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수반에 파키스탄계… 英, 인도계 총리 이어 ‘非백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38세 무슬림 유사프, 최연소 수반
현직 칸 런던시장도 파키스탄계
英정치 ‘남아시아계 전성시대’

“영어도 거의 못 하는 상태로 스코틀랜드에 온 조부모님은 손자가 자치정부 수반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키스탄계 이민 3세 무슬림인 훔자 유사프 스코틀랜드 보건장관(38·사진)이 27일 스코틀랜드의 새 자치정부 수반 겸 집권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로 뽑혔다. 29일 취임하면 1999년 자치정부 수립 후 첫 비백인 수반 겸 최연소 수반, 영국의 첫 무슬림 정당 대표 등 각종 기록을 쓰게 된다.

유사프 내정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및 유럽연합(EU) 복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수계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 권리도 보호하겠다고 했다.

영국 정계의 비백인 정치인 열풍도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9월 인도계 힌두교도 리시 수낵이 최초의 비백인 총리에 올랐고 최대 도시 런던 또한 파키스탄계 사디크 칸 시장이 2016년부터 이끌고 있다. 수엘라 브래버먼 내무장관, 프리티 파텔 전 내무장관 등도 인도계다.

● 킬트 입고 우르두어로 선서
BBC 등에 따르면 유사프 내정자는 27일 온라인으로 치러진 SNP 대표 선거에서 52%의 지지를 얻어 케이트 포브스 재무장관, 애시 리건 전 커뮤니티 안전담당 부장관을 손쉽게 눌렀다. 그는 스코틀랜드 의회의 승인 투표와 찰스 3세 국왕의 승인을 거쳐 29일 에든버러에서 취임식을 갖는다.

스코틀랜드 의회 제1당인 SNP는 영국에서의 독립을 주창하는 중도 좌파 성향이다. 총 650석인 영국 의회에서도 집권 보수당, 제1야당 노동당 다음으로 많은 44석을 확보하는 등 중앙 정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유사프 내정자는 1985년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친조부모는 파키스탄 펀자브에서 이민을 왔고 아버지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난 남아시아계다. 조부는 재봉 공장에서 일했고, 조모는 버스표 티켓에 스탬프 찍는 일을 했다.

그는 글래스고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2011년 스코틀랜드 최연소 의원으로 뽑혀 정계에 입문했다. 자치정부에서 국제개발, 교통, 법무, 보건장관 등 요직을 역임했다. 의원으로 뽑혔을 때 치마 형태의 스코틀랜드 고유 복식 ‘킬트’를 입고 파키스탄의 공용어 ‘우르두어’로 선서했다.

첫 결혼은 백인 여성과 했지만 이혼했고 팔레스타인계 심리 치료사와 결혼해 딸을 두고 있다. 이날 그가 당선 연설을 할 때 그의 어머니와 부인은 내내 눈물을 흘렸다.

● 英 잔류파 설득-성인식법 등 과제 산적
그의 앞날은 험난하다. ‘독립 및 EU 복귀 추진’은 현실적으로 실현 방안이 마땅치 않다. 중앙정부의 반대는 차치하고 SNP 내 적지 않은 ‘영국 잔류파’를 상대로도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2019년 12만5000명이었지만 최근 7만2186명에 불과한 당원도 늘려야 한다.

역시 중앙정부가 반대하는 ‘성인식 개정법’의 처리도 관심이다. 성소수자의 법적 성별을 정정하는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으로 지난해 12월 스코틀랜드 의회를 통과했다. 이후 니컬라 스터전 내각이 남성으로 태어나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성전환 수술을 거친 여성 트랜스젠더를 여성 교도소로 보내려 하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중앙정부 또한 자치정부 출범 후 최초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이 범죄자는 다시 남성 교도소로 돌아갔다.

수낵 총리, 칸 시장, 브래버먼 장관 등 남아시아계 이민자 후손의 약진도 관심이다.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주요국은 모두 영국의 식민 지배를 거쳤다. 오래전부터 많은 주민들이 영국으로 이주했고 영어는 물론 각종 제도와 문물에 익숙해 다른 이민자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다는 평을 얻는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스코틀랜드#무슬림#유사프#파키스탄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