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지 않는 옷, 부동산 중개수수료[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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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수수료 대상 고가주택 기준 낮아… 거래 잦은 임대, 소비자에게 큰 부담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는 가만 생각하면 ‘예술’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잦으면 2년마다 집을 바꿔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딱 내 동네, 내 집에 수억 원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필요한 그 기간에 맞춰 나타나는지…. 한 집의 거래가 이뤄지려면 연쇄적으로 다른 집 거주자의 손 바뀜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무리 없이 큰돈이 오가니 말이다.

이런 예술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이 부동산 중개업자들이다. 가게만 열어 놓으면 알아서 사람들이 몰려와 앉아서 장사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집이 ‘깨끗한’지 확인하고, 빚이 있다면 가격을 어느 선까지 내리는 게 적당한 건지 집주인을 설득도 하고, 인터넷에 광고를 올려 모객을 하고, 최종적으론 거래에 대해 법적인 책임도 어느 정도 진다. 그런데 요새 중개업자들과 소비자들 사이 다툼이 잦아지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또 한 단계 오르면서 수수료율을 둘러싼 다툼이다.

“제가 거래를 성사시키는 84m² 아파트 대부분이 9억 원이 넘습니다. 전세금은 6억∼6억5000만 원 정도 되고요. 이 동네가 강남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니 거래 수수료율을 놓고 중개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매번 싸움이 일어납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일하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이야기다. 싸움은 매매 거래가 이뤄진 뒤 몇 달에 걸친 기나긴 ‘문자 전쟁’이 되기도 하고, 때로 법적 다툼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서울 기준 부동산 중개수수료율은 최고 한도가 매매 시 0.9%, 임대차 거래 시 0.8%다. 최고치의 기준이 되는 금액은 매매가 9억 원, 임대가 6억 원으로, 이 기준이 세워진 게 2014년이다. 그전만 해도 매매는 6억 원, 임대는 3억 원을 넘어갈 때 최고 수수료율을 매기는 방식이 15년간 유지됐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최근 몇 년간 계단식으로 오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초강력 정책이 나오면 얼마간 주춤했다가 얼마 뒤 그 공백을 메우듯 빠르게 뛰어올랐다. 그래서 2014년에 고가주택이었던 9억 원이 더 이상 고가가 아니게 됐다. 지난해 9·13대책 발표 때만 해도 9억 원 이상 아파트는 서울 전체 아파트의 26%를 넘어섰다. 올해 3분기에 이뤄진 6억 원 이상 전세 비중도 16% 정도 됐다. 매매야 개인이 평생에 몇 번 안 하니 잘 협의하면 된다 하더라도 집값을 따라 뛴 고가 전세를 자주 거래해야 하는 소비자에게 현실에 맞지 않은 수수료율은 큰 부담이다.

“집값 상황이 몇 년 사이에 이렇게나 바뀌었으니 정부가 조정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당사자끼리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면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중개업자와 덜 내려는 소비자가 싸우는 수밖에 없어요.”

모든 중개업자가 이처럼 합리적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2014년 수수료율 조정 때도 중개업자 단체의 큰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와 이익단체 사이 합리적 기준을 세워 조율을 하는 게 정부가 할 일 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규모가 달라져 합리적 조정이 필요한 일이 부동산 거래에만 있는 건 아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횡령·배임 등의 가중처벌 조건으로 가장 심각하게 보는 기준이 이득액 50억 원 이상이다. 이 기준은 1983년에 제정된 뒤 36년간 바뀌지 않았다. 횡령·배임은 기준이 모호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걸리기 쉽다. 더구나 1980년대와 달리 이제는 대기업들이 한 해에도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 시대다.

찾아보면 이렇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경제 상황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럴 땐 몸이 아니라 옷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부동산 중개수수료#임대#전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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