과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회의, 다시 반성과 계획 재수정 회의, 그리고 각오를 다지는 궐기 모임까지 마쳤으니 일을 좀 시작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다시 회의를 열었습니다. 3월 3일부터 김정은의 참석한 가운데 시·군 당책임비서 강습회가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시장이나 군수와 맞먹는 해당 지역에서 제일 높은 간부입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강습회는 노동당 역사에서 처음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회의 종류가 다양한 북한에서 없던 회의 종류가 또 만들어졌습니다. 노동신문은 “강습회가 당의 시·군당 조직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여 당의 전투력을 다지고 지방 경제와 인민 생활을 발전·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라고 의의를 부여했습니다. 강습회에선 김정은이 개강사를 했다고 합니다. 개강사라는 연설도 아마 북한 역사에서 처음 나오는 연설 종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지방의 주요 당 간부들이 김정은의 개강사까지 들었으니 근로자들은 또 회의하기에 바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간부들이 내려와 중간 간부들을 모아놓고 김정은의 의도를 전달하면 중간 간부들은 다시 근로자들을 모아 놓고 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장군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뜻을 인민들에게 전달하지 않는 심각한 반당반혁명 행위를 저질렀다”며 간부들이 숙청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나온 ‘황철의 호소’는 유효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이미 저런 수법은 김일성 때부터 닳고 닳을 정도로 써먹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에 직면하자 김정은은 지금처럼 자력갱생(自力更生), 간고분투를 외치며 온갖 지명을 가져다 무슨 정신을 창조하느라 바빴습니다. 당시에 자강도 정신, 희천 정신, 라남 정신 이런 식으로 몇 년 동안 북한의 지명들을 한 바퀴 돌면서 계속 정신만 만들어내다가 흐지부지됐습니다. 앞으로도 ‘황철의 호소’ ‘대안의 호소’ ‘나남의 호소’ 이런 것들이 계속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인민들은 궐기 대회를 열심히 열어야 합니다. 강습회가 끝나면 이제 회의는 더 하지 않아도 될까요. 누구도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3월 중순까지 회의만 저렇게 지겹게 하게 되면 도대체 일은 언제 하는 건지 궁금해집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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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의 야심작 평양종합병원, 다 지어놓고 문 못여는 까닭은

    지난달 열린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올해 경제계획 수립 과정의 문제점을 “관료주의와 허풍”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 등의 표현을 쓰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두일 노동당 경제부장도 임명 한 달 만에 잘렸다. 김정은이 제시한 경제 분야 관련 목표 중엔 “올해 평양시에 1만 가구 살림집을 무조건 건설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김정은이 가장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평양종합병원 건설도, 몇 년째 힘을 쏟았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살림집 건설 목표가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건설 착공식을 열고 7개월 뒤인 10월 10일까지는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평양종합병원 준공식은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해 7월 공사장을 방문해 총책임자를 비롯한 간부들을 질책하고 전원 교체했음에도 7개월 만에 완공한다던 병원은 1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 언제 준공식을 할지 기약이 없다. 그나마 가짜 준공식을 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해야 할까.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해 5월 준공식을 성대하게 열었던 순천인비료공장은 아직까지 가동되지 못한다고 한다. 평양종합병원은 외형상으로는 건물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찍힌 구글어스 사진에 이미 공사에 동원했던 장비와 차량이 철수하고, 외벽 색칠과 주변 조경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준공을 못 한다면 내부 의료 장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채 껍데기만 건설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경험상 만약 병원 운영에 필요한 장비의 3분의 1만 갖췄다고 해도 준공식 행사를 벌이고, 사람들이 눈물을 좔좔 흘리면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선전이 질릴 정도로 나갔을 것이다. 그걸 못 한다는 것은 의료를 진행할 형편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평양종합병원에 의료 장비를 채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도대체 얼마가 모자라기에 온 국민들에게 큰소리치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지를 알면 현재 김정은의 주머니 사정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종합병원은 가로 550m, 세로 120m 부지에 20층으로 건설됐다. 병원은 병상 수가 중요하지만 관련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평양제1병원과 옥류병원, 평양산원이 1000병상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것보다 두 배 이상 큰 평양종합병원은 2000∼3000병상 정도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적은 수는 아니다. 한국에서 최다 병상을 가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2615병상이고 고려대 구로병원, 안암병원이 각각 1100병상 정도 된다. 평양종합병원이 2000병상이라 하면 의료 장비에 돈이 얼마나 들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10년 전 전북에 500병상 규모의 모 대학병원을 건설할 때 의료 장비 구입은 병상당 6000만 원으로 계산해 300억 원을 책정한 계획서가 보인다. 내년 광명역 인근에 오픈할 예정인 중앙대병원은 4년 전 계획을 세울 때 700병상에 의료 장비 구입비용을 700억 원으로 계산했다. 병상당 1억 원인 셈이다. 두 사례를 평균하면 병상당 8000만 원이 나온다. 준공 시기나 의료 시설 종류 등이 달라 이 숫자가 정답이라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북한 사정을 얼추 가늠하는 잣대는 될 수 있다. 