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예방은 안부 묻는 일에서 시작된다[기고/이정열]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0일 00시 30분


이정열 hy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이정열 hy사회복지재단 이사장
며칠째 문 앞에 그대로 놓인 발효유. 쌓여가는 우편물. 30년 넘게 전북 군산에서 활동해 온 hy 프레시 매니저 이현숙 씨는 어느 날 홀몸 어르신 댁 앞에 그대로 놓인 제품과 쌓인 우편물을 보고 이상함을 감지했다. 즉시 주민센터에 연락했고 경찰과 함께 문을 열어 홀로 쓰러진 어르신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지나쳤을 작은 신호를 한 사람이 놓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서울 광진구의 프레시 매니저 탁정숙 씨 역시 홀몸 어르신의 평소와 다른 기척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그는 단순히 제품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말벗이 되어주고 생활을 살피며 관계를 이어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빠르게 위기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속에서 고독사 문제를 심각하게 마주하고 있다. 국내 1인 가구는 이미 800만 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의 약 35% 수준에 이르렀고 고독사 사망자도 연간 3000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AI 안부 확인 서비스와 사물인터넷(IoT) 기반 복지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확인하는 현실은 분명하다. 고독사를 예방하는 마지막 힘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기술은 움직임의 이상을 감지할 수 있지만 외로움의 온도까지 읽지는 못한다. 데이터는 위험 가능성을 분석할 수 있지만 “오늘은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주지는 않는다.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살피는 일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hy사회복지재단의 ‘홀몸 어르신 돌봄 사업’이 있다. 1994년 시작된 이 사업은 hy사회복지재단의 뿌리로, 전국 1만1000여 명의 프레시 매니저들이 매일 홀몸 어르신 가정을 찾아 건강 음료를 전달하며 안부를 확인한다. 제품이 장기간 쌓여 있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즉시 관할 기관과 연계해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지속성이다. 고독사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오랜 단절과 외로움이 누적되며 만들어지는 사회적 결과다. 그렇기에 예방 역시 단순한 시스템 구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꾸준히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는 관계가 필요하다.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사람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첨단 기술이 복지의 효율을 높일 수는 있지만 공동체의 온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이 위험을 감지하고, 사람은 마음을 살피는 사회.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복지의 방향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위기를 예방하며, 안부를 확인하는 일은 사람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민관 협력 역시 시스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며 마음을 살피는 따뜻한 온기가 함께할 때 진정한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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