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냉전 종식이 선언되고 세계는 환호했지만, 옛 동독 시민들 사이에 축적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의심해왔다. 일상을 감시해 정부에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들을 ‘슈타지(국가보안부)’라 불렀다.
40년 넘게 지속됐던 동독 공산독재 치하의 감시 체제 ‘슈타지’를 파헤친 책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2025년) 등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저자의 2003년작으로, 이듬해 영국 최고 논픽션상인 새뮤얼 존슨상을 수상했다. 호주 저널리스트 출신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전직 슈타지 요원들과 감시 아래 삶이 파괴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며 국가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슈타지는 정부가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둔 ‘내부 군대’였다. 이들은 시민 6.5명마다 한 명의 정보원이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인민 전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아냈다.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인지,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심지어는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까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책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두루 다루는데, 특히 가해자들의 모습이 충격적이다. 한 정보원은 ‘누군가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치졸한 만족감에 감시에 임했음을 밝혔고, 저자가 만난 한 전직 슈타지 고위 간부는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감시한 것”이라며 여전히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 중 일부는 “독재 국가에 사니까 이건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체제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럼에도 책은 자신의 기억을 증언해 권력에 저항하는 피해자들의 현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강인함도 함께 조명한다. 그리고 묻는다. 국가는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 그 폭력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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