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88

추천

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44%
남북한 관계33%
산업10%
경제일반7%
사회일반3%
기타3%
  • [Food&Dining]산지부터 식탁까지 식품 안전이 최우선, 신세계푸드 “먹거리 안전 우리가 지킨다”

    신세계푸드가 고객들의 눈높이보다 높은 수준으로 식품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식품안전센터의 운영 수준을 한층 높인다. 식품 제조, 식자재 유통, 급식, 외식, 베이커리 등 다양한 식품 사업을 펼치고 있는 신세계푸드는 사업별로 최적의 식품안전 관리를 위해 전문 인력과 최신 장비를 활용해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식품안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장 1명에 20여 명의 식품안전 전문가들이 연구 분석, 식품 위생, 품질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식품안전센터 자체적으로 정부 공인기관 수준의 검사를 하기 위해 외부 기관과 연구소 등에서 5년 이상 경력의 전문 연구 인력도 꾸준히 영입하고 있다. 회사 측은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검사와 연구에 필요한 설비에만 30억 원을 투자했다. 안전센터에는 유전자, 미생물 분석부터 곰팡이 독소, 아크릴아마이드,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 분석, 식중독균을 신속하게 검사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 장비가 갖춰졌다. 특히 바로 섭취하거나 제품 원료로 쓰이는 신선 식자재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2017년부터 잔류농약 시험법을 도입해 540여 개 항목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진행하는 검사 대부분을 자체 역량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식품안전센터는 영국환경식품농림부에서 주관하는 식품 분야 잔류 농약 국제비교숙련도평가(FAPAS)에서 2017년 이후 4년 연속 우수 평가를 받고 있다. FAPAS는 분석 기관의 다양한 분석 능력을 평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숙련도 시험 프로그램으로 평가 결과에 따라 측정 검사 분야의 정확도와 신뢰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매년 각국 정부 기관과 대학, 민간 분석 기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투자를 바탕으로 신세계푸드는 식자재, 제조 상품, 급식, 외식, 베이커리에서 제공되는 식품과 식음 서비스의 안전성을 높은 수준에서 확보하고 있다. 특히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세계 선수단에 하루 1만 식 이상 프리미엄 식사를 제공하는 대규모 케이터링 서비스도 성공적으로 운영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부터 “역대 올림픽 케이터링 가운데 최고”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또 현재 식품위생법에서 요구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수준으로 식품안전 모니터링을 하는 ‘스마트 식품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급식, 외식, 베이커리 사업장의 식품안전 관리 강화에 나선다. 스마트 식품안전 시스템은 식품안전센터가 외부 전문 기관과 협업해 표면오염도 측정기, 유효 염소 농도 측정기 등을 활용해 식품 안전과 관련된 주요 5개 항목의 검사를 상시 진행하는 방식이다. 점검 결과는 태블릿을 통해 현장 관리자들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음식점 내 식품 안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신세계푸드가 운영 중인 외식, 베이커리, 카페 매장 400여 곳을 대상으로 식약처에서 진행 중인 ‘음식점 위생 등급제’ 인증 지원 컨설팅도 진행한다. 김종숙 신세계푸드 식품안전센터장은 “식품 안전은 실생활에서 고객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형마트나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되는 제품뿐 아니라 급식, 외식, 베이커리 매장 등에서 소비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식음 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식품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8-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처형된 무역일꾼, 억류된 중국 사업가

    2월 중국 주재 북한대사가 교체됐다. 그런데 전임 지재룡 대사는 북한이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받아주지 않아 아직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다. 1942년생인 지 전 대사로서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평양에서 자녀와 손자들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베이징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됐다. 3월에 철수한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관계자 수십 명도 베이징에서 발이 묶였다. 북한이 체류비도 주지 않아 말레이시아에서 번 달러가 생활비로 다 날아가지만 불평할 수도 없다.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냈던 지재룡도 귀국하지 못하는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이런 처지의 북한 사람들이 꽤 많다. 그만큼 북한은 해외와의 인적 왕래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폐쇄가 비단 북한 외교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리진쥔(李進軍) 북한 주재 중국대사도 임기가 끝나 돌아가야 하지만, 북한이 신임 대사 입국을 거부해 평양에 사실상 발이 묶였다. 북한 주재 중국대사들의 임기는 보통 5년이다. 리 대사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거쳐 2015년 3월에 부임했고 2020년 3월에 임기가 끝나야 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이 특별비행기로 순안공항에 새 대사 한 명만 내려놓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도 북한이 거절했다고 한다. 리 대사는 임기가 끝난 지 1년 반이 넘도록 인질처럼 평양에 잡혀 있다. 물자가 부족한 평양에서 사는 것도 어려운데, 그동안 승진도 할 수 없으니 리 대사의 속도 타들어갈 것 같다. 러시아 등 10여 개 평양 주재 외국 공관 외교관들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중국은 북한처럼 중요한 우방국 대사 자리를 비워둘 순 없다. 이렇게 북한이 대사급 교류조차 막고 있는 와중인 6월에 간이 크게 중국 사업가를 북한에 데려간 북한 무역일꾼이 나타났다. 그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신의주 세관에서 통과시켜 줄 정도면 평양에서 특별 지시가 떨어져야 가능하다. 요즘 김정은은 평양종합병원, 평양시 5만 가구, 의주비행장 대규모 방역시설 등 각종 건설 과제를 제시하고 간부들을 닦달하고 있다. 그런데 철강재나 시멘트, 방역설비 등을 중국에서 수입하지 못하면 건설이 진척될 수가 없다. 못하면 못했다고 처벌하고, 그렇다고 자재 수입도 못하게 하니 북한 고위 간부들은 죽을 맛이다. 진퇴양난 상황에서 그들은 못해서 목 잘리는 것보다는 편법을 써서라도 해놓는 것이 낫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못하면 눈에 딱 보여 처벌될 가능성이 100%인데, 몰래 물자를 중국에서 들여와 마무리하면 살 확률이 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위 간부 누군가가 측근 무역일꾼에게 “죽게 생겼다. 내가 국경을 열어줄 테니 중국에 가서 투자자나 물자를 좀 끌어오라”고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무역일꾼이 움직였다. 중국 사업가를 현장에 데려가서 “이런 것들을 해결해주면 이런 이권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발각됐다. 김정은의 지시로 무역일꾼은 즉시 체포돼 처형됐고, 중국 사업가는 북한에 체포돼 현재까지 억류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사업가도 북한과 나름대로 오랫동안 교류했던 사람이라고 하는데 도와주러 갔다가 봉변을 당하게 됐다. 앞으로 다른 중국 사업가들에게 북한과의 거래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듯하다. 처형된 무역일꾼의 윗선은 누구였을까. 6월 29일 김정은은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엄중한 후과가 초래됐다”고 하면서 고위 간부들을 줄줄이 처벌했다.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해임됐고, 최상건 교육 및 보건담당 비서는 회의 중에 끌려 나가 아직까지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정천 군 총참모장은 원수에서 차수로, 김정관 국방상은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됐다. 고위급이 처벌되면 부하 간부들도 줄줄이 함께 처벌된다. 이때 처벌된 간부 중 한 명이 처형된 무역일꾼의 윗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고위 간부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들의 처지도 참 답답해 보인다. 이러면 이랬다고 처벌하고, 저러면 저랬다고 처벌하고, 그렇다고 달아날 수도 없으니 온전히 목숨을 보전할 경우의 수가 거의 없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는 순간 머릿속에는 “아이쿠, 죽었구나”하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서울에서 북한 간부들 욕하기도 미안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북한에게 한미 합동훈련은 어떻게 다가올까[주성하의 北카페]

