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3〉

  • 동아일보

봄바람 속에 종(鐘)이 울리나니

꽃잎이 지나니

봄바람 속에 뫼에 올라 뫼를 나려

봄바람 속에 소나무밭으로 갔나니

소나무밭에서 기다렸나니

소나무밭엔 아무도 없었나니

봄바람 속에 종(鐘)이 울리나니

옛날도 지나니

―박용래(1925∼1980)


3월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서성이게 되는 달이다. 겨울 점퍼는 세탁소에 맡기고 가벼운 외투 차림으로 산책에 나서는데 손이 시리다. 계절보다 앞서 나가는 마음을 종종걸음으로 따르는데 멀리 공중에서 희미하게 일렁이는 연둣빛이 보인다. 저게 뭘까? 미간에 힘을 주고 살펴보는데 버드나무다! 버드나무 어린잎이 병아리 솜털처럼 돋아나 ‘겨우’ 연두를 흉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봄의 머리카락 끝을 남몰래 봐버린 기분이 들었다.

다시 봄이다. 바람은 아직 찬데 “봄바람 속에 종이 울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박용래 시인은 봄바람을 두고, 어떻게 봄바람 속에 종이 울린다고 표현했을까? 짧은 시 속에 길게 개울이 흐르고 있을 것 같은 박용래 시인의 모든 시를 사랑하지만 그가 계절을 노래할 때는 특히 아름답다. “소나무밭에서 기다렸나니/소나무밭엔 아무도 없었나니” 3연을 보라. 이렇게 간단히 사람을 텅 빈 수수깡처럼 헛헛하게 만들 수 있다니. 그것도 단 두 줄로.

봄에는 봄바람을 잔뜩 맞아야겠다. 봄바람 속에 들리는 종소리를 모아 시를 짓고, 남은 종소리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투명하게 맑은 종소리는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간 줄도 모르게 나가겠지. 나무의 유년 시절인 3월부터 4월에는 새잎 돋는 곳을 찾아다니며 진지하게 구경할 것이다. 나무의 유년은 짧으니 초록이 무성해지기 전에 눈에 가득 담겠다.

#봄바람#종소리#박용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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