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완벽한 연주’에도 당신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 동아일보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인공지능(AI)이 음악을 연주하는 시대가 됐다. 악보를 정확히 읽고, 박자를 흔들림 없이 지키며, 감정의 농도까지 계산해 재현하는 연주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간보다 더 안정적이고 실수도 없다. 음 하나하나가 정확히 제자리에 놓이고, 템포는 메트로놈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AI는 이미 흔히 말하는 ‘좋은 연주자’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이런 시대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실제 연주자의 연주를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걸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는 인간의 연주에서 여전히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 미묘하게 흔들리는 음색,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호흡, 그리고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같은 곡을 연주해도 날마다 다른 느낌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인간의 개입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연주자가 어떤 음 앞에서 잠시 속도를 늦출 때다. 흐름을 지키면서도 그 음 앞에서 잠깐 멈칫하는 순간, 우리는 그 음악이 미리 정해진 소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은 이런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오래전 하나의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이 바로 ‘루바토(rubato)’다. 루바토는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루바레(rubare)’에서 나온 말이다. 말 그대로 연주자는 시간을 잠시 훔쳤다가 이내 다시 돌려준다. 그래서 루바토는 박자를 어기는 기술이라기보다 시간을 조금 밀고 당기는 방식에 가깝다. 가수가 노래할 때 감정을 싣기 위해 어떤 단어를 조금 더 끌거나, 다음 구절을 살짝 늦게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연주자는 이렇게 시간을 밀고 당기며 음악의 감정이 얼마나 깊어질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 판단은 악보에 쓰여 있지 않다. 같은 곡, 같은 마디 안에서도 매번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무대 위 ‘지금 이 순간’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AI도 루바토를 연주할 수 있다. 특정 연주자의 데이터를 학습해 어느 지점에서 얼마나 늦추고 어디서 다시 속도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AI의 연주는 놀라울 만큼 그럴듯하고, 때로는 인간의 연주와 거의 구별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AI의 루바토는 이미 정해진 시간이다. 어디에서 늦추고 어디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지가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결정돼 있다. 다시 말해 AI는 루바토를 재현할 수는 있지만, 그 순간을 망설일 수는 없다. 반면 인간 연주자의 루바토에는 늘 아주 짧은 망설임이 있다. 그것은 계산된 결과가 아니라, 순간을 선택하는 사람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망설임은 일정한 데이터로 환원되기 어렵다. 그날의 컨디션, 무대에 올라 처음 악기를 마주하는 감각, 객석의 분위기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 같은 연주자의 같은 곡이라도 루바토는 매번 다르다. 어제의 감정과 오늘의 감정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악보를 연주하더라도 인간의 연주에는 언제나 미세한 흔들림과 망설임이 남는다. 그것은 때로는 실수가 되지만, 어떤 날에는 깊은 감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청중이 공연장에서 숨을 멈추고 감동을 받는 순간은 대개 이런 지점에서 찾아온다. 음이 조금 늦어졌다는 사실보다, 그 음이 나오기까지의 짧은 기다림이 먼저 마음에 닿을 때다. 객석의 공기 역시 함께 느려진다. 누군가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고, 누군가는 숨을 고른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듣고 있다기보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만들어 가는 시간 속에 함께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연주자가 조금 늦추면 객석도 함께 기다리고, 다시 움직이면 호흡도 그에 맞춰 따라간다. 그 짧은 늦춤은 악보가 아니라 무대 위에 선 한 사람이 그 순간에 내린 선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이 연주자와 객석의 시간을 잠시 같은 속도로 흐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하게 정확했던 연주보다 잠깐 늦어졌던 그 한순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

AI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인간은 시간을 망설일 수 있다. 루바토는 그 망설임이 음악으로 남은 흔적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망설임까지 구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연주를 찾는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루바토는 아직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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