    북에서 성장하면서 유치원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 어느 날 바닷가 마을에 군인들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고, 바닷가에 해안포와 고사총이 전개되면 “아, 지금이 팀스피리트 기간이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보통 2~5월 농번기에 ‘팀스피리트’가 진행됐는데, 어른들은 농사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적위대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에는 거의 석 달가량 훈련이 지루하게 이뤄졌고, 어른들은 만나면 “저 미국놈 개×× 때문에 우리가 고생이다”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전방에선 어떤 훈련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후방 바닷가 마을에서 진행되는 훈련은 철저히 해안으로 상륙하는 적을 막는다는 가정 하에 방어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아이들도 훈련이 시작되면 동원될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갑자기 백사장에 개우리를 20~30m 간격으로 만들어놓고, 집에서 키우는 똥개를 저녁에 그곳에 묶어 놓았다 아침에 데리고 오는 과제를 받기도 했습니다. 간첩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가 밤에 해변을 지킨다는 발상이었죠. 아침, 저녁마다 집에서 키우던 개를 백사장 우리에 데려가고, 데려오면서 “미국놈들 때문에 너까지 고생이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랬던 팀스피리트 훈련은 1994년부터 중단됐습니다.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국방부가 북핵문제의 성공적인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의 조건부 중단을 공표하였는데, 이것이 팀스피리트로 명명된 한미간 연합훈련의 종결을 의미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2000년까지 살았지만, 그 이후론 한미 합동훈련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크게 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맞아 대량 아사가 시작된 북한은 당시 미국의 훈련에 대응할 힘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굶어죽고, 군부대에서 허약환자가 속출하는데 훈련을 나가라고 해도 나갈 힘조차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북한에서 살 때 팀스피리트 훈련은 철저히 미국과 한국이 훈련하는 척 병력을 끌어 들였다가 기회를 엿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팀스피리트가 시작되면 북한의 군사적 대응과 훈련도 함께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팀스피리트 훈련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면 북한이 공격 훈련을 할 때 한국도 맞춰서 방어 훈련을 시작해야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이 당시의 생각입니다. 요즘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를 타는 듯하다가 다시 긴장관계로 돌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여정과 김영철 통전부장이 연일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중단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연합군사훈련은 순전히 방어적”이라며 “우리가 오랫동안 주장했듯이 미국은 북한을 향한 적대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순전히 방어적’이란 표현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듣는 상대에 따라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큰 말입니다. 특히 북한은 더욱 그 말을 믿지는 않을 겁니다. 순전히 방어적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누군가의 공격을 막아내는 훈련이라는 것이겠죠. 즉 방어훈련을 하려면 공격을 하려는 위협이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국을 그 위협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당연히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훈련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북한은 선제공격을 할 의도나 능력이 있을까요.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시점에선 사실상 포기 상태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북한의 군사훈련은 한미 합동훈련이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 대응해 벌여왔습니다. 먼저 선제공격 훈련을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데 요즘은 대응 훈련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한국 상공에 한미 전투기들이 뜨면 북한도 같은 숫자의 전투기가 떠서 대응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도 보이지 못합니다. 전투기의 노후화가 심해서 쓸만한 전투기가 별로 없고, 연료도 없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1년 내내 한국을 선제공격하는 훈련을 했다고 가정해도 전혀 두렵지는 않습니다. 핵무기를 제외하면 재래식 무력에서 이미 남북간 경쟁은 끝난 지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된 고물 전투기를 운용하는 북한 공군과 함포를 쏘면 갑판이 쩍쩍 갈라지는 군함을 대안이 없어 아직도 유지하는 해군의 처참한 현실은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육군도 장사정포를 쏠 능력은 갖고 있지만, 선제공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갑전력은 분계선에 도착하기 전에 전멸될 수준입니다. 기갑부대가 주둔지에서 떠날 때부터 한미의 감시망에 다 포착이 되고, 대공 방어력이 거의 없는 고물 기갑전력은 한미 공군 전력 앞에 순식간에 증발될 것입니다. 저는 연료난으로 훈련을 거의 못한지 20~30년째인 북한군 탱크 조종사들이 과연 탱크를 북한의 좁은 도로에서 굴러먹지 않고 분계선까지 몰고 올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북한군은 10년을 복무한다고 알려졌지만, 이들 병력의 상당수는 건설장이나 농사 부업에 동원돼 변변한 군사훈련을 할 틈도 없습니다. 북한군의 절반 이상이 1년에 총을 3발 이상 쏴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미 남북의 재래식 군비경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은 공격은 고사하고 방어를 한다고 해도 며칠이나 버틸지 의문입니다. 1980년대에도 북한군의 전력은 한미를 압도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격차가 하늘땅 차이로 벌어져 남북의 재래식 군사력을 비유하면 격투기 선수와 중학생 수준만큼 벌어졌습니다. 이런 북한이 압도적 전력 우위를 가져야 가능한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을까요. 또한 방어훈련은 보통 약자가 해야 명분이 생깁니다. 예를 든다면 대만이 중국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훈련을 한다고 하면 대다수가 이를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군에 의한 본토 침공에 대비해 방어훈련을 한다며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어놓으면 이 세상에서 이를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지금 남북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으니 우리는 방어훈련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해가 갈수록 사람들을 점점 납득시키기 어려워질 겁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투하하고 선제공격을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재래식 병력이 하는 방어훈련은 더 의미가 없습니다. 북한이 핵을 쏘면 핵전쟁이 납니다. 핵전쟁에서 재래식 병력은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저는 굳이 한미 군사훈련을 하지 않아도 전면전 의사와 능력도 없는 북한을 견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격할 쪽이라는 북한에서 이미 훈련이고 뭐고 오래 전에 포기했고, 자기 스스로를 지킬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 “저놈들이 언제 전면전을 벌일지 모르니 우린 방어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는 논리는 과잉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가정한 대규모 훈련을 하면 그때 가서 우리가 대응해 방어훈련을 해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이정도만 말해도 빨갱이라고 욕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로 군사훈련을 포기하는 것은 제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군은 반드시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더 이상 군대가 아닙니다. 훈련을 해도 아주 강하게 해야 강군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막대한 돈을 들여 장만한 최신 군사장비도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써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설사 북한에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아무리 반발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우리가 군사훈련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압도적으로 벌어지는 전력 격차에 절망하며, 한미 연합군이 훈련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북한도 의식해야 합니다. 한반도 긴장상태 완화와 평화적 공존은 어떤 정부라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목표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해야 하는 것은 한미 연합군의 훈련을 어떻게 북한에 납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되겠네요. 참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신뢰가 쌓이면 또 풀지 못할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이를 푼 정권이 아직 없을 뿐입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8-15
    • 좋아요
    • 코멘트
  • 북한 여성이 남자에게 잘 대해주는 이유[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북한 여성이 남성에게 잘 대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탈북 여성을 만나고 싶어 하는 미혼 친구들이 주변에 좀 있다. 북에서 살아봤고, 한국과 중국 일본을 다 가본 개인적 경험에 비춰 보면 그건 맞는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여성이 장마당에 나가고, 집에 돌아와 밥하고, 애 보고, 청소도 도맡아 할 동안 남자는 까딱도 하지 않는 집이 많았다. 돈 버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이젠 청소 정도는 하는 남성도 늘었지만, 그래도 여성은 여전히 무시당한다. 예전에 중국에서 똑같은 사회주의 제도인데도 문화가 너무 달라 충격을 받았다. 많은 중국 남성들이 장보고, 요리하고, 애 보고, 빨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가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도 더 컸다. 그럼 북한은 왜 저럴까. 북한이 여전히 봉건 가부장적 유교문화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북한도 1946년에 ‘남녀평등법’을 발표하는 등 여성 권리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사회주의 정책은 강제력이 커 75년 동안 남녀평등 정책을 폈더라면 유교문화는 극복했을 것이다. 중국만 봐도 사회주의 시책하에서 여성의 권리도 높아졌다. 북한 남성이 큰소리치는 중요한 이유는 남녀 성비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김정은에게 보고되는 진짜 북한 인구통계를 2년 전 입수했다. 통계에 따르면 북한이 발표하는 인구 2500만 명은 가짜였다. 실제는 2000만 명이 좀 넘었다. 북한 성비(여성 100명당 남성 숫자)는 매우 충격적이다. 북한 인구 중 남성은 45%도 안 됐고, 여성은 55%가 넘었다. 가장 최근의 성비는 80.9에 그쳤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남성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리스트에서 압도적 1위다. 중국은 북한과 정반대의 성비 구조다. 중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성비는 105.3이지만 젊은층으로 갈수록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다. 25∼29세는 106.7, 20∼24세는 114.6, 15∼19세는 118.4까지 치솟는다. 1가구 1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남자아이만 선호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남성 12명 중 1, 2명은 결혼할 짝을 찾을 수 없고, 중국 전체로 보면 남성 4000만 명이 짝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중국 남성은 결혼하려면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여성 10명 중 2명이 짝을 찾지 못하는 북한은 중국과 상황이 정반대다. 더구나 북한 여성은 결혼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하다. 요즘 한국엔 혼자 살겠다는 여성이 늘어나지만 북한에선 결혼해 애가 없으면 모자란 여성 취급을 당한다. 결혼을 하려면 여성들끼리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반면 남자는 다소 모자라도 장가는 쉽게 갈 수 있다. 북한은 왜 남자가 적을까. 보고서엔 원인이 설명돼 있지 않다. 개인적으론 1950년 6·25전쟁 때 남성이 워낙 많이 죽어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지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전후 살아남은 남자는 금값이 됐다. 여성은 결혼하려면 혼수 정도는 몽땅 장만해야 했다. 지금도 북한에선 결혼할 때 여성이 가전제품과 장롱, 이불 등을 다 가져가는 지역이 태반이다. 결혼자금을 여성이 훨씬 더 많이 쓰는 것이다. 또 북한은 태아 성별을 알려준다거나(성별을 판별하는 장비가 북한에 과연 몇 대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낙태를 하는 것이 불법이니 아이 성별을 골라 낳을 수도 없다. 더 놀라운 점은 성비 불균형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이다. 1980년 남성 비율이 46%가 넘었는데 2008년부터 44%대로 떨어졌다. 북한은 남성으로 살기엔 최악의 환경이다. 남성은 17세 때부터 10년씩이나 군에 가서 안전 장비도 없는 각종 위험한 공사판에 동원돼 무리로 죽어가고, 사회에서도 각종 동원에 더 많이 시달린다. 또 보드카 때문에 남성이 빨리 죽기로 유명한 러시아처럼 술도 엄청 마셔대며, 의료 환경도 뒤떨어졌다. 그러니 여성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빨리 죽는 북한 남성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끝으로 탈북여성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친구들에겐 빨리 꿈에서 깨라고 하고 싶다. 2021년 한국의 성비는 100.4. 한국에 온 탈북여성은 더 이상 결혼 시장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다. 최악의 환경이지만 그래도 큰소리치며 살다가 갑자기 경쟁사회의 맨 밑바닥에 떨어져 어리둥절해진 탈북남성만 불쌍할 따름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8-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폭염이 남북 통신선을 연결시켜 준 것일까[주성하의 北카페]

    단절됐던 남북의 통신선이 27일 10시부터 복구돼 서로간의 통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좀 뜻밖의 진척이라 할 수 있죠. 북한은 지금까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내세우며 철저한 ‘셀프봉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과의 통신선을 복구하며 외부에 손짓을 한 것은 그만큼 내부 상황이 어렵다는 의미일 겁니다. 김정은이 무슨 의도로 남북 통신선을 복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는지, 복원 이후 언제, 무엇을 요구할지 등은 아직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재 북한 내부 사정을 통해 가능성이 높은 북한의 다음 행보를 예상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한국의 지원을 받기로 결심한 것이냐는 예상에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이 고심 끝에 외부 지원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내린 시점은 최근 며칠 사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달 29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비상방역과 관련한 중대사건이 발생했다며 간부들을 질타했습니다. 군부 1인자 이병철 노동당 군사위 부위원장과 2인자 박정천 총참모장은 원수에서 차수로 강등됐고, 3인자 김정관 국방상도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됐습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국경 개방에 대비한 비행장 소독 문제였다고 밝혔습니다. 평안북도 의주비행장을 소독 거점으로 정했는데,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경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사건이 있고 7월 중순 이전에 의주비행장 방역시설이 완공됐다고 합니다. 국경을 여는 것이 시급한데, 방역시설이 준비되지 못해 수입을 할 수 없었다면 상식적으로 완공이 된 뒤 수입이 물밀 듯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보름 넘게 김정은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중국에서 아무런 물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정은은 인적 교류 역시 현재 승인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중국 등 해외에는 체류기간이 만료됐지만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외교관, 무역일꾼, 노동자, 유학생 등이 수천 명이나 있습니다. 이중 가장 고위급이라 할 수 있는, 2월에 임기가 만료된 지재룡 중국 주재 북한 대사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베이징에 머물만큼 북한의 인적 교류 차단은 철저합니다. 물론 대다수는 귀국 기간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해외에 머무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에 돌아가 봐야 이어지는 노력동원과 조직생활로 땡볕에서 고생만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귀국 기간이 썩 지난 사람들에게도 이미 올해 중엔 귀국이 불가능하다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해외에서 돌아와야 할 북한 간부도 받지 않는데 한국이나 중국과 인적 교류를 하겠습니까. 통신선 복원과 상관없이 올해 말까지 북한과의 인적 왕래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물자 수용은 받으려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도 웬만큼 버틸 수만 있다면 받지 않을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북한 내부 상황이 몇 달 더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여의치 않습니다. 이미 6월에 군량미 창고까지 탈탈 털었는데도 일부 지역에선 아사자가 나온다는 대북 소식통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결국 중국과 한국에서 지원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을 겁니다. 김정은은 28일 평양 모란봉구역에 있는 북중 우의탑을 찾아가 헌화하고 북중 친선 계승을 다짐했습니다. 우의탑은 중국인민지원군의 6·25 참전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북중 친선의 상징이긴 하지만, 북한 지도자가 직접 찾아가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그럼에도 직접 김정은이 행차를 한 것은 지금이 중국에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7일 남북 통신선을 연결하고, 28일 중국에 메시지를 던진 것은 중국과 한국에 동시에 문을 열어 지원을 받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당장 북한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건설자재입니다. 지금 평양에 1만 세대 건설을 벌여놓고 수십만 명을 동원시켰는데 자재가 없으면 진척이 될 수가 없습니다. 수십 만 명이 건설현장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텐트 속에서 에어컨과 선풍기도 없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자재도 보장할 능력조차 못되면서 자신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해 괴롭히는 당국을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고층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철강재와 시멘트는 내부에서 생산한 것들이 질이 나빠 쓸 수가 없어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미 북한은 3월부터 몰래 서해상에서 중국과 밀무역을 통해 정말 급한 철강재와 시멘트는 조금씩 들여갔습니다. 한국에 손을 내민다면 이런 물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것 역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중국의 지원 물자를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미 중국이 북한에 식량 70만 톤 지원을 제안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철강재와 시멘트 역시 유엔의 대북제재 위반 사항에 걸리기 때문에 한국에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 백신 역시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한국도 없어서 난리인데, 그런 와중에 북한에 주게 되면 한국 정부가 엄청난 비난 여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한국에 바라는 것이 식량일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한편으로 코로나 사태에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져온 한국 정부는 코로나 협력이라는 명분도 보여야 합니다. 이럴 경우 한국에서 여유가 충분한 마스크와 진단키트, 대북제재 위반항목에 걸리지 않는 의료장비들이 지원될 수 있습니다. 마스크와 진단키트, 의료장비 같은 것은 중국이 무상으로 주기엔 애매한 것들입니다. 물론 지원이 이뤄져도 사람과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될 것입니다. 북한의 항구 중에 현재 방역 시설이 제일 잘 완비된 곳이 남포항입니다. 육로보단 해상으로 남포항에 가서 북한 사람과의 접촉 없이 하역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거론되겠죠. 김정은에겐 어디까지나 중국의 지원을 먼저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온갖 막말로 비난을 하다가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 김정은으로서도 썩 내키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한국을 향해서도 유화 신호를 보낸 것은 백업 지원자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즉 중국이 주고 모자라는 것과 중국이 주지 못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백업 선수로 한국을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 정부가 제발 문을 열고 나와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을 것이니 마지못해 나오는 척 명분도 챙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과거 북한은 수틀리면 “자기들이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라며 남북 간에 오간 비밀대화를 공개한 전례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에도 김정은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보냈다는 친서들을 공개해 현 정부를 곤욕에 빠뜨릴 수 있음을 늘 계산해야겠죠. 그러니 남북 간에는 친서를 보낼 때도 항상 나중에 북한에 약점을 잡힐 내용은 절대 넣으면 안 됩니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청하기 위해 통신선을 연결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사실 한미연합훈련은 김정은에게 큰 걱정거리는 아닙니다. 북한은 항상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맹비난해오긴 했지만, 한미연합군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가 훈련을 할 때 북한이 대응훈련을 하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 됐습니다. 한국 상공에서 전투기들이 훈련할 때 북한 상공에 이에 대응하는 전투기들이 한 대도 뜨지 않은 적이 많습니다. 선제공격을 당할까봐 불안한 모습이 전혀 아닙니다. 그럼에도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이것만큼 미국과 한국을 압박할 좋은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기대 이상의 흡족한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한미연합훈련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북한이 급작스럽게 통신선 연결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수입 또는 지원 물자가 빠르면 8월 초부터 들어갈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지원물자를 받게 된다면 협의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금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금이 코로나 방역에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죠. 그런데 1년 반이 넘도록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 있던 북한이 하필 가장 안 좋은 타이밍에 문을 열려 하는 것은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식량난이죠. 아무리 방역이 중요해도 북한 내부에서 대량아사가 나오는 것이 김정은에겐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마 겨우 버틸 정도의 식량만 있다면 김정은은 올해 내내 문을 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7월말이면 올해 작황이 가늠이 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엔 홍수 피해로, 올해는 가뭄 피해로 작황이 매우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올해 폭염에 따른 가뭄이 오지 않았다면 북한은 이제부터 수확될 옥수수와 감자 등으로 버티려 했겠죠. 결국 폭염을 보고 김정은은 “올해까지 버티기 어렵구나”를 직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이 폭염이 어쩌면 남북관계를 새로 시작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8-01
    • 좋아요
    • 코멘트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의 시간이 멈췄다

