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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안에 ‘나눔’의 우산이 담겨 있습니다. 갑작스레 비를 만난 청년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겠네요. 사용한 우산이 다시 돌아와 선순환이 이어지기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한적십자사 봉사자들과 고려아연 임직원들이 2일 오후 서울 노원구 덕릉로 일대에서 혹한기 난방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주거 취약계층에 전달할 연탄을 나르고 있다. 이날 열린 행사에서는 연탄 1만4000장과 백미 700kg이 취약계층 70가구에 전달됐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흑백 줄무늬가 가지런히 내려오다 밑에서 흐트러졌습니다. 다시 보니 두 개의 벽이 겹치며 생긴 착시였네요. 실수인 양 시선을 끄는 기술이 대단합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9월 베이징 전승절 열병식 이후, 어느 날 갑자기 김주애는 화면에서 사라졌다.북한 매체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그 공백을 누구보다 먼저 느낀다. “왜 안 보이지?”“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한에서 지도자 일가의 부재는 언제나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그리고 3개월이 지난 11월 마지막 주, 정적을 깨는 장면이 하나 올라왔다. 갈마비행장. 공군 창설 80주년.김정은이 걸어 나오고, 그 옆에 다시 나타난 인물. 검정 가죽 점퍼에 선글라스를 낀, 더 자란 김주애였다. 북한은 이 장면을 그냥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는 42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음악만 흐르고, 화면은 2초 이상 머물지 않는다. 하늘에서 찍은 장면, 조종석 안의 조종사 얼굴,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비행기. 광각이었다가 망원이 되고, 다시 손바닥만 한 화면에 김정은과 김주애가 꽉 차오른다.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김정은 없이 등장하는 김주애 원샷’ 이다. 아버지와 함께 서 있다가, 어느 순간 혼자 장교들의 경례를 받는다. 북한이 누군가를 ‘중심’으로 세우고 싶을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번 화면에서 북한은 여성 조종사들과 ‘1호’의 만남을 특별하게 편집했다. 다정하게 악수하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고, 기념사진에서는 김정은 바로 뒤 양쪽을 여성 조종사들이 차지한다.여성 엘리트를 강조하는 북한 특유의 전통 속에, 다음 세대 이미지를 겹쳐 넣는 노동신문식의 ‘사진 언어’가 그대로 보인다.그런데 이번 김주애의 재등장은 ‘복귀’라기보다 준비된 전환점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지난 3개월 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북한식 이미지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답은 명확하다.북한은 항상 후계자를 보였다가 → 과하게 보였다가 → 갑자기 숨겼다가 → 더 강한 장면으로 다시 보여준다. 김정일도 그랬고, 김정은도 그랬다. 숨는 시간이 길수록 재등장 장면은 더 강력해진다.그리고 이번 등장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하나 있다. 김정은의 금색 ‘국무위원장’ 엠블럼이 붙은 컵. 그 컵이 김주애 자리에도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상징성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다시 말하자면, 김주애의 이번 등장은 “잠행의 종료”가 아니라 “다음 단계의 시작”에 가깝다. 북한의 이미지 실무진이 세대교체된 이후 촬영 위치, 간부들의 표정, 박수 치는 각도, 등장 간격 하나까지 놀라울 정도로 촘촘하게 계산하고 있다. 김주애의 3개월 공백도 그 계산 속 한 칸이었을 것이다. 3개월 만에 등장한 김주애에 대한 호칭은 ‘존경하는 자제분’이었다. 기존의 호칭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나이와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외부 관찰자들은 정보를 자유롭게 취합하면서 그가 10대 초반의 나이에 이름은 김주애라고 할고 있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정보가 차단된 만큼 신문과 방송에 보이는 이미지가 그녀의 전부일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재등장하면서 김주애는 키가 더 크고 성숙한 외모로 치장한 점이 눈에 띈다. 아무도 쓰지 않는 선글래스와 아버지와 같이 번쩍이는 가죽 점퍼를 입고 등장한 점은 과거와 큰 차이는 없더라도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김주애는 이미 북한 화면 속에서 ‘준(準)후계자’의 자리를 잡았다. 이제 우리가 지켜볼 것은 두 가지다. 그의 호칭이 바뀌는 순간, 그리고 혼자 등장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그 순간이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시대를 감지한 두 사람 - ‘서울 자가에…김 부장’ PD와 찰리 채플린 요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메인 프로듀서를 30여 년 전 대학 캠퍼스와 호프집에서 만났던 터라 더 반갑습니다.