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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집에서 점심을 차린 A 씨는 식탁 모니터에 뜬 화면을 보고 싱긋이 웃었다. 완성된 요리 사진이 그새 자동으로 페이스북에 올라가 친구들이 ‘맛있겠다’며 줄줄이 댓글을 달았기 때문. 마침 슈퍼마켓에서 배달이 왔다. 아침에 다 마셔 버린 우유를 냉장고가 알아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니 자기 대신 출근시킨 로봇으로부터 일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연락도 왔다. 느긋해진 A 씨는 대기권에서 우주를 감상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나 타볼까 싶어 애인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 가격이나 위치를 모르지만 자동차가 스스로 검색해 찾아줄 것이므로 걱정 없이 차에 올랐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SF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즘 지구촌에서 가장 ‘핫(hot)’한 최고급 두뇌들이 실현 가능성을 믿고 연구에 매진하는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3일 “구글의 비밀연구소 ‘구글X’가 꿈의 프로젝트를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글X는 단순히 ‘재미 삼아’ 운영하는 연구소가 아니다.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깊이 관여하고 있고, 또 다른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올해 4월까지 출퇴근을 여기로 했다. 세계적인 인공지능 전문가 세바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교수, 휴먼컴퓨터 권위자인 조니 청 리 박사 등 관련 분야 거물도 즐비하다. 이들의 연구는 구글 임원들도 자세히 모를 정도로 극비에 속한다.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뷰 소재 구글 본사 인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연구소의 연간 예산 및 인력 규모도 베일에 가려 있다. 연구소가 세워진 지 꽤 됐고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 100’을 뽑아 연구 중이라는 정도만 외부로 공개됐다. 대부분 초기 기획 단계지만 몇몇은 성사 직전이며, 그중 하나는 올해 안에 완성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다. 스런 교수가 지휘하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시험운전도 마쳤다는 소문이 나온다. 구글이 협력업체를 선정해 자동차를 직접 양산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라고 한다. 황당무계한 짓에 헛돈 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뉴욕 채권거래회사 BGC파트너스 콜린 길스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매우 구글답다’고 반응하면서도 구글이 역점 사업을 등한시할까 걱정한다”고 전했다. 질 헤이젤베이커 구글 대변인은 “미래사업 투자는 구글 DNA의 본질이지만 비용은 전체 사업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존 에드거 후버(1895∼1972·사진)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1924년 FBI 전신인 수사국 시절부터 48년간 FBI 국장을 지낸 막강한 권력자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 뒤엔 항상 ‘5가지 소문’이 따라다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가 내년 사망 40주기를 맞는 그에 대한 소문의 진위를 추적해 14일 소개했다.○ 후버는 동성애자다맞을 가능성이 높다. 1993년 한 영국 작가의 “자주 게이 섹스파티를 즐겼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클라이드 톨슨 FBI 부국장과의 ‘묘한’ 관계는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평생 독신이던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둘이서 점심을 먹었고, 휴가도 함께 갔다. 심지어 자주 똑같은 옷을 입었다. 후버는 유산도 톨슨에게 남겼다. 다만 후버와 절친했던 여배우 도로시 래머는 그와의 육체관계에 대해 “부정하진 않겠다”고 말해 양성애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후버의 기밀파일이 대통령들을 옥죄었다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후버가 모신 6명의 대통령 가운데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 대통령은 그와 막역한 친구였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은 공공연히 후버의 ‘기밀파일’을 두려워했다. 그 파일엔 미국인만 43만2000명이 포함됐다고 알려진다. 거부 록펠러 가문을 비롯해 앨버트 아인슈타인, 메릴린 먼로 등 전 분야의 인물을 망라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줄곧 그를 내쫓을 궁리를 했지만, 시카고 마피아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도청해 증거로 잡고 있던 후버를 끝내 손대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후버는 징집도 회피한 겁쟁이였다아니다. 그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법무부에서 대체복무를 한 건 맞다. 정신병에 걸린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돌볼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버는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군에 가고 싶어 장교교육을 받기도 했다. 또 법무부에서 전장만큼 위험했던 마피아나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에 자주 참여했다.○ 후버는 사실 흑인이다흑인의 피가 섞였을 개연성이 크다. 흑인 여성작가 밀리 맥기 씨는 2000년 에세이에서 “나와 후버의 증조부는 버지니아 출신 흑인 사촌”이라고 밝혔다. 후버 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후버는 국장 재직 시절, 자주 반(反)유색인종적 태도로 문제가 됐다.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 출신 이력이 더욱 그를 몰아세웠을 수도 있다.○ 후버는 FBI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물론 그렇다. 막강 권력을 휘두르며 공직자를 협박하고 시민권을 억누른 과오는 절대 씻길 수 없다. 그러나 FBI를 비롯한 미 정보수사력의 성장은 그로 인해 가능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는 생후 13개월 때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이 일반인처럼 용기 있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길 원했다. 소년으로 성장한 아이는 그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대신 예민해진 청각을 더욱 갈고닦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리를 통해 주위를 감지하는 법을 터득했다. 귀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미국 CNN방송은 귀로 눈을 대신하는 사물 인식 방법을 개발한 시각장애인 대니얼 키시 씨의 삶을 10일 소개했다. 그는 소리가 인근 사물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음파를 감지해 사물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박쥐가 초음파를 발산해 주변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키시 씨는 이를 ‘인간 반향 위치측정(human echolocation)’이라고 불렀다.키시 씨는 이를 카메라 앞에서 직접 시연했다. CNN 취재진을 따라 항구에 나간 그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입 속 혀를 튕겨 ‘딱딱’ 소리를 냈다. 