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노래는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지나 양화대교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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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가사 속 한강 다리의 의미는?

‘비 내리는 영동교’ ‘제3한강교’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런던의 템스 강, 파리의 센 강보다 강폭이 넓은 한강은 서울을 터전으로 한 대중예술인에게 오랜 세월 동안 영감의 원천이 됐다. 요즘 가요계를 이끄는 히트곡 중 다수는 한강 변을 굽어보며 만들어진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여러 사옥 중에서도 녹음 스튜디오, 작곡 캠프, A&R 사무실이 몰린 청담 사옥을 영동대교 남단 근처 올림픽대로 변에 뒀다. YG엔터테인먼트 사옥은 선유도를 바라보는 양화대교 북단교차로에 면해 있다.

최근에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과 마포구 합정동을 연결하는 양화대교가 메이저와 인디 가요 기획사, 홍익대 앞 음악 판을 들고 나는 관문으로서 대중음악의 직접적인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베테랑 래퍼 딥플로우는 최근 3집 앨범(‘양화’) 전체에 양화대교 양쪽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에는 솔 싱어송라이터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큰 인기를 모았고 재작년엔 인디 밴드 제8극장도 2집 ‘양화대교’를 냈다.

한강 다리, 영욕과 관조의 공간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양화대교는 현재 서울에 사는 20, 30대의 삶의 경험이 집적된 공간인 홍익대 앞의 관문”이라고 했다. ‘홍대 문화권’의 등뼈를 동교동로터리부터 2호선 합정역까지 이르는 직선도로로 볼 때 양화대교는 그 입구이자 출구라는 것이다.

최근 양화대교의 부상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중반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한강 다리 노래 붐이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1979년), 박영민의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1984년),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1985년)는 당대의 강남 개발과 맞물려 등장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제3한강교 밑을/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마음을 싣고서…’(‘제3한강교’ 중)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는 “이들 곡이 발표될 무렵 한남대교(제3한강교) 남단의 리버사이드 호텔을 위시해 많은 나이트클럽과 사우나가 일본식 유흥문화를 품고 강남으로 들어왔고, 연예 비즈니스의 큰손 중 일부도 기존의 종로, 명동을 떠나 신사동과 강남으로 터전을 옮겼다”고 했다.

‘너를 보면 나는 잠이 와/잠이 오면 나는 잠을 자/자면서 너에게 편지를 써/자면서 나는 사랑을 해/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보여…’(‘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중)

이용의 ‘서울’(1982년), 설운도의 ‘나침반’(1984년)이 여전히 종로나 을지로를 중심으로 강북에 서울의 공간을 한정하는 동안, 발 빠른 사업가와 예술인에게 강남은 부동산 투기와 유흥, 사랑과 성이 넘쳐나는 새로운 장으로 떠올랐다고 신 교수는 설명한다. 차우진 평론가는 “영등포의 동쪽을 뜻하는 영동(‘비 내리는 영동교’)은 1990년대 압구정 상권이 뜨며 강남이 확장되기 이전의 방배동으로 특정할 수도 있다. 이들 노래는 단순한 이별가를 넘어 돈과 쾌락을 좇아 천민자본주의에 투신한 이를 그린 것으로도 읽힌다”고 했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그 사람은 모를 거야 모르실 거야/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하염없이 걷고 있네…’(‘비 내리는 영동교’ 중)

양화대교, 강변 가요의 부활


1990∼2000년대 한강 다리 노래가 뜸했던 이유는 뭘까. 신현준 교수는 “외지인이 강남 거주자의 다수를 형성한 개발 초기에는 강북과의 연계가 남아 있었고 다리가 중요했지만, 1980년대 말부터 강남-강북의 연결이 끊어지고 본격적인 강남 세대가 등장했다”고 했다. 퓨전 재즈를 앞세워 가장 ‘강남스러운’ 음악을 했던 김현철 이후 김동률, 이적 세대에 이르기까지 한강다리가 대중가요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강 다리는 홍익대 앞 상권의 폭발, 노래 속 1인칭의 회복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쾌락과 예술의 공간에서 주거와 휴식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회한과 관조의 터전은 이제 양화대교로 밀집했다. 차 평론가는 “홍익대 인근의 임대료 상승으로 문화권이 합정, 상수, 망원까지 확장되면서 양화대교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 강폭이 넓어 통과 소요시간이 적잖은 데다 최근 몇 년 새 여의도와 합정역의 스카이라인 발달, 선유도 공원 개장(2002년)으로 정서적 자극이 더 강한 공간이 됐다”고 했다.

