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내 안에 다른 병이 있을지도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1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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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만성피로, 70%는 원인 질환 있어
정신건강 문제도 만성피로 유발
끈질기게 대처해야 벗어날 수 있어
해결 출발점은 생활 습관 개선


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만성피로 환자의 70%가 다른 질환을 갖고 있다며 동반 증세를 면밀히 살필 것을 당부했다. 만성 피로에서 탈출하려면 평소에 생활 습관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피곤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른하고 무기력하며 낮에 졸음이 쏟아진다. 때로는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른바 춘곤증이다.

춘곤증은 의학적으로는 질병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피로감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행하면서 낮이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간다. 겨우내 위축돼 있던 우리 몸도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신진대사는 더 활발해지고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난다. 그 부작용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춘곤증에 의한 피로는 일시적이다. 우리 몸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면 2~3주 이내에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피로감이 지속되며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피곤하다면 춘곤증이 아니다. 만성피로일 가능성이 높다. ‘병이 되는 피로’인 것이다.

만성피로는 무기력증 같은 육체적 증세부터 우울감이나 패배감 등 정신적 증세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원인 또한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 ‘족집게 의사’라 해도 정확히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만성피로 대처법을 들어봤다.
●만성 피로, 원인 질환부터 찾아야
피로는 지속 기간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1개월 미만이라면 급성 피로로 분류한다. 춘곤증을 굳이 의학적으로 분류하자면 급성 피로에 가깝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이런 피로는 쉽게 극복된다. 피로가 나타나는 기간이 1개월 이상~6개월 미만이라면 지속성 피로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극복은 어렵지 않다.

이와 달리 만성피로는 진단과 치료 모두 어렵다. 보통 6개월 이상 극심한 피로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경우에 만성피로로 진단한다. 만성피로 환자의 70% 정도에서 질병이나 심리적 문제가 발견된다. 만성피로를 해결하려면 원인 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질병이 피로를 유발한다. 돌려 말하자면 만성피로는 질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신호다. 하지만 피로의 강도나 양상만 따져서는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피로에 동반하는 증세를 살펴야 한다. 어떤 증세를 동반하느냐에 따라 개괄적이나마 원인 질병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간 기능이 많이 떨어졌을 때는 피로감과 함께 황달 증세가 종종 나타난다. 때로는 오른쪽 배에 통증이 생기면서 가려움증도 동반한다. 콩팥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면 붓는 증세가 동반하거나 소변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갑상샘(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면 피로하면서도 불안과 초조감이 커진다. 체중이 빠질 수도 있다. 반대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면 푸석한 느낌이 많이 들고 체중이 늘면서 추위를 느끼게 된다.

당뇨병이 원인이 돼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경우 물을 많이 마시며 덩달아 소변 양도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체중이 빠질 수도 있다. 빈혈이 원인이라면 피곤하면서도 어지럼증이 생기며 두통이 나타날 수도 있다. 불면증이 원인이 된 피로는 그나마 해결책이 명확하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피로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피로에 동반하는 증세로 의심할 수 있는 질병

동반 증세
의심 질환
발열, 야간 발한
감염질환 잠복성 종양 림프종
체중 감소
감염질환, 우울증, 악성종양, 갑상선질환, 섭식장애
호흡 곤란
심부전증, 빈혈, 만성 폐쇄성폐질환, 불안증
관절통, 관절경직
류마티스성 관절염, 바이러스성 질환
흉통
관상동맥질환, 역류성 식도질환, 불안증
수면 장애
불안증, 우울증, 수면무호흡증
설사
염증성 장질환, 흡수 장애, 과민성 장증후군
두근거림
부정맥, 갑상선기능항진증, 불안증

●‘육체적 피로’ vs ‘정신적 피로’
만성 피로의 원인 질환 중에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정신 건강 문제가 원인인 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40대 초반 미혼 여성 A씨가 그런 사례다.

A씨는 6개월 전부터 피로감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직장을 다니기 힘들 정도까지 상태가 악화돼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심전도, 갑상샘(갑상선), 간, 콩팥, 폐 검사 등을 진행했지만 질병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 교수가 A씨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봤다. A씨는 혼자 살고 있었다. 음식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외출 횟수도 적었다. 우울과 불안 증세도 보였다. 김 교수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면서 생활 습관 개선을 권했다.