    북에서 살 때 내가 손목시계를 처음 가져본 것이 1991년이었다. 그즈음에 중국에서 숫자로 시간만 표시되는 초기 형태의 전자시계가 밀려들어 왔다. 그때 전자시계는 북한 돈 100원 정도였는데, 노동자의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당시 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차고 다니는 시계는 모란봉이란 상표의 기계식 태엽시계였는데, 일본 조총련에서 설비를 들여와 공장을 지었다고 했다. 소련에 간 벌목공들 덕분에 투박한 소련제 시계도 많이 들어와 팔렸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명품시계처럼 인정받은 것은 일본 세이코 브랜드였다.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대거 들여와 팔았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지금 북한 사람들의 손목은 중국산 전자시계가 차지했다. 중국산 짝퉁 세이코 전자시계도 많이 들어갔다. 투박하고 시간도 잘 맞지 않는 모란봉 시계는 어느 순간 팔리지도 않게 됐다. 벽시계조차 중국산이 차지했다. 탈북해 한국에 온 뒤 나는 10년 넘게 시계를 차지 않고 살았다. 휴대전화를 켜면 시간이 나오는데 굳이 손목에 거추장스럽게 시계를 차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컴퓨터를 켜도 나오고 TV를 켜도 나왔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시계를 꼭 차고 다니지 않아도 불편 없이 시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손목시계나 벽시계가 없으면 시간을 알 방법이 거의 없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에는 휴대전화가 많이 보급됐지만, 가난한 농촌 지역에 가면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TV는 정전 때문에 거의 나오지 않는 데다 혹 전기가 와도 저녁에만 방영된다. 컴퓨터나 노트북을 갖고 있는 집도 거의 없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국경을 폐쇄한 지 1년 반이 돼 가는 지금, 주민들의 가장 큰 불편은 뜻밖에도 시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의 관심사는 쌀값, 옥수수값, 외화 환율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대다수 북한 사람들에게 시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요즘 북-중 밀무역 종사자들에게 북한에서 가장 많이 요구받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거의 비슷하다. 식량도, 기름도, 설탕도 아닌 시계 배터리가 최우선 요구사항이라고 한다. 국경 폐쇄 1년 반이 되니 북한 사람들이 차고 다니는 시계의 배터리가 멈춰서기 시작한 것이다. 벽시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에는 중국의 주문을 받아 임가공으로 시계를 생산하는 공장은 있지만, 시계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은 없다. 북한의 대다수 시계는 작고 둥근 중국제 배터리를 쓰고 있는데 이것이 수입되지 않는 것이다. 시계 배터리는 과거 수입해 쌓아둔 재고도 거의 없다. 예전 북-중 무역이 활발하던 시기에 작고 가격이 비싸지도 않은 시계 배터리는 수입업자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품목이었다. 그런데 국경이 폐쇄되자 뜻밖에 시계 배터리가 금값이 되고 있다. 이미 북한에 있던 재고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다 팔려버린 상태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은 태양광 패널로 충전해 시간을 볼 수 있지만, 휴대전화가 많이 도입되지 않은 가난한 지역에선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시계란 항상 옆에 있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정작 시계가 없어 시간을 알 수 없으면 약속도 잡기 어려워 사회엔 엄청난 혼란이 조성된다. 요즘 북한에선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한다. 그게 곧 부의 상징처럼 간주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팔목에 시계도 없이 다니면 더욱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니, 멈춘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시간이 정지된 사회는 더 이상 현대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든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든다, 잠수함을 만든다며 힘을 과시하려 하지만, 정작 손톱만 한 시계 배터리 하나 때문에 한 세기가 후퇴하고 있다. 그토록 부르짖던 자립식 주체경제도 배터리 하나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 최근 변종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북한이 언제 북-중 국경을 개방할지 점점 기약이 없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나마 돌아가던 북한 주민들의 시계조차 하나둘 멈춰 설 것이다.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참상도 이겨냈던 북한 주민들이지만, 시간을 모르고 사는 사회는 그들도 여태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신세계일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7-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Food&Dining]인기버거 더블패티 제품 잇달아

    롯데GRS가 운영하는 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가 연초부터 대표 인기 버거들의제품 패티를 두 배로 늘린 더블 패티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롯데리아는 1989년에 내놓은 장수버거인 새우버거에 새우 패티 두 장을 넣은사각새우 더블버거를 1월에 선보였다. 이 버거는 1∼3월 매달 100만 개 이상 판매됐다.롯데리아는 4월과 5월에는 핫크리스피버거와 신제품 치즈No.5 제품에 패티 두 장 더 넣은 새로운 버거를 출시했다. 이 제품도 높은 관심을 받자 15일부터 손흥민 선수를 브랜드 모델로 선정해 K푸드 대표 메뉴인 불고기버거와 한우불고기버거를 새로 내놓았다. 롯데리아는 불고기버거와 한우불고기버거의 양상추 양을 기존보다 1.5배가량 높이고, 각 패티의 중량 역시 각각 25%, 28% 높였다. 가격은 기존 제품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새 제품은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판매량은 20% 늘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7-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Food&Dining]스텔라 아르투아 ‘헤리티지 에디션’