북한은 비싼 장비는 피하고 저렴한 중국산을 주로 쓰겠지만 그래도 MRI, CT 등 고가 장비는 기본 가격이 있기 때문에 절반 이하로 줄이긴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병상당 4000만 원쯤 써도 2000병상이면 800억 원이고, 3000병상이면 1200억 원 정도 계산된다. 즉 평양종합병원이 그 나름의 현대적 기준에 맞춰 의료 장비를 갖추려면 1000억 원 안팎의 자금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이 계산에 몇백억 원 정도는 오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김정은이 1억 달러 미만 자금이 없어 세상에 큰소리를 친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마무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만 있다면 아무리 방역 때문에 국경을 폐쇄했다 하더라도 김정은이 지시한 의료 장비는 얼마든지 들여갔을 것이다. 이렇게 김정은은 자기도 주머니가 텅텅 비어 공개적으로 천명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면서 간부들을 향해 자신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목을 내걸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간부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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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해킹부대에도 ‘아빠 찬스’…IT 엘리트들 외화벌이 나서[주성하의 북카페]

    지난주 미국 법무부가 전 세계 은행과 기업을 상대로 해킹 등 사이버 범죄를 주도한 북한 해커 3명을 기소했습니다. 이들 해커들은 세계의 은행과 기업에서 13억 달러(약 1조4400억 원) 이상의 현금 및 가상화폐를 빼돌리거나 부당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 해커는 라자루스그룹, APT38 등의 해킹부대를 운용하는 정찰총국 소속의 박진혁(36) 전창혁(31) 김일(27)입니다. 공소장에 올라 있는 이들의 죄명은 방대합니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2017년 5월 랜섬웨어 바이러스인 ‘워너크라이2.0’을 만들어 파키스탄 금융회사에서 610만 달러를 탈취하는 등 2015~2019년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대만, 멕시코, 말타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폭넓게 활동 무대로 삼았습니다. 미 법무부가 주목할 정도면 이들 3명은 북한 해킹부대에서 최고의 에이스들일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운영하는 해킹부대 규모는 몇 명이나 될까요. 북한 해킹부대의 역량에 대해선 세계 3위라는 보고가 나오는 등 아주 대단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한 북한의 정보기술(IT) 기술자들 증언에 따르면 이는 크게 과장된 숫자라고 합니다. 북한이 해킹에 눈 뜬 것은 1990년대 후반입니다. 시작은 노동당 소속 대남공작부서인 작전부가 시작했는데,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암호를 해득하기 위해 구소련의 암호해독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데려왔습니다. 또 북한 각지 1고등중학교에서 10명 규모의 최고 인재들을 뽑아 1997년 평양시 모란봉 구역 소재 모란대학이란 것을 만들고 교육을 시켰는데 이것이 북한의 해킹 인력 양성의 시초입니다. 이후 사이버전 인력은 노동당 작전부와 군 소속 정찰국이 운용했습니다. 2009년 초 노동당과 군에서 운영하던 대남·해외 공작기구가 통합되면서 모두 정찰총국 소속이 됐는데, 이때만 해도 각각 수십 명 규모의 부대로 합쳐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작전부 소속 해커들의 실력이 더 나았습니다. 군부 소속의 미림대에서 해커들을 양성한다고 외부에 알려져 있지만 미림대 졸업생들은 군자동화 장비 담당이 태반이고, 실력도 없어 해커로 쓸 수준이 못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2009년 이전만 해도 북한 지도부의 해킹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고 큰 지원도 없었는데, 김정은이 2009년부터 정찰총국을 직접 담당하면서 사이버전을 수행할 역량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또 이때쯤부터 미국이나 한국 등에서 뭔가 해킹만 됐다고 하면 북한 소행이란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해킹’의 ‘해’자도 모르던 고령의 북한군 간부들도 “해킹이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것이 분명하다”며 해킹부대 양성에 관심을 돌렸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해킹을 할 만한 실력 있는 인재는 평양시 소재 수재학교인 금성학원 컴퓨터반에서 대다수 양성됩니다. 금성학원 컴퓨터반 졸업생은 한해에 300~400명이 양성되지만 실력 있는 사람은 10%도 채 안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김일성대와 김책공대에서 2년 반 동안 공부시키고 이중 10~20명씩 정찰총국이 선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해킹부대는 정찰총국과 적공국, 즉 적군와해공작국이라는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소속 인원은 적공국 100여명이고 정찰총국은 300명을 넘지 않습니다. 이들이 군복을 입고 해킹을 하는 해커들인데, 공식적인 사이버 해커의 전체 숫자는 400여명 정도이고, 이중 진짜 에이스는 50명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간부로 정찰총국이나 적공국에 들어가면 입당이 빨리 된다는 이점 때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부모의 배경을 업고 들어온 고위 간부 자식들입니다. 요즘은 진짜 실력 있는 IT 수재들이 정찰총국이나 적공국에 들어오지 않고 빠지려 합니다. 장교로 근무해봐야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군사 비밀을 빼와야 승진도 잘 시켜주지 않습니다. 반면에 해외에 외화벌이하려 나간 친구들은 매달 많으면 수천 달러씩 버니 실력파는 외화벌이용 IT 회사에서 일하려 합니다. 북한에서 실력이 제일 좋은 IT 기술자들은 ‘인도유학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2년부터 3년 동안 한국은 북한에 소프트웨어 기술인재 양성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 돈을 유네스코가 집행해 해마다 20명씩 우수한 북한 IT 인력들을 인도에 보내 교육시켰습니다. 이 과정이 3년 동안 진행됐고, 인도에서 빌 게이츠의 이름으로 된 졸업장까지 받은 기술자들이 북한에 60명 정도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북한의 IT 핵심 에이스들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IT 인력 양성에서 삼성전자가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2000년 대북사업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조선컴퓨터센터(KCC)와 손을 잡고 73만 달러를 들여 중국 베이징에 ‘남북 소프트웨어공동개발센터’를 세웠습니다. 