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씨네피플]영화 '살인의 추억' 주연 송강호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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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선배 시대에 저 같은 외모가 먹혔겠어요?” 어딘가 엉성하고 허술한 구석으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배우 송강호. 그는 자신이 연기자로서 ‘뜨는’ 이유를 시대를 잘 타고난 덕으로 돌렸다. -박영대기자

《한국 영화계는 1999년 ‘쉬리’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등 몇몇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짙게 깔려있었다.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는 퇴보하고 있다는 걱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작품성을 담보했다는 작품들이 흥행에서 참패하는 동안 이른바 ‘조폭 코미디’와 ‘화장실 코미디’가 충무로를 휩쓸기도 했다. 이런 우려를 해소해 준 사람은 ‘국민배우’ 안성기나, 흥행 보증수표라는 한석규도 아닌 ‘반칙왕’ 송강호(宋康昊)였다.

그가 주연을 맡은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은 개봉 보름 만에 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작품성과 대중성 면에서 모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송강호 자신은 ‘쉬리’와 'JSA‘에 이은 ‘3타석 홈런’으로 이 시대의 대표적 배우임을 입증해 보였다. 1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살인의 추억’의 성공을 영화계가 반기는 분위기다.

“‘살인의 추억’이 잘 되기를 바란 것은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애쓰는 진짜 영화인들의 ‘희망’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고 기쁘다. 솔직히 ‘살인의 추억’이 망했다면 누가 이런 영화를 또 찍으려하겠는가.”

―‘JSA’에 대한 평단의 호평 중에서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살인의 추억’에 대한 평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어느 네티즌이 쓴 20자 평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라는 표현이었다. 관객이 돈 내고 영화 보러가서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관객을 관찰하고 있더라는 뜻이었다. 개인적으로 바랐던 바를 정확히 집어내서 깜짝 놀랐다.”

―10편의 출연작 중 8편이 매년 한국 영화 흥행랭킹 10위 안에 든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할 텐데….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내게 숫자는 의미가 없다. 흥행을 염두에 뒀다면 ’JSA’이후 흥행 여부가 불확실했던 ‘복수는 나의 것’과 같은 작품에 출연했겠는가. 내게는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관객에게 어떤 재미와 의미를 주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함께 연기한 배우들은 ‘송강호는 평소에는 참 내성적인데 카메라에 불만 들어오면 180도로 바뀐다’고들 하는데….

“예민하고 편집증적인 성격이 있다. 영화를 찍는 동안 내내 영화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집에서도 영화만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항의를 많이 받는다.”

―자신만의 연기 비결 같은 것이 있다면….

“남들은 영화를 많이 본다지만 내 연기의 스승은 신문이다. 몇 달 동안 특정신문을 정해놓고 정치면만 빼고(웃음) 꼼꼼히 읽는다. 신문을 통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살이를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정리한다.”

―당신은 어딘가 엉성하고 허술한 구석으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킨다는 평도 있는데….

“시대를 타고난 덕분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한석규 형이나 안성기 선배의 시대도 그렇지만 신성일 선배의 시대에 나 같은 외모가 먹혔겠는가. 반대로 신성일 선배가 지금 태어났다면 그저 잘생긴 배우 중의 하나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다면….

“다 무섭다(폭소). 그러나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다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보면 ‘자신과의 싸움을 참 잘 이겨냈구나’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연기자가 되기를 꿈꾸었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내게는 ‘장기자랑’이랄 것은 없었지만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솜씨는 있었다. 장기자랑이 똑같이 흉내를 낸다는 점에서 ‘묘사’라 한다면 나는 어떤 상황을 내 식대로 소화해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모사’에 능했다. 묘사는 중간 매개자 없이 흉내 내는 인물과 관중만 남지만 모사는 중간 매개자라는 존재가 중요하다. 누가 흉내를 내는가가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또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준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의 그런 능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대학 연극영화과에 응시했으나 두 차례나 낙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있었다면….

“첫 번째는 내가 영화가 아니라 연극을 택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영화를 꿈꿨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연기인생을 연우무대라는 극단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 당시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것이냐’ 아니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연우무대는 후자에 충실한 무대를 만들었고 나는 지금도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세 번째는 ‘초록물고기’에 출연한 것이다. ‘초록물고기’를 통해 연기력을 검증할 수 있었고 영화와 연기를 융합시키는 데 눈뜨게 됐다.”

―앞으로의 목표는….

“관객들이 언제나 믿을 만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배우? 아니, 그보다는 내 스스로 감탄할 수 있는 연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까. 아니다. 앞의 둘은 잊어 달라. 관객들이 계속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정답이겠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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