    벨기에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가 이달 초 600년 양조 전통을 강조한 한정판 ‘헤리티지 에디션’을 출시했다. 500mL 캔 2종으로 선보이는 헤리티지 에디션은 깊은 역사를 상징하는 옛 브랜드 로고와 전통적인 풍미와 스타일을 설명하는 문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스텔라 아르투아의 로고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고 10선’에 든 바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헤리티지 에디션’ 출시를 기념해 다양한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네 가지 디자인으로 특별 제작한 스텔라 전용 잔 ‘헤리티지 챌리스’ 1개와 헤리티지 에디션 4캔을 묶은 기프트팩을 내놨다. ‘헤리티지 챌리스’에는 레트로 스타일의 스텔라 아르투아 로고를 금색으로 각인해 멋스러움을 더했다. 기프트팩은 전국 대형마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7-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굶어죽는다” “괜찮다” 심상치 않은 북한 식량사정[주성하의 北카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로 지칭하는 1990년대 중반을 나는 평양에서 보냈다.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94년 12월 말, 설날을 며칠 앞둔 때였다. 너무 충격적이라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나는 원산에 갔는데, 원산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행색이 남루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북 구성에서 온 여인이었다. 그는 군수공장이 많은 자기 지역에선 8월경부터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고 있으며, 자신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친척을 찾아 원산에 왔다고 했다. 구성에선 곡식이 자라기 전에 사람들이 훔쳐 먹어 올해 농사는 기대할 것도 없고, 산에는 소나무들이 줄기가 하얗게 변했다고 전해주었다. 우려먹으려고 모두가 산에 올라 껍질(송기)을 벗겨 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굶어죽을 수가 있지?” 충격이었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배급 상황이 좋지는 않아도 평양과 원산에선 굶어죽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1995년 2월, 을씨년스럽던 평양의 장마당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쌀값이 자고 나면 무섭게 올랐다. 한 달도 안돼 2배가 오르더니, 두세 달 뒤엔 3배가 올랐다. 쌀값이 오르는 것과 비례해 장마당에 웃음이 사라졌고 악다구니만 높아졌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힘을 잃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겨난 꽃제비는 10년 넘게 북한 장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당시 직접 체험한 경험으로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북한처럼 정보가 통제되고 언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불과 몇 백리 밖에서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사 사태가 오기 전 식량가격은 당연히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이 가격 상승 그래픽은 우상향 직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더는 못 버틸 때 갑자기 계단처럼 껑충껑충 뛰어 오른다. 2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요즘 북한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나름 북한과 오랫동안 전화 연락을 한다는 탈북민들의 말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장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아직은 괜찮다는 것이다. 쌀 가격은 1㎏에 북한돈 5000원 전후로 고정됐고 굶어죽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는 것이다. 또 6월이면 보리나 햇감자가 수확돼 식량가격이 안정되는 시기라고 한다. 두 번째 주장은 지금 지방은 물론 평양에서도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쌀값은 최근 한 달 동안 3배나 상승해 1만5000원이 됐다고 한다. 6월에 보리나 햇감자가 나오긴 하지만, 북한에서 보리와 햇감자는 거의 심지 않는 작물이기 때문에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기엔 미미한 생산량이라는 분석도 곁들인다. 나와 연계되는 몇몇 대북 소식통은 아직은 식량 사정이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잘 사는 사람들이다. 요즘은 이동이 통제돼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니 타 지역에 가서 직접 상황을 보고 오기도 여의치 않다. 현지 사정을 전화로 물으면 도청돼 간첩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 괜찮다는 주장과 위기라는 주장 중 어느 것이 맞는지에 대해선 지금 당장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정보가 엇갈려도 너무 엇갈린다는 점이 바로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북한 시장에서의 쌀 가격과 옥수수 가격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없었다. 대북 소식통들을 통해 한국에 공개된 가격이 거의 정확했다. 내가 한국에 와서 기자가 된 이래 19년 동안 그래왔다. 그런데 불과 한달 사이에 극과 극인 정보가 북한에서 흘러온다. 이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참사를 알리는 서막일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1990년대 중반의 기억을 소환할 수밖에 됐다. 불과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평양에 사는 나는 전혀 몰랐다. 평양까지 충격이 온 것은 특정 지역의 대량 아사가 시작된 뒤 6개월 쯤 뒤였다. 지금 북한은 그때보다 훨씬 더 정보가 잘 통제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지역간 이동이 사실상 거의 차단된 상태다. 눈으로 참상을 목격하고 다른 지역에 와 알릴 메신저들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물론 1990년대 중반에는 없던 휴대전화가 많이 보급됐다. 하지만 굶어죽는 계층은 휴대전화를 가질 능력이 없다. 1990년대 중반에도 전화기가 있었지만, 아사 사태에 앞서 전기가 먼저 끊겨 무용지물이었다. 지금은 태양광 충전기가 많이 보급됐지만 이것도 잘 사는 지역에만 집중됐을 뿐, 굶어죽는 지역에는 휴대전화를 충전할 전기조차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 내에서 외부와 연계되는 정보망이 지금은 대거 사라졌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부터 외부와 연계되는 전화를 뿌리 뽑으라며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지시했다. 벌써 반 년 넘게 국경 지역에는 외부와 연결된 전화기를 찾으려는 검열단이 혈안이 돼 돌아치고 있다. 지금처럼 북한과 통화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 게다가 도청도 일반화돼 있어 국경 지역 사람이 다른 지역의 상황을 자세히 물으면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니 평북 구성에서 다시금 대량 아사가 벌어져도 양강도나 함경북도 국경지역에 사는 사람이 그 소식을 알고, 그 소식이 다시 한국과 연계된 휴대전화로 흘러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 북한 외교관이나 무역일꾼들도 자기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북한에서 전화를 거의 연결해주지도 않을뿐더러, 혹시 연결됐어도 가족의 안부 외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 간첩으로 의심받아 말을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와도 외부에서 바로 알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북한 식량 상황이 심상치 않을 수 있다고 보는 다른 이유는 쌀 가격에 대해 5000원이라고 하는 사람과 1만5000원이라고 하는 사람 중 한쪽의 말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둘 다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코로나를 핑계로 지역간 이동을 차단하면 물류도 차단된다.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물류가 정상적일 때는 지역간 쌀값 편차가 크지 않았다. 어느 지역에 쌀이 모자라 가격이 오르면 즉시 장사꾼끼리 정보가 공유돼 다른 지역에서 쌀을 실은 차들이 이동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쌀값이 3배가 올라도 방역 차단 조치 때문에 차가 다른 지역으로 가기 어렵다. 심지어 방역을 핑계로 기차도 잘 다니지 않는다. 또 어느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쌀을 나르다간 쌀값 상승을 부추기는 투기 세력으로 몰려 처벌받기 십상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돈주들에 대한 단속까지 맞물렸기 때문에 쌀값을 좌우할만한 대규모 식량 구입 및 이동이 어렵다. 그러니 어느 지역에선 쌀을 5000원에 팔아도 다른 지역에선 쌀이 없어 1만5000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불과 두세 달 사이에 쌀값이 3배로 껑충 뛰는 것을 나는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만약 북한의 식량난이 지금 급격히 악화된다고 하면 여기서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처럼 또다시 수도와 지방 가리지 않은 대량아사 사태를 겪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은 “최근 중국이 북한에 식량 70만 톤 지원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식량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가 맞을 수 있는 코로나 백신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북한은 식량에 대해선 긍정적이나 백신을 받는 것은 아직 확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최근 김정은이 이병철 노동당 상무위원을 포함한 군 서열 1~3위를 전부 해임한 것은 평북 의주비행장에 방역 시설을 갖추라는 지시를 태만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행장까지 하나 내서 방역시설을 갖출 정도면 많은 물동량을 받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중국의 대규모 식량 지원설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중국에서 식량 70만 톤만 들어가면 북한은 아사 사태에서 벗어난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에는 김정일이 체면 때문에 상황을 공개하지 않아 가장 필요한 순간 대대적인 외부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지금은 미국과 첨예한 힘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얼마든지 식량 지원을 할 수 있다. 둘째로 식량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김정은은 6월 중순 특별 명령으로 군량미 창고를 열어 배급을 주라고 지시했다. 물론 군량미 창고에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에 적혀 있는 만큼의 군량미가 실제로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의지는 엿볼 수 있다. 군량미뿐만 아니라 식량 문제를 풀라는 여러 지시가 지방에 하달되는 정황이 포착된다. 반면 김정일은 1990년대 중반 아사자가 속출할 때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군량미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선군정치’로 포장한 계엄정치를 꺼내들어 불만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것이 김정은과 김정일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적어도 현재까진 아사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량난이 더 악화되면 북한은 한국 정부의 식량지원 카드를 받을 것일까.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식량지원에 있어 여러 차례 헛발질을 했다. 쌀을 보내주면 북한이 고마워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북한의 식량사정이 괜찮을 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쌀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물론 이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재작년에도 문재인 정권이 식량지원 카드를 꺼낸 지 석 달 만에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라는 욕설로 응대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과거의 경험에 매몰돼 고민도 없이 꺼낸 대북정책의 말로였다. 지금 역시 북한은 한국이 쌀을 주겠다고 하면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받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쌀을 보내주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섞어 보낼 수 있다고 경계한다. 그러나 만약 북한에 대량 아사가 벌어지고, 중국이 보내주는 지원도 충분치 않다면 김정은은 한국의 식량지원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제부터 북한의 식량 사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정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동족이 굶어죽을 때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죄악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7-18
    • 좋아요
    • 코멘트
  • 전화 못 받아 처형된 총정치국 38부장[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북한 노동당 비자금을 관리하던 38호실은 많이 알려졌다. 38호실은 2008년경 비슷한 역할을 하는 39호실과 통합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군에도 숫자 ‘38’로 시작되는 38부라는 비밀 부서가 있다. 총정치국 소속인 38부는 김정일 시절부터 있던 역사가 오랜 조직이지만 지금까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부서의 임무는 김씨 일가의 별장 관리다. 북한에는 초대소 또는 특각으로 불리는 김씨 일가의 별장이 최소 30여 개 있는데, 평양에만 10개가 넘는다. 백화원초대소나 고방산초대소처럼 과거 한국 대통령 방북 때 숙소로 사용해 외부에 알려진 것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북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 비밀시설이다. 평양의 대표적 비밀 초대소는 문수거리의 문수초대소, 모란봉 자락의 모란초대소, 혁신역 근처 비파초대소 등을 들 수 있다. 김정일은 수시로 측근들을 초대소에 불러 밤새 술을 마셨다. 초대소를 수십 곳이나 만든 것은 한곳에만 다니면 질리니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한곳에만 계속 가면 초대소 종사자들이 “장군님은 일은 안 하고 밤마다 술판만 펼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정 초대소에 어쩌다 한 번 가야 “장군님이 열심히 일하다가 오랜만에 쉬러 오셨으니 잘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김정일 사망 후 이 초대소들은 김정은이 물려받았다. 초대소는 요리사를 제외한 모든 근무 인원이 군 소속이다. 군복을 입혀 놓고 관리하는 것이 비밀 유지나 운영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여성들도 많은데 5과 선발을 통해 전국에서 뽑아 온 미녀들이다. 초대소를 호위사령부에서 관리할 법하지만 경호원들에게 사치스러운 생활이 폭로되는 것이 싫었는지 경비는 호위사령부에서, 관리는 총정치국 38부에서 하도록 분리했다. 38부는 과거 왕조 시절 내시나 환관이 담당했던 일을 하는 부서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우두머리로 상선이나 태감과 같은 위치에 있는 38부장의 계급은 중장이다. 왕조 시절 권력과 거리를 두었던 상선이 오래 자리를 지켰듯이, 북한도 38부장은 잘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2014년 4월 38부장이 어이없이 처형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막을 잘 아는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혁신역 앞에 있는 비파초대소에 김정은이 불쑥 나타났다고 한다. 그날은 리설주와 부부 동반으로 와서 술을 마시고 갔는데, 둘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였다. 김정은이 돌아간 뒤 비파초대소 근무원들이 모였다. 북한 초대소들에는 행사가 끝나면 그날 봉사조가 한자리에 모여 “이번에 행사를 잘했다”고 격려하거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총화를 한 뒤 회식을 하는 관행이 있다. 음식도 잔뜩 준비한 날이니 다 먹어치우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런 행사는 38부장이 주관한다. 그는 상선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김정은이 어느 초대소에 나타났다고 하면 현지에 나와 모든 것을 지휘한다. 그날따라 38부장은 기분이 좋았는지 부하들과 술을 과하게 마시고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비파초대소 성원들은 38부장이 술도 깨기 전에 끌려가 처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필 그날 새벽 김정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38부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다는 것이 죽은 이유였다. 특징적인 것은 김정은과 리설주가 그날 술을 마시고 떠나기 전 설탕 없는 진한 블랙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갔다고 한다. 밤에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이 김정은의 습관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자정 직전에 커피를 마신 김정은은 잠이 오지 않았는지 갑자기 38부장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취해버린 38부장이 전화를 받지 못했고, 김정은은 이를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얼마 뒤 군인들이 들이닥쳐 38부장을 끌고 갔다. 2014년 4월은 김정은이 신경이 매우 곤두서 있을 때였다. 5개월 전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처형한 뒤 ‘여독을 청산’한다면서 다음 해 봄까지 관계자 수천 명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 수십 명 살생부에 사인을 할 때이니 김정은에겐 상선의 목숨쯤은 하찮게 보였을지 모른다. 38부장의 죽음은 북한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국 위원으로 있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노동당 박태성 비서나 최상건 비서는 이름이라도 남겼다. 하지만 38부장처럼 충복으로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는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숫자를 헤아릴 만한 사람도 이미 북한에 남아 있지 않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7-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칼춤 추는 김정은, 예고된 피바람이 분다 [주성하의 北카페]