2004년까지 삼성전자가 투자한 돈은 325만 달러를 넘었는데, 이 돈은 장부상 조선컴퓨터센터의 노동당 자금 납부 실적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300만 달러면 엄청난 돈입니다. 이 돈으로 북한은 글로벌 수준의 인재들을 키웠습니다. 북한의 IT 역사에서 삼성전자의 이 투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협력이 끊기자 컴퓨터센터에 집중됐던 인력들은 해외 IT 개발 분야로 흩어졌습니다. 과거 삼성과 손잡았던 조선컴퓨터센터는 이후 ‘313총국’으로 개명한 뒤 군수 담당 2경제위원회 직속이 됐습니다. 여기에 속한 IT 인력이 버는 자금은 고스란히 북한 무기 개발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을 탈출한 북한 IT 인력들은 예전에 삼성에서 기술도서로 북에 기증했던 책들이 아직도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교재 중에는 해킹관련 도서들도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09년 남북한 합작으로 세운 평양과학기술대 인력들도 북한 IT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는 IT 분야에서 금성학원 졸업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지만 이제는 금성학원 출신과 과기대 출신 등으로 구분됩니다. 과기대 출신들은 웹, 모바일, 데스크톱, 크랙 등 전문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크랙은 복사방 지나 등록 기술 등이 적용된 상용 소프트웨어의 비밀을 풀어서 불법으로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뜻합니다. 워낙 이들은 북에서 최고 인재들을 모았기 때문에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영어 실력도 있어 해외에 파견돼 돈을 버는데 적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기대 측은 졸업생들은 해커로 활동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과기대가 이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고, 이들 중에는 해커도 분명히 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각 부처에 IT 대표단을 파견할 것을 요구했는데, 대북 제재로 줄어든 자금난을 타개할 방편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2010년대 중반부터 노동당, 인민무력부, 보안성, 보위성 등 각 내각 부처들이 IT 팀을 중국에 파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과 더불어 말레이시아가 IT 관련 북한 외화벌이의 핵심 기지였지만 2017년 2월 김정남 살해 사건 이후 현지 파견 인력이 추방됐습니다. 앞서 유럽의 중요한 기지였던 불가리아에서도 2016년 북한 IT팀이 추방됐습니다. 중국에 나온 북한 IT 기술자들은 여러 가지로 돈을 벌어 북한에 납부합니다. 외국에 나온 이들은 해외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팔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해외업체와 일하는 노하우도 적지 않게 익혔습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강화돼 해외파견 인력을 다 철수하게 됐지만, 북한은 노동자는 철수하면서 IT 인력은 중국 현지에 남겼습니다. 중국도 눈감아줍니다. 1000명 이상 북한 IT 인력이 여전히 중국에 있습니다. 북한이 코로나로 국경을 차단하고 이를 핑계로 해외 근로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는데 어쩌면 이는 IT 인력을 계속 중국에 상주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겁니다. 끝으로 미국 법무부가 북한 해커 3명을 기소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2017년 9월 미 재무부는 정성화라는 북한 IT 업계의 거물을 공개 수배했습니다. 그런데 대북 소식통을 통해 들으니 그 정성화는 여전히 중국에서 아무 제약 없이 맹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중국의 협조가 없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북한 해커들에게 계속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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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일 없어진 北 돈주들, ‘주린이’ 대열에 합세[주성하의 북카페]

    《 ‘주성하의 北카페’ 연재를 시작합니다. 동아일보 19년차 주성하 북한 전문기자가 한 주간의 다양한 북한 이슈 중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나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들은 은밀한 정보를 금요일마다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뜻밖에 주식 광풍도 함께 몰고 왔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 역시 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한 3월부터 코스피는 두 배 넘게 상승했고, 뒤늦게 주식에 뛰어든 초보자들을 가리켜 ‘주식’과 ‘어린이’를 합성한 ‘주린이’란 용어도 만들어졌습니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등 신조어들도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생전 주식이라고 사본 적이 없는 기자 역시 주린이 대열에 합세했습니다. 북한 이슈는 최근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김정은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조용히 지내고 있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람들이 주식차트 보느라 다른 것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어지간히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이젠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은 코로나와 주식 이슈를 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주식에 빠져 있는 것이 비단 한국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세계 곳곳에서 지금 엄청난 유동성에 힘입어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의 주린이와 비슷한 의미로 미국에선 ‘로빈후드’라 불리는 초보자들이 주식에 매달려 있습니다. 