그런 후 마법처럼 부둣가 기둥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느 쪽에 배가 정박했는지를 알아냈다. 심지어 50피트(약 15.24m)나 떨어진 보트도 정확히 맞혔다. 그는 “사실 부딪혀 나오는 소리로 정확한 거리나 상태를 맞히긴 어렵다”며 “여기가 바닷가이고 소리에서 딱딱한 금속성 반응이 느껴져 배가 아닐까 짐작했다”고 말했다. 반향되는 소리를 통해 대략적인 거리나 재질, 크기 등을 파악한 뒤 경험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사물을 그려낸다는 설명이다.키시 씨는 이 능력이 자신만 가진 독특한 재주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인간의 뇌도 박쥐와 같은 능력을 가졌으나 눈이 발달하며 퇴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훈련만 거듭하면 어떤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실제로 그는 2000년부터 ‘시각장애인의 세상과 접촉하기(World Access for the Blind·WAB)’란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시각장애 아동 500여 명에게 반향 위치측정을 가르쳤다. WAB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1300여 개 단체와 접촉했으나 그의 주장에 관심을 보인 곳은 10곳뿐이었다. 과학자들 역시 인간이 소리를 통해 사물을 감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관심을 끌고 싶어 쇼를 벌이는 괴짜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있었다.하지만 키시 씨는 결코 주저앉을 맘이 없다. 지난달 팝테크 콘퍼런스에서 자신의 반향 위치측정을 소개할 기회를 얻은 게 그에겐 큰 힘이 됐다. 팝테크는 존 스컬리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이 모여 만든 비영리 연구단체. 해마다 10월 ‘세상을 바꾸리라 기대되는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는데, 키시 씨는 올해 초대됐다. 그는 “내 방식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하지만 세상과 소통하고픈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개선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애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다짐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동영상=소리로 앞을 보는 美 시각장애인}
멕시코 갱단, 비판 글 올린 30대 살해보복범행 피해 4명으로 늘어재스민 혁명을 촉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정부마저 조롱하던 해커 단체도 그들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멕시코에선 마약갱단이 SNS보다 강하다. 미국 지역신문 ‘휴스턴 크로니클’은 10일 “멕시코 동북부 국경도시 누에보라레도에서 갱단의 활동을 SNS에 폭로해온 35세 남성이 참수된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9월 같은 도시의 보행자 다리에서 시신 2구가 발견된 이후 벌써 3번째다. 9월 25일 39세 여성까지 포함하면 SNS 관련 희생자는 4명으로 늘었다. 세 사건은 모두 마약 카르텔 ‘세타스’의 소행으로 이번에도 ‘SNS에 글을 올리지 말란 뜻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실명과 신분을 감추고 활동했지만 갱단은 이들을 찾아내 보복을 자행한 것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해킹해 유명해진 해커단체 ‘어나니머스’도 갱단엔 백기를 들었다. 2주 전쯤 멕시코 SNS에서 어나니머스 멤버를 자처한 한 이용자가 “세타스의 컴퓨터를 해킹했다”며 “SNS 이용자들을 괴롭히는 그들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갱단이 “공개 즉시 시민들을 무차별 처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자 며칠 뒤 어나니머스는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포기하겠다”며 물러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中정부 “직접 취재한 글만 올려라” ▼‘기자 영구추방’ 규정 신설중국이 내년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대대적 여론 통제에 나섰다. 첫 번째 목표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의 숨통을 죄는 것이다. 알리바바와 바이두(百度) 등 39개 주요 인터넷 사업자 대표들은 인터넷 관리를 위해 올해 설립한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3일에서 5일까지 연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 시책에 맞춰 인터넷상의 유해정보를 차단하기로 했다.인터넷판공실은 사업자들에게 인터넷을 ‘긍정적인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루머나 음란물, 사이버 사기, 유해정보의 유통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해정보’의 구체적인 범위와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정부나 사회에 비판적인 내용을 각 사업자들이 알아서 걸러달라는 압박으로 풀이됐다. 특히 웨이보에서는 최고 지도부와 관련한 부정적 의견까지 여과 없이 나오고 있어 이번 조치를 통해 사실상 웨이보를 제한하려는 게 아니냐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일반 언론매체에 대해서도 압박에 나서고 있다. 국무원 산하 신문출판총서는 10일 취재 및 보도 방법, 오보에 대한 책임 등을 담은 ‘허위보도 방지를 위한 규정’을 내놓았다.규정에 따르면 기자들은 비판적인 기사를 쓸 때 최소 2곳 이상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또 무조건 기사 관련 당사자를 직접 취재해 기사를 써야 한다. 사실이 아니거나 부정확한 기사를 쓰면 회사가 정정보도 및 사과를 해야 한다. 또 보도로 인한 결과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기자증을 5년간 회수하거나 언론계에서 영구히 추방하기로 했다.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폐업 조치를 내릴 수 있다.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미국 10대들은 성인보다 SNS에서 불쾌한 경험을 더 많이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존 통념과 달리 ‘SNS 세대’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이 성인보다 SNS의 부정적 측면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려준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9일 청소년 799명과 성인 226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SNS를 즐기는 청소년 가운데 88%는 ‘비열하거나 잔혹한 행위’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이 중 29%는 “이런 기분 나쁜 경험이 자주 일어난다”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18세 이상 성인들은 69%만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SNS를 이용하는 동료들의 ‘친절과 예의’에 대해서도 10대들이 더 부정적이었다. 성인들의 약 85%가 “대체로 이용자들이 친절하다”고 답했고, 단지 5%만이 “예의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10대들은 69%만 “대체로 정중한 편”이라고 반응했다. ‘SNS에서 왕따(따돌림)를 당한 경험이 있는가’란 질문에도 성인(13%)보다 청소년(15%)의 경험이 더 많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네타냐후, 난 그를 참을 수가 없소. 그는 거짓말쟁이예요.”(니콜라 사르코지) “당신은 그가 넌더리나겠죠. 하지만 난 매일 그를 상대해야 한다고요.”