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콩팥 받고 메스꺼움과 피로 사라져… 남은 건 효도뿐”[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이주한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만성신부전증 임다솜 씨
20대 중반 검진 사구체신염 진단… 겉으론 멀쩡… 신장은 점점 악화
“말기까지 증세 없는 사람 많아”
투석하며 이식수술이 유일 해법… 부친 콩팥 기증, 수술 결정했지만
갑자기 혈액질환 발견, 일정 중단… 18개월 준비 후 수술 새 인생 찾아

만성신부전증으로 오래 투병한 임다솜 씨(오른쪽)는 아버지에게서 콩팥을 기증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이주한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에게서 정기 점검을 받은 후 카메라 앞에 함께 섰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만성신부전증으로 오래 투병한 임다솜 씨(오른쪽)는 아버지에게서 콩팥을 기증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이주한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에게서 정기 점검을 받은 후 카메라 앞에 함께 섰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콩팥(신장) 안에 있는 모세혈관 뭉치를 사구체라고 한다. 정수기로 치자면 고성능 필터다. 혈액 속 노폐물을 소변으로 내보낸다. 입자가 굵은 단백질과 적혈구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걸러 낸다. 몸의 수분과 전해질을 조절한다.

이 사구체에 염증이 생기는 게 사구체신염이다. 그러면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해 독소가 몸 안에 쌓인다. 반대로 단백질과 적혈구는 빠져나간다. 소변에 거품이 일면서 단백뇨가 생기고, 빨간색 혹은 콜라 색 혈뇨가 나온다. 소금 성분은 못 나가고 수분도 조절되지 않아 몸 여기저기가 붓는다. 이런 증세가 3개월 이상 나타났다면 만성 신부전일 확률이 높다. 사구체신염은 당뇨병, 고혈압과 함께 만성 신부전의 3대 원인으로 꼽힌다.

사구체가 1분 동안 걸러 내는 혈액의 양과 노폐물 비율을 사구체 여과율이라고 한다. 사구체 여과율이 60% 밑으로 떨어지면 만성 신부전으로 본다. 자각 증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주한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이 때문에 콩팥이 완전히 망가지고 난 후에야 병원에 오는 환자도 적잖다”라고 했다.

● 건강검진에서 사구체신염 발견

2020년 12월, 임다솜 씨(32)는 회사를 관두고 잠시 쉬고 있었다. 몸이 상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단백뇨 수치가 높으니 큰 병원으로 가 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긴장하지는 않았다. 중고교 다닐 때도 학생 건강 검사에서 단백뇨가 종종 검출됐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는 학업 스트레스, 격한 운동 등으로 인해 단백뇨가 일시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재검사를 받아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이 교수는 최소한 1년 이내에 재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다.

임 씨는 A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사구체신염 진단을 받았다. 아무 증세도 없는데 병은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흔하다. 이 교수는 “사구체 여과율이 20%까지 떨어져도 증세를 못 느끼는 환자가 많다. 건강검진이 병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사구체신염 환자의 20∼30%는 10∼20년에 걸쳐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한다.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 임 씨는 의사 처방에 따라 식단부터 조절했다. 일단 덜 먹어야 했다. 단백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백질 섭취량도 낮췄다. 염증을 억제하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했다. 여드름이 나고 얼굴이 동그랗게 부어올랐다. 스테로이드 약물 부작용이었다.

● 사구체 여과율 급격히 떨어져

임 씨는 2021년 2월부터 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치료법이 살짝 달라졌다. 스테로이드 약물을 줄이고 면역억제제를 투입했다. 염증은 항체가 과도하게 반응할 때도 발생한다. 면역 반응을 줄이면 염증도 줄일 수 있어 이런 약물을 투입한 것.