아직 IMF는 오지 않았고 학생운동의 잔향이 남아 있던 캠퍼스에서 그는 가수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를 부르며 세상을 다른 눈으로 해석하려 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50대의 중년이 된 그는 지난 시대를 통과하며 몸으로 겪어낸 디테일을 작품 속에 한 올 한 올 정확히 엮어 넣고 있습니다. OTT의 대중화, K-스토리의 탄탄한 저변 —지금은 분명 그의 이야기가 가장 잘 피어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언제나 그랬듯 시대를 먼저 감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문을 연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변화는 시간이 지나 더 큰 의미로 되돌아옵니다.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100년 전, 시대의 문을 가장 먼저 열었던 한 인물을 다시 불러옵니다.그의 이름은 찰리 채플린.지금도 전 세계인이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훌륭한 배우나 감독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대중문화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100년 전 헐리우드를 번역하다 1925년 11월 마지막 주 신문 지면에서, 동아일보는 찰리 채플린의 생활과 창작 과정을 네 번의 연재로 다루었습니다. 직접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어떤 자료를 번역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선 사회에 ‘활동사진’이 막 대중화되던 무렵이었습니다. 헐리우드는 먼 나라였고, 영화배우의 삶은 상상 속의 풍경이었지만, 이 연재는 단순한 연예 기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당시 기자는 채플린이라는 아이콘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대중문화의 생산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처음으로 조선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아래는 그 네 편의 내용을 최대한 원문 분위기를 살려 재정리한 것입니다.① 궁궐 같은 집, 사치와 창작의 시작 (11월 26일 보도)하리우드 중심에서 해안 쪽으로 약 오 마일 떨어진 ‘띄페리힐’. 채플린은 이곳의 작은 산을 통째로 사서 궁궐 같은 집을 지었다.부인 ‘포라’와 신혼을 준비하며 남녀 하인과 고용인을 합쳐 열 명 이상을 두었고, 일본인 하인을 특히 선호해 여섯 명쯤 두었다. 자동차도 아홉 대를 보유했다.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 빵과 차를 먹고 목욕한 뒤, 그날 마음이 가는 자동차를 직접 몰아 십여 분 달려 ‘스타듸오’로 향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② 조용하고 애상적인 성정, 철저한 창작자 (11월 27일 보도)그가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순간, 늘 떠들썩하던 현장이 한순간에 고요해졌다고 한다.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풍금을 타는 일. 희극배우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조용하고 애상적인 사람이었고, 정원에서 악기를 켜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다.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며칠이고 촬영장을 찾지 않았지만, 한번 마음이 움직이면 밤을 새워 서른, 마흔 장면을 연달아 찍었다.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은 서른 번, 쉰 번을 다시 찍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③ 웃음을 만드는 노동, 필름 50만 피트 (11월 28일 보도)촬영 현장의 사람들은 그의 연기에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채플린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으면 모두 버려야 하는 ‘노동의 세계’가 있었다.눈 오는 장면을 위해 수십 석의 소금을 뿌리고도“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통째로 폐기한 적도 있었다. 영화 한 편을 찍는 데 50만 피트 가까운 필름을 쓰기도 했고, 상영관에 몰래 들어가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의 작품을 더 치열하게 가다듬었다.④ 열두 명의 지배인, 최고조의 인기, 그리고 메리 픽포드 (11월 29일 보도)일 년 반 만에 영화를 완성해도 스스로 완전하다고 여기지 않을 만큼 엄격했다. 작품 하나만 완성돼도 사려는 이들이 몰려들어 채플린에게는 지배인이 무려 열두 명이나 있었다. 때로는 제작비 부담으로 몇백만 원의 빚을 지기도 했지만 헐리우드에서 그의 인기는 압도적이었다.그가 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최대의 경례를 했고, 무명배우에서 일류배우까지 모두 그에게 존경을 보냈다.그가 가장 신뢰한 사람은 메리 픽포드였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그는 반드시 그녀의 의견을 먼저 물었고, 그녀가 “베리 굿”이라 말하면 그대로 실행했다고 한다.