(버락 오바마)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두고 벌인 ‘뒷담화’가 공개됐다. 8일 AP통신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3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 기자회견 뒤 따로 마련된 방에서 통역자만을 대동한 채 단독 면담을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위해 차고 있던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허심탄회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 이 마이크는 정상들의 발언을 자동 통역해 언론에 전달하는 장치여서 현장에 있던 일부 기자에게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약 3분간 공개된 대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 언질도 없이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에 찬성할 수 있느냐”고 원망하자, 사르코지 대통령이 응대하다가 네타냐후를 비난하고 나선 것. 프랑스 엘리제궁 측은 당시 기자들에게 ‘사고’에 대한 비공개를 요청했지만 한 프랑스 기자가 이를 인터넷매체에 귀띔하며 세간에 알려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김일성’ 등을 출간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혔던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사진)가 1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19년 캔자스 주에서 출생한 그는 1948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49년부터 50여 년간 버클리대 교수로 재직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연구하기 시작한 1세대 학자로 손꼽힌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정치 및 사회 변화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지켜본 것을 계기로 아시아의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43년부터 3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한 그는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 ‘신동방견문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고 밝혔다.그는 1978년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를 세운 뒤 1990년까지 소장을 맡으며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저서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와 ‘김일성’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심도 있게 다뤄 왔으며, ‘현대 일본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미국과 아시아’ 등 아시아 문제를 파헤친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한 경험도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그의 대학원 제자였던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고려대 명예교수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 등 많은 한국인 제자를 길러냈다. 특히 1959년 스칼라피노 교수가 미국 상원에 제출한 한국 관련 보고서는 학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당시 그는 보고서를 통해 군사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내다봤는데 불과 2년 만에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나중에 “가능성을 예측하긴 했지만 그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또 이 교수와 함께 쓴 1973년 작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는 한때 금기시됐던 김일성의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회고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일화도 소개돼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녔다는 첫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1973년 일본에서 망명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그의 구명활동을 위해 노력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1989년 첫 방문 뒤 모두 6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기이한 사회란 인상을 받았다”며 “통일이 이뤄지려면 반드시 북한 내부에서 대대적인 정치 경제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90년 정년퇴임한 뒤에도 버클리대 종신 명예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해 9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버클리대는 2일 교수 일동 명의로 “그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조의를 표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국가 위해 무엇을…” 명연설 케네디에 영감 준 노트 발견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1961년 대통령 취임연설을 통해 남긴 명언이 그가 다녔던 고교 교장의 훈화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모교에서 발견됐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코네티컷 주에 있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모교 초트 로즈메리홀은 그의 취임연설 중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유명한 문구에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이는 전 교장의 훈화 공책을 찾았다고 3일 밝혔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학교를 다녔던 1930년대에 교장을 지낸 조지 세인트존 교장은 자신이 졸업한 하버드대 학장의 발언을 자주 인용해 훈화에 활용했다. 이 중 하나가 ‘모교를 사랑하는 젊은이라면 학교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항상 물어볼 것이다’라는 문구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모교는 취임연설 수년 뒤 “케네디의 명언이 세인트존 교장의 훈화를 상기시킨다”는 한 졸업생의 주장이 나온 이후 40여 년간 학교 자료실을 뒤졌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었다.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위스키 고향’ 스코틀랜드서 무알코올 위스키 전세계 시판‘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무알코올 위스키가 개발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4일 “위스키 제조회사 ‘스코티시 스피릿’이 다음 달 1일부터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위스키 ‘아케이(ArKay·사진)’를 전 세계에서 시판한다”고 전했다. 아케이는 영국 기준으로 병당 10파운드(약 1만8000원), 캔은 4파운드(약 7000원)에 판매된다. 제조사는 “아케이는 영미 주류 규정에 맞춰 만들었으며 향료 등을 이용해 위스키와 똑같은 맛을 냈다”며 “종교나 건강, 운전 등을 이유로 음주가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특히 아케이의 재료는 이슬람 율법이 금하는 것은 전혀 넣지 않은 ‘할랄(이슬람 법도에 맞는) 위스키’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위스키협회는 “위스키는 물과 맥아를 주 성분으로 해 자연친화적으로 만드는 술”이라며 “화학약품으로 맛을 조작한 아케이는 진정한 위스키라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협회 측은 아케이에 위스키란 이름을 달지 못하도록 할 법적 방안을 고려 중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러시아에서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소녀들이 병원 실수로 부모가 바뀌는 바람에 전혀 다른 종교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다. 