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 개념 제시 세계적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별세…향년 97세

  • 동아일보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 개념을 제시한 독일의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1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7세.

AP통신과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방송 등에 따르면 출판사 주어캄프는 하버마스가 이날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슈타른베르크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슈타른베르크는 고인의 자택이 있는 곳이다.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그는 취리히, 본 대학 등에서 철학과 심리학 등을 폭넓게 공부한 뒤 대표적 프랑크푸르트학파의 1세대 학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년) 아래서 연구했다. 1960년대부터 하이델베르크대와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쳤다.

고인의 대표 저서인 ‘공론장의 구조변동’(1962년)과 ‘의사소통 행위 이론’(1981년)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간의 합리적 토론과 소통의 의미를 정립한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 그는 17, 18세기 서유럽에서 부르주아 공론장이 발달하면서 여론을 형성했고, 이를 통해 근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봤다. 또 주관과 주관이 서로 대등하게 의사소통하며 토론과 합의를 통해 의견을 개선하는 합리성 개념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시민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공론장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
현실 정치 문제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1980년대 일부 역사학자들이 홀로코스트를 유럽의 전쟁과 폭력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쟁이 일자, 그는 독일이 과거의 범죄를 직시하고 성찰하는 ‘과거사 청산’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한국에서 하버마스는 가장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있던 사상가였다. 1996년 서울대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약 2주간 이어진 강연과 행사마다 수천 명이 몰렸다.

하버마스는 2012년 본보를 통해 보도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에서 독일의 민주주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1949년 나치 체제의 유산을 정리하고 서독이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지만, 적과 동지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정치문화를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며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도 상대를 협력의 파트너로 보지 못했고,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여기는 냉전적 사고가 오래 지속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민사회는 역동적”이라며 한국 정치가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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