한 달 후 A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속에 가스가 차는 느낌이 들어 약을 거의 먹지 않았고 생활 습관도 개선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결과 피로감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우울과 불안 증세도 그대로였다. 만성피로 치료에 실패한 셈이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A씨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냈다.

사실 정신건강에서 비롯된 ‘정신적 만성 피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만성 피로’와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일단 육체적 피로의 경우 스트레스와 무관할 때가 많다. 또한 본인이 가장 먼저 피로를 자각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2개월 안에 알아차린다. 피로는 아침보다는 오후나 저녁에 더 심한 경향이 있다. 피로감이 심해지면 주변에서 “병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피곤해 보인다.

정신적 만성 피로의 경우 스트레스와 큰 관련이 있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기 쉽다는 뜻이다. 또한 피로감은 아침에 가장 심하다. 증세가 나타나고 4개월 이상 지속돼도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 증세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한다. 이 경우에도 병이 있는 것처럼 안색이 나빠진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보다는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먼저 알아볼 때가 많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정신적 만성 피로와 육체적 만성 피로의 비교

구분
정신적 만성피로
육체적 만성피로
피로 증세를 인식하는 주체
가족이나 친구
환자 본인
주된 결핍 내용
‘욕망’과 관련됨
‘능력’과 관련됨
스트레스와의 관련성
관련 있음
관련 없음
증세가 나타나는 기간
4개월 이상 지속 혹은 재발
2개월 미만
증세가 심해지는 시간
아침에 심해짐
오후나 저녁에 심해짐
증세 경과
악화와 호전 반복
비슷한 상태로 진행
가족들의 상황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
자를 많이 지지함

● 만성 피로 극복, 끈기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만성피로 환자가 병원에 가면 원인 질환부터 찾는다. 원인 질환이 발견되지 않으면 미네랄보충제나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생활 습관을 개선한다. 물론 약물 없이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도 만성피로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단, 환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50대 B씨와 C씨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50대 남성 B씨는 1년째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새벽 1시 이전에 잠들지 못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질병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 교수가 살펴보니 B씨는 체중이 90㎏으로 비만이었다. 또 평소 술을 많이 마셨다. 김 교수는 체중 감량, 절주, 수면 관리를 주문했다. B씨는 첫 달에 2㎏, 두 번째 달에 3㎏을 감량했고 술을 줄였다. 그 결과 따로 약을 먹지 않고도 피로감이 사라졌다.

50대 여성 C씨도 여러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6개월 이상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김 교수는 C씨의 피로 또한 생활 습관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C씨는 1년 전부터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했고, 체중 증가를 우려해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과도한 운동과 단백질 결핍을 문제로 생각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운동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단백질을 넉넉히 섭취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 점만 고쳤을 뿐인데, C씨는 한 달 만에 피로감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건강한 생활 습관이 피로 줄인다
대한가정의학회 ‘가정의학’ 교과서는 피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스트레스 △우울과 불안 △통증 △염증 △운동 장애 △수면 장애 △대사 장애 △에너지 불균형 △빈혈 △약물 △장기 이상 △감염 △종양 △항암 치료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전체 만성피로 환자의 30% 정도는 이런 원인 질환을 찾지 못한다. 이 경우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하는데, 뾰족한 치료법은 없다.

결국 애초에 피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훌훌 떨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잠은 최대한 잘 자고, 편식하지 않으며,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도 해야 한다.

무엇이든 과도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 특히 C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친 다이어트는 극심한 피로를 유발한다. 김 교수는 “운동을 심하게 하면 젖산과 같은 산화물질이 몸에 쌓일 수 있어 되레 더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며 “때로 과도한 운동은 콩팥과 같은 장기를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적절한 강도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피로감이 커지는 이유는 연령대별로도 다르다. 30, 40대의 경우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피로의 원인일 때가 많다. 50대 후반부터 60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체력 저하가 피로의 원인일 수 있다. 또한 이 나이 때부터는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따라서 50대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장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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