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타고, 남자의 스카프가 흩날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8일 00시 30분


[패션 NOW]
남성 패션의 조연에 머무르다… 올해 SS 컬렉션서 존재감 과시
목 넘어 어깨-허리까지 확장… 셀린느-디올-프라다 등서 선보여

올해 봄여름(SS) 시즌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남성 스카프의 크기를 키워 목뿐만 아니라 어깨, 허리까지 내려오거나 마치 옷의 한 부분처럼 여겨지는 방식의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왼쪽부터 메종 마르지엘라, 셀린느, 디올 맨, 크레이그 그린에서 선보인 남성 스카프의 런웨이 연출 모습. 각 사 제공
올해 봄여름(SS) 시즌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남성 스카프의 크기를 키워 목뿐만 아니라 어깨, 허리까지 내려오거나 마치 옷의 한 부분처럼 여겨지는 방식의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왼쪽부터 메종 마르지엘라, 셀린느, 디올 맨, 크레이그 그린에서 선보인 남성 스카프의 런웨이 연출 모습. 각 사 제공
겨우내 잊혀져 있던 스카프에 다시 시선이 간다. 단지 계절이 바뀌어서만은 아니다. 재킷이나 코트 사이에 가볍게 두르던 만년 조연 스카프가 올해 봄여름(SS) 남성복 컬렉션 브랜드에서 주연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목에 두르는 액세서리라는 범주를 넘어 티셔츠와 스커트로까지 쓰임을 넓히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스카프의 출발은 실용적이었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 로마제국 등지에서 목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천 조각이 그 시작이다. 염색과 직조 기술이 발달한 중세에 이르러서는 화려한 장식이 더해져 상류층의 신분을 드러내는 사치품의 반열에 올랐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스카프는 다양한 소재와 패턴으로 대중에게 퍼져 나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활동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며 스카프를 스타일링의 핵심 요소로 끌어올렸고, 에르메스는 전통 문양을 활용한 실크 스카프로 럭셔리 스카프의 기준을 세웠다.

한동안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스카프가 남성복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1970년대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가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스카프를 활용한 중성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남성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았다. 이후 패션계 전반에 퍼진 젠더리스 트렌드와 맞물리며 스카프는 남성복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스카프는 용도가 정장 차림에 한정된다는 인식이 강한 넥타이를 대신해 패션에 포인트를 부여하는 아이템으로 남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스카프는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치며 꾸준히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스카프가 목을 넘어 어깨와 허리까지 영역을 넓혔다는 점이다. 준야 와타나베는 스카프를 한쪽 어깨에 고정한 뒤 길게 늘어뜨려 아우터처럼 활용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스카프를 앞으로 툭 떨어뜨린 뒤 로브 재킷의 벨트와 함께 묶어 색다른 실루엣을 만들었다.

스카프를 의복처럼 활용한 시도도 이어졌다. 하우스 고유의 스카프 패턴과 소재를 그대로 옮겨온 셔츠 블라우스를 선보인 셀린느가 대표적인 예다. 진중한 느낌의 슬랙스와 매치해 클래식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프라다는 경쾌한 스트라이프 패턴의 실크 블라우스로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플립플롭과 백팩을 더해 더없이 여유롭고 낭만적인 무드를 연출했다.

허리 아래로 내려온 예상치 못한 행보도 포착됐다. 전통적인 테일러링을 기반에 둔 페라가모는 클래식 슈트 재킷에 같은 톤의 숄 스카프를 골반에 칭칭 감아 늘어뜨리는 색다른 해석을 보였다. 디올 맨 또한 베스트와 같은 컬러의 스카프를 허리에 두르는 방식으로 부드러운 흐름을 더했다. 드리스 반 노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셔츠와 타이, 재킷까지 완벽하게 갖춘 정통 슈트 차림에 팬츠 대신 스카프 스커트를 두르는 담대한 시도를 이어갔다. 걸음마다 나부끼는 스카프 자락이 테일러링에 의외의 우아함을 더하는 순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모델들이 일제히 손이 아닌 입술로 스카프를 물고 등장한 크레이그 그린의 런웨이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쇼 노트에 따르면 스카프를 뱉어내는 듯한 독특한 연출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갈망하는 영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치다. 이는 스카프가 단순한 옷차림을 넘어 시대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스카프 한 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목에 둘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스타일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비단 패션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는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스카프를 두르는 방식 하나가 스타일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스카프#남성복#젠더리스#패션트렌드#테일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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