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숙원’ 핵잠 건조 첫발… 장소-시기 안담겨 후속협상 이어져야

  • 동아일보

[한미 관세-안보 합의 발표]
“美, 韓핵잠 건조 승인” 팩트시트 발표
위성락 “韓서 건조 전제로 정상회담… 건조 위치 국내로 정리됐다고 봐”
핵잠 연료 농축우라늄 확보도 숙제

2023년 12월 17일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핵잠)인 ‘미주리함’이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다. 부산=뉴스1
2023년 12월 17일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핵잠)인 ‘미주리함’이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해 있다. 부산=뉴스1
한미가 14일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sheet·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핵잠) 건조가 한미 합의 문서로 공식화됐다. 한국이 30여 년간 추진해 왔지만 번번이 미국의 반대에 가로막힌 숙원 사업인 핵잠 건조가 첫발을 떼게 된 것이다.

다만 팩트시트에는 핵잠 건조 장소와 시기, 연료 공급 방안 등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기지 않았다. 정부는 핵잠 선체는 물론이고 원자로까지 10년 내 한국에서 건조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한국 핵잠 건조 장소와 방식 등을 두고 이견이 돌출한 가운데 팩트시트에 ‘한국 건조’ 등 정부가 밝힌 핵심 원칙이 담기지 않으면서 후속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핵잠 건조 장소, 연료 공급 방식 두고 줄다리기 이어질 듯

이날 공개된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잠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approval)했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핵잠을 어디에서 건조할지, 연료를 어떻게 공급받을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담기지 않은 것. 핵잠 건조 장소를 두고 한미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배(선체)는 여기(국내)에서 짓고, (핵잠용 소형) 원자로도 우리 기술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진행됐다”며 “건조 위치에 대해선 일단 (국내로) 정리됐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필리조선소엔 잠수함 건조 시설이 없는 데다 한국에서 제작한 부품 반입 문제, 원자로 건조 장소, 유지·보수·운영(MRO) 문제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적지 않아 미국 건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필리조선소를 거론하자 “한국 조선소도 훌륭하다”며 한국에서 건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다음 날 소셜미디어에 “한국은 핵잠을 훌륭한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며 미국 건조를 재차 거론했다. 팩트시트 조율 과정에서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핵잠을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향후 실무 협의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핵잠 연료로 사용될 저농축우라늄(LEU)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완료하는 것 역시 숙제로 남아 있다.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이 핵물질의 군사적 이용을 다루고 있지 않은 만큼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핵연료 확보를 위한 별도의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을 판매하는 프로젝트인 ‘오커스(AUKUS)’ 협정 방식도 거론된다. 위 실장은 이날 “호주의 오커스 가입을 참고해 보면 미국의 원자력 관련 법률 91조에 있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했다.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저농축우라늄을 미국으로부터 받기 위해 호주처럼 미국 대통령 권한으로 군용 특수 핵물질 이전을 허용받는 방식으로 미국이 한국에 핵잠 연료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팩트시트에 핵잠 승인은 물론이고 핵잠 연료 공급에 대한 미국의 협력을 문서화한 것 자체가 큰 진전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소식통은 “핵잠을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한미가 팩트시트 확정에 진통을 겪은 만큼 핵잠 도입의 선결 조건인 미국 승인이나 연료 공급 등을 일단 문서화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 “핵잠 연료 공급과 원자력 협정 개정은 별개”

위 실장은 이날 잠수함 건조 일정에 대해 “목표 시기가 특정돼 있지 않지만 대개 (건조에) 10년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빨리 시작해서 시기를 앞당겨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군은 5000t급 이상 핵잠을 2030년대 중반 이후 4척 이상 건조하겠다는 방침인데, 이 계획에 맞춰 미국의 핵연료 조달이나 기술 지원 등 미국과의 협의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핵잠에 LEU를 연료로 사용하면 5∼10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자체 농축한 우라늄으로 연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정부는 “원자력 협정은 군사용이 아닌 민수용에 국한된다”고 일축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핵잠 연료 생산 관련 부분과 원자력 협정에 따른 민수용 농축과 재처리 부분은 저희가 분별해서 보고 있다”며 “민수용(농축 우라늄)은 평화적 목적이고 군사용과 전혀 관계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핵잠 도입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위 실장은 “우리가 핵연료를 미국에서 받아 재래식 잠수함에 사용해도 핵무장이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오커스 협정이 NPT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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