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점 작품 한 점 한 점이 명작”… ‘레드보이’, 18세기 화풍 절정 보여줘
내셔널갤러리 역사 다룬 영상도 눈길… 2차대전땐 ‘한 점 전시회’로 시민 위로

● 한 점 한 점이 명작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전시 개최 이후 하루 평균 2700명이 방문하고 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특별 전시 중 2016년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37만 명) 이후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전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16년과 달리 팬데믹 후 회차별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 ‘레드보이’는 한국 관람객에게 특히 사랑받는 작품이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초상화가로 권위 있었던 로런스가 당시 더럼 백작의 아들이 6, 7세 무렵일 때 의뢰를 받아 그렸다. 이 시기 아카데미 화풍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67년에는 영국에서 우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림 속 소년이 13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작품에 아련함을 더한다.
● 내셔널갤러리 역사 영상도 눈길

내셔널갤러리는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1793년 루브르궁이 박물관이 된 것에 영향을 받아 설립됐다. 영국에서도 왕실이나 귀족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공 미술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824년 의회가 설립을 추진했다.
다만, 왕정이 무너진 프랑스와 달리 왕과 귀족이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었던 영국에서는 왕실 소장품을 강제로 공공 자산으로 만들 수 없었다. 이에 은행가였던 존 앵거스테인(1735∼1823)의 소장품 38점을 구입하고, 그의 집을 빌려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후 1838년에야 오늘날 런던 트래펄가광장의 건물로 이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한 점 전시회’를 열어 국민을 위로한 일화도 유명하다. 독일군의 영국 침공이 가까워졌을 때 내셔널갤러리는 소장품 전부를 시골 광산에 마련한 수장고로 옮겼다.
그 후 텅 빈 미술관에서 음악회를 열었지만 그림 없는 미술관에서 허전함을 느낀 사람들이 작품 전시를 요청한다. 이에 미술관은 시골 광산에서 매달 작품 한 점씩을 가져와 전시했고, 이를 보기 위해 매일 수천 명이 미술관을 찾았다. 이 ‘한 점 전시회’에 걸렸던 작품이 3점이나 국내 전시에도 출품됐다.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 폴라이우올로의 ‘아폴로와 다프네’, 렘브란트의 ‘63세의 자화상’이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