● 시대를 먼저 읽은 사람들이 피운 꽃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찰리 채플린을 다시 불러왔습니다. 자동차 아홉 대, 하인 열 명, 오십만 피트의 필름, 그리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멈춰 세운 촬영. 이 과장된 일상 뒤에는 사실 새로운 시대를 가장 먼저 감지한 한 사람의 감각과 노동이 숨어 있었습니다. 1925년 신문이 기록한 채플린의 생활은 그저 사생활이 아니라, ‘대중문화’라는 낯선 세계가 막 태동하던 순간의 질감을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늘의 김부장 PD’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시대의 결을 읽고, 세월을 버티며 자기 감각을 지켜낸 한 사람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연속해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백 년 전 헐리우드도, 지금의 한국도 같은 원리로 움직입니다. 먼저 감지한 이들이 있고, 그들이 피운 꽃은 언젠가 더 많은 이들이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은 100년 전 신문이 소개한 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의 사진과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점이 눈에 들어오셨나요? 좋은 의견을 댓글로 나눠주시길 바랍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도심 한옥 처마 밑에 매달린 명태가 초록 비닐 속에서 겨울을 기다립니다. 옛 방식과 요즘 물건이 한데 섞여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하철역 입구에 ‘따릉이’가 줄맞춰 서 있습니다. 바쁜 누군가가 흐트려 놓았을 흔적을, 또 다른 누군가가 깔끔하게 정리했네요. ―서울 지하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요즘 종묘가 시끄럽습니다.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건물이 올라가느냐 마느냐”를 넘어, 국가유산 보존· 도시정책· 정치적 퍼포먼스· 사진 프레이밍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었습니다. 장관이 세계유산 현장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대법원 판결 직후라는 점에서 국민들 입장에서는 사법부와 행정부 메시지가 다른, 혼란스러운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후 국무총리, 국립중앙박물관장, 여당 최고위원까지 차례로 종묘를 찾았습니다. 대부분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이슈로 읽히고 있습니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연예인들과 함께 종묘 현장을 찾은 장면은 더욱 상징적입니다. 정무위·법사위 소속 의원의 동선이라기보다는, 여론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넣는 이미지 정치의 전형이었습니다. 정치가 ‘보여주기’ 전략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드러냅니다. ● 사진 한 장의 프레이밍 차이 — ‘wide shot’ vs ‘telephoto’서울시의 이미지를 활용한 반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18일 서울시는 종묘에서 바라본 세운4구역 개발 예상도를 공개했는데 하늘이 크게 보이는 와이드샷으로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같은 당 소속 시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사진을 보여줬습니다.국가유산청은 상대적으로 긴 렌즈를 통해 현장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둘 다 ‘사실’을 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진실을 말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와이드샷은 “도시와 유산이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망원샷은 “세계유산의 경관이 무너진다”는 프레임을 강화합니다. 같은 장소를 두고 정반대의 결론이 가능해지는 이유, 그것이 바로 사진의 정치성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작가들 중에는 인간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았을 때의 각도인 46도 정도의 화각을 기록하는 표준렌즈(풀프레임 기준 50mm 초점거리)로 찍은 사진만이 진실이라며 와이드 렌즈와 망원렌즈 사용을 자제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 재개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시야의 문제대법원은 서울시가 유산 인근 건축 규제 조항을 삭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는 71.9m → 141.9m까지 가능해졌습니다. 