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재동]‘이재명표 복지’의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9일 23시 16분


유재동 부국장
유재동 부국장
요즘 이재명 대통령의 스타일은 야당 대표나 경기도지사 때와 사뭇 다른 면이 있다. 지지층을 향한 특유의 공격적이고 선명한 화법이 줄어들고, 어느 정도 절제되고 균형 잡힌 메시지가 관찰된다. 야당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을 때 흔히 나타나는, 익숙하고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런 변화는 이미지나 스타일뿐 아니라 실제 정책에도 구현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6일 기초연금을 하후상박 구조로 재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소득 하위 70% 이내라면 빈곤 노인과 여유 있는 중산층 노인이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는다. 앞으로는 저소득층에 더 많이 주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에도 “일률적으로 유류세 부담을 줄이면 양극화를 제어하지 못한다”며 세금 깎아줄 재원으로 서민과 어려운 계층을 타깃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라는 간판을 내세워 수시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자던 사람이 맞나 싶다.

재정 집행에 이념보다 효율 강조

이 대통령의 변신은 사실 취임 전부터 예고됐던 바다. 작년 1월 당 대표였던 그는 “경제 안정과 회복, 성장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기본소득 공약에 대한 재검토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이어진 대선에서 기본소득이나 분배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둔 공약들을 내세웠다. 이런 태도는 집권 후에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엔 아동수당을 18세 미만까지 확대한다고 공약했지만 재정 문제를 고려해 13세 미만으로 대상을 줄였다. 이 대통령의 포퓰리즘을 강하게 비판했던 이혜훈 전 의원에게 나라 곳간지기(기획예산처 장관)를 맡기려 한 시도도 결과는 아쉬웠지만 대략 이런 흐름에서 나온 결정으로 읽힌다.

대통령의 인식 전환에는 다양한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복지와 재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실제 바뀌었을 수 있다. 막상 국정 최고책임자가 되고 보니 나라 살림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간담회에서 “국가 살림을 하다 보니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은 없다”며 “뿌릴 씨앗이 없어서 밭을 묵힐 생각을 하니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중도층 민심을 잡기 위해 급진적 주장을 잠시 자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국민 기본소득은 당장은 재정 문제나 사회적 합의가 낮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국민 합의가 덜 된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는 자칫 두터운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변화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그는 과거 자신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주장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시인한 적이 없다. 기초연금 역시 빈부 노인 간 증액분을 달리하자고만 했지, 지급 대상을 줄이거나 금액을 삭감하는 정공법을 얘기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유나 배경이 어찌 됐든 대통령이 현실을 자각하고 정책 노선을 수정하는 유연함을 보이는 게 나쁠 것은 없다. 이 대통령은 올 초에도 전력 수요 급증이라는 현실과 압도적 국민 여론을 받아들여 신규 원전을 짓기로 생각을 바꾸는 실용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진보 정부에서 되풀이된 부동산 실패를 교훈 삼아 대책을 정교하게 가다듬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실용정부 성과로 진정성 입증해야

‘기본소득’ 대신 ‘실용’을 자기 브랜드로 재정립할 수 있느냐는 대통령의 의지와 민심의 호응도에 달려 있다. 지지율이 높을 때는 노선 변화를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고 이것이 정책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정권의 힘이 떨어지게 되면 다시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거나 강성 지지층의 논리에 포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유연한 리더십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계속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기초연금#기본소득#나라 살림#중도층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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