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진심으로 우영우를 사랑했을까”[정양환의 데이트리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2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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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즈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


[3] 드라마 ‘웬즈데이’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의 주인공 웬즈데이(오른쪽)와 학교 친구 유진.  두 사람은 별종들이 다니는 학교 네버모어 내에서도 비주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넷플릭스코리아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의 주인공 웬즈데이(오른쪽)와 학교 친구 유진. 두 사람은 별종들이 다니는 학교 네버모어 내에서도 비주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넷플릭스코리아 제공


“절대 그걸 잃지 마. 타인이 널 규정하게 두지 않는 거. 그건 재능이야. …가장 흥미로운 식물은 그늘 밑에서 자라는 법이지.”(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에서)

괴짜 감독 팀 버튼이 빚어낸 화려한 진수성찬. 하지만 거기엔 지지리도 바뀌지 않는 세상의 법칙 하나가 화인(火印)처럼 새겨져 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그 ‘정상’과 ‘보통’에 대한 집착이.

넷플릭스가 지난해 말 선보인 ‘웬즈데이(Wednesday)’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친숙한 ‘아담스 패밀리’의 스핀오프(외전)다. 기괴한 호러를 사랑하는 비정상 가족의 장녀인 웬즈데이(제나 오르테가)가 부모가 다녔던 네버모어 아카데미에 입학해 겪는 좌충우돌 모험담이 시즌1에서 펼쳐진다. 지금까지 넷플릭스에서 개봉 3주 만에 누적 시청 10억 시간을 넘어선 건 웬즈데이와 ‘기묘한 이야기 시즌4’ ‘오징어 게임’뿐이라 한다.

아담스 패밀리의 딸 웬즈데이를 연기한 제나 오르테가. 2002년생 멕시코계 미국인 배우로 영화 ‘아이언맨3’과 디즈니채널 시트콤 ‘중간 딸은 힘들어’ 등에 출연했다.  넷플릭스코리아 제공
아담스 패밀리의 딸 웬즈데이를 연기한 제나 오르테가. 2002년생 멕시코계 미국인 배우로 영화 ‘아이언맨3’과 디즈니채널 시트콤 ‘중간 딸은 힘들어’ 등에 출연했다. 넷플릭스코리아 제공


이런 성공엔 원작 ‘아담스 패밀리’가 지닌 독특한 질감도 한몫했다. 1938년 미국 월간지 뉴요커에 한 컷 만화로 세상에 등장한 이 작품은, 찰스 아담스(1912~1988)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아담스는 어린 시절부터 밀실공포증을 겪으며 무덤에 갇힌 시체의 처지를 상상했다고 한다. 어른이 돼서도 버터 칼을 사형집행인 도끼 형태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미친 X” 소릴 들었다는데, 이런 고상한(?) 취향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아담스의 친구 중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도 있다.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엔 “찰스 아담스나 그릴 그림”이란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아담스는 회당 35달러밖에 못 받았지만, 작품은 연재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였다. “소수의 정서를 대변해 ‘정상적인 미국인(normal American)’이란 가치를 비꼰 수작”(온라인웹진 코믹북)이란 평가다. 이후 TV시트콤과 영화 등으로 줄기차게 부활한 것도 이런 ‘주류적 시선의 전복’이란 매력이 크게 작용했다. 관습 비틀기에 대한 열광이 이 작품에 국한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근사한 설정임은 틀림없다.

미국 잡지 뉴요커에 연재됐던 만화 ‘아담스 패밀리.’ 아빠 엄마는 자녀인 웬즈데이와 퍽슬리가 “여전히 산타클로스를 믿는다”며 흐뭇해하는 장면이다. 산타의 존재를 믿기에 벽난로에 열심히 불을 지펴 사지로 몰려는 것이다.  사진 출처 구글이미지
미국 잡지 뉴요커에 연재됐던 만화 ‘아담스 패밀리.’ 아빠 엄마는 자녀인 웬즈데이와 퍽슬리가 “여전히 산타클로스를 믿는다”며 흐뭇해하는 장면이다. 산타의 존재를 믿기에 벽난로에 열심히 불을 지펴 사지로 몰려는 것이다. 사진 출처 구글이미지


드라마 웬즈데이도 그런 ‘경계 밖 정서’를 잘 물려받았다. 적당히 삐딱한, ‘요즘 갬성’에 딱 맞는 종합선물세트다. 포장을 뜯으며 고대했던 먹거리가 빵빵하다. 해리 포터가 다닌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별종 버전쯤 되는 네버모어를 배경으로 ‘청춘물+추리물+공포물+코믹물+기타 등등’이 우아하고 유려하게 버무려졌다. 80년 넘은 클래식을 ‘레트로’한 노포(老鋪)처럼 차려내되,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없는 10대 소녀의 정정당당한 솔직함을 앞세워 청년세대의 까다로운 입맛마저 사로잡았다.

웬즈데이는 왠지 한국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도 닮은 구석이 많다. 장애든 마법이든 보통사람과는 다른 여주인공. 사회적 약자이면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로 난관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 뼈대. 쉽지 않은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한 박은빈과 오르테가의 연기가 극의 짜임새를 확 끌어올렸단 점까지.

지난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최고시청률 17.5%를 기록하며 국내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ENA 제공
지난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최고시청률 17.5%를 기록하며 국내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ENA 제공


다만 이들이 사랑스러울수록, 혀끝이 더 시금털털해지기도 한다. 과연 현실에서 만났다면 그들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기나 했을까. 우리가 소송에 얽혔을 때 젊은 자폐스펙트럼 변호사에게 흔쾌히 의뢰를 맡길지. 내 자식이 사회가 외면하는 정신세계를 가진 아이와 친구가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 확신이 들지 않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만 하다.

지난해 출간된 ‘편향의 종말’에서 작가 제시카 노델은 “혐오가 나쁘다고 믿는 사람들조차 사회적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웬즈데이는, 그리고 우영우는 넌지시 일러주고 싶은 게 아닐까. ‘당신이 날 바라보고 있는 건 이게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야’라고. TV 밖에선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적대시하는 세상이 이어지는 한, 우린 그저 그들을 방패삼아 자기위안만 챙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 삐뚤어진 건 어쩌면 웬즈데이가 아니라 우리네일지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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