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1000만, 혼자여도 고립되지 않는 사회 [기고/김수영]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24일 23시 06분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필연적 혼자의 시대’ 저자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필연적 혼자의 시대’ 저자
중학교 도덕 시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오랜 논쟁을 처음 접했다. 성선설과 성악설. 스스로를 돌아보니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어떤 때는 착해 보였지만, 어떤 때는 모질기 짝이 없었다. 성품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개인화 연구를 위해 100여 명의 1인 가구를 만나면서 인간에게서 끝내 변하지 않을 한 가지 속성을 실감했다. 바로 상호의존성.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든, 착하든 나쁘든,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태어날 때 탯줄을 끊어줄 타인이 필요했듯, 죽은 뒤에도 눈을 감겨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인간이다.

그런 우리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혼자가 대세인 시대를 맞이했다. 1인 가구 1000만 시대. 2025년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체 2412만 가구 중 42%인 1012만 가구가 1인 가구다. 과거 전형적 가구였던 4인 이상 가구는 16%에 불과하다. 이제 미혼보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회자되고, 혼밥과 혼술은 일상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는 현 세태를 척박한 환경에서 번식을 멈추는 동물의 본능에 견주었다. 하지만 국가별 데이터를 보면 조금 다른 측면이 눈에 띈다. 전쟁이나 극심한 빈곤처럼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사회에서는 오히려 1인 가구 비율이 낮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기에 기꺼이 공동체를 이룬다. 우리나라도 지금보다 훨씬 척박했던 1970년대에 1인 가구 비율은 3%대에 그쳤다.

반대로 유럽, 북미, 일본, 한국처럼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후기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1인가구 비율이 40%를 넘나든다. 그러니 혼자 사는 삶은 생존의 위기가 아니라 풍요가 만들어낸 현상에 가깝다. 우리가 하는 경쟁은 생존경쟁이 아니다. 생존이 이미 보장된 상태에서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무한경쟁이다. 그 안에서 타인은 협력과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주식처럼 손익을 계산해 손절과 보유를 결정하는 투자자원이 되어 가고 있다.

풍요의 시대, 그래서 혼자인 시대에 인류가 맞이할 최대 위험은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관계의 결핍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를 전담하는 사회적연결위원회를 출범했다. 미국 브리검영대 줄리언 홀트런스태드 교수팀의 메타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다. 실제로 만성적 외로움은 뇌졸중 위험을 32%, 심장질환 위험을 29%, 치매 발생 위험을 50%, 조기 사망 위험을 26% 높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 어서 가족을 만들라’는 해법은 공허하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가족조차 하나의 거대한 개인이 되어 무한경쟁에 참전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을 넘어서는 공동체의 회복이다. 소득 보장만이 아니라 돌봄의 순환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도 그 일부다. 이를 위해서는 의존을 나약함으로 여기며 억눌러 온 우리 안의 상호의존성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혼자여도 고립되지 않는 사회, 서로를 돌보고 돌봄을 받는 것이 민폐가 되지 않는 사회. 그것이 1인 가구 1000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다음 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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