남들 다 버는데 나만 못 버는 것 같이 마음이 급해져서 뛰어드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기자는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무역일꾼들도 주식의 세계로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역일꾼 정도면 북한에선 확실하게 ‘돈주’ 중의 ‘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주란 무역이나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한 북한의 신흥부자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국가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주식만 사놓아도 1년 새 두 배씩 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욕망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어쩌면 돈을 만지는 것이 직업인 무역일꾼들은 그런 욕망의 피가 부글부글 끓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북한 정보원도 경제공부를 할 수 있는 책을 구해달라고 요구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으니 묘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북한 사람들에겐 주식의 세계는 신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해외에 나온 많은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북한 사람들이 외국에 나와서 가장 궁금해 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주식이었습니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상장기업 등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이 주식이고, 주식시장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주식이 뭔지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김일성대 경제학부 정도나 주식의 개념에 대해 좀 가르칠 정도입니다. 이러다보니 북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도 해외에 나오면 “주식이란 것이 뭔데요?”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좀 살다보면 자연히 주식을 알게 되긴 합니다. 그들에겐 잘만 투자하면 돈이 10%, 20% 불어나는 세계가 정말 신기할 것입니다. 북한에선 투자할 곳이 거의 없습니다. 은행에 저금시키면 이자를 받기는커녕 본전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큰돈을 저금하면 불법적으로 번 돈이 아닌지 조사 받기 때문에 돈이 많아도 은행에 넣지 않습니다. 북한 부자들은 주택에 두 겹으로 된 비밀의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돈을 숨겨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북에서 투자 개념으로 장사를 하든가, 고리대금업을 할 수는 있는데 위험 부담이 큽니다. 언제 ‘비사회주의적 행위’라고 신고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돈만 떼이면 다행이고, 심할 경우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북한에서 산 사람들의 눈에 누구나 계좌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의 세계는 정말 신기한 세상입니다. 물론 투자했다가 돈을 잃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돈을 만져본 사람들이 투자 실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해외에 나온 북한 사람들이 선뜻 주식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북한 여권으로는 계좌 개설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습니다. 이미 무역일꾼들은 그런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차명계좌를 만드는 데는 달인 수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2008년 사이 북한 부자들 속에서 중국 부동산 투자 바람이 분 적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의 명의로 부동산 거래를 했던 것입니다. 북한 신의주가 건너다보이는 단둥(丹東) 압록강변 많은 아파트가 북한 돈주들의 소유라는 것이 외신에까지 소개될 정도였죠.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던 북한 돈주들이 주식 열풍 속에 이제 주식시장에도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해외에 나와 있는 소수 무역일꾼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 북한 무역일꾼들이 외국에서 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를 이유로 국경을 차단하는 바람에 북에서 내올 물건도 별로 없고, 수입해 들여갈 물건도 없습니다. 할 일이 없어 북에 돌아가려고 해도 코로나 때문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니 발이 묶였습니다. 이렇게 너무 심심한 상태인데, 주식까지 폭등하니 어떻겠습니까. 친한 친구들끼리 누구는 뭘 해서 벌고, 누구는 뭘 해서 벌었다 소문까지 쉬쉬 돌아가면 안 하던 사람들까지 조급해 뛰어들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심리를 잘 알지 않겠습니까. 아마 지난해에 뛰어든 돈주들이라면 작년의 주식 대세 상승기에 잃을 확률보다는 벌었을 확률이 더 컸을 겁니다. 무역일꾼들이 주식을 해도 이걸 북한 당국이 알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차명으로 하는데 북한에서 어떻게 알아내겠습니까. 주식의 신세계를 경험했고, 더구나 돈까지 벌어봤다면 북한 돈주들은 엄격한 검열과 사상투쟁 회의가 기다리고 있고, 돈마저 눈치 보면서 써야 하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싫어지지 않을까요.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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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의 ‘비트코인 대박’ 전말[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비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어느새 5만 달러를 넘었다. 비트코인을 장기 보유한 사람이라면 요즘 행복한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김정은이라면…. 지금 북한은 몇 년째 이어지는 대북 제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셀프 봉쇄까지 1년째 겹쳐 돈을 벌 곳이 없다. 북한은 무역의 95%를 중국에 의존하는데 지난해 대중(對中) 수출액은 4800만 달러(약 530억 원)에 그쳤다. 특히 연말로 갈수록 수출 규모는 급격히 줄어 지난해 12월 수출액은 겨우 162만 달러(약 18억 원) 정도였다. 명색이 국가인데 이 정도 무역액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잘 버텨 왔다. 지난해 태풍 피해를 본 지역에 수천 채의 집을 건설했고,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엔 신형 무기와 군복도 등장시켰다. 돈이 없어 헉헉대야 마땅할 것 같은데도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달성하겠다며 새해 벽두부터 밀어붙인다. 거기에 더해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 전후로 약 1억 달러의 현금이 중국 단둥(丹東) 주재 북한영사관의 전용버스에 실려 북에 들어갔다는 내부 소식통의 제보도 들린다. 수출로 돈을 번 게 언제인데, 이런 거액은 도대체 언제 만든 것일까. 