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안철수는 이재명과 단일화할 터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0일 12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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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렇게 흠 없는 대선 후보는 없었다. 공약 탄탄하고, 기업과 정당을 경영해본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도덕성 결함이나 ‘가족 리스크’가 없다!

그렇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다. 하지만 6일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를 뽑겠다”는 응답은 10.1%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윤석열(41.7%), 더불어민주당 이재명(37%)에 한참 못 미친다는 얘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동아일보DB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동아일보DB


안철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터다. 작년 11월 출마선언에서 밝힌 대로 ‘여당 후보는 부동산 부패카르텔의 범죄를 설계해서 천문학적인 부당이익을 나눠가지게 하고도 뻔뻔하게 거짓을 늘어놓고’ ‘야당 후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전근대적인 주술논란’을 벌였다. 그런데 흠 없는 촬스는 왜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하단 말인가.
● 교만하고 인색한 장수는 쓰지 말라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제가 어떤 사람이고, 비전과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면 국민들이 인정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 안철수의 진가를 몰라서 지지율이 안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부정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정파 안 가리고 바른말 잘하는 것으로 이름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와 함께 했던 사람들 90%가 척지고 떠났다”고 했다. 대체 그 이유가 뭐냐 말이다.

제갈량은 병법서 ‘장원(將苑)’에서 절대 장수(將帥)로 쓰면 안 될 두 가지 품성을 교만함과 인색함, 즉 장교린(將驕恡)이라고 했다. 교만하면 무례를 범하게 되고, 무례를 범하면 인심이 떠난다. 인색하면 상을 주지 않게 되고, 상을 주지 않으면 부하들이 목숨 바쳐 싸우지 않는다는 거다.
● 안철수도…교만하고 인색하다
“내 멘토는 300명”이라던 안철수의 멘트를 기억하는가. 서울시장 보선 출마설이 파다하던 2011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시절, 그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내 멘토라고 하는데 내 멘토는 김제동, 김여진 등 300명 정도”라고 건방을 떨어 윤여준, 김종인 등 그를 도우려던 노(老)정객들을 경악시켰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들었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의 단일화를 발표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 쪽은 ‘시골의사’ 박경철 씨.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들었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의 단일화를 발표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 쪽은 ‘시골의사’ 박경철 씨.

그때는 정치적 문법에 미숙해서였다고 치자. 출발부터 대선 후보급이기 때문일까. 안철수는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마땅하다는 ‘교만’을 왕관처럼 쓰고 사는 것 같다. 2016년 2월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던 이상돈 전 의원은 지난해 낸 회고록 ‘시대를 걷다’에서 안철수에 대해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는 집념 내지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썼다(바른미래당은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돼 4년 뒤 대선에 나가기 위해 만든 ‘1회용 플랫폼’이었고ㅠㅠ).

인색한 것도 사실로 봐야 한다.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국민의당이 누구 돈으로 운영돼왔나요. 다 제 돈으로 했지”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국고보조금이 들어오면 영수증 첨부해서 전부 돌려받는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안철수는 자기 돈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100원 단위까지 받아내 당내에선 혀를 내둘렀다는 게 국민의당 사람들의 전언이다.
● 내가 당선돼야 정권교체라고?
이제 이해되지 않는가. 한때 안철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왜 좋은 소리 않고 떠나갔는지. 정치는 사람이 따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안철수에게 세(勢)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사람은, 안철수는 발전을 한다는 거다.

나는 지난해 초 서울시장 선거 전 ‘도발’에다 안철수 부친이 “큰아이는 경선할 아이가 아냐”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안철수는 경선하지 않는다’고 썼다. 내가 틀렸다. 안철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제의했고, 경선했으며, 자신이 패배하자 오세훈 후보를 도와 국민의힘 승리에 기여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안철수는 자기가 당선돼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보다는, 지 알고 내 알고 모두가 아는 정권교체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야권 후보 단일화다. 그래서 지금 지지율 10%대에 불과한 안철수에게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안철수를 껴안고 싶어 난리다.
● 안철수가 이재명과 단일화로 대통령 되면
안철수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끝까지 갈 것”이라며 “만약 단일화가 안 돼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은 큰 정당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책임은 큰 정당인 국민의힘에 있다는 경고이자 협박이다. ‘10분 담판’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가능하다는 윤석열의 메시지가 안철수로선 무례하고 불쾌했을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윤석열이 안철수를 성나게 만든 건 실수였다. 안철수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재명과의 ‘물밑 접촉설’을 부인하지 않은 바 있다. 이재명으로선 안철수를 윤석열과 단일화시키지 않는 게 최선이고, 차선이 자기와 단일화하는 것일 터! 이미 대통령 자리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루머까지 나돈다(왜? 그쪽은 대선에서 지면 죽으니까!)

‘나로 정권교체’ 하겠다고 안철수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은…거의 없다. 사람도 없고 세(勢 )도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책임총리 이재명’이 안철수를 청와대에 위리안치 시킨 채 170여석 민주당을 지휘해 이석기의 통진당 부활은 물론, 남북연합이나 고려연방제를 포함한 개헌까지 모든 일을 해버릴 수도 있다.
● 안철수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기 바란다. 설령 그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더라도, 생각을 해보면 알 것이다. 아무리 이재명이 자기가 당선돼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국민 55% 이상이 바라는 진정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거대 양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일 때 3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마크롱 모델’을 들먹이는 안철수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다. 프랑스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바로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우리 국민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는 ‘전략적 투표’ 없이 맘 편하게 원하는 후보를 찍을 수 있다. 안철수한테 단일화해달라고 10년 째 애걸할 것도 없다. 그래서 89개 국가에선 이미 이런 제도를 도입해놓고 있는 것이다. 젠장.
● ‘한국적 결선투표’의 길을 열어주시라
그렇다면 이번에 안철수가 ‘살아있는 결선투표’로 진정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어주면 어떤가. 윤석열과의 진지한 협상을 통해 자신이 간절히 원해왔던 ‘새 정치’를 얻어내고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장렬하게 사퇴하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5일 베이징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서 윤석열 후보와 사진촬영을 기다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5일 베이징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서 윤석열 후보와 사진촬영을 기다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도 교만한 ‘10분 담판’이 아니라 안철수와의 정치협상으로 진정한 정치교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암만 좋게 보려 해도 과학기술이나 미래 비전에 대한 윤석열의 식견은 한참 부족하다. 지지기반도 안철수를 통해 중도 쪽으로 넓혔으면 한다. 특히 당선 뒤 국정운영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안철수와 손잡는 외연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철수에게도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당신은 아직 젊다. 호랑이띠. 이제 60세다. ‘10분 협상’이든 ‘당신들의 혁명’이든 국민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금껏 모이지 않던 사람들도 차츰 구름같이 모여들 것이다. 그렇게 교만과 인색에서 벗어나다보면, 5년도 잠깐이다. 대통령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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