동아일보가 확보한 시뮬레이션을 보면: 종묘 정전에서 보면 건물의 절반 이상이 실제 시야에 들어온다는 분석이 있고 서울시는 “시야각 30도 밖이므로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세운4구역은 반드시 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외교 공문을 보냈고, 국가유산청은 2006년 ICOMOS의 경고 사례를 들어 “유네스코 등재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서울시는 “정밀 시뮬레이션을 거친 만큼 문제가 없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시야와 시선이 종묘 앞 개발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사진과 정치의 충돌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감추는가정치인들은 연일 현장을 찾으며 각자의 입장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장관의 현장 기자회견,총리의 연속된 서울시정 비판 일정, 연예인과 동행한 국회의원, 서울시의 개발 시뮬레이션 공개.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현장 점검’이 아니라, 각기 다른 프레임을 이미지로 고착시키려는 전략적 움직임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어떤 사진이 ‘사실’인지, 어떤 프레이밍이 ‘의도’인지 구분하기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2017년에 세운상가 옥상에서 종묘 방향으로 촬영했을 때도, 낙후된 도시의 모습은 개발 필요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했습니다. 지금 종묘 앞 고층 건물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선 방향은 문화 유산 안에서 서울 시내쪽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세운상가의 낙후된 모습에서 바라본 시선에 익숙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100년 전에도 있었던 ‘시선의 정치’1925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에는 ‘보고 싶은 사진 제14회 — 경복궁 근정전’이 실렸습니다. 평안북도 의주 독자 박성찬 씨가 “근정전 사진을 보고 싶다”고 보낸 편지가 계기였습니다.신문은 근정전이 총독부 신청사에 가려져 광화문과 서로 볼 수 없게 된 현실을 애써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로 1995년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광화문과 경복궁의 원래 시야를 되찾았습니다.총독부(중앙청) 건물을 철거할 당시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경복궁 안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려진 것에 분노했던 것인지 아니면 서울 시내에서 경복궁을 바라볼 수 없도록 막고 있는 총독부 건물에 대한 분노였는지 말입니다. ● 사진이 말하지 않은 세계를 읽어야 할 때게다가 지금의 종묘 논란은 단순히 “건물이 보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적 유불리, 경제적 형평성 등도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화관광부 장관 일행과 함께 논쟁의 첫날 종묘에 동행했던 서울대 김경민 교수 역시 “개발 자체는 찬성하며, 논쟁의 본질은 조망권만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파격적인 용적율을 허용해 누군가에게 과도한 이익을 허가할 수 없다는 논리도 존재합니다. 내년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를 겨냥하고 있다는 해석도 과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대지로 변한 세운4지구를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다만 어떤 시각에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에 의해 논의가 독점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할 때이기도 합니다. 오늘 살펴본 몇 장의 사진은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 그리고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종묘 앞 건물과 시야의 문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축제장 한편 사과 시식 코너에 벌이 내려앉았습니다. 제철 사과의 가을 향이 작은 손님까지 불러들였네요. “맛있네요. 사셔도 좋겠습니다!” 벌도 화답합니다. ―인천 서구 드림파크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7일 오후 서울 은평구청에서 열린 ‘은평 어르신 일자리박람회’ 행사장이 어르신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이날 박람회는 60세 이상 구직자에게 재취업 기회와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고, 인력난을 겪는 구인 기업에는 경력 있는 어르신을 채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계절의 수순 한 번에 오는 줄 알았던 가을에도 순서가 있었네요. 마로니에(가시칠엽수) 잎은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차분히 가을빛을 채워 갑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