    마침내 북한에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곡소리가 넘치고 있습니다. 올해 봄부터 제가 여러 차례 예고했던 숙청이 본격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누구나 알다시피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북미 회담의 실패로 외부로 향한 북한의 문은 꽁꽁 닫혔습니다. 여기에 북한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셀프로 내부 빗장까지 든든히 질러버렸습니다. 북한은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이 됐습니다.김정은 역시 대외 활동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화를 벌어 주민의 인심을 살 수도 없게 됐습니다. 북한을 한 집안으로 비유하면 아래와 같은 형국입니다. 가장(家長)이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돈까지 벌어오지 못하니 집안은 먹고 살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식구들의 원망이 높아지고, 능력 없는 가장에 대한 비웃음과 무시도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출입문에 빗장을 잠근 가장은 폭력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다가 급기야 몽둥이를 들고 말을 듣지 않는 가족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면 다시 인자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점점 폭력의 강도만 커질 뿐이죠. 지금 김정은의 모양새가 바로 할 일이 없어지니 집안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가지도 못하게 만든 뒤 가족을 두드려 패는 데 힘을 쓰는 주폭을 닮았습니다. 이번 주 열린 북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보건, 교육, 과학기술을 담당한 정치국 위원 최상건 당 비서는 주석단에서 사라졌습니다. 회의 전에 미리 최 비서가 앉을 의자를 뺀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 속에는 회의 초기 최 비서가 주석단에 앉아있던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텅 빈 의자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는 회의 도중 최 비서가 끌려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성택 숙청 때 그랬듯이 일단 회의에 참석시킨 뒤 모든 참가자가 보는 앞에서 끌어내 숙청을 한 듯 보입니다.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2월에 정치국에서 김두일 노동당 경제부장과 박태성 노동당 선전비서가 사라진데 이어 최상건 비서도 없어졌습니다. 이중 박태성 비서는 처형됐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이 전해왔습니다. 나머지 두 명의 운명도 나중에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최 비서뿐만 아니라 북한에 김정은 빼고 4명뿐인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인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번에 해임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국 위원인 박정천 군 총참모장과 함께 말입니다. 해임 후 어떤 조치가 따를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덕훈 총리 또한 이번 확대회의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최근 경제난에 따른 책임 추궁을 당해 실각 가능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김정은은 “경제 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이번 숙청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된 인물들은 워낙 고위급이라 외부에서 알 수 있지만, 알려지지 않고 숙청된 사람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한때 내로라하던 간부들이 줄줄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다른 간부들도 언제 자기 순서가 다가올지 몰라 오금이 저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김정은은 리병철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의 경질 배경에 대해 “책임 간부들이 세계적 보건 위기에 대비한 국가비상방역전 대책을 세우는 당의 중요 결정 집행을 태공(태업)함으로써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켰다”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군부 서열 1, 2위의 간부가 뜬금없이 코로나 방역 지침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아 군량미와 관련된 사건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은 6월 중순 특별명령으로 군량미를 풀어 식량난을 겪는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아마 “군량미 몇 십만 톤이 있으니 이걸 풀어 평양시민들 석 달 배급은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는 식의 계산이 섰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 군량미 창고에 서류에 기록된 것만큼 식량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북한은 늘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와 실제 현장이 다릅니다. 사실대로 보고했다가 김정은이 격노하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야 “당장 채우라”고 지시하면 그만이지만, 자기도 채울 능력이 없는데 아래 간부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못 채우면 당의 지시를 집행하지 않았다고 또 숙청됩니다. 그러니 허위 보고가 난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허위 보고는 평소에는 들키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직접 모든 군량미 창고를 다 가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김정은이 군량미로 어디에, 언제까지 배급을 주라고 지시를 하면 사정이 다릅니다. 솔직히 말해도 처벌되고, 배급을 못줘도 처벌됩니다. 이 때문에 군 간부들이 부족한 군량미를 메우기 위해 김정은 몰래 외국에서 식량을 밀수하다 들켰다는 이야기가 북한에 퍼지고 있습니다. 뒤늦게 군량미 창고에 식량이 충분치 않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은도 배급을 주겠다고 약속한 자기 체면이 땅바닥에 구겨 박혔다고 생각해 분노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선포한 비상방역 규정을 깨고 식량을 수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군 고위 간부 두 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민심을 달래려한 듯 보입니다. “나는 군량미까지 풀려고 했는데, 거짓말하는 나쁜 간부들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을 뿐 내 잘못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대체로 무능한 가장은 자기 책임은 전혀 없고, 가족이 굶주리는 이유를 아내가 살림을 잘못해서, 평소에 축적을 못해서, 장성한 아들이 게을러서 이런 식으로 돌립니다. 불평이라도 했다가는 몽둥이가 날아와 죽을 수도 있으니 식구들은 말도 못합니다. 그리고 집안의 군기를 잡기 위해 대개 자식보단 먼저 서열이 위인 아내부터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을 향해 “너희가 배고픈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잘못했기 때문이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딱 그 식입니다. 자기 잘못을 숙청을 통해 고위 간부들에게 전가하는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올해 간부들을 숙청하겠다고 한 것은 이미 예고된 순서입니다. 그 진행 단계는 이렇습니다. 올해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를 시작으로 이어진 많은 회의에서 김정은은 국가 경제에 피해를 주고, 딴 주머니를 챙기려는 간부를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으로 엄중시하고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심지어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비호·조장시키는 대상들을 일꾼(간부) 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하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김정은이 말한 제거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4월까지 거친 말들을 써가며 경고한 뒤 봄에 전국에서 자수 바람이 불었습니다. “과거 잘못한 것을 솔직히 고백하면 용서하고, 숨겼다 나중에 들키면 죽인다”는 겁니다. 문을 닫아 감옥처럼 변한 북한에서 전 국민을 ‘죄수의 딜레마’에 몰아넣은 겁니다. 경고와 자수 단계를 거쳐 6월말부터 예고된 숙청이 본격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제일 고위 간부들부터 경질됐는데, 이는 “이 정도 거물들도 용서받지 못할 정도면 아래 간부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피바람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숙청이 중앙 간부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간부들이 까딱 잘못하면 죽게 생겼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정은에게 자기는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목숨 건 간부들은 눈이 뒤집혔습니다. 이번엔 고위 간부들이 아래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리 기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새 북한 내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합니다. 평양에서도 밤을 자고 나면 사람들이 잡혀가 살벌한 공포가 온 도시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신의주, 혜산, 회령 등 국경도시들은 더 많이 잡혀갑니다. 주요 도시들도 사람들 잡아가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반사회주의 및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뿌리 뽑으라고 했으니 간부들은 실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신의주 시당 책임비서가 김정은에게 “장군님 말씀에 따라 강한 투쟁을 벌여 우리 도시에선 반사회주의 반동분자 100명을 제거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혜산 시당 책임비서는 “우리는 더 열심히 투쟁해 200명을 숙청했습니다”고 보고하는 식입니다. 이런 숙청은 충성 경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정의 칼날을 잡은 간부들에겐 “내가 죽거나 너(인민)가 죽거나”의 목숨 건 싸움인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결국 죽어나갈 것은 인민들 밖에 없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면 저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끔찍할 따름입니다. 물가는 정신없이 오르고, 식량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잔인한 숙청까지 시작되니 북한 주민들 속에선 지금 “김정은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한 명 때문에 지금 북한 전국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아우성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김정은에겐 위안이 될 일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7월호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제주포럼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은 절대왕조 국가의 군주 특성과 현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을 겸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정은이 무슨 짓을 하던 한결같이 칭송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역시 나의 강한 결단력과 리더십, 어쩔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꺼내드는 숙청이라는 경영방식은 밖에서도 인정해준다. 역시 나는 뛰어난 지도자가 분명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김정은이 그런 자기 최면까지 걸리게 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피 비린내가 진동하게 될까요.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7-04
    • 좋아요
    • 코멘트
  • ‘절세형’ 삼성증권 중개형 ISA, 출시 넉달만에 42만계좌 돌파

    삼성증권의 중개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신규 가입자가 28일 기준 42만 명을 넘어섰다. 2월 말 업계 최초로 중개형 ISA를 출시한 삼성증권은 4개월 만에 전체 중개형 ISA 계좌의 절반이 넘는 42만 계좌를 달성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가입 고객의 50%가 20, 30대를 의미하는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입자 중 82%인 34만5000명은 삼성증권과 거래한 적이 없는 신규 고객이다. 그만큼 삼성증권의 중개형 ISA가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증권이 발행한 중개형 ISA는 배당소득세 면제, 주식 투자에서 발생한 손실만큼 계좌 내 해외펀드 등 간접상품에서 발생한 수익의 과세표준을 줄일 수 있는 손실상계 제도 등의 절세 혜택이 있는 상품이다. 상대적으로 젊고 투자 경험이 적은 젊은층에서 중개형 ISA의 이런 절세 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계좌 개설 열풍이 분 것으로 분석된다. 비단 MZ세대뿐만 아니라 중개형 ISA의 강점인 배당소득세 면제, 손실상계 제도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금융 자산을 축적하는 투자자들도 적극적인 가입 계층에 포함되고 있다. 은행신탁형 ISA에서 삼성증권 중개형 ISA로 이전 신청 후 대기 중인 고객도 2만 명이 넘을 정도로 중개형 ISA에 대한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삼성증권에서 중개형 ISA를 개설한 고객들은 주식, 펀드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투자한 자산은 국내주식이고, 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이 그 다음 순서를 차지했다. 실제 삼성증권 중개형 ISA에서 매수한 국내주식 종목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 삼성전자(우), 카카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과 KT&G, 맥쿼리 등 이른바 고배당주들이 매수 상위 10위 종목에 포함됐다. 보유 자산을 분석한 결과, 고객들은 중개형 ISA의 장점 중 하나인 배당소득 절세 혜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장기 투자를 위한 안정성이 높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보유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증권 중개형 ISA 가입 고객들은 적극적인 자산 투자뿐만 아니라 공모주 청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입 고객 중 5만2000명이 중개형 ISA 계좌를 활용해 공모주 청약에도 참여하는 등 중개형 ISA를 자산 증식을 위한 계좌로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올해 도입된 ISA 이월납입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2016년 ISA 최초 오픈 당시 이미 신탁형·일임형 계좌를 개설했던 투자자들 중에서 중개형으로 이전해 투자 원금을 최대 1억 원까지 확대한 고객도 늘고 있다. 삼성증권 디지털부문장인 이승호 부사장은 “절세 매력이 분명한 중개형 ISA는 이제 ‘주린이’ 투자자들의 기본 투자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다양한 상품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중개형 ISA의 절세 효과를 극대화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제안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6-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호텔방엔 몰카가 있을까

    대다수 사람들은 북한 호텔에 묵으면 도청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없어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령 “나 같은 사람도 도청할까” “수천 명의 관광객이 한꺼번에 가도 다 도청이 가능할까” “몰래카메라(몰카)는 없을까” 등의 의문을 제기한다. 남과 북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엔 ‘귀때기’라는 도청 전문가가 등장한다. 귀때기란 단어는 처음 들었지만 북에 도청 전담 조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국가보위성 화학처가 도청을 담당한다. 도청 담당 부서 명칭이 왜 화학처인지 의아한 생각도 든다. 요즘 화학무기를 쓸 일이 없으니 주요 임무가 폭발물 제거와 도청 업무로 바뀌었다고 한다. 직접 도청도 하지만 특정 보위원이 요청하면 도청 장비를 제공하거나 감시 대상이나 기관에 도청 장비만 설치하기도 한다. 북한의 모든 호텔에는 화학처 소속 보위원이 최소 한 명씩은 상주해 있다. 고려호텔이나 양각도호텔처럼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엔 여러 명이 있다. 그러니 평양 호텔에는 무조건 방마다 도청기가 있다고 보면 된다. 모든 대화가 도청 또는 녹음되는 것이다. 2016년 1월 관광차 방북해 양각도호텔에 투숙하던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는 호텔 5층에 걸린 선전 문구를 떼어냈다가 체포돼 목숨을 잃었다. 웜비어 방북 이전부터 양각도호텔 5층은 외국인 사이에서 유명했다. 호텔 엘리베이터에 5층 버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외국인 관광객은 계단을 통해 5층을 몰래 탐험하며 스릴을 느끼기도 했다. 웜비어 역시 이 미스터리한 공포의 5층을 탐험한 뒤 기념으로 선전 문구를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5층에 보위성 화학처 소속 도청 담당 보위원들이 상주해 있다. 북한 호텔에는 몰카도 설치돼 있을까. 욕실에 설치된 몰카는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그런데 도청기는 모든 방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몰카는 투숙객의 중요도에 따라 설치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몰카 찾아내는 여러 방법이 나오는데, 이 중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서 찾는 방법이 가장 많다. 하지만 북에선 휴대전화를 압수당할 수도 있으니 다른 방법을 파악해 갈 필요가 있다. 방마다 몰카를 설치하지 않은 이유가 투숙객에 대한 최후의 배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짜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몰카를 대량으로 구매해 왔다면 당연히 설치가 됐을 것인데, 다행히 북한이 운영되는 방식이 ‘필요한 것은 자력갱생하라’는 것이라 몰카 살 돈도 보위성에서 벌어야 한다. 그런데 담당자들 처지에선 굳이 막대한 외화를 들여 몰카까지 사다가 모든 호텔방에 설치할 동기부여가 떨어진다. 솔직히 그럴 돈이 있으면 슬쩍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보위성에는 화학처 외에 감청을 담당하는 부서가 또 있다. 보위성 11국이다. 두 부서의 임무는 다르다. 화학처가 국내 도청을 담당한다면 11국은 외국과의 연계를 적발하는 부서다. 탈북민이 북에 전화를 할 때 이를 적발하는 담당 부서가 바로 11국이다. 이 부서는 중요성 때문인지 당국이 비싼 장비를 많이 수입해 공급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독일 등에서 최첨단 전파탐지기를 대거 구입해 북-중 국경에 엄청 깔아놓았다. 질도 좋은 데다 숫자까지 많으니 최근엔 한국과 통화하면 5분 안에 보위원들이 들이닥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국과 통화하려고 몇 시간씩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난해부터는 코로나를 핑계로 이동까지 철저히 파악하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경 주민들 속에선 보위성 탐지기가 통화 내용까지 도청한다고 소문났다. 이건 겁을 주느라 보위성에서 일부러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특정 집에서 몇 시에 통화가 이뤄진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지향성 안테나로 조준해 통화까지 잡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어쩌다 적발한 사례를 소문으로 퍼뜨려 공포를 준다. 최근 김정은은 외부와 연계되는 선을 찾는 데 어느 때보다 관심을 쏟고 있다. 보위성도 김정은이 관심을 기울일 때 공을 세워야 크게 포상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보위원들이 평소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던 송금 브로커들을 불러 과거의 죄를 용서해준다며 이중첩자 활동을 강요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탈북민들에게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때는 연락을 끊는 것이 최선이다. 김정은이 이걸 노렸다면 당분간은 성공한 셈이다. 다만 얼마나 오래 막을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정은은 왜 회의장 인테리어에 집착할까 [주성하의 北카페]