뒤늦게 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아이를 맞바꾸는 대신 마당이 붙은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1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전한 기구한 스토리는 1999년 러시아의 소도시 코페이스크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시작됐다. 벨야예바와 이스칸데로바 씨 가족은 15분 간격으로 딸을 출산했다. 이후 12년 동안 각 가정에서 별 탈 없이 자란 두 소녀의 운명에 혼란이 찾아온 것은 올해 초. 벨야예바 씨 부부가 이혼하며 딸의 유전자 검사까지 실시하게 된 것이다. 평소 딸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며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온 남편이 양육비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친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경찰 수사 결과 12년 전 출생 직후 병원의 실수로 아기가 바뀐 사실이 밝혀졌다.진실을 알았지만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벨야예바 씨의 친딸은 이미 이슬람교도인 이스칸데로바 씨 집에서 무슬림으로 커버렸다. 실제론 이슬람 혈통인 아이는 러시아정교회의 독실한 신자로 자랐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에서 두 종교는 서로를 배척한다”며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정체성에 큰 상처를 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처음 사실을 접했을 당시엔 친부모와의 만남을 거부했다.꼬여버린 운명의 실타래를 푼 건 두 소녀였다.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에서 ‘동병상련’인 그들은 종교를 뛰어넘었다. 소녀들은 “보는 순간 상대의 눈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봤어요. 그리고 우린 자매보다 소중한 친구가 됐죠”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태도에 감동한 부모들은 그들의 뜻을 반영해 바꾸지 않고 그대로 키우기로 결정했다.때마침 낭보도 날아왔다. 법원에서 병원 측 부주의를 인정하고 각 가정에 보상금 300만 루블(약 1억10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것. 양가 부모들은 심사숙고 끝에 그 돈으로 마당이 붙은 집 두 채를 샀다. 두 소녀를 함께 키우자는 생각에서였다. 키운 자식과 낳은 자식을 둘 다 언제든 보려는 마음도 있었다.이교도 집안의 기묘한 동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소녀들은 친해졌지만 여전히 생부모에겐 거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부모들도 내심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딸들이 ‘불합리한’ 종교의 신도로 크길 바라지 않는다. 이리나의 어머니 율리야 씨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종교) 선택권을 주자고 합의하긴 했지만 더 큰 혼란을 겪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상 최악의 기근에 허덕이는 소말리아 난민촌에 전쟁의 화마까지 덮쳤다. 케냐군은 소말리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반군과 해적들이 케냐 해안까지 넘어와 피해를 끼치자 최근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본격 군사작전에 나섰다. 그런데 반군의 근거지가 난민촌들과 지척이어서 폭격 와중에 난민촌에서까지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기근으로 인한 배고픔과 우기(雨期)까지 겹친 난민들로선 ‘지옥의 끝’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AFP통신은 10월 31일 “2주 전부터 케냐 전투기들의 공격이 반군단체 알샤바브의 핵심 거점인 소말리아 남부 질립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케냐 정부는 “우기여서 지상군의 진격이 어려워 공습 위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지금까지 반군 1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발표했다. 케냐의 소말리아 내 반군 공격은 지난달 중순 셰이크 샤리프 아흐마드 소말리아 과도정부 대통령이 라일라 오딩가 케냐 총리의 공습 승인 요구를 받아들이며 시작됐다. 시사주간 타임은 “폭격으로 애꿎은 난민 사상자가 발생하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MSF)’에 따르면 31일 하루에만 질립 지역 난민촌에서 5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으며 이들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케냐 측은 무고한 소말리아 난민 피해에 대해 ‘반군의 거짓 선전’이라고 부정했지만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민간인 피해가 우려돼 왔다. 질립 반군 거점이기도 하지만, 난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인근에만 소말리아 난민 약 320만 명이 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31일 케냐가 공격했다는 반군기지는 난민촌과 500m도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 있다. 뉴욕타임스는 “케냐군이 해외에서 작전을 벌이는 게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클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며 “나쁜 날씨 속에서 정교하게 공습하는 건 첨단 무기를 갖춘 군대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우기로 인해 노숙이나 면하기 위해 지었던 움막이 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과탐 샤테르지 MSF 현지팀장은 “움막을 손볼 여력도 없거니와 공습을 피해 난민촌을 옮기려 해도 비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무력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서방세계의 난민 구호활동도 난관에 봉착했다. 이번 전쟁은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케냐는 지난달 초 알샤바브가 조종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케냐 해안에 침입해 서구 관광객을 납치 살해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자 반군 소탕을 선포했다. 반군 규모는 최소 2500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케냐는 지금까지 약 30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나이지리아 북서쪽 바게가 마을에 사는 네 살배기 우마르 (가명)군은 지난여름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부모는 아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양실조로 돌리기에는 실명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주민들은 ‘신의 저주’인 전염병 창궐을 의심했다. 그러나 진찰 결과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건 ‘납중독’이었다.나이지리아 정부는 28일 “바게가 마을이 있는 잠파라 주에서 어린이 2000여 명이 심각한 납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발표된 수치는 5세 이하 유아에 한정된 것이다. 10대나 성인을 포함하면 납중독 환자는 몇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에 따르면 올해 들어 나이지리아 어린이 400여 명이 이미 납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AFP통신은 “전염병을 무색하게 하는 대규모 납중독은 이 지역에서 활개치고 있는 불법 채굴 때문”이라고 전했다. 