지명 구체성 급증한 21세기 작사 트렌드도 반영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양화대교 양화대교…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나 양화대교 양화대교’(자이언티 ‘양화대교’ 중)

최규성 평론가는 2000년대 이후 가요에서 지명성이 급증하는 경향을 양화대교 붐에 연결시켰다. 그는 “과거에는 노래 제목에 지명을 넣는 것은 촌스럽다는 인식과 가사를 3인칭으로 풀어내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일상적, 개인화된 삶이 중요해지면서 젊은 음악가들이 구체적인 지명과 함께 1인칭 시점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면서 “‘압구정 날라리’ ‘이태원 프리덤’ ‘강남스타일’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의 연장선상에 양화대교가 있다”고 했다. 양화대교가 신변잡기와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짙은 솔, 힙합 장르의 가사에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가요사를 통틀어 서울의 지명이 제목에 쓰인 노래는 2000곡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에 관한 노래는 그중 1% 미만이지만 상권과 문화의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소재로 기능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양화대교에 관한 노래는 계속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차우진 평론가는 “빠르게 변화하며 자본과 사람이 몰려들고 익명성과 고독의 정서를 자극한다는 면에서 지금의 ‘홍대’는 1980년대 영동과 비슷한 공간”이라며 “일상적이지만 자기 것인지 아닌지 모호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 가장 많이 등장한 한강 다리는… ▼

양화대교 14곡, 마포대교 13곡, 성산대교는 1곡


최근 떠오른 양화대교는 횟수 면으로 봐도 대중가요에 가장 많이 등장한 한강 다리다.

본보가 음악서비스 ‘지니’(genie.co.kr)에 등재된 300여만 곡 중 키워드 검색을 통해 한강 교량이 가사나 제목에 등장한 곡을 찾아본 결과 양화대교는 제목을 포함해 14곡에 쓰였다.

횟수로는 마포대교(13곡), 성수대교(12곡)가 필적하지만 여러 노래의 주제, 제목, 앨범 제목으로 전면에 나서며 존재감을 과시한 다리는 양화대교뿐이다. 제목으로 쓰여 가장 크게 히트한 다리 역시 ‘양화대교’(자이언티)다. 양화대교와 인접한 성산대교(1곡)와 서강대교(0곡)는 노래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힙합가수 화지는 ‘말어’(2014년)에서 잠 못 드는 불야성, 서울이란 왕국의 시작점을 양화대교로 상정한다.(‘네가 받드는 걘 우릴 받들어/월화에서 금토/양화대교부터/명동, 청담까지 다 가로등/불 켜지는 밤, 우린 눈 떠’)

가양대교부터 광진교까지 서울의 남북을 연결하는 한강 교량 23곳 중 복수의 가요에 등장한 다리는 한남대교와 잠수교(이상 7곡), 한강대교와 영동대교(5곡), 동작대교(4곡), 반포대교(3곡), 당산철교 동호대교 올림픽대교 광진교(이상 2곡)까지 13곳이었다. 1970, 80년대 대표 가요에 등장했던 한남대교(‘제3한강교’), 잠수교(‘창밖에…’), 영동대교(‘비 내리는…’) 모두 등장 빈도수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신현준 교수는 “윤수일의 ‘아파트’(1982년)에서 ‘별빛이 흐르는 다리’의 이름은 적시되지 않지만 당시 갈대숲이 있을 정도로 허허벌판이었던 곳을 힌트로 삼으면 이곳은 영동대교로 추정된다”고 했다.

서강대교를 비롯해 가양대교, 노량대교, 청담대교, 잠실대교, 잠실철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로 시작하는 이용의 ‘서울’의 3절에는 동작대교가 등장했다(‘동작대교가 도심으로 이어지면/다시 태어나는 서울은 낭만의 도시’). 1978년 착공해 당시 준공을 2년 앞둔 새 다리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노래에 한강 다리의 구체적 이름이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대개 2000년 이후, 주로 랩 가사를 통해서다.

이용의 ‘서울’과 32년 시차를 둔 아이돌 그룹 B1A4의 ‘Seoul’(2014년)은 대도시 군중 속 외로움, 연인에 대한 그리움(‘검은 빌딩, 검은 거리, 검은 사람들 속…발붙일 곳 없는 이 도시에서 너마저 없다면’)을 랩 부분에 이르러 한강대교에 투영한다(‘주황빛에 물이 든 이 도시 속에 빛나는 한강대교 위를 걸어가다 보면 차가운 공기에 난 또 혼자라 느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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