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정진우]중대재해처벌법으로 지킬 수 없는 중소기업의 안전

  • 동아일보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공장 화재 참사 반복
어렵고 모호한 규정에 현장 혼란 부담 가중
처벌 중심 법 정책에 사고 예방 기능 실종
전면 개편 없인 산업재해 감소 구조적 한계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20일 대전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안전공업 공장에서 사망자 14명 포함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그간 제조업체 사고 중 사상자가 가장 많았던 2024년 아리셀 참사(사망자 23명 등 총 31명)보다도 피해가 컸다. 두 참사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못내 씁쓸하다. 중대재해 방지를 명분으로 제정된 법이 현실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할뿐더러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이번 사고는 제조업체 중소기업이라는 점, 위험물질 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점, 불법 구조 변경으로 대피가 곤란했다는 점, 당국의 예방 지도가 부실했다는 점 등에서 아리셀 참사와 닮은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는 왜 참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걸까? 이런 참사가 기업만의 책임일까? 정부에 책임은 없는 것일까?

전 세계에서 산업안전에 가장 많은 행정자원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참사가 반복되고 중대재해가 되레 늘고 있는 것은 법 정책의 엉성함 탓이 크다. 이 구조적 문제의 중심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법의 대대적 개편 없이는 전체 산업재해의 90% 이상이 발생하는 중소기업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 감소를 기약하기 어렵다.

산업안전의 기본법 역할을 해야 할 산업안전보건법의 수많은 문제점은 방치한 채, 처벌 중심의 중대재해처벌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예방 기반 구축이라는 정부 본연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도 버거운 중소기업에 대기업조차 이행하기 어려운 중대재해처벌법은 ‘준수’ 대상이라기보다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공포’ 대상일 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이 서류 작성 중심으로 흐르고, 정작 이행해야 할 실질적 조치는 소홀히 대하고 있는 까닭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입법 취지와 달리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안전에 마중물은커녕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준법 의지가 강한 기업조차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모호한 규정이 수두룩하다. 설상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파견법,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과 충돌되는 규정도 많아 신이 아닌 이상 판단하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주무 부처도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형식적 안전에 매몰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둘째, 의무 사항에 이행 가능성이 결여돼 있는 규정이 적지 않다. 예컨대 중소기업으로부터 도급·용역 등을 받은 하청업체가 잠깐 간단한 작업을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하청업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수많은 안전조치를 직접 해야 한다. 법 규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행정부처와 국회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셋째, 형사 처벌 회피에 급급하느라 실질적 안전 활동은 한가한 일로 치부되고, 안전에 대한 냉소가 현장을 휘감고 있다. 법의 모호성과 공포를 핑계 삼아 안전을 외부에 내맡기다시피 하는 면피성 컨설팅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컨설팅이 쓸모가 있을 리 만무하다. 사회적으로 처벌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뒤틀려 있는 법 규정 개정과 같은 본질적 과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넷째, 중대재해 발생 기업은 어떻게든 처벌하겠다는 수사 편의적인 법 집행이 남발되면서 기업들은 형사 처벌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해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숨기거나 찾으려는 노력을 기피하고 있다. 사고 관련 정보 공유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고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현실은 중소기업을 위시한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경고 신호를 여러 루트로 보내고 있다. 이 법이 정의롭다는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이 법은 애초 안전 원리를 도외시하고 엄벌이 유일한 해법인 양, 그것도 다분히 대기업을 겨냥해 제정됐다. 태생적으로 중소기업 안전에 순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웠다. 또 한 번의 참사를 겪으며 무엇보다 중소기업 안전 현실이 어떠한지, 무분별한 처벌 중심 정책이 얼마나 무모한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에 발을 딛고 중소기업의 예방 능력을 높이기 위한 법제 개선과 여건 조성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당장 처벌에 지나치게 집중된 행정력을 중소기업 예방 지도·감독으로 분산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혁신적 개편을 포함해 안전 기준을 예측 가능하고 실효성 있게 정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는 사고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도리이자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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