최근 대북 소식통으로부터 흥미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북한의 정보기술(IT) 인력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채굴장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2018년 9월 13일 미국 재무부는 북한 국적의 정성화(당시 48세)와 중국에 있는 북한 인력이 운영하는 IT업체인 옌볜실버스타, 그리고 이 회사의 러시아 소재 위장 기업인 볼라시스실버스타를 각각 제재 명단에 올렸다. 볼라시스실버스타가 1년 새 수십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이 제재 이유였다. 그런데 미국이 밝힌 액수는 당시 북한 내부 소식통이 기자에게 제보했던 액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해외 파견 IT 인력에 대해 잘 아는 위치에 있던 소식통은 정성화가 중국에서 지휘하는 인원만 300여 명에 이르며 이들이 1년에 벌어 바치는 돈은 2000만 달러(약 220억 원)라고 증언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외화를 벌기 위해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북한 IT 인력들이 해킹뿐 아니라 비트코인과 라이트코인, 모네로 등 암호화폐 채굴에도 뛰어들었다는 증언이었다. 중국 공장에 단체로 숙식하며 지내던, 1인당 상납금이 많지 않은 다른 북한 노동자들은 재작년 말 대다수 귀국했다. 그러나 정성화가 이끄는 ‘IT 외화벌이 전사’들은 미국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중국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주민 거주 지역에 월세 집을 얻어 5명 안팎의 소규모 팀으로 상주하며 외출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루 16시간씩 꼬박 앉아 작업을 하다 보니 허리 디스크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학대를 당하지만 탈출은 불가능하다. 이런 ‘IT 노예’들이 중국의 외진 지역들에서 최소 5년 이상 채굴장을 운영했다면 암호화폐를 얼마나 채굴했을까. 거기에 북한 해커에 의한 암호화폐 해킹 뉴스는 너무 많아 이제는 관심도 끌지 못할 지경이다. 2019년 8월 발간된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이 2015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최소 17개국의 금융기관과 암호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35차례의 사이버 공격을 진행해 최대 20억 달러어치를 탈취한 혐의가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시기 비트코인 평균 가격은 지금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으니 보고서의 20억 달러가 지금은 60억 달러가 됐을지도 모른다. 2017년 4월과 9월 900억 원어치가 사라진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 야피존과 코인이즈의 해킹 사건도 북한 해커 집단의 소행이라고 국가정보원은 밝혔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물론 요즘은 해킹만 됐다 하면 다 북한 소행이라고 하니 북한 해커들도 억울한 점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오랫동안 채굴과 해킹을 해왔다면 김정은이 상당히 많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매년 훔쳐간 총액은 김정은이나 알겠지만, 비트코인 1만 개만 있어도 5억 달러나 된다. 요즘 김정은은 암호화폐 지갑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며 활짝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철저한 익명성과 급격한 가격 변동성에 의존한 암호화폐는 어쩌면 말라 죽어가는 북한을 좀비처럼 잠시 부활시켜주는 신문명(新文明)의 선물일 수도 있어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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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열병식 노래’가 된 한국 민중가요[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지난달 14일 평양에서 진행된 제8차 노동당 대회 기념 열병식을 보면서 참가자들이 너무나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김일성광장을 행진하는 군인들의 얼굴이 동상을 입은 듯 하나같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얼마나 고생했을지 얼굴들이 말해주고 있다. 북한은 열병식을 보통 1년 내내 준비한다. 이번 열병식 참가자들이 작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도 했음을 감안하면 이들은 2019년 10월에 뽑혀 1년 3개월 동안 행진 연습만 했을 것이다. 열병식 참가자들은 행사 반년 전부터 철조망으로 차단된 평양 미림비행장의 훈련장에 들어가 훈련을 한다. 이번 참가자들은 작년 4월 초 평양에 와서 1월까지 9개월 동안 외출도 거의 못 하고 살았을 것이다. 한 개 열병조는 보통 297명으로 구성되는데 지휘관과 기수 9명, 횡대 24명, 종대 14명이다. 만약을 대비해 조마다 20명 남짓의 예비 인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훈련 때는 각 조가 약 320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김일성광장 주석단 앞 216m 구간을 보폭 70cm로 1분 40초 동안 정확히 통과하기 위해 1년을 바친다. 그나마 이번 열병식은 발을 60cm 높이로 정확하게 맞추는 ‘천리마발차기’가 없어 좀 수월했을 것 같다. 훈련생들은 오전 6시 전에 기상해 청소와 식사를 한 뒤 8시부터 열병 훈련을 시작한다. 지적을 받으면 저녁을 먹고 추가로 처벌 훈련을 받는다. 하루 종일 딱딱한 바닥에 발을 힘껏 구르니 방광이 망가져 피오줌이 나오고, 다리 근육이 굳어져 변기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야외에서 훈련하니 여름엔 더워서 죽고, 겨울엔 추워서 죽을 지경이다. 훈련에서는 횡대 24명이 가장 중요하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24명이 다 같이 움직이고, 기합을 받아도 다 같이 받는다. 1년 넘게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형제처럼 친해지게 된다. 악밖에 남지 않는 지옥의 훈련장에서도 참가자들은 서로 격려하며 힘든 과정을 이겨낸다. 2시간 행진 훈련 뒤 주어지는 30분 휴식 시간엔 털썩 주저앉아 누군가 선창하는 노래를 너도나도 따라 부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2002년 김일성 생일 90주년 기념 열병식 훈련장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열병식노래’라고 퍼져 훈련장과 김일성광장 모의 열병식에서 모두가 떼창을 하며 힘을 얻었던 가요가 한국 민중가요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탈북해 한국에 온 당시 열병식 참가자 3명을 만나 물어보니 이 가요가 열병식 훈련장에서 6개월 내내 압도적 인기를 끌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한 명은 한국에 와서 자기가 알던 ‘열병식 노래’가 한국 민중가요임을 알았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의 가사는 어쩌면 열병식 맞춤형으로 지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된 훈련에 지친 사람들에게 딱 맞다. 