잠파라 주는 지하광물 매장량이 많은 곳으로, 특히 금과 화학공업용으로 가치 높은 탄탈룸이 풍부하다. 최근 몇 년 새 세계적으로 금값이 치솟자 허가를 받지 않은 금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서방 세계의 금값 폭등이 아프리카 시골 어린이들의 시력을 앗아가는 비극을 빚은 것이다.불법 채굴업자들의 마구잡이식 환경 파괴는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현지 언론 ‘나이지리아 트리뷴’에 따르면 채굴업자들은 금 등을 추출한 뒤 남은 광석을 불법으로 인근 산하에 내다버렸다. 버려진 광석엔 납이 대량으로 함유돼 있었고, 이는 대부분 식수나 농업용수로 쓰이는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납중독은 물이나 음식을 통해 신체로 들어갈 경우 소화기관이나 뇌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피해가 훨씬 크다.특히 안타까운 것은 납중독이 면역체계가 덜 형성된 아이들에게 더 치명적이고 피해도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인보다 어린이 피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납중독은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쉽지 않다. 최근 잠파라를 방문한 HRW의 제인 코언 연구원은 “회복되더라도 다시 오염지역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한 업체가 ‘국경없는 의사회’와 함께 잠파라 지역 정화사업을 벌였지만, 현재는 자금난으로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현지 일간지 ‘데일리타임스 나이지리아’는 “납중독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조사를 발표한 나시루 트사페 정부 긴급사태대응팀장은 “예산이 빠듯해 서방세계의 도움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데일리타임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정부는 불법 채굴업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불법 금광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지금까지 기소된 사례가 단 1건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경찰은 “산이란 산은 모두 파헤쳐 놓았는데 붙잡을 증거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어린이 납중독은 최근 중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됐다. 지난달 상하이(上海)에서 납 생산 및 가공기업 인근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이 집단 납중독에 걸렸다. 상하이 환경보호국이 9월 푸둥(浦東) 캉차오(康橋) 진에 사는 어린이 1115명을 대상으로 혈액을 검사한 결과 32명에게서 혈중 납 농도가 허용 기준치를 초과했다. 납중독 어린이 가운데 15명이 입원치료를 받았고 17명은 통원치료를 받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가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을 공식 발표한 뒤 수도 트리폴리 시내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앞서 카다피 체포 소식이 리비아 국영방송을 통해 알려졌을 때부터 시내에선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고 시민들이 공중에 총을 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신은 위대하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미국 CNN방송은 “카다피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뒤 계속해서 시내로 몰려나오는 인파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NTC 공식 깃발을 휘두르면서 함성과 노래를 이어갔고, 곳곳에선 카다피가 통치하던 시절 리비아 국기를 찢거나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벌였다.반군이 첫 거점으로 삼았던 동부도시 벵가지나 수르트, 바니왈리드 등도 몰려나온 시민들이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차량에 올라타 공중으로 축포를 쏘아대고, 환호성을 터뜨리는 소리가 도시 가득 울려 퍼졌다.자유 리비아TV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위원장이 곧 대국민 연설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카다피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수르트와 바니왈리드, 트리폴리 등에서는 축포와 함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리비아인들은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편 수르트에서는 NTC가 공식 함락을 선포한 뒤에도 산발적인 친카다피 세력의 반격이 이어졌다. 이날 새벽 100여 명의 병사가 차량 40대에 나눠 타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선 NTC의 삼색 깃발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반군과 시민이 훨씬 많았다. 한 NTC 병사는 “리비아는 동쪽부터 서쪽까지 전국이 자유로워졌다”고 기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생포 또는 체포작전 도중 다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리비아 내전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올해 초만 해도 리비아를 42년간 통치한 절대 권력자 카다피가 초라한 신세로 권력을 잃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1969년 27세에 친(親)서방 성향의 왕정을 무혈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른 육군 대위 카다피는 당시엔 혁명가의 면모가 강했다. 전 세계에서 최장수 국가원수 자리를 지켜온 카다피는 아랍민족주의자였던 전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롤 모델’로 삼아 자유장교단을 결성했다. 권력을 잡은 카다피는 1977년에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고 독특한 형태의 ‘인민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며 의회제도와 헌법을 폐기하고 전제 권력을 휘둘렀다. 이는 부족 간 알력이 극심했던 리비아를 하나로 묶는 데 적절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랍의 나폴레옹’(카다피 평전)을 꿈꿨던 그의 야심은 극심한 중앙집권적 철권통치로 처음부터 삐걱댔다. 석유를 비롯한 주요 산업의 국유화는 자신의 수족만 배불리는 부패로 이어졌다. 인근 이집트 튀니지 등과 ‘대이슬람 연맹’ 구축을 꾀했지만 미국 등과 사이만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카다피가 통치한 지난 40여 년간 리비아는 각종 테러는 물론이고 반미(反美) 무장단체 지원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악명이 높았다. 1985년 이탈리아 로마와 오스트리아 빈의 동시 테러와 1986년 독일 베를린 나이트클럽 폭발을 주도했다. 특히 1988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270명이 탑승한 미국 팬암기를 폭파시켜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중동의 미친 개”라는 비난까지 듣기도 했다.2003년에는 팬암기 사건 유족에게 보상을 약속하는가 하면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며 서방과의 ‘화해 무드’에 돌입했으나 리비아와 국제사회 사이의 갈등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또 2009년에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리비아 유전 개발과 관련한 영국 기업의 로비설에 휩싸인 채 팬암기 폭파 사건 피의자를 석방해 미국이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아랍권마저 부담스러워했던 냉혈한 독재자는 기이한 사생활이 드러나며 점점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각인돼 갔다. 