● 대장동 사건 1심 이후, 항소 포기와 ‘추징금 논란’이 검찰 내부 반발로 이어지다대장동 사건 1심 재판에서는 일부 피고인들이 검찰 구형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은 판결 내용뿐 아니라 추징·몰수 범위가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다는 데에 집중되었습니다.이 부분은 검찰 내부에서 “항소로 다퉈야 할 지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수사 검사들뿐만 아니라 검찰연구관들까지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대검 지휘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항소 마감 시한 직전, 검찰은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7일 금요일의 일이었습니다. 이 결정 직후, 내부에서는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하는 등 조직 내부의 갈등은 공개적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전국 검사장들도 “항소 포기 경위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대검에 요구했습니다. 법무부-대검-중앙지검 사이에서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에 대한 해석도 엇갈렸고, 의사소통 과정 역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0일 월요일 아침 정성호 법무 장관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단순한 브리핑이 아니라, 정치적 부담을 한 몸에 받는 자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어스테핑은 포토스프레이와 다르다 - 긴 대화 속에서 장면이 생긴다장관실은 도어스테핑 일정을 전날인 9일 일요일 공지했습니다. 월요일 영상·사진기자들은 아침부터 과천 청사 앞으로 모여 자리를 잡았습니다. 취재 관행은 단순합니다. 먼저 온 사람이 더 앞 중앙에 자리를 잡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말하는 포토스프레이(photo spray)는 카메라 셔터가 스프레이처럼 터지는 1~2분의 짧은 촬영 구간입니다. 최근 외교부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입니다. 기존에 있던 프로토콜인 포토세션(photo op)도 대부분 3~5분이면 끝납니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은 이 둘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날 장관은 20분 이상 카메라 앞에 서 있었습니다. 도어스테핑은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답변에 이어 추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답변 사이마다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이 있기도 합니다. 이 시간 동안 주인공의 표정 변화, 손의 움직임, 속사포 같은 답변과 두리뭉실한 답변 등 비언어적 장면이 드러납니다. 정치인의 말보다 말이 멈추는 순간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물 좀.” — 그날의 결정적 장면이 나온 순간문답이 후반부에 들어섰을 때, 장관은 “7000억 환수 논란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목소리가 잠시 굳어졌고, 장관은 옆 보좌관에게 짧게 말했습니다. “물 좀.”화면 밖에서 손이 들어오면서 500ml 생수병이 전달되었습니다. 장관은 이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습니다. 2초가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앞에 서 있던 사진기자들의 셔터가 일제히 열렸습니다.짧은 포토스프레이였다면 결코 포착될 수 없는, 도어스테핑만이 만들어내는 비언어적 장면입니다. 한국 정치사진에서 정치인의 물 마시는 장면은 오래전부터 ‘속이 탄다’ ‘답답해 한다’ ‘압박을 받는다’ 는 은유로 읽혀왔습니다. 정성호 장관의 물 마시는 장면 역시 추징금 논란, 항소 포기 결정, 검찰 내부 반발, 정치적인 목적에 충실한 결정이라는 의혹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을 받는 정치인 출신 관료가 갖는 부담이 응축된 장면이었습니다.● 역대 정치인들의 ‘물 마시는 장면’은 무엇을 말해왔나정치인의 물 마시는 장면이 처음부터 ‘긴장’의 상징은 아니었습니다. 1967년 박정희 후보의 물 마시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장면에 가까웠습니다. 물을 마시면서 웃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1988년 5공비리 청문회에서는 기업인·전직 권력자들이 의원들의 추궁을 견디며 물을 들이켰고, 이후 이 장면은 “압박과 곤혹스러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1998년 북풍 기획 의혹으로 검찰 출두 요구를 받은 정형근 의원이 회의 도중 물을 마시는 장면은 정치적 곤궁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순간인데 당시 신문은 이 사진의 제목으로 “갈증 나네요”를 붙였습니다.이후 정치인의 물 마시는 장면은 정치적 부담감과 긴장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말보다 먼저 말하는 이미지 — 사진이 남기는 기록의 역할정치에서 많은 결정은 말로 이루어지지만, 그 말의 기록은 종종 남지 않습니다. 