특히 후렴구인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라는 구절은 열병식 참가자들이 잊지 못한다. 동작의 하나 됨을 위해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벌판에 처벌 훈련을 하느라 남겨졌을 때 아픈 다리 서로 기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을까. 그들이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가슴이 아프다. 문제는 열병식 참가자 몇만 명이 합창했던 이 노래가 한국 가요인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들 그냥 누가 우리의 마음을 담아 자작곡을 지었나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장성급부터 시작해 지휘관들이 있었지만, 직급이 높다고 한국 노래 들어본 것은 아니니 몰라서 그냥 방치한 것이다. 나중에 열병식 참가자들이 고향으로 가 퍼뜨리는 바람에 이 노래는 2002년 북한에서 최고로 유행한 가요 중 하나가 됐다. 독재 정권을 찬양하느라 준비하는 열병식에서 한국의 민중가요가 가장 사랑받는 노래가 돼 김일성광장에서까지 떼창으로 불렸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듬해 남쪽에서 참여정부(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이 노래는 다시 한 번 크게 유행했다. 그런데 국민의 화합과 협력을 이뤄내야 하는 집권 세력이 ‘투쟁 속에 동지 모아 마침내 하나 되겠다’고 떼창을 부르면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오늘날 이 민중가요는 어둠 속에서 지치고 힘든 북한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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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신성분에 넘어졌던 북한 음악신동, 스카이차 위에 서다 [주성하 기자의 북에서 온 이웃]

    # 정해진 운명북한에서 그의 삶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꼬였다. 아니,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한반도의 가장 북쪽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1974년 태어난 조광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비상한 소질을 보였다. 5살 때부터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연주를 배웠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음악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인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 인재를 찾아 전국을 순회하던 평양음악대학 교수의 눈에 들었다. 교수는 평양에 가서 영재 교육을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입학통지서가 오지 않았다. 인민학교 4학년을 졸업했을 때는 도 소재지에 나가 예술인재 양성 교육기관인 예술학원 입학시험도 쳤다. 거기서도 합격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역시 입학통지서는 날아오지 않았다.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자 온 가족이 이유를 찾기 위해 나섰다. 그렇잖아도 조 씨의 부친 역시 군 복무를 마치고 탄광 노동자로 배치돼 온 것이 석연찮았다. 몇 년을 연줄을 타고 애타게 알아보고 알아보다 드디어 원인을 밝혀냈다. 북에선 ‘토대’라고 말하는 출신성분이 걸린 것이다. 토대 문건은 노동당이나 보위부 등 일부 기관에서만 비밀리에 관리하기 때문에 일반 주민은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문건을 볼 수가 없다. 그래도 대개는 자기가 왜 출신성분이 걸렸는지 짐작은 한다. 하지만 형이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고 알고 있는 조광호 씨의 부친은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전사자 가족은 북에서 토대가 좋은 축에 들어간다. 출신성분을 관리하는 중앙당 간부에게 매달려 알아본 결과 발단은 6.25전쟁 때 양강도 갑산군에서 한 마을을 담당했던 절름발이 분주소(파출소) 주재원(보안원) 때문이었다. 형이 인민군에 입대한 뒤 전사했다는 소식이 날아오자 주재원은 새파란 나이에 과부가 된 형수에게 집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치근거려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어느 날 “너는 앞으로 반동 집안으로 살게 될 거야”라고 저주를 퍼붓고 사라졌다. 주재원은 ‘주민요해문건’에 친척집에 놀러갔다 행불된 조 씨의 첫 번째 큰아버지는 ‘월남도주자’로, 전사한 둘째 큰아버지는 남쪽으로 도주한 것이 유력한 행방불명자로 기록했다. 1980년대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조 씨 집안은 출신성분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전방에 주둔한 옛 부대를 다니며 큰 아버지와 함께 싸웠고 그가 전사했다는 것을 진술할 증언자를 찾아내는 등 열심히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그의 집안과 관련된 숱한 서류들을 다 검토하고 고쳐야 하는 시끄러움을 감수해 줄 간부는 없었다. 토대를 바꾸지 못하는 ‘음악신동’의 앞날은 뻔했다. 그나마 부모가 열심히 애를 쓴 덕분인지, 아니면 그 정도 토대로도 가능한 일인지 도무지 기준은 알 수는 없지만 조 씨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17세에 김정숙교원대학에 입학했다. 북한에는 중학교 교원은 사범대학에서, 인민학교 교원은 교원대학에서 양성한다. 여학생들만 가득한 교원대학에서 조 씨는 몇 안 되는 남학생으로 4년을 마치고 졸업했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온성군의 한 농촌 인민학교에 음악교사로 배치됐다. 농촌은 보통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가 같은 건물을 쓴다. ‘고난의 행군’이 본격 시작도 되기 전인데 이미 그 학교엔 교사 정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자격도 없는 할아버지를 불러 ‘도레미파’ 정도의 음계만 겨우 가르치는 정도였다. 조 씨는 학교에서 음악교사 역할은 물론, 미술교사, 역사교사, 국어교사까지 모두 담당해야 했다. 나중에 중학교 음악교사가 없어 중학교 음악 수업도 했다. 고난의 행군이 닥치자 농촌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기 시작했다. 조 씨는 “마을에서 매일 1~2명씩 굶어 죽어갔고,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산에 올라가 부채마나 달맞이풀과 같은 중국에 팔릴만한 약초를 캤다”고 회상했다. 농촌에서 몇 년 버티다가 1998년 드디어 그나마 작은 도시라고 할만한 곳에 나왔다. 온성군 남양노동자구에 있는 남양인민학교 음악교사로 옮긴 것이다. 남양은 중국 옌벤(延邊)조선족자치구 투먼(圖們)과 마주한 도시로, 한국 언론에 종종 사진이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남양에 나온 뒤 조 씨는 중국을 매일 마주보며 살게 됐다. 당시 ‘교두’라고 불리는 남양세관 주변에는 ‘왜가리’들로 꽉 차 있었다. 왜가리는 중국에 친척을 둔 사람들이 국경에 와서 중국에 도와달라고 연락한 뒤 언제 짐이 넘어오나 중국 쪽을 왜가리처럼 목을 빼고 바라본다고 해서 붙어진 별칭이다. 