피격을 겁내 1층 숙소만 고집했으며, 해외에선 건물이 무너질까 봐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났을 땐 계속 파리채를 휘둘러 댔는가 하면, 2009년 유엔에서는 할당된 연설시간 15분을 넘기고 1시간 반 동안 “나는 왕 중의 왕” 같은 황당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모의 미혼여성으로 구성된 ‘아마조네스 경호대’를 항상 동반했으며, 여성 편력도 꽤 심했다.카다피가 두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7남 1녀 역시 아버지의 비호 아래 달콤한 권력을 맛봤다.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9)은 카다피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국가적 주요 대외업무를 담당했다. 지난해 10월 리비아 구치소에 억류됐던 한국인 선교사의 석방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그는 아버지와 달리 ‘협상 가능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차기 지도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축구선수였던 삼남 알사디(38)는 국가축구협회를 이끌며 리비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으로 행세했다.리비아 올림픽위원장인 장남 무함마드(41)는 전면에 나서진 않았으나 우편 및 통신위원회 등 굵직한 이권을 장악해왔다. 국가안보보좌관이던 4남 무타심(37)과 정보기관에서 활동했던 5남 한니발(36), ‘카미스 여단’을 이끌던 막내 카미스(29) 모두 막강한 실세였다. 5월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6남 사이프 알아랍은 외국에서 주로 생활했고, 딸 아예샤(33)는 병원 등을 운영해 비교적 권력과 거리를 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재스민 혁명의 열풍 속에 동토(凍土)의 나라 리비아에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지 8개월 5일 만이다.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는 20일 “NTC가 카다피의 최후 거점인 수르트(카다피의 고향)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카다피가 목숨을 잃었다”며 “혁명의 물결 속에 그가 운명적인 최후를 맞이했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다”고 밝혔다. 압델 하페즈 고가 NTC 대변인은 “리비아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며 “독재자의 전제정치가 드디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고가 대변인은 “교전 상황에서 심각하게 다친 카다피를 생포했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며 “현장 지휘관이 NTC에 그의 사망을 공식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카다피 시신은 NTC군에 의해 수르트에서 인근 미스라타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AFP통신은 “카다피가 생포된 뒤 이송되는 상황에서 사망한 건지 현장에서 사살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전했다. NTC는 공식 발표에 앞서 “카다피군 최후 거점인 수르트를 점령했으며, 양 다리를 심각하게 다친 카다피도 생포했다”고 발표했다. AFP통신은 “NTC 측이 찍은 동영상과 휴대전화 사진을 보면 카다피를 둘러싸고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카다피가 미동이 없어 당시 살아있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다피는 체포 당시 카키색 군복과 터번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양 다리를 다쳐 피범벅 상태였다. 카다피는 공습과 교전을 피해 커다란 콘크리트파이프 속에 홀로 숨어있었으며, NTC 병사들이 “누구냐”고 묻자 처음엔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이 발포하려고 하자 “쏘지 마, 쏘지 마”라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리비아 국영방송이 카다피 체포 소식을 보도한 직후 트리폴리와 벵가지 시내에는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고 시민들이 공중에 총을 쏘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미 CNN방송은 “카다피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뒤엔 더 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자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친카다피 성향의 알리비아TV는 “카다피가 생포됐다는 보도는 근거가 없으며 그는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NTC가 수르트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카다피의 최측근이던 압둘 파타 유니스 전 국방장관도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생산하는 차량에는 앞으로 운전자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 장착된다. 미 CNN방송은 18일 “포드가 차량에 내장된 음성 활성화 기술 ‘싱크’에 문자메시지 음성변환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포드는 조만간 내놓을 2012년 신형모델 가운데 ‘레인저’를 제외한 모든 차량에 이 기능을 내장할 계획이다. 이전 모델이라도 싱크가 깔려있는 차량은 업그레이드만 받으면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이 기능을 켜두면 운전할 때 휴대전화로 문자가 오면 자동차 스피커를 통해 자동으로 문자가 읽힌다. 또 몇 가지 기본문장은 답신으로 보낼 수 있다. 이때도 손은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9년 버지니아공대 교통연구소는 운전 도중 문자를 주고받으면 사고 확률이 23배 이상 증가한다고 밝혔다. CNN은 “블랙베리폰과 일부 안드로이드폰은 바로 이 기능을 쓸 수 있지만 아이폰은 불가능하다”며 “앞으로 다른 자동차회사와 휴대전화 업체들도 이 기능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샬리트 병장 돌아온 이스라엘이스라엘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 길라드 샬리트 병장(25)이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다. 2006년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인근 군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무장정파 하마스 대원들에게 납치돼 많은 이스라엘 국민을 애타게 만들었던 샬리트 병장은 18일 그리던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포로로 붙잡힌 이스라엘 군인이 살아서 돌아온 것은 26년 만의 일이다.5년 4개월 동안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던 샬리트 병장의 귀환은 복잡한 절차를 통해 이뤄졌다. 이날 오전 일찍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이집트 당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샬리트 병장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 사이에 있는 케렘 살롬 검문소를 넘어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그는 국경을 넘기 전 이집트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맞교환 소식을 일주일 전에 들었으나 혹시 막판에 문제라도 생기면 수년을 더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제공한 검은색 야구모자와 헐렁한 회색 셔츠를 걸친 샬리트 병장은 야위고 창백한 모습이었으나 미소를 띠었다. 그는 “이번 맞교환이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샬리트 병장은 이후 헬기를 타고 텔아비브 남쪽에 위치한 텔노프 공군기지로 이동해 이스라엘 군복으로 갈아입고 가족 상봉을 했다. 