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이 키운 ‘후루룩후루룩’ 면치기가 두려운 계절, 여름[이용재의 식사의 窓]

  • 동아일보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드디어 여름, 냉면의 계절이다. 냉면, 특히 평양냉면이 겨울 별미라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건 안다. 북한에서 겨울이면 동치미 국물에 만 메밀면을 즐겼다는 냉면 기원설을 신봉하는 사람들 말이다. 냉면이 겨울 음식이라는 인식은 냉동·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의 산물이다. 지구 온난화로 해마다 견디기 힘든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요즘, 냉면은 여름 음식이어야 이치에 맞다.

평양냉면이든 함흥냉면이든, 그도 아니면 막국수든 밀면이든 차가운 국물에 만 국수가 참으로 잘 넘어가는 계절이다. 그런 만큼 계절 별미를 즐기러 갔다가 불의의 ‘면치기’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일부러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크게 내면서 많은 양의 면을 입으로 빨아들이는 행위 말이다. 가정교육, 특히 식사 예절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게 받은 처지에서 면치기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괴로운 행위다.

처음 예능 프로그램에서 면치기의 실태를 확인하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맛집 탐방에 나선 연예인들이 요란스럽게 국수를 먹는 것을 되레 장려하기까지 한다. 이 현실은 과연 무엇인가. 식사 예절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이를 확인하고자 어린이용 교육 도서를 사서 읽어봤고, 그제야 안도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음식은 소리를 내지 않고 먹어야 한다고 책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대체 어쩌다 면치기 같은 행동이 사회에서 널리 권장되는 것일까. 유튜브에서 ‘먹방’(먹는 방송) 영상을 찾아 집중 분석해 보면 면치기가 ‘예견된 재앙’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입의 크기, 호흡의 간격 등 생리적·물리적 한계로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의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단숨에 빨아들인다. 그러면 요란한 소리가 나는 한편 면이 요동치면서 국물까지 튄다. 부정적인 의견이 넘쳐나지만 면치기가 근절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면치기는 어디에서 온 걸까? 이웃 나라 일본으로 의심의 눈길을 보내본다. 음식 다큐멘터리 ‘누들로드’(2008년)에는 요란하게 면치기를 하며 먹는 일본 선종 승려들이 등장한다.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이들에게 가끔 찾아오는 국수를 더 맛있게 먹으려는 방편이라는 해설이 따라붙는다.

면치기가 라멘과 우동처럼 따뜻한 국수를 먹을 때 맛을 더 잘 느끼게 해준다는 설도 있다. 입을 벌리고 면을 빨아들이면 공기가 함께 입속으로 들어간다는 원리다. 역시 면치기가 일정 부분 용인되는 일본에서 통용되는 논리인데 설득력이 없다. 올리브오일이나 와인, 커피처럼 향이 핵심인 액체라면 가글액으로 입안을 헹구는 것처럼 소리를 내며 공기를 빨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전문가들이 맛을 볼 때나 허용될 뿐, 보통의 식사에서 그랬다가는 예의가 없다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방송에 책임을 묻고 싶다. 좋게 봐주려 해도 그러기 어려운 면치기이건만, 왜 재치 있는 행동이라도 되는 양 포장해 계속 등장시키는 걸까. 본격적인 냉면의 계절, 예쁘게 똬리를 틀어 나온 면과 식탁에서 마주칠 때마다 연예인들의 면치기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두려움에 몸서리를 친다. 면을 사랑하지만 면치기를 두둔할 수는 없는 심정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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