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부동산 큰손, 저유가에 ‘두바이 엑소더스’… 신기루 왕국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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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기적’ 두바이 금융위기 10년… 아직 못찾은 탈출구

지난달 8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엑스포 2020’ 행사 준비 현장에서 건설기술자들이 마스크와 안전모를 쓰고 걸어 
나오고 있다. 내년 10월 막 오르는 ‘엑스포 2020’에서 두바이는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을 대거 유치해 재도약의 기회를 노린다.
 두바이=AP 뉴시스
지난달 8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엑스포 2020’ 행사 준비 현장에서 건설기술자들이 마스크와 안전모를 쓰고 걸어 나오고 있다. 내년 10월 막 오르는 ‘엑스포 2020’에서 두바이는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을 대거 유치해 재도약의 기회를 노린다. 두바이=AP 뉴시스
2009년 11월 25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진행해 오던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모라토리엄)를 전격 선언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고, 최대’란 표현이 붙는 다양한 건축물, 관광시설 등을 개발하며 ‘사막의 기적’으로 불렸던 두바이가 하루아침에 ‘사막의 신기루’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당시 두바이월드는 세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두바이 전체 부채(약 800억 달러·약 94조3680억 원)의 74%인 590억 달러(약 69조6000억 원)의 빚을 안고 허덕였다.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두바이가 추진하던 다른 개발 사업들도 줄줄이 중단됐다.

‘두바이 쇼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두바이 경제가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 금융, 물류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산업구조, 저유가 장기화, 중동 정세 불안, 아부다비와 카타르 도하 등 경쟁 도시들의 급성장 등으로 앞으로도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 저유가와 중동 정세 불안


두바이 통계센터 등에 따르면 두바이 경제는 위기가 발생한 2009년 ―2.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다소 회복기에 접어든 2013년 4.8%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이를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가 둔화됐다. 특히 지난해 성장률은 1.9%를 기록해 경제위기 다음 해인 2010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요 이유로는 저유가의 장기화가 꼽힌다. 알자지라, 미국 워싱턴 아랍전문 싱크탱크 아랍센터 등에 따르면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두바이에 매력을 느껴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등 주변 산유국 부유층들의 지갑이 가벼워지면서 이들의 투자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과 함께 경제를 떠받치던 물류와 금융 분야의 사정도 좋지 않다. 특히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사우디 등이 주도한 2017년 6월 카타르 단교 사태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시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6개국은 카타르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밀착한다며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두바이의 항만 시설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온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카타르가 ‘물류의 탈(脫)두바이’를 선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타르는 단교 후 자국의 항만 시설을 대폭 늘렸다. 부족한 부분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요충지 오만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다. 한 카타르 소식통은 “단교 사태를 계기로 카타르에서 UAE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했다”며 “UAE가 카타르로 덕을 보는 부분은 도외시한 채 무작정 이란 문제만 들먹였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를 전격 탈퇴한 후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하자 두바이에 영향이 미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700억 디르함(약 22조4900억 원)에 달했던 UAE와 이란의 무역 규모가 올해 반 토막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 늪에 빠진 부동산 시장

‘빌라 1채를 사면, 아파트 1채가 공짜.’

두바이의 유명 부동산 개발회사 ‘다막’이 지난해 3월 진행했던 특별 판매 행사다. 당시 다막은 769만9000디르함(약 24억7200만 원) 이상인 고급 빌라를 사는 고객에게 한국의 원룸에 해당하는 아파트 한 채를 공짜로 주겠다고 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다막 측에 “이 행사를 언제 재개할지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더니 20분 만에 답신 이메일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다막 관계자는 “해당 행사의 재개 여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지금도 고급 빌라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아파트를 대폭 할인 판매하고 있다”며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다른 고객보다 더 많은 할인이 가능하다”며 집요하게 부동산 구매를 권유했다.

외국 기자에게까지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데도 두바이 부동산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시장조사회사 캐번디시 맥스웰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두바이의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5.3% 하락했다. 두바이의 주요 지역인 팜주메이라(―14%), 두바이마리나(―13.5%), 비즈니스베이(―13.4%), 다운타운(―14.2%) 등 곳곳이 모두 지난해 6월보다 대폭 하락했다. 또 다른 현지 부동산업체 ‘루스타’는 현재 두바이 전체의 공실률이 38%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두바이의 외국 컨설팅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그만큼 침체됐고, 특히 두바이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외국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 쉽지 않은 체질 개선


두바이는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체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부실 금융회사의 구조조정, 외국인 대출 기준 강화, 정부와 공기업 내 자국민 직원 비율 증가 등에 공을 들였다. 이런 노력이 실질적인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국가 재정이 여전히 좋지 않다. AFP통신에 따르면 현재 두바이의 공공부채는 총 1230억 달러(약 145조900억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0%에 이른다. 이 빚의 3분의 2는 2023년 말 전에 만기가 도래한다.

과감한 체질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는 단순한 경제 구조가 꼽힌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거의 없고, 일반 제조업도 사실상 전무해 부동산, 물류 등 특정 산업에만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2018년 기준 약 320만 명인 전체 인구 중 자국민 비율이 약 26만 명에 불과한 것도 경쟁력 약화 요인. 두바이인들은 대부분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관리·감독직에 근무한다. 실무 및 전문 업무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인력들이 맡고 있다. 장기 계획 수립이 어렵고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두바이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외국인 전문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 두바이인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에 자기계발에 소홀하고 그렇다 보니 경쟁력을 배양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제2, 제3의 두바이’를 지향하며 외국 기업 유치와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주변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두바이에는 악재다.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아부다비는 물론이고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인 카타르 도하가 대표적이다. 두 도시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두바이가 독점해온 ‘중동 허브’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쿠웨이트의 쿠웨이트시티, 오만의 무스카트뿐만 아니라 ‘은둔의 왕국’으로 통했던 사우디까지 중동 허브를 꿈꾸고 있다. 2017년 6월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후 사우디 정부는 관광 개방, 여성 인력 활용, 국제금융 단지 조성, 대중문화 개방 등을 추진하며 경제 구조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홍해 인근에 계획도시 ‘네옴’을 세우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셰일가스 생산 활황으로 저유가 기조가 고착화할수록 탈(脫)석유와 산업 다각화를 위한 중동 각국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주변 산유국과 달리 ‘오일머니’ 없이 경쟁해야 하는 두바이에 장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엑스포 2020’으로 반격 노리는 두바이


두바이는 내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 ‘엑스포 2020’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외국인 투자 여건 개선, 영주권 제도 도입, 국제학교 학비 동결 등 외국인 투자를 촉진할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바이 해외 투자 유치를 담당하는 공기업 ‘두바이 포린다이렉트 인베스트먼트(DFI)’의 파하드 알게르가위 최고경영자(CEO)는 AFP통신에 “일부 언론이 두바이의 경제 상황을 과장 보도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새로운 투자를 하기 좋은 세계 도시’ 순위에서 늘 10위 안에 들었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엑스포 2020’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사프나 자그티아니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엑스포로 방문자가 늘고, 일시적으로 호텔과 소매업이 활성화될 순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두바이#경제위기#엑소더스#저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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