    한동안 사라졌던 김정은이 최근 다시 나타나 열심히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노동당 전원회의가 열렸습니다. 망해가는 회사들의 공통점이 쓸데없이 회의만 많다는 것이라는데 북한도 올해 회의가 부쩍 늘었습니다. 올해가 채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당 전원회의만 3차례나 열렸습니다. 아마 북한 인민들은 이젠 무슨 회의를 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겁니다. 회의를 했다고 해서 대책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김정은이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해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말했군요. 회의를 한다고 식량이 생겨날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김정은이 올해 어디 시찰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고 회의를 하는 모습만 계속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계속 보다보니 눈길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회의를 할 때마다 회의장이 바뀝니다. 여러 회의장을 번갈아 쓰기도 하고, 또 같은 방인 것 같아도 배경이 바뀌고 의자가 바뀌거나 병풍이 바뀝니다. 한번은 큰 원탁에 앉아 했다가, 한번은 책걸상 놓고 했다가, 또 한번은 그냥 접견실 같은 분위기를 맞추어 했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 바뀝니다. 김정은이 이런 것에 아주 예민하다는 증거겠죠. 회의 사진이 외부에 공개되니 없어도 있어 보이려 하는지 몰라도 아무튼 계속 회의장이 바뀝니다. 같은 회의장에서 계속 회의를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와 지난해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장 사진을 한번 모아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의장 분위기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의상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 보입니다. 빨간 의자에 앉으면 참가자들이 흰 옷으로 통일하기도 하고, 김정은만 흰옷을 입고 나머지는 검정 계열 양복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 김정은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와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에 엄청 민감하다는 뜻이겠죠. 매번 열심히 회의장을 개조하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이번 주 북카페 주제를 김정은의 회의장으로 정했습니다. 무슨 회의장이 저리도 많은지 저도 놀랐습니다. 회의장 인테리어에도 돈이 참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걸 보면 식량 형편이 어려운 나라 같지도 않습니다. 세계에서 회의장에 돈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북한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비본질적인 것에 저렇게 집착할까요. 김정은은 회의장만 저렇게 계속 바꾸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중앙당 청사 안에 있는 15호 관저도 벌써 몇 번이나 뜯어고쳐 그럴 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은의 고향으로 알려진 원산 ‘602초대소’에도 계속 새로운 빌라들이 건설됩니다. 602초대소 인근에는 비행장이 건설됐다가 몇 년 뒤엔 또 갈아버리고 승마장으로 변신했습니다. 전국의 김정은 별장 인근에 김정은 전용 비행장도 10곳 넘게 생겼습니다. 저렇게 인테리어에 신경 쓸 시간에 인민을 위한 고민을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래에 최근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부터 지난해 초에 주재한 회의까지 회의장을 쭉 소개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회의장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아 1년 반의 변화만 보여드립니다. 16일 열린 노동당 8기 3차 전원회의 장소. 대형 원탁에 참가자들이 앉아있습니다. 이달 7일 김정은이 주재한 당중앙위원회와 도당위원회 책임간부협의회. 뒤쪽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있는 이 방은 과거 자주 등장했던 곳으로 김정은의 기본 집무 공간으로 보입니다. 이달 4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가 열린 장소. 북한은 회의가 당 중앙위 본부 청사에서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뒤에 유리문이 보입니다 2월 24일 열린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진행됐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2월 8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장소. 참가자가 많아서인지 회의장 사이즈가 커 보입니다.지난해 11월 15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 큰 원탁에 간부들이 둘러앉았고 소나무와 송학이 새겨진 파란 배경이 눈길을 끕니다.(위) 흰 의자라는 점을 감안해 참석자들은 검은 계열 양복으로 통일해 옷을 입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7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선 장성들과 김여정을 제외하고 모두 흰 옷을 입었습니다.(아래)지난해 8월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중앙엔 빨간 배경을 바탕으로 깔고 빨간 카펫을 깔았습니다. 반면 군인을 제외한 모든 간부는 흰 옷을 입고, 흰색 소파에 앉아 색의 조화를 맞추었습니다.지난해 8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7기 제4차 정무국 회의. 회의장 규모가 작고 큰 흰 테이블에 참가자들이 모여 앉아있습니다.지난해 7월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조국해방전쟁 승리(정전협정 체결) 67주년 기념 백두산 기념 권총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이 회의장은 빨간 분위기로 장식했는데(위), 두 달 전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가 열릴 때는 흰 의자와 책상이 놓여있었습니다.(아래) 지난해 7월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전체적으로 원목을 사용해 회의장 분위기를 엔티크한 느낌이 나게 만들었네요.(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검은 색을 많이 강조시킨 회의장 분위기입니다.(아래)지난해 6월 7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 원탁에 둘러앉는 구성이지만 창문이 있는 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김정은만 흰색 옷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 양복으로 통일했습니다.지난해 2월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격자형 목재를 사용해 배경을 꾸렸습니다.지난해 2월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회의장 분위기를 화이트로 맞추고 빨간 의자를 놓아 색을 조화시켰습니다.지난해 10월 새로 꾸린 김일성광장 주석단. 유럽풍의 흰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난간도 둥근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 넣었습니다.(위·가운데) 여러 회의실에도 둥근 대리석 기둥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유럽에서 생활한 김정은은 흰 대리석 기둥을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기존 김일성광장 주석단 모습으로 수십 년 동안 외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파격적으로 새롭게 꾸렸습니다.(아래)김정은은 자기가 살고 있는 평양 중심부 15호 관저도 최근 10년 동안 세 번이나 뜯어 고쳤습니다. 맨 위에 올해 위성사진에 포착된 새 단장한 뒤의 관저 모습이고, 두 번째가 2015년 공사를 위해 지붕을 뜯었을 때 사진입니다. 맨 아래는 김정일이 생존해 있던 2009년 15호 관저 모습입니다.평양 관저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원산 602초대소도 계속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맨 위가 김정은이 이용하는 별장의 최신 모습입니다. 파란 지붕을 한 여러 건물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602초대소 인근에는 파란 색의 현대적인 건물들이 김정은 집권 후 새로 생겼는데 누가 사용하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두 번째). 초대소 인근에는 전용 기차역과 비행장이 새로 생겼는데, 원산공항을 최신식으로 꾸린 뒤 비행장을 없애고 그 자리를 승마장으로 개조했습니다. 김정은의 창성별장 인근에 생겨난 전용비행장 활주로. 김정은 집권 이후 그의 지방 별장 인근에 10여개의 전용 비행장이 새롭게 건설됐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6-20
    • 좋아요
    • 코멘트
  • 원주 한라대, 자율주행 순찰로봇 ‘골리’ 운영 간담회 개최

    원주 한라대학교(총장 김응권)의 민영재 교수팀이 3일 원주시의 ‘자율주행 순찰로봇 골리’ 운영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원주시 첨단산업과와 도시정보센터가 참여했으며 골리의 이동형 CCTV와 기존 고정형 CCTV 시스템의 연계 방안, 하반기 내 골리 실증 운영 일정 등이 논의됐다. 골리는 자율주행 선도기업인 만도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순찰로봇으로 시흥 시 배곧생명공원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민영재 ICT융합공학부 교수팀은 지난달 2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경찰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치안현장 맞춤형 연구개발사업(폴리스랩2.0)에 ‘순찰로봇 및 CCTV 증거영상 내 자동 인물 모자이크 처리 시스템’의 ‘선기획연구’에 선정돼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6-15
    • 좋아요
    • 코멘트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한국 만화 팬 김정은의 고민

    최근 몇 년 새 북한에선 느닷없이 역사물 애니메이션 수백 편이 쏟아졌다. 50부로 종영됐던 ‘소년장수’라는 애니메이션이 100부로 연장되고 ‘고주몽’ ‘고구려의 젊은 무사들’이란 수십 부작 시리즈도 시작됐다. 2014년 11월 26일 김정은이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를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이날 김정은은 “야심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대국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만화영화 창작에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강령적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내막을 잘 아는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만화영화 수준을 질책하면서 샘플 하나 보내줄 거니 그걸 따라 배우라고 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 김정은이 보낸 CD가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한국 역사물 애니메이션이었고, 제작자들은 황송한 태도로 시사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 사례는 김정은이 한국 만화를 많이 보며 자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은 집권 초기에도 북한은 뽀로로 제작사인 오콘에 출산이 임박한 김정은의 자식을 위해 애니메이션을 특별제작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정은은 뽀로로를 비롯한 한국 애니메이션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김정은이 지난해 말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이란 것을 만들어 한류를 접하면 최대 사형에 이르는 엄벌을 내리고 있다. 북한에서 반동문화를 가장 많이 접한 사람이 다름 아닌 김정은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김정은의 독촉 아래 만화영화 제작자들은 80일 전투니, 100일 전투니 하면서 뽕이 빠지게 만화영화를 찍어냈다. 새 애니메이션은 3차원(3D)을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용과 방식은 기존의 고리타분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라도 만화영화는 만들지만 영화는 사정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은 1990년대에도 영화는 1년에 10여 편씩 제작됐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소식통은 “혁명 과업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욕먹으니 매년 몇 개씩 찍기는 하는데 김정은이 비준(승인)을 해주지 않아 창작 의욕을 잃은 상태”라고 전했다. 문화예술을 사상적 세뇌의 주요 수단으로 간주하는 북한에선 김씨 일가의 허락이 없으면 새 영화가 공개되지 않는다. 김정은이 ‘비준’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봐도 재미없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에서 살면서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고 자랐을 김정은의 눈에 천편일률적이고 연기도 못하는 북한 영화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하지만 북한 영화계는 속도전으로 바꿀 수가 없다.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상업 영화가 없으니 당국이 돈을 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논다고 욕을 먹을 수는 없으니 제작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부잣집 자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스타로 만들어주는 대신 각종 소품과 의상, 세트장 제작 비용, 스태프들 식사까지 대는 조건이다. 이런 환경이니 닭다리 뜯어먹는 장면이 하나라도 들어가면 모두가 긴장한다. 감독이 “다시” 하면 주인공 얼굴부터 험악하게 변한다고 한다. 장마당에 가서 자기 돈으로 닭을 다시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영화에서 연기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 뻔하다. 게다가 잘못하면 황색 바람이 들었다고 몰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러니 김정은도 짜증나서 못 봐줄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새로 만들면 사인이 떨어지지 않으니 영화 창작자들은 요즘 옛날 영화를 각색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워낙 권력자들이 많이 처형되다 보니 이들이 끼고돌던 연예인들도 많이 연루돼 죽었다. 배우가 숙청되면 영화는 상영 금지 목록에 오른다. 이런 영화에서 숙청된 배우를 다른 배우로 대체해 다시 제작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부족인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다 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박미향이나 장성택의 여자로 처형된 김혜경이 나온 영화는 배우도 바꾸지 않고 작년부터 다시 상영된다. 배역 이름이 나오는 엔딩에서 주인공 이름만 삭제됐다. 그렇긴 해도 숙청된 배우의 얼굴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북한 영화판이 비정상이란 의미인데, 정상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해가 갈수록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다. ‘혁명’이란 것을 시작할 때 예술선전부터 앞세웠는데 망해갈 땐 예술선전이 맨 먼저 죽는 처지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6-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정은에게 벌써 ‘죽음의 공포’가 닥쳐왔나[주성하의 北카페]