거처할 곳이 변변치 않은 이들은 교두 주변에서 온실에서 쓰는 비닐을 쓰고 밤을 샌다. 다음날 국경다리를 통해 차가 나올 때마다 수백 명이 우르르 몰려가 자기 짐이 아닌지 확인하지만, 그들 중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그래도 남양은 중국과의 교류가 있어 농촌마을보다 훨씬 잘 살았다. 이곳에서 그는 음악을 가르쳤고, 방과 후엔 바이올린 교습도 했다. 이때만 해도 그는 중국으로 탈북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애도 태어나니 가장의 의무에 묶였다.# 탈북2003년 다시 온성군 탄광마을의 중학교 음악교사로 임명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흔히 한국에선 2003년쯤엔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난 줄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탄광마을은 여전히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보니 학급 재적인원이 25명인데 매일 7~8명만 나와요. 선생이 가르치기보단 매일 학생 가정을 방문해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과였어요. 막상 집에 가보면 학교에 나오란 말을 못해요. 먹지 못해 나올 수 없는 애, 옷과 신발이 없어 학교에 안 나오는 애, 나무 하러 산에 간 애, 부모가 장사하러 가서 집을 지켜야 하는 애…. 이유는 달라도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본질은 같았죠.” 학교에 겨우 데리고 나와도 문제였다. 학교에서 각종 물자를 내라는 요구가 끝이 없어 학생들은 억지로 왔다가 또 도망쳤다. 사실상 교육 시스템이 붕괴된 상태였다. 선생 생활에 회의감이 들 무렵 옆집 친구가 사라졌다. 한국에 먼저 간 딸이 고향에 남아있는 엄마와 남동생 두 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간 것이었다. 이러저런 상황을 거치며 조 씨도 중국과 한국을 건네다 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대학 때 친구가 있었어요. 그는 출신성분이 좋다는 이유로 보안서에 들어가 젊었을 때부터 승승장구를 했죠. 성분이 나쁜 저는 평생 이 생활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이 들 때 두만강 저 건너편을 보니 저긴 뭔가 새로운 세상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출신성분의 굴레에 묶여 평생 국경지역을 돌며 음악교사를 전전하는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난한 학생들을 그만 괴롭히고 싶었다. 그는 몰래 중국 휴대전화를 구입해 중국과 연락하며 장사를 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밑천이 없는 그에게 장사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2003년 9월 중국에 친척이 있다는 마을 여인 4명을 모집해 두만강을 넘었다. 그때만 해도 가정이 있는 터라 탈북을 한다는 것보다는 중국에 가서 돈을 마련해 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첫 원정은 실패였다. 중국의 친척들도 도와줄 형편이 못됐다. 그런데 그 일이 1년도 더 지난 2004년에 꼬리가 밟혔다. 온성군에 닥친 집중검열 과정에 당시 함께 중국으로 도강을 했던 여성 한 명이 체포돼 그의 이름을 분 것이었다. 그해 12월 그는 수업 중에 체포됐고 일주일 동안 감금됐다. 제 발로 돌아왔기 때문에 바로 감옥에 보내진 않고 일주일 동안 조사만 한 뒤 집에 돌려보냈다. 가뜩이나 출신성분이 나쁜데 중국에 몰래 갔다 온 경력까지 더해지면 인생이 뻔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긴 했지만, 교단에서 학생들에겐 조국에 충성하라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게다가 보안서 연줄을 찾아 알아보니 “지금은 조사할 사건이 많아 괜찮지만, 집중 검열이 마무리되면 교원에서 해임돼 1년 교화 또는 최소 6개월 노동단련대에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그는 탈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에 간 옆집 친구를 수소문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2005년 1월 5일 조 씨는 모친과 아내, 4세 딸까지 데리고 두만강을 넘었다. 친구가 탈북 루트를 잘 알려줘서 한국까지 오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1월 5일에 떠나 불과 두 달 뒤인 3월 8일 한국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빨리 입국하는 것은 희귀한 경우였다. 조 씨는 “지금까지도 한국에 온 것을 한번도 후회하진 않는다”며 “평생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할 선생이란 직업에서 해방돼 너무 좋고, 딸에게 미래를 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도돌이표 정착한국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북한의 음악교사가 한국에 와서 같은 전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조 씨도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라 음악을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음악만 해온 인생은 31세에 끝내고, 한국에선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 했다. 2006년에 아들이 또 태어났다. 대전에 정착한 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우유, 신문, 치킨 등 배달 서비스에서 시작해 청소업 등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봤다. 1년 정도는 한 탈북자 정착지원 민간단체의 요청으로 입원이 필요한 탈북민을 상담해주는 일도 했다. 물론 월급은 쥐꼬리만했다. 도무지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급기야 함께 탈북해 온 아내마저 4년 만에 “한국에 와서 사우나조차 못가고 살았는데, 당신과 살아봐야 희망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이런 처지에서 남을 상담하는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 상담사직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경기도로 옮겨왔다. 광명과 인천 등지를 전전하며 열심히 직업을 찾은 결과 경기도청에 시간제 계약직원으로 들어갔다. 하루 6시간 일하고 18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직업이었다. “제가 인천에 살았는데, 경기도 의정부 북부청사까지 매일 출퇴근을 했습니다. 왕복 90㎞를 오가야 했는데, 기름값이 한 달에 40만 원이나 드니 차를 타고 다닐 형편은 못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토바이를 타고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출퇴근했지만, 결국 이 직업도 1년 만에 그만두었다. 월급이 적은 이유보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도청에서 일하면 탈북민 사회를 위한 정책 제안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가보니 시간제 계약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더군요.”