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중동 평화’ 꿈꿨던 이스라엘 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

  • 동아일보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막바지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자지구 곳곳은 이미 폐허가 됐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무너진 삶의 터전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총성이 멎어도 평화까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지금의 중동을 보면서 한때 팔레스타인과의 화해를 추진하며 중동 평화의 가능성을 열었던 이스라엘 제5대 총리 이츠하크 라빈(1922∼1995·사진)을 떠올리게 됩니다.

라빈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유대인 무장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입니다. 독립전쟁을 거치며 군인으로 성장해 1964년에는 이스라엘군 총참모장까지 올랐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압도적 승리로 이끌며 국민적 영웅이 됐습니다. 당시 라빈은 안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테러를 지원하는 이란을 맹렬히 비난했고, 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전역 후 주미 대사를 거쳐 정치에 발을 들인 라빈은 1974년 이스라엘 본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국방장관과 노동당 당수를 지내며 정치 지도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전쟁 경험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평화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라빈은 점차 ‘평화는 친구가 아니라 적과 만드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1993년 라빈은 미국의 중재 아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와 역사적인 화해에 나섰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를 공식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어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협정 서명식에서 라빈과 아라파트가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방송됐습니다.

오슬로 협정 이후 일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모색했고, 적어도 ‘공존 가능성’ 자체는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94년 아라파트 등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라빈의 발걸음은 거센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1995년 텔아비브의 평화 집회 연설을 마치고 나오던 라빈은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청년이 쏜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던 군인이 평화를 말하던 순간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가 죽자 오슬로 체제는 무너지고, 중동은 다시 갈등과 충돌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평화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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