    북한이 1월 개최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조선노동당 새 규약이 최근 한국에 입수돼 보도됐습니다.노동당 규약은 굳이 순서로 따지면 북한에서 두 번째쯤 강력한 권위를 가지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김 씨 일가의 소위 ‘말씀’이 최우선합니다. 김정은의 지시는 그 어떤 법으로도 통제할 수 없으며 노동당 규약이나 헌법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정확하게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당 규약과 헌법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당 규약이 더 파워가 셉니다. 사람들이 처형되고 숙청될 때도 당 규약을 위반했다고 처벌 받는 경우가 압도적이지 헌법을 위반했다고 벌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수령과 노동당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에 헌법 정도는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헌법 아래에 형사법을 비롯한 다른 분야별 법령이 있습니다.8차 당대회에서는 많은 조항들이 개정됐습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북한을 파고들어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게 필요할지는 몰라도 일반인들은 알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북한은 1945년 10월 10일 노동당을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9차례나 규약을 개정했습니다. 개정할 때마다 뭔가 달라질 것 같아도 결국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아마 당 규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제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북한은 김 씨 일가가 3대를 이어 마음대로 통치해왔지 규약에 언급한 노동당의 목표, 영도 방식, 노동당과 당원의 권리 등 번드르르한 말들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솔직히 평생을 북한에서 살아왔고, 북한을 연구하는 자리에 있지만 노동당 규약이 어떻게 개정됐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거기엔 북한의 현실이 거의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이번 당 규약에 딱 한 가지는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노동당에 제1비서라는 직제가 새로 생기고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노동당 총비서(김정은)의 대리인이다”고 규정한 대목입니다. 대리인은 말 그대로 김정은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그를 대신해 통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현재 시점에서 후계자라 볼 수 있습니다.대리인 지정이 놀라운 점은 지금 김정은이 후계자를 거론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84년생인 김정은은 올해 만 37세입니다.정치 권력은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후계 구도가 정해지면 기성 권력의 파워는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대개 생전에 후계 지명을 최대한 늦추려 합니다.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김정일이 북한 후계자로 내정된 시기는 1974년으로 김일성이 62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식 발표된 시점은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로 김일성이 68세 때였습니다. 김정일이 아버지에게서 후계자로 인정받은 것은 스스로 치열한 권력 투쟁을 거쳐 쟁취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의 두 아들을 몰아냈고,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6차 당대회 이후 예상대로 김일성은 점차 권력에서 밀려났습니다.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김정일을 거쳐야 했고, 김일성은 급기야 핵심 권력을 모두 넘긴 1992년에 아들에게 아부하는 ‘송시(訟詩)’까지 쓰는 신세가 됐습니다.자기가 했던 짓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은 60세 넘어서도 후계 지명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후계자를 지명하는 순간 자기의 절대 권력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그러다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달 넘게 사경을 헤맨 뒤에야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했습니다. 김정일 나이 66세 때였죠. 뇌졸중에서 목숨을 부지한 김정일은 뼈만 남은 상태였고, 걸음도 겨우 옮겼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김정일을 휩쌌을 겁니다. 자신의 몸 상태는 본인이 제일 잘 알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실제 3년 뒤 김정일은 공식화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급사했습니다. 아마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했다면 김정일은 70세 넘길 때까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김정은은 아버지가68세였던 2010년에야 공식 후계자로 대내외에 존재를 알렸습니다.결국 김일성도, 김정일도 환갑을 훌쩍 넘긴 시점에 후계자를 정해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에 자신이 있다면 후계자는 절대 빨리 지정할 필요도 없고, 권력자 스스로도 그럴 생각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37세인 김정은이 후계자를 벌써 내정했다면 무슨 의미일까요.“나는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죽을 가능성도 대비해 사후 혼란을 막고 권력을 내 뜻대로 이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은은 벌써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라고 봐야 합니다.이런 각도에서 퍼즐을 맞춰보니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1년 남짓 보인 김정은의 비정상적인 행보가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크게 네 가지 퍼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우선 지난해 4월의 은둔입니다. 그때 태양절 기념 참배조차 하지 않아 김정은 사망설이 한국 언론을 달구었습니다. 김정은이 건강했다면 태양절 참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5월 1일 모습을 나타내 사망설은 수그러들었지만, 같은 달 24일까지 김정은은 또 23일간 은둔했습니다. 명색이 지도자인데 40일 넘도록 딱 한번만 나타났습니다. 이상한 일이죠.이때 북한 고위 소식통들은 “4월 들어 김정은의 신경질이 급격히 늘어나고 비준해야 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고 있으며, 결재를 받으러 들어간 간부들을 향해 욕설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정보가 맞다면 정신 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의미고, 보이는 행동은 우울증 또는 조울증 증상과 가까웠습니다.두 번째 퍼즐은 6월 갑자기 김여정이 등장해 대리인 행세를 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을 폭파하고 자기 이름으로 형식이 이상한 담화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 보고에서 국가정보원은 ‘위임 통치’라는 단어를 등장시켰습니다. 김정은이 멀쩡했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입니다.세 번째 퍼즐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이 매우 포악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처형이 크게 늘어나고 처형 방식도 매우 잔인해졌습니다.물론 김정은의 포악함을 얘기할 때 2013년 장성택 처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숙청의 필요성이 있다고 이해할 수라도 있었습니다. 북한 간부들이 장성택의 눈치를 살피고, 북한 재정의 절반 이상을 장성택이 장악하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권력자가 강력한 경쟁자에 대한 숙청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다지려는 것은 당위성에서 이해가 됩니다.그러나 작년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제는 김정은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세력이 없습니다. 공식 서열 2위인 황병서까지 김정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입을 막으며 보고했던 장면이 대표적인 방증입니다. 권위에 도전할 세력도 없어지고, 인자함을 보여줘도 되는 순간에 포악해진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8월 노동당 경제부장이 공개 처형된 뒤 화염방사기로 불살라졌고, 올해 2월엔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가 수천 명의 예술인 앞에서 시신도 분간할 수 없이 처형됐습니다. 북한 공식 서열 5위인 박태성 선전비서가 처형됐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2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무려 700여명이 방역지침 위반으로 처형됐습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신의주세관이 통째로 체포됐고, 같은 달 함경북도 온성군에선 탈북 했다가 몰래 돌아온 사람 한 명 때문에 당, 보위부, 보안서, 경비대 등의 간부 10여명이 공개 처형됐고, 모든 조직이 해산돼 소속원들이 농장에 추방됐습니다. 평양 인근 평원군에서도 보안서가 통째 해산됐습니다. 이렇게 담당 관내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조직 간부들을 죽이고 조직 자체를 연좌제로 해산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잔인함은 김정은의 정신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화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닐까요.네 번째 퍼즐은 요즘 또 김정은이 사라졌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4월 11일부터 지금까지 50일 동안 김정은은 딱 3일 동안만 잠깐씩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다시 공식 활동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올해는 전국에 ‘제2의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선포한 터라 계속 나타나 다그쳐도 모자랄 판인데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에 보내놓고 자기는 사라진 겁니다. 나타나야 할 타이밍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것은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이러한 퍼즐들을 두루 꿰어보면 김정은의 건강은 어쨌든 정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본인이 누구보다 자신의 건강을 잘 알기에 37세에 대리인을 꺼내든 것이 아닐까요. 2009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아들이 권력을 물려받으려면 아직 10년은 더 권력을 지탱해야 하는데 10년 안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그렇다면 누가 대리인이 될까요. 일각에선 공식 서열 2위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대리인일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저는 그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북한 공식 서열 2위의 죽음을 보았습니까. 북한 같은 왕조에선 2인자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신세에 불과합니다.그렇다면 안전한 2인자는 누구일까요. 왕조 체제인 북한은 세습 재벌처럼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오랜 가신(家臣)이 부회장으로 있어도 물려받는 것은 결국 ‘패밀리’입니다. 그리고 부회장과 의논할 문제가 있고 패밀리가 모여 의논할 문제도 따로 있습니다. 가신의 운명도 패밀리 회의에서 결정되니 결국 패밀리 미팅이 제일 중요하겠죠.김정은에게 현존하는 패밀리는 형제인 김정철과 김여정 뿐입니다. 그런데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았고, 북한 내에도 전혀 공개되지 않은 김정철을 갑자기 2인자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가장 가능성이 높은 김정은의 대리인, 노동당 1비서는 김여정 밖에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김정은의 현재 처지에서도 여동생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일 겁니다.아직 북한은 노동당 1비서 직제만 신설했을 뿐 김여정을 공식 임명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김정은의 대리인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자리에 누가 올랐는지 언론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죠. 만약 김여정이 1비서를 맡았으면 이미 공개해야 할 겁니다.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도 알아야 대리인의 말을 잘 들을 것이 아니겠습니까.김정은의 공식 대리인 직책이 생겼다는 당 규약 내용 하나만으로 참 긴 글이 나왔습니다.어떤 언론은 당 규약 개정에서 북한이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조선노동당 규약 속 ‘북 주도 혁명통일론’ 관련 문구를 삭제한 것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을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대체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 조항이 있든 없든 우리에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노동당이 당 규약에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북한에 그럴 힘이 있을까요. 규약에 남조선혁명도 해야 한다고 하면 예산과 인력을 그쪽에 돌리지 않을 수가 없고, 헛 힘만 쓰는 꼴이 됩니다. 결국 현실성 가능성이 떨어지는 조항을 없애 실리를 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솔직히 김정은 왕국도 겨우 버텨 지켜내는데 한국을 상대로 민족해방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의 2000만 명도 겨우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자유분방한 한국의 5000만 명을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볼 때 지금 김정은은 남조선혁명까지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전에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김정은의 공포가 새 노동당 규약 속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6-06
    • 좋아요
    • 코멘트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한국산 장비로 무장한 소속 없는 北부대 1여단

