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방문한 산부인과 2곳 수술 거절
50대 남친 “인천에 가보자” 직접 예약
“아기는 사산되나” 병원에 확인하기도
병원비 800여만원 지불…수술뒤 헤어져
해당 병원, 불법 브로커 통해 상습 낙태
결국 병원장 살인죄 징역형, 여성은 집유
더뎁스(The Depth)는 사건과 사고 뒤에 숨겨진 입체적인 맥락을 파헤치는 시리즈입니다. 현장의 소음에 가려진 핵심 쟁점을 파고들어 ‘왜’와 ‘어떻게’를 선보이겠습니다.
2024년 6월 21일, 권모 씨(27)는 배가 부풀어 오르자 설마 하는 마음에 대구에 있는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임신 5~6개월이 넘은 것 같다”고 했다. 불과 나흘 뒤인 6월 25일, 권 씨는 인천에 있는 다른 산부인과에서 임신 36주 태아를 지우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이틀 뒤 권 씨는 유튜브에 ‘총 수술비용 900만 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했다. 자신의 임신중절 수술 관련 기록이 담긴 브이로그였다.
처음 임신 사실을 확인한 권 씨는 대구에 있는 다른 산부인과 두 곳을 먼저 방문했다. 권 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요구했지만 두 곳 모두 거절했다. 의사는 “태아가 너무 커서 수술은 안 된다. 1~2개월 뒤에 낳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권 씨는 네 번째로 찾아간 인천에 있는 산부인과 의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제왕절개로 태아를 꺼낸 뒤 수술실 옆 냉동고에 넣어 숨지게 했다. 법원이 형법상 살인으로 판단한 수술이었다.
권 씨가 유튜브에 올린 임신 36주 차 초음파 영상 화면. 그는 아이가 움직이는 초음파 영상과 함께 ‘지우고 싶어 찾아간 병원’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권 씨의 채널은 현재 폐쇄됐다. 권 씨 유튜브 채널 브이로그 화면 캡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4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원장 윤모 씨(81)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50만 원형을 선고했다. 그동안 올린 수익 중 일부인 11억5016만 원은 추징 명령했다. 임신중절 수술을 집도한 의사 심모 씨(62)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권 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 중절 수술비 내준 26세 연상 남자친구
윤 씨가 운영한 병원을 권 씨에게 알려준 건 26세 연상 최명석 씨(53·가명)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 씨는 권 씨가 수술받던 당시 교제하던 남자친구였다. 최 씨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9만 원의 방에서 홀로 지내던 권 씨의 월세를 보조해 줬다. 권 씨는 다니던 직장에서 따돌림 등 어려움을 겪다 권고사직을 당한 뒤 최 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권 씨는 처음으로 최 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 ‘지우고 싶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에서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모두 수술을 거부하자 권 씨는 최 씨에게 “알고 있는 병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블로그를 보니 인천에 있는 산부인과는 임신 34주 차도 수술하는 것 같다. 가보겠느냐”고 권 씨에게 알려줬고, 직접 병원 측에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는데 7개월 정도 돼 보인다고 한다. 임신이 아니라 해서 지금까지 피부약이나 감기약도 많이 먹었다. 그것보다 꼭 (중절 수술을) 하고 싶어서, 해야 해서 연락을 드려봤다”는 취지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상담 다음 날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 비용도 전해 들었다. 이어 병원에 권 씨의 진료 예약을 직접 했다. 그는 “물어봐달라고 해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겠다. 아기는 사산되는 것이냐”라고 문자메시지를 병원 측에 보냈고, “맞다”는 답을 받았다.
2024년 6월 25일 병원에 방문한 권 씨는 몸이 무거워져 힘들고 출혈과 복통은 없다는 취지로 자신의 증세를 병원장 윤 씨에게 설명했다. 윤 씨는 권 씨를 임신 34주 4일 차로 진단한 뒤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뉴시스문제는 수술비였다. 권 씨가 “500만 원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1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권 씨는 최 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했다. 최 씨는 “700만 원이나 750만 원 선에서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라”고 했지만, 병원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권 씨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나온 권 씨는 다시 최 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병원에 돌아가 “900만 원이면 수술이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병원이 가능하다는 뜻을 밝히자 권 씨는 최 씨에게 수술비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최 씨는 “어떻게 해서든 800만 원까지 맞춰주겠다”고 약속하고 수술비를 마련해줬다고 한다. 결국 권 씨는 수술비를 입금한 뒤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권 씨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고, 아이를 낳으면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어서 다시 (산부인과로)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에서도 “인천까지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도 태아가 너무 커서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 미혼모 시설에 들어갔다 입양을 보낼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임신중절 수술을 마친 2024년 6월 27일, 권 씨는 유튜브에 ‘임신 36주 차 낙태 브이로그’를 올렸다. 아이의 움직임과 초음파 등이 담긴 영상도 담겨 있었다. 권 씨는 “3월쯤 생리가 길게 멈춰 산부인과를 방문했을 때 다낭성난소증후군에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그런 거라고 해서 별 의심치 않았다”고 영상 자막에 적기도 했다. 권 씨의 채널은 현재 폐쇄됐다. 권 씨 유튜브 채널 브이로그 화면 캡처 최 씨는 수술 이후 권 씨와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2024년 8월경 경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최 씨는 별도로 조사받거나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다만 최 씨가 숨진 36주 아이의 생부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도 “피해자의 생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판결했다. 최 씨는 지금까지 권 씨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권 씨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될 것에 대비해 출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이나 입양 절차를 알아보는 등 출산을 준비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며 “오히려 권 씨는 경찰에서 ‘출산을 피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수술을 받으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 씨는 유튜브 구독자를 늘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 등에 관한 동영상을 게시해 우리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생명존중의 이념이 (권 씨에게)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꾸짖었다.