덕분에 얼굴 부기는 많이 빠졌다. 하지만 사구체 기능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당시 사구체 여과율은 29%. 만성 신부전증이 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폐물이 몸 안에 쌓여 나타나는, 이른바 요독 증세는 별로 없었다. 이 교수는 “환자에 따라서는 사구체 여과율이 10% 이하로 떨어져도 요독 증세를 자각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어떤 환자는 빈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그 경우에도 철분제를 먹으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신장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 병을 ‘침묵의 병’이라고도 부른다.

임 씨는 이후로 1년 7개월 동안 2∼3개월마다 신장내과를 찾아 몸 상태를 살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급기야 2023년 8월, 사구체 여과율이 12%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15% 이하로 떨어지면 투석을 준비해야 한다. 신장 이식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해 9월, 임 씨는 이식외과로 옮겨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 1년 반 동안의 투석 끝에 이식 수술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구체 여과율은 다시 8%로 떨어졌다. 이 무렵 만성 신부전 증세가 극심해졌다. 갑자기 배에 가스가 차는 느낌이 강해졌다. 부대낌도 심해졌고 구역질도 나왔다. 신발에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당장 투석을 시작했다. 콩팥 이식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뇌사자 콩팥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임 씨 아버지가 콩팥 기증을 결심했다. 수술 날짜는 2개월 후인 11월로 결정했다. 다만 기증자인 아버지 혈액형(O형)과 수혜자인 딸 혈액형(A형)이 일치하지 않았다. O형의 항체가 지나치게 강하면 이식 자체가 힘들 수 있다. 고난도 수술이 예상됐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면역 체계가 혈관을 공격하는 비정형성 용혈요독증후군이란 희귀 질환이 발생했다. 혈액이 깨져 혈전으로 변하는 병이다. 신부전을 비롯한 심각한 여러 질병을 유발한다. 콩팥을 이식한 후에도 재발 확률이 높아진다.

의료진은 고심 끝에 수술을 보류했다. 이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이 교수는 “의학적으로 아주 복잡한 일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 기간이 1년 6개월이나 걸렸다”라고 말했다. 위험은 여전히 있었지만, 의료진과 환자 모두 동의해 수술을 결정했다. 2025년 2월 임 씨는 아버지 콩팥을 자신의 오른쪽 콩팥 부위에 이식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4일 만에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5일이 더 지나 퇴원했다. 다만 4개월 후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발견돼 위기를 맞은 적도 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큰 탈없이 마무리했다. 이후로는 순탄했다. 2∼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점검할 뿐이다.

● 이식 후에 새로 얻은 삶

임 씨는 수술하기 전, 매주 3회씩 1년 6개월 동안 투석을 받았다. 힘겨운 나날이었다. 요독이 쌓여 항상 피곤하고 지쳤다. 음식 조절은 고역이었다. 못 먹는 게 많았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이면 피해야 했다.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회사, 병원, 집만 오가는 쳇바퀴 생활. 여행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임 씨는 “의식 자체가 또렷하지 않고 늘 뿌연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콩팥을 이식받은 후 새 삶을 얻었다. 구역감은 사라졌다. 피로감도 일상의 피로 수준으로 확 떨어졌다. 무엇보다 먹는 즐거움이 커졌다. 먹지 못하던 채소와 고기도 맘껏 먹게 됐다. 식탁이 풍성해졌다. 가족과 외식도 자주 한다. 덕분에 체중이 늘었지만, 필라테스로 조절하고 있다. 언감생심이던 운동이다. 이 교수는 “콩팥을 이식받은 후에도 격한 운동만 아니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콩팥이 이식된 오른쪽의 다리가 가끔 욱신거린다. 매일 면역억제제, 혈압약, 고지혈증약 등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투석받을 때와 비교하면 ‘천국’ 수준이다. 이 교수는 “욱신거리는 느낌도 점점 무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요즘 늘 ‘효도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버지가 콩팥을 내어준다고 할 때에도 불효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는 것조차 죄송했다. 그 감사함을 서툴게나마 표현했다. “부모님이 주신 장기 잘 유지하고, 앞으로는 건강한 모습만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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