이번 항소 포기 과정에서도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어떤 의견이 전달되었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는 문서는 없습니다. 사진은 말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순간의 공기와 긴장을 기록합니다. 침묵과 표정과 몸짓이 말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언제나 말과 말 사이, 정치인의 무의식이 스치듯 드러나는 찰나를 기다립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은 그 짧은 침묵과 한 모금의 물에서 정치가 어떻게 이미지로 남고, 이미지가 어떻게 기록으로 축적되는지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여러분의 생각을 좋은 댓글로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햇살에 물든 감 지붕 아래 주황빛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담 너머 감나무에서 건너온 결실일까요? 한 알 한 알에 가을 햇살과 기다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경기 광명시 광명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벽돌담 덩굴 사이로 따뜻한 빛이 흘러 나옵니다. 그 빛 아래, 누군가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고 있겠지요. 바라만 봐도 온기가 전해집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0일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경남 거창군 로컬푸드 팝업매장에서 시민들이 과일 등 지역 농산물을 둘러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하고 서울시가 후원하는 ‘전국 로컬 농산물 로컬 잇: 로컬 푸드 서울 팝업’ 행사는 11일까지 열린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알루미늄 목발이 거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걸까요? 부상에서 회복하셨으면 축하드립니다. ―서울 경의중앙선 서강대역 앞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영상 앞에 평등해진 세상지난달 법정에서 공개된 대통령실 CCTV 영상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10월 13일, 내란 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재판에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의 대통령실 CCTV 영상을 공개했습니다.특검은 32시간 분량의 영상 중 20분을 편집해 ppt 보여주듯 재생했으며. 법원은 클로즈업해서 보도하면 안된다는 전제 조건을 달고 재판 녹화 영상을 언론에 제공했습니다. 화면에는 한 전 총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받아 든 것으로 보이는 장면, 일부 국무위원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그리고 장관들과 문건을 주고받는 장면이 담겼습니다.“계엄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한 전 총리의 주장과 CCTV 영상은 서로 엇갈렸습니다.대통령실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포착한 영상은 권력자들의 ‘기억’과는 다른 장면을 보여줬고, 법정에서는 새로운 증거가 되었습니다.화면 속에서 검사는 “영상에 따르면”이라는 말로 사실관계를 확인합니다. CCTV가 ‘리얼’이 되었고, 그 리얼이 곧 증언과 증거가 되는 시대입니다. 한덕수 전 총리의 CCTV 영상이 공직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의 파괴력을 절감한 공직 사회가 사각지대가 더 늘릴 수도 있고 더욱 불투명한 의사 결정 방식이 연구될 수도 있습니다. 합법적인 ‘비화폰’처럼 CCTV -free zone(프리존)을 확대하는 것을 합법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동아일보 DB에 저장된 CCTV 관련 보도 사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 CCTV에 찍힐까대통령과 총리의 모습이 담긴 CCTV는 특별해 보이지만 일반 시민의 일상은 이미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2024년 4월 18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에는 160만 7,388대의 공공 CCTV가 운영되고 있습니다.서울 16만 1,267대, 경기 23만 8,549대 등 주요 도시는 이미 카메라망 속에 놓여 있습니다.여기에 민간 건물, 상가, 아파트, 차량 블랙박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2021년 행정안전부 조사에서는 30~40대 직장인이 하루 평균 약 98회 CCTV에 노출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민간 CCTV를 제외한 수치이므로 실제로는 훨씬 많습니다.이제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카메라 안’에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CCTV의 역사 — 도시의 첫 번째 눈CCTV가 처음부터 ‘감시의 눈’은 아니었습니다.1971년 10월 27일, 서울시경 교통정보센터가 광화문 사거리를 포함한 주요 교차로 10곳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단추 하나로 장안의 차량을 조절한다.”