총리 관저 앞 천막시위와 국토종단행진 등을 통해 아들의 송환을 애타게 촉구해온 아버지 노엄 샬리트 씨와 어머니 아비바 샬리트 씨는 아들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피랍 병사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테러혐의 유죄 선고자를 다수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027명을 풀어주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모험’에 대해 국민은 기쁨과 우려가 뒤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포로 맞교환에 79%가 찬성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석방이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와 ‘아니다’가 각각 50%와 48%로 팽팽했다. 네타냐후 정부도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해 절제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1차 477명 석방된 팔레스타인길라드 샬리트 병장과 맞교환돼 풀려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18일 경유지인 이집트를 거쳐 가자지구로 들어오자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수감자들이 버스를 타고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 검문소를 통과할 즈음 검문소 옆 임시 텐트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환호성과 울음을 터뜨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하마스가 무장병력 1000여 명을 배치해 도착 직전까지 삼엄한 분위기였지만 가족들의 만남은 뜨거웠다”고 전했다. 이들과 함께 석방자들을 맞이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위대한 자유와 희생을 보여준 영웅들이 돌아왔다”고 반겼다.이날 1차로 돌아온 수감자는 약속한 석방 인원 1027명 가운데 여성 27명을 포함해 477명. 나머지도 두 달 내로 돌아올 예정이다. 여성 석방자 2명이 한때 이집트행을 요구해 일정이 약간 늦춰진 것 외에는 석방 과정은 별 탈 없이 끝났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향후 이들에게 직장 및 주택을 제공하는 등 극진한 대우를 약속했다.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엔 약 20만 명이 몰려나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수감자를 태운 버스가 시내로 들어오자 환영인파가 몰려들어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가자지구의 브리가데 공원엔 대형 무대가 마련돼 공식 환영행사도 열렸다. 귀환자 대표로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동창설 멤버였던 예흐야 신와르가 감사인사를 전하자 군중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는 “남몰래 눈물 흘리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석방자 명단에 10대 소년 병사들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보호단체 DCI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엔 12∼17세 청소년 164명이 수감돼 있다. 하산 유세프 하마스 최고지도자는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테러 혐의로 종신형 등을 받고 복역 중이던 장기복역수들을 우선 석방 리스트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슐로모 진 씨는 올해 초 큰 고민에 빠졌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포경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1000년 넘게 이어온 중국계 유대 후손으로 살아온 그가 갑작스레 이런 문제를 떠안은 까닭은 뭘까. 그건 그 수술이 진 씨가 이스라엘 정통 유대교로부터 ‘진짜 유대인’으로 공식 인정받는 마지막 관문인 할례였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6일 “존재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계 유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유대교란 어울리지 않는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명맥만 유지해 왔던 이들의 자아 찾기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계 유대인의 기원은 9세기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크로드를 타고 건너와 당시 교역의 본산이던 허난(河南) 성 카이펑(開封)에 정착한 페르시아 유대인들이 시조다. 화교와 유대인은 ‘세상 어디서도 똘똘 뭉쳐 정착한다’는 평을 듣는 민족. 그 화교의 땅에서 유대인들도 한때는 번영을 이뤘다. 송나라 땐 높은 관직까지 배출하며 5000명이 넘는 세력을 이루고 살았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이들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너무 적응을 잘하다 보니 점점 유대 전통을 잃어간 게 화근이었다. 1809년 마지막 랍비가 세상을 떠나며 정신적 지주도 사라졌다. 20세기 공산정권의 도래는 더 큰 파도였다. 정부가 공인하는 5대 종교로도, 55개 소수민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카이펑에는 유대인 후손이 겨우 몇백 명만 남은 상태다. 이런 그들에게 손을 내민 건 시민단체 ‘샤베이(Shavei) 이스라엘’이었다.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후손을 모아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활동을 벌이는 이 단체가 2005년 중국계 유대인과 접촉했다. 중국 정부의 등쌀 탓에 어렵사리 14명만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진 씨는 바로 그때 건너온 후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게 아니었다. 유대교 법정이 이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질 않았다. 사실 말도 통하지 않는 데다 돼지고기를 즐기고 유월절도 지키지 않는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오랜 논란 끝에 법정은 “몇 년간의 교육과 회개 과정을 이수한 뒤 최후 문답에서 합격하면 인정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6년의 시간. 다행히 14명은 모두 관문을 통과했다. 그중 한명인 왕 야게 씨(31)는 곧 랍비(율법교사)로 임명받는다. 202년 만에 중국계 유대인 랍비가 부활하는 셈이다. 진 씨는 곧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할례까지 치렀건만 복잡한 절차 탓에 결국 이스라엘 시민권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진 씨는 “그 옛날 중국에 건너간 조상님은 유대교를 세상에 전파할 의무가 있었다”며 “어쩌면 내게도 다시 중국 유대교를 부흥시킬 사명이 부여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성난 새’가 스마트폰 게임의 전설로 등극하며 핀란드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다.”(로이터통신) ‘성난 새’란 모바일 게임인 ‘앵그리 버드(angry bird·사진)’다. 연두색 돼지들이 몰래 새들의 알을 훔쳐가자 잔뜩 화가 난 새가 나무와 벽돌 등에 숨은 돼지를 마구 공격해 복수를 한다. 이 간단한 내용이 전부인 게임을 개발한 ‘로비오 모바일’이 이르면 내년 기업공개(IPO)에 나서겠다고 16일 밝히자 AP통신 등 세계 언론이 앞다퉈 톱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회사의 시장가치에 대해서는 최소 10억 달러(약 1조1560억 원)가 넘을 것이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2009년 12월 출시된 앵그리 버드는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 신드롬이 낳은 시대의 총아’다. 스마트폰의 매력은 이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내려받아 설치하는 애플리케이션(앱)에 있다. 