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생각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2013년경에 탈북민들 속에선 해외에 나가는 붐이 일었다. 한국에선 희망이 없으니 해외에 나가 영주권을 받고 살면 자녀의 삶이라도 달라지지 않겠는가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론 해외 생활이라고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외국으로 간 탈북민들을 만나 물으면 “한국에선 탈북자란 딱지를 죽을 때까지 떼지 못하지만, 해외에 나간 순간 진짜 코리안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대답이 많다. 외국에 나가면 더 이상 ‘노스’니 ‘사우스’니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디 출신이든 해외에선 똑같은 ‘이방인 코리안’이 된다. 탈북민들은 일반적으로 동등한 코리안으로 차별 없는 대접을 받는 것에 무척 큰 의미를 부여한다. 조 씨도 캐나다로 갔다. 2년을 버텼지만, 한국에서 간 탈북민에겐 끝내 영주권을 주지 않았다. 불법체류도 한계가 있었다. 다시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 애솔의 삶2015년 그는 또다시 출발선에 섰다. 한국에 온지 10년 됐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일자리는 없었다. 재혼한 아내와 두 자녀까지 먹여 살리려면 일은 해야 했지만, 괜찮은 일자리는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2016년에 새로 막둥이까지 태어나 자녀가 셋이나 됐다. 다섯 가족을 부양하느라 아무리 힘든 일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그를 눈여겨보던 지인이 ‘스카이’로 불리는 ‘고소작업차’를 해보라는 제안을 해왔다.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면 독립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업체에 들어가 월급 180만 원을 받으며 1톤 스카이차 기사 생활을 시작했다. 욕도 많이 먹으면서 6개월 동안 버티니 기술도 배우고 자신감도 생겼다. 기술이 높아지니 다른 업체에 3.5톤 스카이를 운전하고 월 25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이직도 가능했다. 한국에 와서 10년 넘게 월급 150만 원 언저리를 맴돌다가 250만 원씩 받게 되니, 드디어 인생의 직업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3.5톤 트럭을 6개월 한 뒤 그는 월급 280만 원을 받으며 5톤 스카이차 기사로 옮겨갈 수 있었다. 많이 벌 때는 월 300만 원도 벌었다. 조 씨는 42세가 돼서야 드디어 인생의 직업을 찾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스카이차는 작업자들을 정확한 높이와 위치에 올려주고, 작업 진행에 맞추어 다음 장소로 정확하게 옮겨주어야 한다. 그는 음반을 누비던 섬세한 손가락의 감각으로 외벽과 창문이 파손되지 않도록 탑승대를 부드럽게 조종해 이동시키며, 선율의 속도와 강약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능숙하게 작업자들과의 협업을 지휘한다. 조 씨는 1년 넘게 기사로 일하다가 2017년 2월 다른 스카이 기사들이 하는 대로 독립을 했다. 1억8000만 원짜리 5톤 스카이 차량을 할부로 구입했다. ‘일조스카이’라는 회사도 만들었다. 비록 자영업자이지만, 처음으로 회사 대표 명함도 갖게 된 것이다. 그해엔 건설경기가 좋아 일감도 많았다. 한달에 1500만 원을 벌 때도 있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서 일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건설경기가 좋지 않았다. 그해 번 돈은 전해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2019년은 다시 수입이 줄어 2017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작년 하반기에는 다시 수입이 재작년의 반으로 줄었다. 스카이를 처음 시작했던 2017년에 비하면 수입이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정착 15년차에 그가 얻은 교훈은 단 하나였다.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경과 고난 속에 다져진 자신감도 있었다. “정면으로 부딪쳐 보자. 이 많은 스카이 기사들이 다 장사가 안 된다고 그만둬도 워낙 고생을 많이 해본 나는 쥐꼬리만한 수입에도 오랫동안 버틸 자신이 있다.” 모두가 아우성일 때 조 씨는 1톤 스카이차를 9월에 또 사들였다. 5톤 스카이차는 30m까지 작업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비싼 단점이 있고, 1톤 스카이차는 18m 정도밖에 작업하지 못하지만 가격이 싸기 때문에 주문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차 두 대를 사고 나니 거짓말처럼 갑자기 일감이 밀려들었다. 단 4개월 사이에 올해 8개월 번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스카이 차량 업계도 경쟁은 치열하다. 서울·경기권에만 5000여대의 스카이차량이 있다. 이 업계는 고공 작업자들이 일감을 받아 스카이차를 부르는 구조다. 작업자가 함께 일해 본 기사에게 만족해야 또 찾아주는 것이다. 또 이권도 엄연하게 존재한다. 일을 하러 갔는데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가입된 기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업장에서 내쫓긴 적도 많다. 그럼에도 조 씨는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한 시기라고 했다. 사업 노하우도 이제는 충분히 쌓았고, 거래처도 많이 생겼다. 2017년에 구입한 5톤 트럭 할부금도 올해는 다 갚을 수 있다. 할부가 끝나 이제야 겨우 내 차가 됐지만 그는 이 차를 다시 중고로 팔아야 한다. 장비연식규제 때문이다. 5년이 넘은 노후차량은 상성이나 현대 등 대기업 작업 현장에는 아예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열심히 번 돈으로 임대주택을 졸업해 빌라이긴 하지만 다섯 식구가 살 수 있는 보금자리도 마련했다. 한국에 올 때 4살 밖에 안됐던 딸도 이제는 20살이 돼 곧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가게 된다. 고된 하루 일을 끝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들어서면 박수쳐주는 가족이 있어 그는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조 씨의 삶은 한국에 온 3만4000여명의 탈북민 중에서 그리 특별하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에서 특이한 경력과 사연을 갖고 산 것도 아니고, 탈북 과정에 북송 등을 거치며 고초를 겪은 것도 아니다. 한국에 와서도 10년 넘게 제대로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몇 년 전 시작한 장비업으로 아직 큰 돈을 번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한국에 온 대다수 탈북민들과 마찬가지로 바위산에 뿌리박고 자라는 애솔과 닮았다. 소나무에서 떨어져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거친 바위산을 굴러다니던 솔방울이 마침내 뿌리를 박을 곳을 찾고 줄기를 키우는 것이다. 푸르고 굳센 소나무의 연륜은 이제부터 시작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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