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이렇게 썼습니다.교통체증을 해소하고 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하기 위한 기술이었으며, 도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습니다.한국에서 CCTV는 그렇게 ‘통제의 기술’로 출발했습니다.● 1980~1990년대 — 감시와 보호의 경계1980년대 후반, 은행 강도와 절도범 검거에 CCTV가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신문 1면에 “은행 감시 TV로 범인 검거” 같은 제목이 등장했습니다.기술은 사회의 불안을 달래는 근거가 되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는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1992년, 사설 독서실들이 학생을 관리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고 학습 태도를 부모에게 매일 보고했습니다. ‘감시’ 기능을 선언한 것입니다. 1997년에는 영국 런던 시민이 하루 300번 CCTV에 찍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사생활이 노출된다”는 비판과 “범죄 예방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공존했습니다.국회의원들이 CCTV가 자신들을 비춘다며 항의했던 일도 있었습니다.1990년대에 CCTV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사회적 논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00~2010년대 — 시민의 동의로 확산된 감시사회적 논쟁을 거쳐 수용의 단계로 변한 건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2001년 일산구청 민원실에 CCTV가 설치되자 언론은 “시민보호일까, 시민감시일까”라고 물었습니다.당시 주민들은 불쾌함을 표현했지만, 불과 2년이 지난 2003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골목길에 방범용 CCTV가 시범 설치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범죄율이 40% 감소했고, 주민의 85%가 설치에 찬성했습니다.“안전이 우선이다”라는 인식이 ‘사생활 보호’의 논리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2004년에는 서울 25개 구 중 22곳이 우범지역에 CCTV를 확대 설치했습니다.감시의 논리가 시민의 동의 속에 제도화된 시점이 지금으로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쯤인 셈인 것입니다.2023년에는 수술실 CCTV 설치가 법으로 의무화되며, 감시의 영역이 의료와 일상까지 확장되었습니다.빅브라더’의 우려는 줄고, ‘보안’이라는 새로운 윤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기억’보다 ‘기록’이 더 많은 시대의 딜레마CCTV는 반세기 동안 ‘도시의 교통 관리자’에서 ‘사회적 증인’으로, 이제는 인공지능과 결합한 ‘판단의 기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기계의 눈이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카메라는 ‘본 것’을 기록하지만,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화면 밖의 맥락, 녹음되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현장의 공기는 데이터로 남지 않습니다. 누가 그리고 언제 영상의 보존과 공개를 결정하는가도 중요합니다.또 영상은 사실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의미를 해석하지는 못합니다.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기억과 언어입니다. 오늘의 법정에서 CCTV는 증거가 되었지만, 내일의 역사에서 그 영상이 진실로 남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권력이 기록으로 검증되는 시대, 우리는 동시에 공개된 기록의 맥락과 왜곡도 경계해야 합니다. 진실은 영상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읽고, 어떤 맥락 속에 놓는가—그것이 역사를 남기는 사람의 책임일 것입니다. 영상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분명하지만 때론 단편적”입니다. 그래서 법관들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일상과 공직 사회 깊숙이 들어온 CCTV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댓글로 귀중한 생각을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가을 햇살 아래, 청년 조각상이 기타를 품에 안고 앉아 있습니다. 멈춘 손끝에서조차 노래의 여운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창문 너머로 드럼 치는 토끼 인형이 보입니다. 인형을 받치고 있는 드럼 위로 역동적인 리듬이 퍼져 나가는 듯합니다.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에어컨 실외기 위에 새를 쫓기 위한 ‘버드 스파이크’가 빼곡히 설치돼 있습니다. 보금자리를 찾으려는 비둘기에게는 찬 바람보다 더 날카로운 경고일 겁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