    구글어스로 북한을 자주 살펴본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정은 관저나 별장은 많이 바뀐다. 대표적으로 평양 중심부 김정은 관저는 두 차례나 리모델링됐고, 원산 별장도 김정일이 쓰던 기본 건물을 버리고 새 단장을 했다. 별장 주변엔 비행장을 새로 건설했다가 2년 전에 없애고 그 자리에 승마장을 만들었다. 원산공항이 새 단장하면서 일부러 전용비행장까지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김정은 집권 몇 년 사이 전국 별장 주변마다 깔끔하게 건설된 전용 비행장들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걸 통해 김정은이 자신의 향락과 관련된 시설에 관심이 많고, 이것저것 요구 조건도 까다롭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공사는 김정은의 호화 생활에 대해 소문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또 최고 수준의 건설 기술과 안전 기준을 갖춰야 한다. 이를 도맡아 하는 조직이 1여단이다. 1여단은 편제 자체가 특별하다. 분명 군인들인데, 국방성이나 총참모부 호위사령부 등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오직 김정은의 지시만 받는다. 1여단장은 일반 부대 군단장 계급인 중장 또는 상장이 맡는다. 평양시 형제산구역 중당동에 본부를 둔 1여단은 여단 재판소까지 따로 갖고 있다. 군인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인민군 검찰소나 재판소에서 다루는데, 1여단은 비밀이 새 나갈까 봐 처벌도 따로 하는 것이다. 이 부대가 원래 소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일성 시절 그의 지시를 받는 공병국이라는 건설부대가 생겼는데, 군이 아닌 사회안전부(경찰청) 소속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김정일이 아버지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쓰기 위해 공병국에서 1개 여단을 떼어내 호위사령부에 소속시키고 전국 도처에 별장을 지었다. 김일성 사후 공병국은 찬밥 신세가 됐지만 1여단은 승승장구했다. 힘이 커져 나중엔 호위사령부에서도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1여단의 능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2010년 여름 불과 일주일 만에 평양 주요 도로 아스팔트 포장 공사를 다 끝낸 것을 들 수 있다. 그해 9월 28일 김정일은 44년 만에 노동당 대표자대회를 열고 김정은을 공개했는데, 직전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평양 주요 도로를 모두 포장했다. 이를 1여단이 맡았다. 공사 기간은 보름 정도 잡았지만 일주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평양사람들이 모두 놀랐다고 한다. 물론 평양은 완벽한 교통 통제가 가능해 특정 구간을 폐쇄하고 주야로 공사할 수 있다. 하지만 장비와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게 가능한 유일한 집단이 1여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1여단이 사용하는 덤프트럭은 모두 현대가 만든 트럭이라고 한다. 이 부대를 아는 탈북민에 따르면 덤프트럭 외에 굴착기, 불도저 등 기본 장비의 80%가 현대나 두산에서 생산한 한국산이라고 한다. 나머지 특수장비의 경우 일본산 비중이 높다. 한국산 장비들은 어떻게 북에 들어갔을까. 2006년 한국이 신포 경수로 공사에서 철수하며 건설 중장비 93대와 차량 190대를 남겨두고 온 기록이 있다. 같은 해 노무현 정부가 수해복구 명목으로 굴착기 50대, 페이로더 60대, 8t 덤프트럭 100대를 지원했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을 때도 덤프트럭은 아니지만 일반 현대트럭 100대도 넘어갔다. 이를 포함해 이런저런 경로로 남쪽에서 넘어갔거나, 중국에서 수입한 한국 트럭을 고스란히 1여단이 접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밀 유지가 철저한 1여단이 한국산 차량을 몰아 갖고 있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도 유리하다. 2015년 한국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면서 남겨둔 각종 차량 100여 대 중에서도 이미 1여단에 넘어간 것이 있을지 모른다. 1여단은 최우선적인 특혜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필요한 부품은 중국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1여단은 각종 비밀이 필요한 특수 건설도 담당한다. 평북 동창리 기지와 영변 핵단지 시설 공사 때 수해 지원으로 보냈거나 신포에 남겨둔 한국산 중장비가 동원된 정황을 한미 정보기관이 포착했다. 그렇다면 이 공사도 1여단이 맡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 순간도 1여단 현대 덤프트럭들은 어디에 가서 열심히 달리고 있을지 궁금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5-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민은 고난의 행군, 김정은은 호화요트 휴가[주성하의 北카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겠지만, 지난해 4월 한국은 ‘김정은 사망설’로 떠들썩했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4월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뒤 4월 15일 ‘태양절’ 참배도 하지 않고 20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된 해프닝이었습니다. 5월 1일 김정은이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해프닝은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 이후 김정은이 더 오래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노동신문이 5월 24일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를 지도했다고 보도하기까지 무려 23일 정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보에 혼이 난 한국 언론들은 더 이상 김정은의 긴 잠행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습니다. 4월 11일부터 계산하면 김정은은 40여 일 동안 딱 한번 얼굴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명색이 국가 지도자인데 너무나 게으른 모습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과 유사한 모습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4월 13일 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5월 24일까지 42일 동안 딱 세 차례만 잠깐 얼굴을 선보였습니다. 15일 태양절 참배와 기념공연 관람, 4월 29일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0차 대회 참가자들과의 기념촬영, 5월 6일 조선인민군 군인 가족 예술소조(예술팀) 공연 관람이 전부입니다. 42일 동안 공개행보는 공연을 두 번 보았고,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참배와 기념촬영이 전부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꼭 공개 행보를 해야 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솔직히 어느 국가 지도자가 2년 연속으로 42일 동안 3번 이내로 얼굴을 드러낸다면 당연히 일을 하지 않는다며 논란거리가 됐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최근 2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봄만 되면 김정은의 공개행보가 현저히 줄어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봄이 오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올해는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가 분석한 인공위성 사진이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NK뉴스는 10일 김정은의 원산 별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전날까지 계류장에 정박해 있던 60m 길이의 대형 요트가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서인 듯 바닷가로 옮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요트는 김정은이 집권 이후 약 800만 달러(약 90억 원)를 주고 이탈리아에서 몰래 구입해 들여간 ‘프린세스 95MY’ 모델 초호화 요트입니다. 김정은의 별장에서 김정은의 요트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본인과 직계 가족밖에 없겠죠. 김정은이 원산 별장에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NK뉴스에 따르면 이 배가 원산 별장 주변 사진에 찍힌 건 2017년 이후 총 19번인데, 이중 15번이나 김정은의 원산 일대 방문 시기와 겹쳤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원산에서 호화 휴가를 즐기다가 한 번쯤 ‘나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밖에 나와 돌아봤다는 의미입니다. 북한 언론에선 이것을 현지시찰로 보도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태는 김정일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김정일이 지방 현지시찰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 대개는 그 주변에 김정일의 호화 별장이 꼭 있습니다. 즉 시찰을 위해 그 지방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그곳 별장에 놀러 갔다가 바람도 쏘일 겸 근처 공장이나 농장, 군부대를 한번쯤 돌아보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최근 행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김정은 집권 이후 달라진 것이라면 원산 인근에 대한 시찰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산 별장에 워낙 많이 가다보니 원산 인근 시찰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정은이 계속 원산에만 집중해 찾아오니 강원도 간부들이 긴장돼 죽겠다고 하소연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김정은이 원산을 즐겨 찾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원산 송도원야영소 강 건너편에 있는 원산 특각(602초대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정은이 태어났던 1984년은 김일성이 생존해 있을 때였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에게서 본처 김영숙 외에 다른 여성과 애를 낳고 살고 있다는 ‘불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용희는 멀리 원산에 숨겨두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평양이 아닌 원산이 고향이 된 김정은에겐, 소중한 어린 시절 추억도, 이미 사망한 모친과의 추억도 다 이곳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틈만 나면 원산 별장을 찾아 따뜻한 봄 휴가를 만끽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김정은은 원산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 완벽한 휴양지로 갖추었습니다. 집권 이후 전용 비행장, 전용 기차역, 승마장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인근 마식령에 스키장까지 만들었는데, 겨울에 김정은이 스키를 타고 싶은 날마다 이 스키장은 문을 닫고 김정은의 전용 스키장이 됩니다. 여름엔 요트를 타고 통천 앞바다 섬 리조트를 방문해도 됩니다. 이곳은 3개의 섬을 통째로 김정은 전용 휴가지로 개조한 곳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다른 때는 몰라도 올해는 호화로운 봄 휴가를 즐기면 안 되지 않을까요. 김정은은 지난달 8일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인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을 선포하고, 자신부터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고 하고선 이후 40일 동안 딱 3차례만 잠깐 얼굴을 보이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원산에선 호화요트가 떴습니다. 인민들은 고생길에 내몰고, 자신은 호화휴가를 즐기는 것 아닌가요. 지금 북한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삼재(三災)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선 강력한 유엔의 경제 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셀프 봉쇄로 북한 내부 경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수입품 물가가 치솟아 인민은 잡곡 외에 다른 생필품 소비를 극력 줄이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경제사정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어 긴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인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동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원래 북한은 5월이면 전국이 농촌지원에 동원됩니다. 연료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사람의 인력으로 모내기와 옥수수 심기를 진행합니다. 이때 도시 사람들도 농촌에 동원되다보니 거리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학생들도 대략 14세 이상부터는 40~50일 동안 공부를 중단하고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짓습니다. 거기에 더해 올해 평양의 사정은 더욱 어렵습니다. 농촌지원도 나가야 하지만, 평양시 5만 세대 공사를 벌여놓았기 때문에 아파트 공사장에도 다녀야 합니다. 아마 평양 시민 대다수가 각종 동원에 정신 차릴 틈이 없을 겁니다. 인민은 동원에 내몰고 채찍질하고 김정은은 호화보트에서 비싼 술을 마시며 낚시를 즐기는 것 아닐까요. 세 번째는 강력한 공포통치가 시작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올해 각종 대회에 참가해 반사회주의와의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현상은 일심단결을 저해하는 악성종양”이라고 규정한 뒤 “중앙으로부터 도·시·군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연합지휘부를 조직해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 투쟁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집중적으로, 다각적으로 강도 높이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장사도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이 되는 북한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이 누명에서 안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김정은은 강력한 비사회주의 투쟁을 선포한 뒤 곳곳에서 사람들을 체포해 반사회주의자라는 누명을 씌워 총살하게 되면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고 체제에 대한 불평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타산한 것이죠. 흔히 통치자들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데 지금 호주머니가 텅 빈 김정은의 손에는 당근이 없습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대규모 강제동원이라는 채찍과 찍소리도 못 내게 만드는 처형이라는 공포입니다. 김정은은 공포와 처형의 통치로 회귀하면서 나름 두려운 것도 있나 봅니다. 바로 잔인한 처형이 시시각각으로 한국 언론과 외신에 보도돼 자신이 악당으로 더욱 부각되고 조롱받는 것이죠.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근 보위성에 “외부와 연락하는 자들은 끝까지 찾아내 엄중히 소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보위성과 보안성 등 공안당국은 최근 국경일대에 역량을 총동원해 외부와 전화연락을 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 성과를 내야 점수를 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 작전을 ‘참빗작전’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빗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옛날 머릿니와 서캐에 시달리던 가난한 시절 참빗은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샅샅이 흩어 머릿니와 서캐를 잡듯이 외부와 연락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겠다는 것이 공안당국의 각오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참빗전술’을 일본군 토벌대가 쓰던 전술이라고 가르칩니다. 김일성 회고록에도 등장하는데, 일본군이 1930년대 말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해 ‘참빗전술’을 쓰는 바람에 숱한 동지들이 죽었다고 회상합니다. 일본군은 수만 명을 동원해 산을 골짜기부터 능선까지 샅샅이 수색해 항일연군을 색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군이 썼다는 참빗전술을 백두혈통이라는 김정은이 인민을 상대로 쓰겠다니, 인민들 속에서 “우리가 독립군이고, 너희는 일본군이냐”는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북한을 보면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변학도의 잔치에 참가해 읊은 시가 떠오릅니다. 북한 사람들도 이 시는 잘 알고 있습니다.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 萬姓膏) 촉루락시 민루락(燭淚落時 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 이 시를 북한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금잔의 맑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옥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5-24
    • 좋아요
    • 코멘트
  • [Food&Dining]프로농구 PO 10연승 금자탑 일군 ‘정관장’의 힘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 10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4년 만에 남자 프로농구 챔피언에 다시 등극한 안양 KGC인삼공사가 연일 화제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이래 팀이 획득한 세 번째 우승 트로피이다. 안양 KGC인삼공사의 승리 비결은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들 간의 완벽한 조화를 꼽을 수 있다. 잘 짜인 팀워크에 상대팀은 힘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으며 프로농구 최초의 ‘플레이오프 10전 전승 챔피언’이라는 경이로운 금자탑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적은 오랫동안 농구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KGC인삼공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KGC인삼공사는 겨울철 인기 프로 스포츠인 남자농구와 여자배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종목인 남자탁구와 여자배드민턴 등 4개 종목을 오랫동안 운영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포츠 후원 기업이다. ‘정관장과 함께하는 건강한 세상’을 모토로 내건 KGC인삼공사는 ‘건강한 기업’, ‘건강한 사회’, ‘건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스포츠를 통한 사회공헌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 일등 건강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공사는 이에 걸맞게 스포츠도 적극 후원해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각종 종목에 대한 꾸준한 지원과 육성을 통해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여가 활동도 적극 지원해 풍요롭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번에 신기록을 세운 농구 성적도 안양 KGC인삼공사가 오랫동안 국내 농구 붐 조성과 사회체육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다. KGC 유소년 농구클럽을 운영하며 어린이들이 다양한 체육 활동을 통해 신체적, 정서적 발달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관장의 청소년 브랜드인 ‘아이패스’ 농구대회도 매년 개최하며 아마추어 농구인들이 한데 어울리는 기회의 장도 마련해주고 있다. 농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8년 창단된 한국전매공사 배구단이 전신인 KGC인삼공사 여자배구단은 대전에 연고를 두고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 배구 발전에 든든한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신뢰의 기업 문화가 녹아든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이 강점인 팀으로, 지금까지 우승을 세 차례나 달성하며 여자배구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탁구와 배드민턴 등 비인기 종목의 아마추어 팀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탁구는 20여 년, 배드민턴은 50여 년의 후원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그간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해 왔다. 또한 동호인이 많은 종목의 특성에 맞게 원포인트 레슨, 일일 클리닉 등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 재능기부 활동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동호인을 만나 활발한 소통과 교류를 진행하며 생활체육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KGC인삼공사는 2012년부터 ‘정관장 황진단’이라는 팀명으로 매년 한국바둑리그에 참여하며 대한민국 바둑의 발전과 건전한 생활문화 조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KGC인삼공사 관계자는 “KGC인삼공사는 전매청, KT&G 등의 전신을 거쳐 오며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도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21-05-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