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유승찬/'배보다 큰 배꼽' 배우 몸 값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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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이 5월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개봉 10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경쟁작인 할리우드 초특급 블록버스터 ‘엑스맨 2’도 너끈히 따돌렸다. 그렇다면 ‘살인의 추억’의 흥행원인은 뭘까. 제작자 차승재의 뚝심일까,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일까, 경지에 오른 송강호의 연기력일까. 실패 원인은 알 수 있어도 흥행 원인은 알 수 없다는 영화계의 속설에 비추어 볼 때 이 물음은 ‘우문(愚問)’임에 틀림없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송강호의 상품가치는 얼마나 될까.

▼톱스타 개런티 5년새 5배 ▼

요즘 한국영화계에서 이른바 ‘대박’의 환한 웃음 이면에는 수익률 저하라는 우울한 ‘표정들’이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은 1973년 이후 처음으로 1억명을 돌파했고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도 47%를 넘어섰지만 수익률은 마이너스 17%를 기록했다. 개봉된 영화에 대한 추정치가 이렇고,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 위해 수십 편의 작품이 기획단계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적자폭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의 확대 속도에 비해 제작비 상승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이다.

제작비 상승을 주도한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인건비이고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배우 개런티다. 요즘 영화계에선 ‘영화판에서 돈 버는 사람은 배우밖에 없다’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일급 남자배우의 경우 편당 개런티가 5억원대를 호가한다. 여배우의 경우도 4억원대를 돌파할 조짐이다. 불과 5년 사이에 거의 다섯 배까지 올라간 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톱스타들을 소유한 매니지먼트사들은 공동제작자로 영화 자막에 이름이 오르는 것과 함께 영화 수익에 대한 인센티브 지분까지 제작자에게 요구한다. 반면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영화 제작자로 자막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는 대부분 자신들의 개런티를 제작비로 투자할 때에 한해서다. 이는 동업자 정신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톱스타들은 어느 정도의 흥행을 담보할까. 톱스타 없는 흥행작과 톱스타들이 출연한 비흥행작을 열거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집으로…’(비전문 배우), ‘폰’(하지원), ‘색즉시공’(임창정 하지원), ‘동갑내기 과외하기’(권상우 김하늘), ‘가문의 영광’(김정은) 등이 스타 파워보다는 영화 자체의 힘으로 성공한 영화들이었다면, ‘2009 로스트 메모리즈’(장동건), ‘복수는 나의 것’(송강호), ‘챔피언’(유오성), ‘이중간첩’(한석규) 등은 톱스타를 전면에 내세우고도 흥행에 실패한 영화들이다. 극단적 대비이기는 하지만 톱스타와 개런티의 방정식을 푸는 데 참고할 만한 근거이다.

영화배우는 영화산업의 성패와 운명을 같이하는 영화인이다. 그럼 요즘의 한국영화산업은 어떤가. 수익률 저하로 인해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고, 계획됐던 많은 프로젝트들이 중도에 엎어지고 있다. 투명한 제작 시스템을 만들고 시장 규모에 맞게 제작비를 현실화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여나가는 것은 산업화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영화계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롭 마셜 감독의 ‘시카고’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캐서린 제타 존스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주연이 확정되기 전 ‘개런티가 적은’ 조연을 자청했고 주연을 맡은 르네 젤위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댄서 출신에다 가창력까지 갖춘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이 뮤지컬 드라마에서 자신이 주연보다 돋보일 것을 우려해 긴 머리를 자르는 용단까지 내렸다.

▼제작비 늘어 영화발전에 부담 ▼

배우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영화산업이 일그러진다면 소탐대실(小貪大失)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배우들이 영화의 이방인이 아니라 영화산업의 한 축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주체로서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영화 발전에 기여해주길 바란다. ‘우문’은 계속된다. 톱스타들의 개런티 적정선은 어디일까.

유승찬 영화평론가·월간 '스크린'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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