앵그리 버드 앱이 ‘대박’을 터뜨린 데에는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게임 방법과 1달러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 주효했다. 로비오는 홈페이지에서 “지금까지 내려받기 횟수가 4억 건을 넘었으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56개국에서 앱 유료판매 누적 순위 1위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앵그리 버드의 출발은 차고에서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성공 신화와 무척 닮았다. 2003년 핀란드 헬싱키기술대 재학생 3명은 10만 달러(약 1억1560만 원) 남짓한 돈을 겨우 마련해 게임프로그램 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고, 자금 압박에 하청업을 하기도 했다. 때를 기다리던 로비오에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였다. 특히 앵그리 버드 개발 초기, 정보기술(IT)엔 관심도 없던 한 경영진의 모친이 게임에 금방 빠져드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한마디로 ‘편하고 단순함’을 승부처로 삼은 게 성공의 비결이 됐다. 이제 앵그리 버드는 하나의 게임 앱을 넘어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커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에서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시간을 합하면 매일 3억 분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까지 팬을 자처하고 나섰다. 공식 티셔츠는 한 달에 100만 장씩 팔리고 있으며, 조만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중국엔 로비오의 허락도 없이 ‘앵그리 버드 테마파크’까지 세워졌을 정도다. 무엇보다 로비오의 성공에 기뻐하는 건 핀란드 국민들이다. 로이터통신은 “20여 년간 휴대전화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던 노키아의 몰락으로 ‘유럽의 실리콘밸리’라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핀란드인들은 로비오가 그 자리를 대신해 주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핀란드 국적 항공사 핀에어가 모든 항공기에 앵그리 버드를 그려 넣은 것도 이런 기대를 담은 것이다. 홈페이지에 앵그리 버드 소개란을 따로 만들기도 한 핀란드 정부는 “로비오의 사업 확장을 적극 돕는 한편 또 다른 유망 벤처사업 육성을 위해 총 6000만 유로(약 96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호주에서 국제 인신매매조직에 붙잡혀 성매매업소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 여성을 구하려다 20대 현지 남성이 2년 8개월 전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에 따르면 유대계 호주인 에이브러햄 파포 씨(당시 27세·사진)는 2009년 2월 멜버른의 한 아시아 여성 전문 성매매업소 인근에서 첸이라는 중국계 범죄조직원에게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경찰은 “파포 씨가 갑자기 업소를 습격해 금품을 훔치려 했다”는 첸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를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했다.이대로 묻힐 뻔했던 파포 씨의 사건은 그의 가족들이 무혐의를 주장하고 시드니모닝헤럴드와 호주 ABC방송 등이 사건추적 프로그램을 통해 심층 취재해 보도하면서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파포 씨 가족은 “당시 에이브러햄은 자신과 사귀던 여성이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고 구하기 위해서 업소를 찾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포 씨와 사귄 여성은 ‘케이티’라는 영어 이름을 쓰는 한국계 20대로 알려졌다. 파포 씨의 형 데이비드 씨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로 온 유학생인 것으로 안다”며 “에이브러햄이 집으로 데리고 와 몇 개월간 함께 지냈다”고 말했다.가족들의 진정으로 재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사건 당일 파포 씨가 케이티라는 여성과 통화하던 중 누군가 케이티의 전화를 가로챘고 케이티가 비명을 지르며 울었으며 어떤 남성이 파포 씨에게 “접근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재까지 경찰이 밝혀낸 사실은 당시 애인의 신변이 걱정됐던 파포 씨가 통화 뒤 곧바로 업소로 달려갔고 이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아직 정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나 여성을 구하려는 파포 씨를 성매매 조직에서 살해했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재수사하고 있다”며 “케이티라는 여성의 신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파포 씨 가족은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내는 데 힘을 기울이면서도 케이티의 생사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파포 씨의 어머니 디나 씨는 “케이티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평소엔 단정하고 착한 여성일 뿐이었다”며 “지금 추측하건대 곤란에 빠졌던 그를 에이브러햄이 돌봐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현지에서는 파포 씨의 죽음 이면에 드리워진 호주의 암흑세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호주 내 한국인이나 중국인 유학생 등에게 사채를 빌려준 뒤 이를 볼모로 성매매업소로 팔아넘기는 범죄조직의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란이 미국 내 갱단을 이용해 주미 사우디아라비아대사를 살해하려 한 계획이 발각돼 가뜩이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11일 “주미 사우디아라비아대사를 살해하려는 이란 정부의 테러 음모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용의자인 이란계 미국인 만수르 아르바브시아르(56)를 체포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며 “함께 테러를 꾸민 이란 혁명수비대 내 특수부대인 ‘쿠드스’ 소속 골람 샤쿠리를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텍사스 주에서 중고차 판매상으로 일하던 아르바브시아르는 5월부터 샤쿠리와 결탁해 테러를 추진했다. 멕시코 마약갱단 ‘로스 제타스’에게 150만 달러를 주고 주미 사우디대사의 암살을 청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갱단에 잠입해있던 마약단속국(DEA) 요원에게 꼬리가 밟혔다. ‘쉐보레’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테러는 주미 사우디대사의 암살을 시작으로 주미 이스라엘대사관과 주아르헨티나 사우디대사관을 잇달아 공격하는 시나리오로 짜여 있었다. 미 행정부는 즉각 이란 정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총력 조사를 지시한 뒤 사우디 대사에게 위로전화를 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란의 행위가 도를 넘었다”며 해외 자국민에게 이란 테러 경계령을 발동했다. 미 재무부는 사건에 관련된 이란인 5명에 대해 재산 동결 등의 제재 조치를 내렸다. 미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이번 사건을 정식 회부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반면 무함마드 카자이 유엔 주재 이란대사는 “미국의 억지 주장에 분노를 느낀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란 정부는 유엔에 “이번 조작은 전쟁 도발과 맞먹는 비열한 행위”라는 내용의 공식서한을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요인 암살을 갱단 손에 맡기는 수법은 기존 중동 스타일과 다르다”며 “테러 기도는 확실하나 이란 연계설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