● 3년간 527차례 불법 수술…판결문에 드러난 ‘불법 시장’ 실태
권 씨가 수술받은 인천의 산부인과는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모집한 뒤 임신중절 수술을 반복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권 씨가 수술받은 의원은 2022년 8월부터 2024년 7월 11일까지 총 527회에 걸쳐 브로커로부터 환자를 소개받고 14억6211만 원의 수술비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의료법상 브로커가 의료기관에 환자를 영리 목적으로 소개 및 알선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병원은 브로커로부터 환자를 소개받고 적게는 15만 원, 많게는 100만 원 이상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병원장 윤 씨는 2022년 7~8월경 브로커에게 임신중절수술을 원하는 환자를 소개하고 알선하는 대가로 임신 7주 이하는 15만 원, 8~24주는 70만 원을 수수료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2023년 9월경에는 임신 24주 차 초과 산모에 대해서는 100만 원, 제왕절개수술은 120만 원을 수수료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수백만 원의 고가 수술비 중 상당 부분이 브로커의 수수료로 지급된 것이었다.
브로커 한 씨는 병원과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 배 씨는 블로그를 개설 및 운영하면서 이 사건의 의원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게시글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배 씨는 블로그에 “임신 주수가 높으신 경우 전화 주시면 자세한 상담이 가능합니다”는 등의 문구로 광고를 게재해 주 수가 높은 산모의 임신중절수술 관련 문의를 받아 상담했다. 이를 통해 브로커들은 수수료로 총 3억1195만 원을 받았고, 같은 기간 블로그를 관리하던 배 씨는 40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따로 있었다. 집도의 심 씨는 월 급여로 1300만 원을 수령해왔다. 재판부는 “심 씨는 불과 1건당 40만 원의 수당을 받기 위해 임신중절 수술을 집도해 왔다”며 “검찰에서 ‘집도한 태아가 살아있었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별다른 생각은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20대 여성의 낙태 수술을 진행한 혐의를 받는 산부인과 병원장과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4.10.23 뉴시스 판결문에 따르면 윤 씨는 형사처벌을 피하려고 진료 기록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사산 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해 신원미상의 태아 사체를 화장했다. 재판부는 “윤 씨는 수사선상에서 집도의 심 씨의 존재를 숨기고, 수술로 숨진 36주 태아가 이미 사산한 상태였던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허위로 진술할 것을 누차 지시했다. 산부인과 직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처조카 변호사를 참석시켜 수사기관에서 한 불리한 진술을 번복할 방법에 관해 법적 조력을 받는 등 증거를 인멸하고 범행을 은폐하고자 시도했다”고 봤다.
결국 브로커 한모 씨는 징역 1년, 배모 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 씨의 수익금 중 약 2억2000만 원, 배 씨의 수익금 9200만 원도 추징을 명령받았다.
여전히 온라인에선 임신중절 수술 관련 병의원을 홍보하는 블로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19주까지 당일 수술’, ‘임신중기 20주 이상 다음날 유도분만 진행 후 당일 퇴원’, ‘명확한 후속 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건강과 안정을 기준으로 의학적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등의 문구가 버젓이 적혀있었다.
● “낙태 아닌 살인” 판단에도 이어지는 입법 공백
낙태죄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돼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다만 아직까지 낙태죄에 대해서는 별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법률적 공백 상태에 놓여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만 임신중지 방법을 수술로 한정하고 성폭력, 유전 질환 등 제한적 사유에서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재판부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결정을 들어 살인의 고의나 위법성의 인식이 없었다고 할 순 없다”며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통상적으로 의료계에서도 임신 34주 이후 태아는 생존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단계로 본다.
다만 권 씨가 2024년 2월경 다니던 직장서 퇴사한 뒤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당시엔 별다른 소득이나 재산이 없었고, 오랜 시간 가족들과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는 등 권 씨가 놓인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만약 권 씨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초기에 인지하고 전문가로부터 정신적 지지와 정보를 제공받으면서 숙고할 수 있었다면, 아울러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과는 충분히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때 2020년 말까지 입법하라는 게 지침이었다”며 “국회에서 이를 실행하지 않아 무법 상태에서 수술이 이뤄지는 상황 자체가 큰 문제이기에 최대한 빠르게 관련 법안을 입법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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